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올림픽 대표팀에 3명이나?
발렌시아전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리그 경기가 다가왔다.
상대는 중위권의 강팀.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꿈FC에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반면,
꿈FC는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줬다.
한계치를 넘어선 능력을 사용한 선수들이 불과 며칠 만에 회복될 리가 전혀 없었다.
“정신 차려! 상대 팀 놓치지 말고!”
이순신이 후방에서 팀을 진두지휘했다.
“이순신 선수. 며칠 전에 엄청난 경기를 치렀지만, 예상을 깨고 오늘 선발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대 팀은 당황스러웠다.
“저쪽 수비수. 장난 아닌데? 지치질 않아!”
이순신에게 번번이 공격이 막혔다.
심지어 그동안 활약을 하지 않았던 비주전들의 능력도 주전들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거 같았다.
설령 이순신의 수비를 피해서 슛을 날린다 해도 골문을 보경풍이 지키고 있었다.
“보경풍 선수 공을 쳐 냅니다. 슈퍼 세이브!”
이순신은 보경풍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이스 경풍이 형!”
보경풍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속으로만 웃었다.
오히려 단 한 번의 역습 찬스에서 이순신이 헤딩슛을 날렸다.
“이순신 선수의 헤딩 슛!”
“골인입니다!”
꿈 FC는 이 골을 잘 지켜냈다.
결국, 승리는 꿈 FC에게 돌아갔다.
“역시 꿈 FC! 리그 1위인 이유를 보여줍니다!”
“15경기 무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수비수가 득점 1위라는 게 말이 됩니까?”
해설자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중계했다.
리그는 단판 승부가 아니었다.
몇 개월이나 지속돼야 하는 장기전이었다.
이에로 감독은 아예 주전들에게 좀 더 휴식을 줬다.
이후 두 경기는 하위권 팀이기도 했고,
1경기 정도는 패배해도 순위 경쟁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팬들의 생각은 달랐다.
ㄴ 감독이 이순신만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야?
ㄴ 보경풍은 골키퍼라서 그렇다고 쳐. 필드 플레이어는 휴식을 좀 줘야 하는 거 아냐?
ㄴ 그나마 활동량이 많지 않은 수비수라서 다행? 안 그랬으면 지금쯤 퍼졌을 듯.
ㄴ 이순신이 안 뛰는 꿈FC는 상상이 안 되는데?
팬들은 이순신의 컨디션을 걱정했다.
곧 올림픽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팬들의 걱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순신 선수 슛!”
“헤딩슛!”
“이순신 선수의 프리킥!”
“아- 이순신 선수. 유효슈팅만 5개를 기록하고 있지만, 골 운이 너무 없습니다!”
이순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슛을 아낌없이 때렸다.
“이순신 골문을 봅니다. 그대로 슛!”
이순신은 슛을 하는 척하면서 빈 공간에 패스를 찔러 넣었다.
“당했다!”
상대편은 그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달려오던 꿈 FC의 공격수의 발에 공이 닿았다.
철렁~
“꿈 FC! 1:0으로 앞서갑니다!”
사실상 이순신이 거의 다 만들어낸 골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이 경기에서 불운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순신의 빡센 수비에 당황한 상대편은 중거리 슛을 날렸다.
의미 없는 슈팅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가엾이 여긴 행운의 여신이 그들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아 공이 꿈FC 수비수의 몸에 맞아 굴절이 됩니다!”
“저건 야신이 와도 막을 수 없는 공입니다!”
갑자기 굴절된 공을 막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1:1로 무승부를 기록합니다.”
꿈 FC로써는 다소 아쉬운 결과였다.
“더럽게 안 풀리네.”
“괜찮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보경풍이 이순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런데 벤치에서 이순신의 플레이를 보던 기존 선수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며칠 후.
이에로 감독은 다소 의외의 스타팅 멤버를 발표했다.
“뛸 수 있습니다. 전 체력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순신은 스타팅 멤버에서 빠진 것도 모자라서 벤치 멤버에서도 아예 빠졌다.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경기에 뛰지 않아도 주급은 지급되니 놀면서 일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 경기라도 더 뛰고 싶은 게 운동선수였다.
“순신. 우리가 너 없으면 경기에서 이기지 못할 거 같나?”
“아닙니다. 다만 팀의 주장으로서 팀에 헌신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관중석에서 동료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기여하도록.”
“…네.”
이순신은 대답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도대체 관중석에서 어떻게 팀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거지?’
김혁규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위로했다.
“난 감독님이 무슨 뜻으로 그랬는지 알 거 같아.”
“뭔데?”
“지켜보면 알아.”
김혁규의 알쏭달쏭한 대답을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이순신 선수가 오늘은 선발에서 제외됐네요.”
“네.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죠.”
“팀의 구심점은 없지만, 대다수의 주전들이 복귀했는데요?”
“이순신 선수가 없는 꿈FC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
이순신이 없는 그라운드에는 구멍이 주장 완장을 찼다.
“시… 시주가 잘할 수 있을까요?”
구멍은 잔뜩 얼었다.
그나마 불심 덕분에 꿈 FC 선수들 중에서는 가장 침착했다.
“잘할 수 있어. 그리고 순신이가 우리를 보고 있어.”
구멍의 눈빛은 순간 달라졌다.
“그렇소. 우리가 순신 시주에게 느꼈던 감정을 순신 시주도 느끼게 만들어줍시다.”
“꿈!”
“이루자!”
선수들이 화이팅을 한 후 각자의 위치에 섰다.
‘순신아. 잘 봐라. 우리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김혁규는 그 어느 때보다 의지를 다졌다.
지난 경기에서 벤치에 앉아 있던 김혁규는 큰 충격을 받았다.
‘순신이가 저렇게 잘했나?’
벤치에서 이순신의 모습을 90분 동안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팀을 위해서 헌신을 했는지,
이순신이 상대방에게 주는 위압감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순신이는 그동안 엄청나게 성장했어. 이대로 순신이에게 묻어갈 순 없어.’
한 발짝 물어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꿈 FC 선수들은 한 발짝 물러나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꿈 FC가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좌우에서 김혁규와 윤광섭이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오진성의 패스를 받은 김혁규가 슈팅을 날렸고,
상대편 골키퍼가 막아서 흘러나온 골을 윤광섭이 마무리했다.
“윤광섭 선수의 깔끔한 마무리로 꿈FC가 1점 앞서갑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런지 선수들의 집중도가 평소와는 달랐다.
‘공격수들만 활약하게 둘 순 없지.’
조문돈 역시 매서운 눈빛으로 상대편을 노려봤다.
“조문돈 선수의 커트! 평소보다 거칠진 않지만, 깔끔하게 상대편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임단결 선수의 오버래핑! 역시 빨라요. 상대편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임단결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임단결 선수의 슛!”
임단결의 슛은 빠르게 상대편 우측 구석에 꽂혔다.
“꿈 FC가 2:0으로 앞서갑니다!”
이순신이 없으면 고전할 거라는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선수들은 경기를 너무나도 잘 풀어갔다.
하지만,
후반전 막판에 연속으로 두 골을 허용한 것은 뼈아팠다.
결국, 경기는 2:2로 무승부를 거뒀다.
비록 팀은 승점 1점밖에 못 챙겼지만, 리그 2위 팀이 패배하는 바람에 승점 차는 더더욱 벌어져서 선두를 굳혔다.
“젠장…우린 순신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전반에 얻은 자신감은 후반에 자괴감이 되어 돌아왔다.
“왜들 그리 다운돼 있어!”
경기가 끝난 후 이순신이 꿈 FC 선수들을 보고 소리쳤다.
“우린 역시 네가 없으면 안 되나 봐…”
“미안하오. 순신 시주. 이겼어야 할 경기는 비기고 말았소.”
구멍이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소리야? 재밌는 경기를 펼쳐놓고! 나도 저번에 이겨야 할 경기 비겼잖아.”
“그건 시주가 운이 없어서…”
“마찬가지야. 우리가 발렌시아 잡느라고 운을 다 써서 그런지 요즘 운이 안 따랐을 뿐이야!”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의기소침한 분위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나 오늘 경기 보면서 솔직히 놀랐어.”
선수들이 이순신을 쳐다봤다.
“난 솔직히 내가 무조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 기회가 오면 절대로 놓쳐선 안 되는 압박감을 가지고 시합을 했었어.”
이순신은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선수들에게 털어놨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고 깨달았어. 팀원들에게 의지해도 된다. 내가 똥을 싸도 깔끔하게 치워줄 동료들이 있다! 우리 팀 실력 진짜 많이 늘었어! 내가 봤어!”
이순신도 오늘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 자신의 활약만이 한국 축구를 구할 수 있다는 사명감에서 잠시나마 해방된 기분이었다.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낸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었어.’
축구는 팀플레이.
이순신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좋은 동료가 없다면 지금의 활약을 이어갈 수 없었다.
꿈 FC가 먹힌 두 골 중 한 골은 자신이 들어가도 막을 수 없던 골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서로가 서로를 좀 더 믿자! 그러면 함께 오랫동안 축구를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순신의 말에 꿈 FC 선수들은 울컥했다.
프로의 세계는 치열하면서도 냉정했다.
한 번의 실수가 방출로 이어질 수 있는 잔인한 곳.
이순신은 그런 곳에서 동료로서의 신뢰를 줬다.
이후 경기에서는 간만에 주전 멤버들이 모두 출전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선수들은 그야말로 잘 차고, 잘 막았다.
“경기 끝났습니다. 꿈 FC가 창단 처음으로 10골을 넣으며 10:0으로 이겼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2골을 넣은 이순신 선수는 득점 공동 1위로 복귀했습니다!”
차원이 달랐다.
엄청난 경기력에 팬들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로 감독은 또 이순신을 다음 경기에서 제외시켰다.
“기쁜 소식이 있다. 우리 팀에서 3명의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소집됐다.”
“이순신, 임단결, 김혁규.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기대한다. 다만 다치지 마라.”
“넵!”
“순신 시주 축하하오!”
구멍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꿈 FC 선수들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협회 관계자는 안태리 감독을 불렀다.
“안태리 감독님. 올림픽 대표팀에 스페인 4부 리그 선수라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대표팀의 위상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는 협회 이사회 중 한 명이었다.
“대표팀은 실력으로 뽑는 것이지 이름으로 뽑는 게 아닙니다.”
“그 실력이 문제라는 거예요. 스페인 4부 리그 선수가 K리그 선수들보다 못합니까? 이우승 선수는 왜 안 뽑았습니까?”
안태리의 대답은 단호했다.
“현재 23세 이하 수비수 중에서 이순신을 대체할 선수는 K리그에도 없습니다.”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협회 임원은 뒷목을 잡고 급하게 자신이 먹던 고혈압약을 뒤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