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가짜 천재
‘나도 내가 천재인 줄 알았지.’
이순신은 바르샤에 있을 때 수많은 천재들을 봐왔다.
아프리카에서 100년 만에 나온 재능.
스페인의 메시.
한국에서 온 괴물.
그중에서 현재 국가대표가 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특급 유망주들이 월반을 했지만, 그것은 마케팅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순신이 생각하는 진짜 천재들은 어린 나이에 현 소속팀에 이적 혹은 육성돼서 팀의 핵심선수로 자리 잡은 선수들뿐이었다.
동료 수비수는 이순신의 반응을 보고 굳이 납득시키기 위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쟤는 저게 버릇이래. 경기 전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변수를 미리 살펴본대.”
“왜? 굳이 왜 그런데?”
흥미를 보였다고 싶었는지 센터백 라인에 선 수비수는 친절하게 설명했다.
“잔디가 파인 곳이나, 바람의 방향을 미리 파악한다는 만화 같은 캐릭터가 쟤야. 그러니 레알 마드리드에서 영입하는 거겠지.”
“풉.”
그 이야기를 들은 이순신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오쿠보가 레알 1군 무대에서 뛰는 것은 아니잖아?”
“그…그렇긴 하지만 레알에서 주목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냐?”
오쿠보는 현재는 마요르카에 임대를 간 상황이었다.
[충무공이 싸우기도 전에 겁에 질린 선수를 보고 한숨을 내쉽니다.]
이순신도 같은 마음이었다.
“나도 저거보다 훨씬 더 어릴 때 바르샤가 주목했던 선수였어.”
순간 동료 센터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아. 우리에겐 바르샤의 특급 재능이 있었지.’
“그리고 저기 단결이도 아직 건재하고.”
임단결은 풀백 위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러네. 우리 팀도 결코 꿀리지 않아!”
하지만 이내 동료 수비수는 침울해졌다.
“쟤는 1부 리그인데 우리는 4부 리그…”
“그게 뭐?”
이순신이 노려봤다.
“아…아니야.”
“그래도 1부 리그는 1부 리그니까 방심하지 말자.”
이순신이 씨익 웃으며 등을 두드려줬다.
“알았어! 주장만 믿을게!”
이순신은 동료의 두려움을 떨쳐줬다.
‘나야말로 방심하지 말자. 아무리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는 해도 재능은 있다는 뜻이니까.’
일본의 축구 투자는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졌다.
한국 선수들이 그만한 투자를 받았다면 16강이 아닌 8강을 노릴 수 있는 재능이었다.
‘진심입니다.’
어느 만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들은 축구에 진심이었다.
근래에 치른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16강에 진출하면서 그 결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팀이라 불리는 유럽 팀과의 대결에서도 명승부를 만들어내며 좋은 성적을 냈다.
무엇보다 일본은 ‘스시타카’라고 불릴 만큼 패스와 점유율을 중요시한 나라였다.
다만, 해외파의 비중이 너무 많이 초과해버린 나머지 하나의 팀으로 융합이 잘 안 된다는 부작용을 겪는 중이었다.
그것이 일본팀이 조 2위로 통과한 이유였다.
영원한 라이벌인 두 팀이 킥오프만 기다렸다.
삐이이익-
“경기 시작됐습니다!”
오쿠보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롱패스보단 숏패스.
일본답게 아기자기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오쿠보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일본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가 이어졌다.
“믿는다. 오쿠보!”
“한국 따윈 날려버리라고!”
일본은 차근차근 패스를 주고받으며,
한국 팀을 향해 전진했다.
비교적 이순신과 오쿠보의 빠른 매치업이 이뤄졌다.
“이순신 vs 오쿠보! 경기 시작부터 붙었습니다!”
“과연 누가 아시아 최고의 유망주인지 가려질까요?”
“이광인 선수가 없는데 최고를 가리는 건 의미가 없죠. 하하하.”
이순신은 지그시 오쿠보를 바라보았다.
그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지 오히려 시선을 회피했다.
“오쿠보 왼쪽으로 돌파!”
오쿠보는 패스보단 직접 돌파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일본의 메시’였다.
‘생각보다 스피드는 빠르고.’
이순신이 순간적으로 오쿠보의 움직임을 놓쳤다.
“오쿠보가 이순신을 제쳤습니다!”
“일본의 메시가 한 수 위입니다!”
이순신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오쿠보는 계속 드리블을 하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임단결이 커버를 하기 위해 달려왔다.
일본의 최전방은 오쿠보뿐이었다.
“직접 마무리해야겠군.”
오쿠보의 눈빛이 번쩍였다.
“오쿠보 슛!”
슈팅은 묵직하게 골문 구석을 향해서 날아갔다.
“한국 팀의 골키퍼가 가까스로 펀칭!”
“일본팀의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오쿠보는 씨익 웃었다.
약간은 아쉬운 듯했다.
그러더니 이순신을 쳐다봤다.
이순신을 가리킨 뒤 손가락 4개를 폈다.
‘난 4부 리그. 넌 1부 리그라고?’
이순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일본팀의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오쿠보는 2선에서 골을 넣기 위해 위치를 잡았다.
그를 매치업으로 막는 건 이순신이었다.
“덩치만 크지. 생각보다 느려.”
일본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기를 비웃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본이 찬 코너킥은 포물선을 그리며 일본팀 공격수를 향해서 날아갔다.
공중에서 약간의 경합이 있었지만, 공은 뒤로 빠졌다.
공을 잡은 오쿠보는 드리블을 펼쳤다.
“오쿠보 선수 슛!”
[방패연이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의 발에 맞은 공은 한국 팀 선수에게 갔다.
“한국 팀의 역습이 시작됩니다.”
오쿠보는 살짝 놀란 눈치였다.
“쳇. 운 좋게 상대 팀한테 떨어졌네.”
“우연일까?”
이순신이 옆에서 스페인어로 말했다.
“당연하지!”
“우연인지 노린 건지 알아보지 못하는 넌 가짜 천재구나.”
오쿠보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라인을 끌어올렸다.
“감히 나보고 가짜라고?”
오쿠보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차분한 일본팀에 오쿠보라는 태양이 끓고 있었다.
오쿠보는 과감하게 드리블을 쳤다.
“임단결 선수를 제치는 오쿠보 선수! 그대로 페널티 에어리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순신 선수의 과감한 태클!”
“대한민국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오쿠보가 그라운드에서 뒹굴었다.
누가 봐도 정직한 태클인지라 주심은 휘슬을 풀지 않았다.
“일어나.”
이순신이 손을 내밀었다.
오쿠보는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났다.
“크흑.”
그의 외마디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순신이란 존재가 너무나 거대했다.
‘단순히 신체조건의 차이 때문이 아니야. 뭔가 자꾸 말리고 있어.’
“오쿠보 선수가 한국의 수비 천재 이순신에게 고전하고 있습니다.”
해설자의 중계가 오쿠보의 마음속에도 들리는 듯했다.
‘광인이는 인정할 수 있어. 하지만 저자는 아니다.’
비슷한 포지션의 이광인은 함께 스페인에서 고생한 라이벌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이순신은 인정하기 싫었다.
- 오쿠보가 넘어야 할 건 이광인이 아니라 이순신이다.
- 옛날엔 공격수였다고 하던데, 그러면 한국의 호날두와 일본의 메시의 대결이었을 듯.
- 최고의 창과 최고의 방패가 붙는다. 벌써 기대되는군!
오쿠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4부 리그 선수와 언급되는 거 자체가 실례라고.”
오쿠보는 언젠가 만나면 누가 확실히 위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결과가 달랐다.
“처…천재가 아시아에 있을 리 없잖아!”
이순신의 플레이를 보니 자신의 재능이 하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승자가 인정받는 법이야!”
오쿠보는 격전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반면, 이순신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한국의 올림픽 진출이었다!
이순신이 오쿠보에게 향하는 공을 헤딩으로 걷어 냈다.
그러면서 빌드업을 차곡차곡히 진행했다.
장승빈에게 단숨에 이어지는 롱패스로 일본 수비수들을 유감스럽게 만들었다.
다만 아쉬운 건 마무리.
그럼에도 이순신은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비격진천뢰나 천지현황포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의 반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오쿠보는 특유의 부드러운 볼 터치로 이순신을 제치고자 했다.
하지만 드리블 횟수가 줄어들고 무의미한 패스가 늘어갔다.
패스 성공률은 좋았지만, 공격과 연결되는 패스가 없었다.
그저 태권도처럼 점수를 따기 위한 행위가 이어졌다.
오쿠보가 유명세에 비해서 별다른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이순신은 굉장히 실망했다.
“여기서 너랑 더 놀아줄 시간 없다.”
이순신이 오쿠보의 패스를 차단하고 곧바로 역습을 시도했다.
이순신이 중앙에 있는 미드필더와 패스를 주고받았다.
스시타카와는 다르게 굵직굵직한 패스가 이어졌다.
“으아악!”
이순신이 드리블을 치자 일본 선수들이 튕겼다.
이것이 이순신과 오쿠보의 차이였다.
그렇다고 힘으로만 돌파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방에 있는 김혁규, 장승빈과의 호흡도 훌륭했다.
“이순신 선수 어디까지 올라옵니까!”
이순신은 상대 팀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올라갔다.
‘혁규라면 충분히 뚫을 수 있어!’
그만큼 김혁규를 믿고 있었다.
예상대로 김혁규는 대각선 방향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순신이 높이 뛰어올랐다.
[황자포를 발동합니다.]
이순신의 머리에 맞은 공은 땅에 튕긴 후 상대편 골대로 향했다.
퉁!
아쉽게도 골대는 기둥을 맞고 나왔다.
일본 수비수가 당황한 나머지 재빨리 밖으로 걷어 냈다.
“한국 팀 코너킥을 얻습니다.”
이순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반동 효과로 시야 차단이 10초간 발생합니다.]
이순신은 자연스럽게 몸을 뒤로 돌렸다.
오쿠보와 이순신의 어깨가 맞닿았다.
“우쭐대지 마. 너네가 불이라면 일본은 파도다. 개개인의 능력을 봐도 우리가 더 강해.”
오쿠보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오늘따라 유독 말이 많았다.
하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이순신은 피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어떠한 것도 일본에게 져서는 안 됐다.
특히나 기 싸움은 더더욱!
“너 좀 더 열심히 해야 될 거 같다. 안 그러면 내년에 3부 리그에서 나랑 만날 거 같다.”
이순신의 강력한 공격에 오쿠보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괜히 덤볐다가 본전도 못 찾은 경우였다.
“칙… 칙쇼!”
한국 팀의 코너킥.
이순신은 여기서 골을 넣어 일본을 무너트릴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한국을 외면했다.
“코너킥 후 흘러나온 공.”
“오쿠보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일본의 반격이 펼쳐집니다.”
“이순신 선수 빠르게 달려갑니다.”
“거의 다 잡았습니다!”
“오쿠보 선수! 잡히기 전에 그대로 슛!”
“골키퍼 몸을 날려서 막습니다!”
“아 골키퍼 손에 닿았지만 공이 골대를 맞고 들어갑니다!”
“일본이 먼저 선취골을 넣습니다. 0:1 일본이 앞서갑니다…”
골을 넣은 오쿠보가 동료들과 얼싸안고 그제야 웃었다.
그러더니 한국 팀 진영으로 고개를 돌렸다.
‘봤지? 전투에서 져도 전쟁에서는 우리가 이긴다.’
하지만 이순신은 좌절하지 않았다.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여기서 절대 지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한국 팀 진영을 덮쳤다.
하지만 한국 선수 누구 하나도 파도에 휩쓸리지 않았고,
오히려 이순신의 발밑에서 증발했다.
이순신은 지금 뿌리부터 타오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