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71화 (72/161)

71화. 전.

발렌시아의 탈락은 큰 충격을 줬다.

1부 리그 팀 중 유일한 탈락팀이기도 했으며,

4부 리그 팀한테 졌다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됐다.

ㄴ 발렌시아가 승부차기로 진 게 아니라 연장전에서 졌다고?

ㄴ 세상에 1부 리그 망신은 혼자 다 시키네.

ㄴ 4부 리그랑 싸우면 1명 정도는 접어줘도 이겨야지!

ㄴ 아무리 주전이 빠졌어도 그렇지… 가야나 고메스 몸값이면 상대 구단 사고도 남을 거 아냐?

ㄴ 리플레이 보는데 혼란하다. 혼란해. 내가 지금 뭘 본 건지 모르겠어.

ㄴ 저 한국인 뭐야? 수비수가 해트트릭을 했다고?

ㄴ 듣기로는 예전에 바르샤 유스 출신이라던데?

ㄴ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되는 플레이를 하고 있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꿈 FC는 경기 다음 날 휴식을 즐겼다.

“아이고! 나 죽어! 살살 좀 문질러라!”

“아오. 엄살 되게 심하네.”

폼롤러로 뭉친 근육을 풀며 스트레칭을 했다.

휴식도 훈련이었다.

다들 한계치를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한 탓에 멍한 기분 속에서 뒹굴 거렸다.

“그런데 나 태어나서 발렌시아를 처음 이겨 봐.”

김혁규는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선수들…다음 경기 뛸 수 있을까요?”

임청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 경기라면 문제없습니다. 100% 컨디션은 아니지만, 다행히 리그 최하위 팀과의 경기니 로테이션을 적절하게 돌리면 될 거 같습니다.”

“오진성은요?”

“큰 부상은 아닙니다. 다음 경기에도 출전할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요?”

이에로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이순신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절을 안 했네?”

임청수는 발렌시아와 경기가 끝나자마자 안태리의 전화를 받았다.

“야! 우리 순신이 어떻게 됐어?”

“뭘? 뭐가 어떻게 돼? 씻고 잘 자고 있구만.”

“아오! 너네 미쳤냐? 128강전에 1부 리그를 만났으면 깔끔하게 포기할 것이지, 왜 애들을 혹사시켜!”

안태리가 화가 단단히 났다.

“아니.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선수가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지!”

“문제는 순신이가 그 이후로 며칠 후에 깨어날지 모른다는 거야. 이 정도로 활약을 펼쳤으면 분명해. 100%야.”

“그게 무슨 말이지?”

안태리는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면증.

임청수는 침을 꼴깍 삼켰다.

‘감독한테 말해야 되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렸다.

하루 지켜보기로 했다.

다행히 멀쩡했다.

“순신아.”

“네. 단장님.”

“아픈 데 없냐?”

“근육통이 좀 있어서 피곤한 거 빼고는 완전 멀쩡합니다.”

“순신아…”

“네?”

“아니다. 오늘 푹 쉬고 컨디션 조절 잘해라.”

“넵.”

임청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출장을 떠났다.

‘아무래도 또 며칠 동안 누워있을까 봐 걱정된 거겠지?’

이순신은 제법 눈치가 빨랐다.

[허준이 스팀팩을 사용했습니다.]

이순신은 잠들기 전 스팀팩을 사용했다.

발렌시아와의 경기 전 체력으로 돌아갔기에 다음 경기 출전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리그도 치러야 하고, 곧 올림픽 예선전도 치러야 해. 며칠씩 누워있을 순 없지.’

그 역시 고작 컵대회 128강전에서 사용하게 될 줄 몰랐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우선 팀 사기가 천장을 뚫을 정도로 올라갔지.’

1부 리그 팀을 이겼다는 자신감은 엄청난 경험이자 자산이었다.

말로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나 역시도 그 경기를 통해서 많은 걸 얻었으니까.’

‘쌍룡검’을 얻어서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게 된 이순신은 능력치가 상승된 효과를 얻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이란 스킬도 굉장히 쓸 만했다.

‘발동 조건이 4개나 되는 까다로운 스킬인데 발동만 되면 어마무시하단 말이지.’

이순신은 충무공을 바라보았다.

간절하고 아주 간절하게.

[충무공이 발동 조건을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쳇. 아깝다 아까워.’

그때 신자영이 숙소로 들어왔다.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신자영에게 쏠렸다.

“꿈 FC 유니폼이 완판 됐습니다!”

유니폼 완판!

그것은 구단의 주 수입원 중 하나이자 나아가서는 인기의 척도였다.

[하위 구단이 최상위급 구단에게 승리를 따냈습니다.]

[최상위급 구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팬들에게 잊지 못할 경기를 선사했습니다.]

[명성이 상승합니다.]

[수익이 증가합니다.]

[팬들의 응원으로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이순신은 쏟아지는 보상에 깜짝 놀랐다.

“ 아직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 몇몇 기업으로부터 후원 제의도 왔어요.”

신자영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저희한테 이득이 되는 게 뭔가요?”

임단결이 물었다.

“여러분들에게 인센티브가 발생하고, 구단 운영에 숨통이 트여서 좀 더 여러분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요.”

“우와!”

선수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운동선수로서 분야의 정점을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의 시점에서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느냐가 성공의 척도였다.

그런 점에서 현재 꿈FC 선수들의 인지도는 K리그 선수들보다 높았으며,

수입 역시 그들에게 버금갔다.

“그리고 또 중요한 소식. 이것도 협의 중이긴 한데 꿈FC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제작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아! 나 그거 알아. 예전에 인천팀을 주인공으로 한…”

“맞아! 단장님이 대마왕으로 나온다던 그거!”

놀랍게도 임청수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작은 시민구단인 인천의 K리그 여정을 그린 이야기였는데 놀랍게도 다큐멘터리 촬영이 시작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꼴찌를 밥 먹듯이 하던 인천이 연전연승을 거듭하더니 나중에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것이다.

당시 상대 팀은 임청수가 이끄는 울산 근대.

인천의 아름다운 도전은 임청수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0:3 패배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도전은 그만큼 아름다웠으며 감동적이었으니까.

꿈 FC의 스토리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MSG라고 할 만큼 자극적인 요소도 강했다.

스페인에서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7부 리그부터 4부 리그까지 수직 상승한 이야기,

벼락 맞은 축구 선수가 구단을 인수해서 스페인 축구에 도전하고 있으며,

과거의 뛰어난 유망주들이 안정보단 모험을 택하며 스페인에 왔다.

여기에 이순신은 올림픽 대표팀을 넘어 국가대표팀 발탁도 논의되는 상황.

그야말로 최고의 소재였다.

“와 촬영. 재밌겠는데요?”

“우리도 인천처럼 연전연승을 하는 거 아냐?”

“제가 열심히 뛰어서 계약을 성사해보겠습니다.”

“자영이 누나 파이팅.”

“믿습니다. 갓자영!”

단 한 경기가 팀이 아닌 선수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물론, 이러한 영광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

즉 꾸준함이 곧 능력이라는 걸 이순신은 잘 알고 있었다.

“자자- 운동하러 갈 사람 없어?”

“비도 오는데 무슨 운동이야.”

“맞아! 운동 벌레 죽어라!”

이순신이 머리를 긁적였다.

가만히 있기에는 몸이 찌뿌둥했다.

“누나.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할래요?”

“싫은데?”

너무나 단호하게 까였다.

“너네들 맛난 거 해주려고 재료 다 준비해왔단 말이야.”

“뭔데요?”

“비 오는 날에는 이거 아니겠냐?”

딩동.

잠시 후 숙소의 문이 열리고 엄청난 짐이 들어왔다.

선수들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1대당 5~6명씩 모여 앉았다.

지글지글.

빗소리를 닮은 기름 소리가 들렸다.

촤아악.

신자영이 국자로 반죽을 떴다.

하얀색 반죽 사이로 부추와 쪽파가 보였다.

싱싱한 주꾸미와 오징어도 들어갔다.

“이야. 이거지!”

꿈 FC 선수들은 얼굴에 환희가 가득했다.

고향의 냄새가 느껴졌다.

“이게 뭐야?”

“해물파전이라는 거다.”

외국계 선수들은 생소한 광경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한국 선수들을 도와서 열심히 재료를 손질하고 다듬었지만,

맛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자 적당히 익은 거 같으면 뒤집어 주시고!”

신자영이 뒤집개로 전을 뒤집었다.

노릇노릇하게 전의 아랫부분이 맛있게 익었다.

“후훗. 파전을 뒤집개로 뒤집다니. 그건 전에 대한 예의가 아니오!”

구멍이 프라이팬을 들고 벌떡 일어났다.

“야. 모두 피해!”

구멍 주위에 있던 선수들이 재빨리 거리를 두며 대피했다.

“절에서 뒤집은 전만 2만 장이 넘소!”

구멍이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전을 띄웠다.

전은 공중에 높게 뛰어오르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착!

깔끔하게 프라이팬에 착지했다.

“우와!!!”

짝짝짝.

선수들은 환호와 감탄을 연발했다.

“야. 그런데 공중에서 너무 많이 돌린 거 아냐? 그대로인데?”

윤광섭의 말대로 전은 뒤집기 전 그 상태였다.

“후훗! 그럼 다시 뒤집으면 되지 뭣이 문제요!”

구멍이 전을 띄웠다.

그런데 수직으로 날아가야 할 전이 누군가의 면상으로 날아갔다.

“아아악! 뭐야!”

하비의 얼굴에 제대로 적중했다.

선수들은 재빨리 얼굴에 붙은 전을 떼 줬다.

“미…미안하오!”

하비가 구멍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순신아. 먹어봐.”

신자영이 젓가락으로 크게 한 움큼 찢어서 간장에 적신 후 순신이에게 내밀었다.

“아암”

이순신은 한입에 신자영이 준 전을 입에 넣었다.

“아뜨뜨뜨!”

이순신의 고개가 젖혀졌다.

승천하는 용처럼 입김을 내뱉었다.

하지만 입안에 있는 전을 내뱉을 순 없었다.

조심스럽게 허파에서 끓어오르는 날숨을 이용해서 전을 천천히 식힌 후 오물오물 씹었다.

“어때?”

“맛있어요!”

이순신이 엄지를 척 내밀었다.

빈말이 아니었다.

진짜 어릴 적 엄마가 해줬던 그 맛이었다.

겉은 바삭했다.

입안에서는 주꾸미와 새우가 쪽파 사이에서 경공을 펼치며 화려하게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질 수 없는 절대적인 신선함!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서 오묘한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진짜 뻥이 아니라 제가 먹어본 전 중에서 최고인 거 같아요.”

이순신이 재빨리 젓가락을 들어서 또 한 점을 집어먹었다.

“천천히 먹어. 순신아. 재료 아직 많이 남았어.”

이순신은 그제야 이성을 되찾았다.

“누나도 먹어요!”

처음에 신자영이 잘라준 크기만큼 이순신이 젓가락으로 전을 건넸다.

“너무 커.”

“아!”

이순신은 재빨리 젓가락으로 반을 찢어서 신자영의 입에 넣어줬다.

“맛있죠?”

“내가 했지만 진짜 맛있다.”

“조금 짜…”

이순신이 불평하는 외국인 선수에게 재빨리 눈을 부라렸다.

그는 조용히 오물오물 전을 삼켰다.

“누나 이제 좀 쉬어요.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너 할 줄 알아?”

“당연하죠.”

하지만 노릇하게 익어야 할 전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순신아…”

“아. 오랜만에 해서 그만.”

“괜찮아. 누나가 해줄게.”

“잠시만요!”

이순신은 재빨리 다시 전을 부쳤다.

이번엔 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젓가락으로 찢어서 신자영에게 한 점을 건넸다.

“어때요?”

“제법인데?”

신자영이 주먹으로 가볍게 이순신의 어깨를 툭 치며 칭찬했다.

“감자! 감자를 가져와! 유럽의 전을 보여주지!”

바야흐로 글로벌 전 파티가 열렸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를 때,

이순신은 행복했던 이 순간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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