77화. 파괴자 이순신
삐이익-
후반전이 시작됐다.
“김혁규 선수 침착하게 공격을 진행합니다.”
김혁규와 장승빈은 이순신의 말대로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패스보다는 개인기를 활용했다.
틈만 나면 돌파를 시도했다.
공격 성공률은 3번 중에서 1번꼴이었지만, 뒤에 이순신이 지키고 있었기에 마음껏 달렸다.
장승빈은 측면으로 달린 후 페널티 에어리에서 마중 나온 일본의 수비수를 제쳤다.
“장승빈 선수. 일본의 압박을 뚫어냈습니다!”
장승빈의 다부진 체격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대단했다.
“그대로 슛!”
일본 수비수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띄웠다.
하지만 장승빈은 슛을 차는 척하면서 한 번 더 수비수를 속였다.
“장승빈 선수. 한 번 접었습니다!”
그러더니 힐끗 김혁규에게 패스했다.
“혁규!”
김혁규가 공을 잡았다.
상대편 수비수들이 움찔했다.
“막아!”
하지만 김혁규는 다시 장승빈에게 패스했다.
깔끔한 2:1 패스였다.
“장승빈 슛!”
이번엔 확실히 슈팅을 때렸다.
묵직하고 빠른 슈팅이었지만, 몸을 날린 수비수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아! 하지만 일본 선수의 몸에 맞고 튕깁니다!”
“젠장!”
장승빈은 매우 안타까웠다.
발에 걸리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었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이었다.
흘러나온 공은 이순신의 발에 닿았다.
그동안 수비에 집중했던 이순신이 어느새 나타나는 것이다!
“이순신 선수 기횝니다!”
해설자가 흥분했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오쿠보도 깜짝 놀랐다.
“막아!”
일본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이순신의 발이 공에 닿기 전, 일본은 태클로 걷어냈다.
[쇄빙선을 사용합니다.]
이순신은 태클을 이겨내고 슛을 쐈지만,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하- 젠장!”
이순신은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일본 선수의 발이 다소 높았다는 판정이었다.
“대한민국 팀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냅니다!”
이순신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거리는 25M.
이순신이 좋아하는 위치였으며 통상적으로 프리킥이 가장 잘 들어가는 거리였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4/4)]
[성공률 50%]
이순신은 의아했다.
‘왜 이렇게 성공률이 낮지?’
그것은 일본의 수비 위치 때문이었다.
전방에 5명이 수비벽을 세웠고,
혹시라도 밑으로 공이 흐를 걸 대비해서 일본 선수 한 명이 누워있었다.
골키퍼 뒤에는 2명의 선수가 받치고 있었다.
역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공을 걷어내겠다는 작전이었다.
“이순신은 직접 슈팅을 때릴 거야!”
“무조건 밖으로 걷어내!”
“이번만 막으면 돼!”
일본 수비수들이 간만에 잔뜩 긴장했다.
“재밌네.”
이순신이 웃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격진천뢰 횟수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성공률 100%]
이순신이 발을 구른 후 프리킥을 찼다!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수비벽을 넘겼다.
골키퍼가 나와서 손을 위로 뻗었지만, 그 위로 살짝 지나갔다.
강한 회전이 걸린 공은 오히려 더 난감하게 우측 하단 쪽으로 날아갔다.
“막아!”
일본의 수비수가 재빨리 다리를 뻗었다.
“됐어!”
그는 공을 막았다고 생각했지만,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뭐야 이게?”
한발 느렸다.
공은 그의 다리 위로 지나갔고,
철렁.
마침내 그물을 갈랐다!
“이순신 선수 골입니다! 후반 10분! 엄청난 프리킥 골이 터졌습니다.”
해설자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공 하나를 막기 위해 전원 페널티에어리어 안에 들어왔었는데 그 누구 하나도 공을 건드리지 못했다.
비격진천뢰 한 방으로 이순신은 일본을 격침했다.
“우와와와! 순신아!”
김혁규를 비롯한 선수들이 이순신을 감쌌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일본은 망연자실하게 골라인을 넘긴 골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선수들은 가마 세레머니로 이순신을 태우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가마 세레머니로 명성이 상승합니다.]
이순신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야말로 개선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양손을 자신의 귀 뒤쪽으로 가져갔다.
관중들의 응원을 듣고 싶었다.
가마에서 내린 이순신은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할 수 있어! 한 골 더 넣어서 올림픽 가자!”
“가자!”
이순신의 외침에 대한민국 팀의 사기는 엄청나게 상승했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다급한 일본 감독은 외쳤다.
“더는 실점을 허용하면 안 돼! 무승부야!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결판을 낸다!”
일본은 오쿠보를 비롯한 공격진이 없기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 없었다.
어떻게든 1골을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자신이 가진 쌍룡검을 휘두르며 일본의 투박한 갑옷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1:1이 되니 일본의 전술도 변했습니다. 더는 지키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죠.”
수비하는 데 있어서 피로도가 더 증가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피곤함을 몰랐다.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을 보이며 일본을 압박했다.
왼쪽, 오른쪽, 중앙.
대한민국은 어디에서든 공격할 수 있었다.
반면 일본은 변변찮은 역습도 힘들었다.
축구는 버티고 버텨도,
단 한 방에 경기가 끝날 수 있는 스포츠.
열심히 일본의 골문을 두드리니 행운의 여신도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마침내 일본산 샌드백이 터지기 시작했다.
“임단결 선수 치고 나갑니다!”
임단결의 빠른 발을 이용한 측면 돌파는 오른쪽을 부숴버렸고,
“장승빈 선수의 스프린트는 정말 최곱니다!”
장승빈의 순간 가속 능력은 일본이 막기에 버거웠다.
“이순신 선수의 중거리 슛!”
“흘러나온 공을 김혁규 선수가 찹니다!”
결정력은 약간 아쉬웠지만, 김혁규의 위치선정은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흘러나온 공을 잡은 일본팀. 반격을 시도합니다!”
일본의 측면 미드필더는 속도를 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격을 풀어갈 오쿠보의 부재가 컸다.
그렇다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공격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 돌파해서 슛을 시도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면 체력 소모가 매우 컸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벤치에 있는 감독은 별다른 지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그 역시 나름 유럽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였지만, 무기력함이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일본 감독은 시계를 봤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10분.
“좋아.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설령 우리가 지더라도 한국 팀이 올림픽에 나오지 못할 확률이 커지니까 상관없어.”
오쿠보는 그 소리를 듣고서 기가 찼다.
‘차라리 대한민국이 한 골 더 넣었으면.’
오쿠보는 한국의 올림픽 진출을 간절히 바랐다.
‘제대로 일본의 축구를 선보여서 설욕하고 싶다!’
오쿠보는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9분.
이순신이 공을 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견고한 일본의 수비에서 빈틈을 발견했다.
“단결아. 나가!”
이순신은 빈 공간으로 공을 찔러줬다.
임단결은 공을 잡고 미친 듯이 달렸다.
‘이번에 못 넣으면 기회가 더 없을지도 몰라.’
임단결도 뭔가 느껴졌다.
설렁설렁 뛰던 일본은 빠르게 달려오는 임단결을 잡기에 역부족이었다.
“으윽!”
오히려 갑자기 속도를 높이는 바람에 다리에는 경련이 일어났다.
“임단결 선수. 하프라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페널티에어리어 근처까지 왔습니다.”
임단결이 힐끗 옆을 보았다.
이순신이 보였다.
툭!
가볍게 공을 넘겼다.
일본의 수비수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분명 슛이다! 막아!”
“이순신 선수 슛!”
하지만 이순신은 슛 모션만 취했고, 그대로 공을 흘려줬다.
“공을 흘리는 이순신! 김혁규가 잡았습니다.”
김혁규는 그대로 공을 띄웠다.
골문에서 경합을 벌이던 장승빈이 높게 점프했다.
“장승빈 선수의 헤딩!”
공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나왔다.
“아! 안타깝네요. 하지만 아직 공이 살아 있습니다!”
장승빈은 그대로 바이시클 슛을 시도했다!
“장승빈 선수 다시 슛을 시도합니다!”
공은 땅을 찍은 후 그대로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갔다.
“고오오오오올! 장승빈 선수의 멋진 골! 대한민국이 역전에 성공합니다!”
“우와와아!”
완벽은 단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순신이 빈틈을 본 순간부터 골이란 결과가 정해졌다.
왜 이순신이 주장을 맡았는지,
왜 임단결이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는지,
김혁규가 왜 대표 팀에 뽑혔는지,
장승빈이 왜 차세대 공격수로 불리는지를 알려줬다.
“아…안 돼.”
어떻게 해서라도 승리를 거두고자 했던 일본 감독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오직 한 명.
오쿠보만 가슴이 뛰었다.
‘잘했다. 대한민국.’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의 바람대로 대한민국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살아났다.
일본의 선축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공은 대한민국에 돌아갔다.
선수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비하던 공격을 하든 마음대로 해라. 남은 시간 후회를 남기지 마라.”
그는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고자 했다.
“경기가 종료됩니다. 대한민국 대표 팀이 4강에 진출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팀은 서로 얼싸안았다.
숙적 일본을 역전승으로 이겼으니 그 감동은 두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역사적인 순간을 즐겼다.
반면,
일본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예선도 겨우 통과했는데, 4강전에서 대한민국에 진 건 두 배로 분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잘 싸웠다. 고개를 들어라. 일본의 사무라이들아! 그들이 올림픽에 올라올지 모르겠지만, 만나게 되면 이 빚을 갚아주자. ”
일본 감독은 선수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고자 했지만, 더는 기회가 없었다.
한국 팀에게 패배한 그는 곧바로 경질당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에서 오늘 같은 졸전을 펼치면 망신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
4강에 진출한 나라는 대한민국, 이란, 호주,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이 중에서 대한민국은 호주와 맞붙게 되었다.
호주가 홈이라는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이순신의 도움, 장승빈의 골로 1:0으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 이란은 6:0의 수모를 갚기 위해 노력했으나 3:0으로 점수를 차를 줄이는데 만족해야 했고, 결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대한민국이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순신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헌신했고, 최고의 결과와 최고의 보상을 얻었다.
[충무공이 흐뭇해합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트로피 : U-23 아시안컵 우승!]
[대회 우승 시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다시 급부상합니다. 상대편 23세 이하의 아시아 선수는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더 큰 보상은 따로 있었다.
“순신아!”
예쁜 원피스를 입은 신자영이 손을 흔들었다.
이순신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예쁘지?”
마치 바람에 꽃이 흔들리는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