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74화 (75/161)

74화. 8강전은 한일전

이순신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이란 선수들이 와서 이순신을 밀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뭘?”

이순신이 양손을 밖으로 뻗으며 황당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양 팀의 선수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심판이 얼른 달려와서 흥분한 선수들을 진정시켰다.

“이 자식들아! 너네는 눈깔이 없냐!”

“그만해. 혁규.”

“진정해!”

오히려 이순신이 흥분한 김혁규와 장승빈을 자제시켰다.

해설자의 목소리에도 걱정이 담겼다.

“이순신 선수. 다행히 부상은 입지 않았습니다.”

“저런 비매너 플레이는 근절돼야 합니다. 심판이 눈이 달렸다면 레드카드를 꺼내겠죠!”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1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경기가 재개됐다.

이란 미드필드 선수에게 주어진 건 옐로카드였다.

“예. 옐로카드라니요? 말이 안 됩니다! 레드카드를 줘도 모자란 상황인데 말이죠!”

일본 주심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선수에게 레드카드는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이해 안 되는 판정이었다.

이란 입장에서는 굉장히 다행스러웠다.

‘다행히 퇴장은 아니니까 지금부터라도 경기를 뒤집으면 돼!’

이란 선수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이란의 슛! 그전에 이순신 선수가 걷어 냅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팀이 분위기를 재정비했다.

자만과 방심은 사라지고 경기가 끝나는 신호가 울릴 때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장승빈 선수의 헤딩슛!”

“들어갑니다!”

단단한 피지컬을 앞세운 장승빈이 이란의 골망을 흔들었다.

“임단결 선수의 크로스!”

“김혁규의 가슴 트래핑! 그대로 슛!”

“골입니다! 멋진 크로스에 이은 멋진 슈팅이었습니다.”

김혁규도 경기 막판에 추가 득점에 성공했다!

삐이이익-

마침내 경기가 끝났다.

이란 선수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하며 경기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승리의 기쁨을 원 없이 느꼈다!

“대한민국이 AFC-23 챔피언십 예선전에서 강호 이란을 맞이하여 6:0 대승을 거둡니다!”

비록 한 경기지만,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제일 먼저 기자들의 워딩이 바뀌었다.

- 4부 리그 이순신. 강호 이란을 격파하다. -

- 이란의 대굴욕. 침대가 부서졌다.-

- 이순신에게 아시아 무대는 너무나 좁다.-

- 대한민국. 단숨에 우승 1순위로 등극-

-안태리 감독의 뛰어난 선구안-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

“6:0이 말이 되냐고!”

그들을 욕하는 건 토토에 돈을 걸었다가 모든 걸 날려버린 미친 도박 중독자들뿐이었다.

애국 배팅으로 3:0까지는 있었지만, 6:0에 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에는 각종 밈과 기사가 넘쳐났다.

축구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던 사람도 올림픽 대표팀의 행보에 주목했다.

더불어 이순신의 인지도도 상당히 올라갔다.

“외쳐 갓 순신!”

“이순신 장군의 환생이다!”

“이게 백의종군이다!”

이름이 주는 효과도 있었지만, 영웅은 위기에 태어나는 법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진정시키는 것이 안태리의 역할이었다.

그는 다음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과 미팅을 가졌다.

선수들의 얼굴이 상기됐다.

안태리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첫 경기는 훌륭했다. 다만 중간에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는 아름답지 못했다.”

안태리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이순신에게 향했다.

이순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이순신이 허리 숙여 사과했다.

굳이 감독과 기 싸움을 할 필요도 없었다.

‘상대 팀을 조롱하는 행위는 좋지 못한 행동이긴 하니까.’

안태리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이순신을 보자 금세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너의 판단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경기에 뛰는 건 너희들이니까.

덕분에 이란은 페이스를 잃었고 경기는 결국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었지.”

안태리는 생각했다.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기에 그럴 수 있다.

다만, 이들이 국가대표팀에서도 이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페어플레이 정신.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넵!”

선수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안태리는 웃었다.

자신의 고민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선수들이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중요한 걸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생각보다 성숙했다.

‘역시 감독님은 대단해.’

이순신은 안 감독의 마음을 꿰뚫었다.

교만함은 언제라도 인간이란 열매를 호시탐탐 노리는 뱀이었으니까.

왜 자신이 한순간에 추락했는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

대한민국 팀은 예선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 이후에 펼쳐진 우즈베키스탄은 2:0.

태국은 3:0으로 이겼다.

3전 전승으로 깔끔하게 8강전에 진출했다.

이순신은 매 경기 골을 넣으며 5골을 넣었다.

현재 득점 순위는 1위였다.

장승빈과 김혁규의 연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그들이 과감한 플레이로 기회를 창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뒤에서 이순신이 든든하게 지켜주니,

안심하고 공격에 나설 수 있었다.

“아. 저 자식들은 왜 조 2위로 올라와서…”

“그러게 말이야.”

“우리 발목 잡으려고 일부러 진 거 아니야?”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긴 하지만, 증거는 없으니…”

“쩝. 험난한 8강전이 되겠군.”

하필 대한민국은 8강전에서 애매한 상대를 만났다.

이번 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이었다.

일본은 개최국 자격을 얻어서 여기서 패배해도 올림픽에 진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된다면 대회 1-3위 팀이 올림픽에 진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4위 팀은 아쉽게도 떨어지게 됐다.

8강에 진출한 팀들은 한국과 일본의 대결에 주목했다.

두 나라가 오랜 시간 동안 라이벌인 걸 잘 알고 있었다.

은연중에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이기길 바랐다.

“일본 파이팅!”

“믿는다. 일본!”

일본이 이기면 4강전에만 진출해도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이긴다면, 3~4위전을 통해 한 나라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외나무다리에서 숙적을 만난 셈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기력은 최악 그 자체였다.

조 2위로 올라오긴 했으나, 골 득실차는 +1.

1승 2무였으나 3경기에서 얻은 득점은 고작 1점이었다.

스스로 아시아 No.1이라고 부르기엔 참담한 수준.

언론의 혹평이 쏟아졌지만, 일본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8강전은 다를 겁니다. 현재 일본은 2군 수준입니다.

오쿠보 선수가 합류하면 공격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그럼 약 1.5군으로 전력이 상승할 것입니다.”

‘전설의 일본 1군은 언제쯤 볼 수 있는 것일까?’

기자들은 생각했다.

“일본은 강합니다.

4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 3명을 선발로 쓰는 팀에게 지지 않을 겁니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한국을 잡고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도전은 여기서 멈출 것입니다.”

“이광인 선수가 예정보다 일찍 합류한다면 오쿠보 선수와 좋은 매치업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4강부터 합류한다고 들었는데 굳이 올 필요가 있을까요? 소속팀에서 자리 잡는 거나 집중하면 될 거 같습니다.”

일본팀 감독의 인터뷰를 본 이순신은 약간 화가 치밀었다.

‘우린 멈출 수 없지. 너네한텐 단순한 이벤트지만 우리한텐 인생의 변곡점이니까.’

8강전에서 지면 한국 팀의 대다수 선수들은 병역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축구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올림픽에서 3위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과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다 한들, 소속팀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참가할 수 없다.

‘선수 커리어에 치명적인 단점이 생기게 되니까…’

물론 그간 한국 팀에서 병역 면제를 받고 세계적인 선수로 거듭난 선수의 수가 적었기에 한국 팀 전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순신은 지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의 재시작은 한국 축구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자영 누나?”

이순신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받았다.

“아아. 여보세요?”

신자영이었다.

“8강 진출한 거 축하해. 거기서도 활약이 대단하더라?”

“뭘요. 그냥 열심히 할 뿐이죠.”

“몸값 더 높아지겠어! 덕분에 난 더 바빠지게 생겼고.”

이순신은 쑥스러웠다.

“그만 해요. 8강전에서 지면 끝인걸요.”

“글쎄? 나는 네가 이끄는 한국 팀이 전혀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걸?”

“왜요?”

“…”

신자영은 잠시 뜸을 들였다.

“널 믿으니까.”

“누나.”

“응?”

“내가 만약 일본전에서 골을 넣으면 그건 누나를 위한 세레머니에요.”

“뭐? 그런 걸 왜 해. 부끄러워! 하지 마!”

“응원해줬으니까요. 그래서 꼭 이길게요.”

“나만 응원하나? 다들 너 응원하고 있어.”

“그래도요. 나중에 스페인에 돌아가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그래. 시간 되면 둘이 같이 가자. 잘자구~!”

신자영은 전화를 끊었다.

이순신은 한동안 전화기를 바라봤다.

가슴이 속에서 뭔가 파도가 휘몰아쳤다.

‘너네 다 뒤졌어.’

이순신의 눈은 어느 때보다 타올랐다.

***

8강전의 날이 밝았다.

이순신이 커튼을 활짝 걷었다.

“아. 뭐야.”

김혁규가 눈을 찡그렸다.

“날씨 좋다.”

“미친놈아. 난 아직 졸리다고.”

“좀 더 자 둬. 이따 깨워줄게.”

“커튼이나 닫아!”

“날씨가 아주 좋아.”

이순신은 오늘 경기가 너무나 기대됐다.

한일전은 한일전이 주는 긴장감이 있었다.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관중들이 경기장을 메우고, 선수들이 유니폼으로 모두 갈아입었다.

안태리가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긴장감이 맴돌았다.

“인터뷰 봤지?”

“네.”

“열 받지?”

“네!”

“우리는 단 한 판에 모든 게 걸려있고, 상대는 그렇지 않다.

승리는 절실한 쪽이 가져가기 마련이다. 알겠나?”

선수들의 눈이 불타올랐다.

잠시 뒤.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대~한민국! 짜자작~짝~짝!”

대한민국 특유의 박수 응원이 들렸다.

[노이즈 캔슬링 스킬을 공유했습니다.]

오직 응원하는 소리만 들릴 뿐, 선수들을 욕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트로피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트로피 : U-23 아시안컵 우승!]

[대회 우승 시 한국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다시 급부상합니다. 상대편 23세 이하의 아시아 선수는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유망주들의 기를 죽이기에는 딱 좋은 트로피였다.

물론 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면 버려질 장비칸이었다.

‘예선을 통과하고 이런 게 나왔으니 목표는 우승이다!’

이순신은 더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쟤다. 오쿠보.”

이순신이 먼발치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에 서 있는 일본 선수를 보았다.

큰 키는 아니었지만, 꽤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는 경기장을 두리번거렸다.

이순신은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동료는 잘 아는 듯했다.

“역시 천재는 달라.”

천재? 개나 소나 천재?

이순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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