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뭔가 잘못됐어.
‘뭔가 잘못됐어.’
오쿠보는 지금의 상황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측면을 돌파하는 김혁규의 크로스!”
“장승빈 헤딩!”
“아쉽게 빗나갑니다.”
“이순신의 태클.”
“임단결의 오버래핑!”
“그대로 슛!”
“골대를 맞고 골라인 밖을 벗어납니다!”
임단결이 아쉬운 듯 얼굴을 감쌌다.
“그래도 흐름은 이제 우리 거야.”
그는 관중석을 보며 웃었다.
관중석의 분위기도, 경기의 흐름도 지금은 대한민국 쪽에 기울었다.
일본팀은 쫄렸다.
‘분명 이기고 있는 건 우린데, 왜 쫓기는 기분이지?’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팀은 운 좋게 넣은 한 골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순신 선수. 중거리 슛!”
엄청난 굉음을 낸 중거리 슛이었다.
상대 골키퍼의 반응이 한 발짝 느렸다.
“젠장!”
하지만 아직은 행운의 여신이 일본 편이었다.
“아! 아깝습니다. 공이 살짝 골대를 벗어납니다.”
이순신은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고 수비를 재정비했다.
“일본 선수들. 한 골 넣고 방심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선수의 슛을 아무도 막으려고 하지 않고 있어요!”
일본 감독 역시 기세를 끊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손짓하며 주장을 벤치로 불렀다.
선수에게 무언가를 주문했다.
일본팀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그리고서는 곧바로 작전을 펼쳤다.
일본팀 미드필더가 공을 잡았다.
느릿느릿 드리블을 치고 들어올 때,
촤아아악-
이순신이 너무나 깔끔하게 상대편의 공을 빼앗았다.
“역습 가자!”
이순신의 외침과 동시에 휘슬이 울렸다.
삐이이익-
“뭐가? 내가 무슨 반칙을 했는데?”
이순신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일본 선수는 굉장히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심판이 다가오자 일본 선수는 괴로운 얼굴을 하면서 일어났다.
“시트콤 찍냐?”
이순신은 어이가 없었다.
상대 팀 선수의 왼쪽 다리에 있는 공을 태클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경기가 너무 과열되고 있는 거 같으니 조금만 조심해주게.”
심판은 도리어 이순신에게 주의를 줬다.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장승빈 선수의 슛!”
“일본 선수가 몸을 날려서 막습니다!”
“한국 팀의 코너킥!”
“아 그런데 일본 선수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명치를 정면으로 맞은 거 같습니다.”
일본 선수들은 걸핏하면 경기장에 누웠다.
“와-이불 덮어주고 싶다…”
“순신아.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저거 일본 맞지? 이란 아니지?”
김혁규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봐도 일본인데… 참 나- 이번 올림픽에 골판지 침대를 깐다고 하더니 여기서 성능시험 하나 보다.”
이순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중동 팀의 주특기를 일본팀이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일본팀 감독은 씨익 웃었다.
그의 전술은 의도적으로 경기의 흐름을 끊고,
경기속도를 느리게 조절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이 역습할 기회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일본 역시 공격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자기네 진영에서 공 돌리기는 기본이었다.
오쿠보를 비롯한 공격수 2명을 포함하여 3명 정도만 최전방에 놔둘 뿐,
공격을 도와줄 측면 미드필더는 계속 수비만 했다.
지루한 경기에 한국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은 화가 났다.
일본팀도 마찬가지였다.
저것이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라니…
부끄러움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이순신도 슬슬 짜증 났다.
승부의 세계에서 결과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얻은 승리가 가치가 있을까?
“올라와.”
이순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비라인을 올렸다.
하지만 상대방은 응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오쿠보 역시 매우 화가 났다.
그는 고개를 들어 답답한 눈빛으로 벤치를 바라봤다.
‘굴욕은 잠깐이지만, 승리는 영원하다.’
일본 감독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팔짱을 낀 채 눈으로 말했다.
오쿠보는 동의할 수 없었다.
‘이런 재미없는 축구 따위는…’
오쿠보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어슬렁거리는 공격수들의 위치를 단숨에 제쳤다.
“오쿠보 선수가 단독 돌파를 시도합니다!”
“저 자식이!”
일본 감독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오쿠보는 재빨리 대한민국의 미드필더를 제치고 페널티에어리어 근처까지 왔다.
이순신과 동료 센터백은 침착하게 오쿠보를 포위했다.
오쿠보는 힐끗 주변을 살펴봤다.
‘왜 안 오는 거야!’
저 멀리서 같은 편 공격수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할 뿐,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 혼자서라도 추가 골을 넣겠어!’
오쿠보가 이를 악물었다.
이순신과 눈이 마주쳤다.
‘크긴 엄청 크네.’
이순신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기 위해선 적당한 각오로는 불가능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상체를 흔들며 빈틈을 노렸다.
이순신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공간을 내주자.’
이순신이 슬쩍 빈틈을 보였다.
오쿠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왼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어서 돌파를 시도했다.
‘제쳤다!’
안타깝지만 오쿠보는 착각했다.
한 번의 돌파로 이순신을 뚫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순신의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렸다.
오쿠보는 이순신을 떼어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지만,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하아. 하아.”
오쿠보의 숨이 점점 더 거칠어질 때쯤!
퍽!
이순신의 어깨에 맞은 오쿠보는 날아갔다.
공이 먼저 발에 닿았기 때문에 정당한 수비였다.
“아! 오쿠보 선수도 그라운드에 누워서 못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일본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오쿠보는 창의적인 선수라니깐.”
하지만 오쿠보가 일어나지 못하는 건 진심이었다.
심판은 경기를 잠시 중단시켰다.
“으윽.”
“괜찮아?”
“아앗. 허리.”
오쿠보의 손이 허리를 짚었다.
“오쿠보 선수. 허리에 부상을 입은 거 같습니다.”
지켜보던 일본 감독은 인상을 찌푸린 채 재빨리 교체 사인을 보냈다.
결국, 오쿠보는 들것에 실려서 벤치로 들어왔다.
“오쿠보 선수의 역습시도는 득보다 실이 많았습니다. 공격도 제대로 못 하고 도리어 교체당했네요.”
해설자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오쿠보는 팀 닥터의 부축을 받으며 벤치에 앉았다.
“빠가야로. 왜 내 명령을 무시하지?”
“죄송합니다…”
오쿠보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감독의 전술을 멋대로 무시한 건 본인의 의지가 맞았으니까.
오쿠보는 프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
오쿠보는 조용히 동료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또 그런 상황이 와도 난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오쿠보는 침을 삼키며 다짐했다.
그런 마음이 일본팀에게도 전달됐을까?
안타깝게도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징하네. 징해.”
김혁규가 혀를 내둘렀다.
오쿠보를 빼고, 일본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나 더 투입시켰다.
일본은 4-4-2 전술을 썼는데 공격형 미드필더를 중앙까지 내렸다.
일본팀은 감독의 지시를 상당히 잘 수행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뛰고 라커룸에서 쉬면 될 것을,
왜 그라운드에서 쉬려고 하는지 이순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5분이 흘렀다.
“하암-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해설자는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했다.
그만큼 뒤로 갈수록 지루한 경기였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올라오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합법적이기에 일본을 탓할 수 없었다.
안태리의 머리는 복잡했다.
하지만 이겨야 하는 이유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후반전에도 골을 노려라. 우리에게 골 운이 좀 안 따를 뿐이지. 때리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
“네.”
선수들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이미 수차례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었다.
“1:0으로 지나 2:0으로 지나 결과는 똑같다.
수비진은 좀 더 전진하고, 단결이는 좀 더 공격에 가담하도록.”
“넵.”
임단결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안태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하프타임에 체력은 회복할 수 있을지언정 떨어진 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떨어졌다.
‘젠장. 경기를 하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건데… 하필이면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 운이 안 따르다니…’
상대가 마음먹고 1점을 지키고자 하는데 전술적으로 뾰족한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정녕 이게 최선이란 말인가?
“우리는 여기서 질 수 없어.”
선수들의 시선은 이순신에게 향했다.
“국가대표에서 다시 만날래? 국군 팀에서 다시 만날래?”
국군 팀이란 말에 선수들은 가슴이 울컥했다.
“국군 팀은 좀 심했잖아! 벌써부터 트라우마 쌓이네.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선배들처럼 터닝 포인트가 될 확률도 있으니까.”
“군대가 터닝 포인트가 될 확률은 극히 적어. 그냥 커리어 단절이야!”
평소의 이순신답지 않게 세게 나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를 발동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조용했다.
‘이게 아닌가?’
이순신은 지난번 발렌시아 전에서 발동한 능력이라면 충분히 일본을 씹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들을 정신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렇다면 역시 이게 최고지.’
이순신이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의 등 뒤에 후광이 뿜어져 나왔다.
“골판지 침대 축구를 펼치는 저 간악한 왜놈들을 부숴버리자.”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선수들은 이순신의 목소리가 중후하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가슴에 뭔가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승리를 갈망하는 파도였다.
“그래. 이대로 포기할 수 없지.”
“맞아. 해보자!”
안태리가 씨익 웃었다.
‘이순신 저 녀석.’
선수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팀을 결속시키는 것, 떨어진 사기를 끌어 올리는 능력은 확실히 주장 감이었다.
여기에 이순신은 결정타를 날렸다.
“공격수들 마음껏 나가서 날뛰어. 뺏기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뒤는 내가 지킨다!”
“우와와!”
“가자!”
대한민국 대표 팀은 이순신의 뒤를 따라 경기장에 들어섰다.
일본팀은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선수를 교체했다.
최전방 공격수 둘을 빼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교체했다.
“일본팀은 이길 생각이 없나요?”
“오늘은 뭔가 일본팀답지 않군요.”
0-5-5라는 극단적인 전술.
“우리는 이긴다. 어떻게 해서든 이긴다.”
일본 감독은 재미없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경기에서는 꼭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했다.
“이래서 한일전. 한일전 하나 보다. 지고 싶지가 않다.”
이순신의 투지 역시 활활 타올랐다.
[스킬 공유가 변경됩니다.]
[노이즈 캔슬링에서 방패연으로 변경했습니다.]
‘욕은 좀 먹어도 상관없어. 너희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볼이 발끝에 닿을 거야.’
이순신은 안정보다 변수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