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69화 (70/161)

69화. 필사즉생 필생즉사

남은 시간 10분.

스코어는 2:2가 됐다.

“발렌시아! 발렌시아!”

분위기는 완전히 발렌시아 쪽으로 향했다.

한순간의 꿈이었을까?

꿈 FC 선수들의 표정은 절망에 빠졌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1명이 빠졌어도 1부 리그는 1부 리그였어.”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줬지.”

“이 정도면 졌지만 잘 싸운 거야.”

“그렇고말고. 이제 리그에 집중하고 내년을 기약해보자고.”

이순신 역시 처음 느껴 보는 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불안감은 ‘주장 완장’ 효과로 인해 선수들에게도 전달됐다.

“이제 다리가 안 움직여.”

“난 1부 리그는 아직 멀었어.”

“그만 뛰고 싶어.”

그러나 단 한 사람.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순신! 정신 차리자!”

이순신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로가 소리쳤다.

그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감독님은 포기하지 않았어!’

이순신이 울컥했다.

이에로가 손짓하며 이순신을 불렀다.

“경기 포기했나?”

“아닙니다.”

“이기고 싶나?”

“이기고 싶습니다.”

“좋아. 그러면 다른 선수들에게 전해. 남은 10분 동안은 공격적으로 나가라고.”

“네?”

“애초에 내가 잘못 생각했다. 최고의 창을 가지고 수비를 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 강팀이든 약팀이든 우리는 우리의 축구를 보여준다.”

그 말에 이순신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겠습니다.”

“순신 시주. 감독님이 뭐라십니까?”

“우리의 축구를 하라고 하셨어.”

그 말을 선수들은 적당하게 버티고 오라는 걸로 해석했다.

킥 오프가 시작됐다. 김혁규가 상대편 진영에서 공을 빼앗겼다.

발렌시아의 역습이 시작됐다.

“역전 가자!”

이광인의 발끝에서 패스가 뿌려졌다.

고메스가 강력한 드리블을 펼치자 하비와 구멍이 튕겨 나갔다.

“고메스 선수. 순식간에 두 명을 제쳤습니다.”

“앞에는 이순신 선수가 버티고 있습니다.”

고메스가 씨익 웃었다.

“너넨 우리한테 안 돼.”

[스페인 함대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깔끔한 태클로 고메스에게 공을 빼앗았다.

“어?”

당황한 고메스가 고개를 돌렸다.

이미 이순신은 하프라인을 넘어섰다.

“이순신 선수. 빌드 업을 시작합니다!”

발렌시아 선수들이 갸우뚱했다.

“혼자서?”

꿈 FC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신호를 주고 가든가 해야지!”

이광인이 따라붙었다.

“형. 침착해요. 아직 경기 안 끝났어요.”

오죽하면 이광인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형. 게임을 던진 눈빛이 아닌데?’

이광인이 불길함을 느꼈다.

‘이건 막아야 해.’

이광인이 어깨로 밀치기를 시도했다.

퉁!

이순신의 체력이 떨어졌을지언정 근 손실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광인이 튕겨 나갔다.

“이순신 선수. 그대로 슛?”

[천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몸을 붕 띄우면서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앞에 발렌시아의 수비수는 5명.

아슬아슬하게 선수들의 몸과 몸 사이를 비껴 나갔다.

“어? 뭐야!”

발렌시아 골키퍼는 어림없는 슛이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깜짝 놀랐다.

“발렌시아 골키퍼. 잡지는 못하고 펀칭으로 걷어 냅니다!”

“대단한 슈팅입니다. 하마터면 들어갈 뻔했어요.”

엄청난 슛으로 이순신이 단숨에 분위기를 꿈 FC 쪽으로 가져왔다.

이광인을 비롯한 발렌시아 선수들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대단한데?”

심지어 발렌시아의 주장 가야는 엄지를 치켜들며 이순신의 슛을 인정해줬다.

“아깝다. 순신아.”

“그래도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좀 더 좋은 찬스를 만들었을 텐데…”

[반동 효과가 발동합니다.]

[10초간 시야가 차단됩니다.]

이순신은 눈을 감고 말했다.

“공격. 그게 우리의 축구이자 최선의 수비야. 남은 시간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편의 골대를 두드리자.”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은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1골 더 넣으면 우리가 이기고, 못 넣으면 지는 거야.’

‘구차하게 볼이나 돌리면서 연명해서 승부차기까지 가느니, 지더라도 화끈하게 지자.’

[반동 효과가 해제되었습니다.]

[히든 스킬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스킬 개방 : 필사즉생 필생즉사]

[발동 조건 : 경기 종료 10분 전,???,???,???]

[이번 경기에서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능력이 한계치까지 발동합니다.]

[경기가 끝난 후 컨디션이 크게 하락합니다.]

선수들의 의지, 지더라도 골을 넣겠다는 의지가 모여서 히든 스킬이 개방됐다.

얼핏 보면 ‘세컨드윈드 더블’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한계치까지 만이라는 것.

즉, 어떤 선수들은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어떤 선수는 현재가 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동 조건이 되게 까다롭네, 2개는 안 알려주는 건가?’

충무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를 위해 동료를 혹사시킬 가능성 때문이라고 허준이 답합니다.]

오히려 이순신은 이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발렌시아를 상대로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가자! 골 넣으러!”

“알았어!”

이순신은 코너킥을 준비했다.

“꿈 FC의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원래는 오진성이 올려야 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교체된 상태였다.

이순신은 오진성만큼 정교한 코너킥을 올렸다.

“골문 앞에서 경합 중인 양 팀!”

“꿈 FC의 헤딩슛!”

하비가 달려오면서 헤딩을 했다.

너무나 정직하게 골키퍼 중앙으로 날아갔다.

“아깝습니다! 꿈 FC.”

해설자의 탄식이 이어졌다.

“얼른 복귀해!”

이순신이 재빨리 진영으로 복귀했다.

발렌시아는 재빨리 공격을 펼쳤다.

“이광인 선수 볼을 잡았습니다.”

이광인은 패스할 곳을 찾았다.

‘눈빛들이…’

승리의 열망에 굶주린 아마추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과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광인 선수 돌파합니다.”

이광인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꿈 FC의 수비를 벗어났다.

그의 앞에는 이순신이 버텼다.

“들어와.”

이순신이 까닥까닥 손짓을 하며 도발했다.

이광인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옆에서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가야에게 공을 찔러줬다.

“가야 선수! 달립니다!”

가야가 적절한 시점에서 다시 이광인 에게 패스했다.

수비의 위치를 파악한 이광인은 감아 차기를 시도했다.

“이광인 선수. 슛!”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의 방패연이 아닌 꿈 FC 센터백의 방패연이었다.

“튕겨져 나온 공. 이광인 재차 슛!”

“으윽!”

이광인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슛하기 직전, 이순신이 가볍게 발을 갖다 댔다.

다리를 잡고 그라운드에 누웠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이순신 선수. 슈팅을 막아냅니다!”

이순신은 전방을 살폈다.

“뛰어!”

이번엔 이순신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꿈FC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을 받은 구멍은 하비에게 연결했고, 하비는 달려오는 임단결에게 줬다.

“임단결의 오버래핑! 빠…빠릅니다!”

원래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한계치에 도달하니 유망주 시절의 기대치가 뿜어졌다.

빠른 스피드로 발렌시아의 수비를 제쳤다.

힐끗 옆을 보니 이순신이 달려오고 있었다.

“형. 받아!”

임단결은 크로스를 올렸다.

‘가야가 왜 저기에 있어?’

가야는 임단결이 패스할 것을 예측하고 이순신에게 붙었다.

이순신과 가야가 대치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순신이 공을 왼쪽으로 툭툭 쳤다.

[지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의 슛이 가야의 발끝에 살짝 닿았다.

공은 약간 방향을 틀어서 골대로 날아갔다.

구석을 찌르는 예리한 코스였다.

퉁!

슛은 아쉽게도 골대를 맞고 밖으로 골라인 밖을 벗어났다.

“꿈 FC의 역습이 아깝게 실패했습니다!”

이순신은 반동 효과로 경직을 겪는 사이에,

발렌시아의 골키퍼는 길게 골킥을 날렸다.

고메스가 공을 잡았다.

“아. 안 돼!”

이순신의 경직이 막 풀렸다.

뒤늦게 쫓아갔지만, 수비에 구멍이 난 상태였다.

임단결이 이순신의 빈자리를 메웠다.

다행히 고메스는 수비가 붙기 전에 슛을 날렸다!

퍽!

[방패연이 발동했습니다.]

구멍이 온몸으로 고메스의 슛을 막아냈다.

“크헉! 나 죽네!”

구멍이 배를 움켜잡고 괴로워하는 사이에 고메스가 재차 슛을 때렸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 선수! 태클로 고메스 선수의 슛을 걷어 냅니다!”

어느새 달려온 이순신이 고메스의 슛을 막아냈다.

“대단한 경기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거 누가 4부 리그 팀이고, 1부 리그 팀인지 모를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경기는 아주 잠시 중단됐다.

고메스의 슛을 막은 구멍이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멍. 괜찮아?”

“미안하오. 순신 시주. 먼저 부처님을 뵈러 가야 될 거 같소.”

구멍이 침을 질질 흘렸다.

‘여기서 구멍이 빠지면 안 돼.’

구멍이 있기에 이순신이 오버래핑을 시도할 수 있던 것이다.

“조금만 참아. 앞으로 1분만 버티면 돼!”

이순신은 구멍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회복 침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아. 하아. 그래요. 1분만 참아보겠습니다요.”

구멍이 말투가 바뀔 정도로 겨우 정신을 붙잡고 말했다.

경기가 재개됐다.

이광인이 슬쩍 가야에게 패스를 했고,

가야는 크로스를 올렸다.

고메스가 뛰어올라서 헤딩을 했지만,

보경풍이 가볍게 몸을 날리며 막았다.

삐이이익-

후반전도 끝났다.

“양 팀 정규시간에 승부를 내지 못했습니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듭니다.”

“순신 시주. 1분이 아니잖소!”

“미안.”

구멍의 귀여운 투정에 꿈 FC 선수들은 웃었다.

양 팀은 지칠 대로 지쳤다.

잠시 후,

정신력으로 그라운드에 섰다.

쏴아아아-

그리고 비가 내렸다.

“경기장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 비가 어느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요?”

해설자를 비롯한 관중들은 숨죽여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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