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68화 (69/161)

68화. 박쥐의 분노

오진성이 발목을 어루만졌다.

“진성아. 괜찮아?”

“안 괜찮아.”

“내가 잠깐 봐도 될까?”

이순신이 오진성의 발목을 살펴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허준이 상태를 살폈다.

[허준이 마비 침을 들고 서 있습니다.]

[마비 침 : 강력한 진통 효과로 고통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3경기 동안 출전할 수 없습니다. 이후 부상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부상 재발은 못 참지.’

이순신은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냈다.

“꿈 FC가 다친 오진성 선수를 빼줍니다!”

이에로 감독 역시 고민할 가치가 없었다.

2:0으로 앞선 상태,

상대 수비수까지 퇴장당했기에 그 역시 굳히기로 갔다.

하지만 발렌시아 감독의 눈빛이 변했다.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나가서 1부 리그 팀이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보여줘라.”

“네.”

경기 시작과 동시에 발렌시아 선수들은 몸을 풀었다.

감독의 사인이 발동하면 언제든지 경기에 나가기 위함이었다.

“발렌시아가 대거 선수교체를 단행합니다. 가야, 고메스, 이광인 선수가 들어옵니다!”

방송사 PD는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대…대박이다!’

이미 꿈 FC가 발렌시아라는 대어를 낚기 직전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한국 팬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순신 vs 이광인’의 매치가 성사됐다.

“이광인 선수가 들어옵니다!”

채팅창이 난리가 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축구팬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안태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재밌는 경기가 되겠군.”

두 선수 모두 그가 구상하는 올림픽 대표팀에 있었기에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순신처럼 수비수지만 팀의 주장을 맞고 있는 가야가 레프트 백으로 들어왔다.

“광인, 저 친구랑 친해?”

“아니. 이름 정도?”

“알고 있는 거 있으면 좀 말해봐.”

“정말로 몰라.”

이광인이 귀찮은 듯 말했다.

“단결아. 저 녀석 꼭 잡아보자.”

임단결과 가야는 비슷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렌시아 유스 출신으로 커리어 또한 화려했다.

임단결은 오른쪽, 가야는 왼쪽.

자주 붙을 수밖에 없는 매치였다.

그렇기에 임단결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형은 저 녀석이랑 자주 부딪히겠는데요? 힘내요.”

임단결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이순신의 시선이 교체된 공격수 고메스에게 향했다.

고메스는 탄탄한 신체조건을 가진 타겟맨으로 세밀함은 약간 부족하지만, 약팀에게는 확실히 골을 넣는 공격수였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라서 혈기가 왕성했다.

“후반 10분. 이제부터 진짜 발렌시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배수의 진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이기고 있음에도, 1명이 더 많은데도 배수의 진이 발동된다고?’

그만큼 주전이 투입된 발렌시아의 전력이 크게 상승했다.

“모두 쫄지 말고 침착해! 아직 우리가 앞서고 있으니까!”

이순신이 격려했다.

그러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발렌시아가 볼을 돌리더니, 마침내 이광인 에게 공이 갔다.

“이광인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그대로 미드필더에게 패스! 다시 공을 잡는 이광인. 깔끔한 2:1 패스입니다.”

구멍과 하비가 이광인을 포위했다.

“시주. 공을 놓고 가시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이광인이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공을 띄운 후 가볍게 구멍과 하비를 가볍게 제쳤다.

“이게 무슨 일이오?”

구멍이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했다.

“이광인 선수! 가볍게 두 선수를 제칩니다!”

“돌파하는 이광인!”

“기다려!”

이순신은 동료를 저지했다.

수비수를 끌어낸 후 중거리 슛을 쏘려는 이광인의 의도를 눈치챘다.

‘이 형 눈치가 제법인데?’

이광인은 꿈 FC 수비수들이 나오지 않자 그대로 슛을 때렸다.

“이광인 선수의 중거리 슛!”

묵직한 슛이 꿈 FC 골대를 향해 날아왔다.

이순신이 할 수 있는 건 슛 각도를 좁히는 것뿐.

‘이 정도면 경풍이 형이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이순신의 예상대로 보경풍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리해. 하지만 코스가 너무 단순해.’

보경풍은 펀칭으로 가볍게 공을 걷어 냈다.

“보경풍 선수의 선방! 하지만 공은 아직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광인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웃었다.

“넣어! 고메스!”

뛰어난 피지컬을 지닌 고메스가 높이 뛰어올랐다.

“고메스의 뛰어난 위치 선정!”

고메스의 눈앞에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이순신 선수가 반 박자 빠른 헤딩으로 걷어 냅니다! 발렌시아의 코너킥!”

“큭.”

두 사람은 공중에서 부딪혔다.

고메스는 멀쩡하게 두 발로 착지한 반면,

이순신은 살짝 휘청거렸다.

‘내가 지금 사람하고 부딪힌 게 맞지?’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묵직함.

방목한 소를 먹으며 단련된 근육은 근질부터가 달랐다.

“조심해. 계속 그러다간 다쳐.”

고메스가 이순신에게 웃으며 경고했다.

“너나 조심해.”

이순신이 그대로 되받아쳤다.

그러자 고메스가 이죽거렸다.

살짝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이광인 선수가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이순신과 고메스가 서로 밀치며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했다.

이광인이 찬 공이 휘어져 들어왔다.

고메스가 뛰어올랐다.

“치잇!”

방향을 틀어버리는 헤딩슛이었다.

“보경풍 선수. 몸을 날려서 공을 잡아냅니다.”

“아깝네.”

이순신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놓쳤다고?’

만약 보경풍의 선방이 없었다면, 꿈 FC는 동점 골을 허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저 아직 경기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고메스가 적응을 하지 못했을 뿐.

감을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순신. 정신 차려.”

보경풍이 공을 굴렸다.

‘그래. 이게 수비수와 공격수의 차이기도 하지.’

공격수는 10번을 실패하고 1번을 성공시키면 됐다.

수비수는 10번을 성공해도 1번을 실패하면, 쌍욕을 처먹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실점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

‘정신 차려. 이순신!’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자기 자신에게 호랑후를 사용했다.

발렌시아의 공격은 살짝 주춤했다.

서로 탐색전이 이어졌다.

그때 가야가 공을 잡았다.

“가야 선수. 측면 돌파를 시도합니다.”

임단결이 재빨리 달라붙었다.

“스피드라면 안 진다고!”

가야는 스피드만 뛰어난 윙백이 아니었다.

방향을 틀어서 공을 끌어왔다.

임단결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안 돼. 단결!”

이순신이 외쳤다.

가야는 씨익 웃었다.

가볍게 임단결의 커트를 피했다.

“가야 선수의 크로스!”

공은 정확하게 고메스에게 날아갔다.

등 뒤에 이순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슴으로 트래핑을 한 후 몸을 틀었다.

재빨리 몸을 회전하더니 그대로 슛을 날렸다.

[방패연을 사용합니다.]

이순신이 발을 뻗었다.

공에 닿기는커녕 궤도조차 바꾸는 것도 무리였다.

“고메스 선수의 슛이 골문 구석으로 향합니다.”

보경풍이 손을 뻗었지만 막기에는 살짝 역부족이었다.

“고메스 선수의 골!”

“으아아아!”

고메스가 포효했다.

이순신과 보경풍이 허탈한 듯 골라인을 넘은 공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도 놓친다면 발렌시아의 공격수로 뛸 자격이 없지.”

가야가 씨익 웃었다.

“이것이 발렌시아입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이광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 역시 어릴 때부터 발렌시아에서 성장한 선수였기에 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것이 비록 짝사랑일지라도.

“강팀을 상대로 한 골도 먹히지 않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저희도 약팀을 상대로 128강전에서 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이광인이 할 말을 다 하고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질 수 없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세컨드 윈드 더블을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128강전에서 이 스킬을 사용할지 몰랐다.

아직 리그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좀 더 높은 단계에서 쓰고 싶었다.

“여기서 우리가 지면 당연한 거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기면 그건 또 다른 역사가 된다. 그러니까 이기자.”

[호랑후를 발동합니다.]

이순신은 주장으로서 팀의 분위기를 재정비했다.

“고메스 선수의 거침없는 드리블. 그 앞에는 이순신 선수가 있습니다.”

고메스는 맹수처럼 거침없이 돌파했다.

“넌 아직 내 상대가 안 돼.”

아까의 승리로 한참 우쭐함에 취해 있었다.

이순신은 화끈하게 그를 막아냈다.

[스페인 함대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이에로한테 배운 태클 기술인 스페인 함대를 사용했다.

영국 팀을 제외한 선수에게 높은 적중률을 보였는데 더블을 사용한 상태라 고메스는 결국 나뒹굴고 말았다.

“으아아악! 내 다리!”

하지만 심판은 정당한 태클이었다고 판단하고 경기를 속행했다.

“젠장. 방심하다 당했네.”

고메스는 나뒹군 자신이 너무나 꼴불견이고 쪽팔려서 곧바로 일어나진 못 했다.

흘러나온 공은 이광인 앞으로 떨어졌다.

“이광인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왼발을 주로 사용하는 이광인이 때리기 좋은 위치에 서 있었다.

휘리릭!

이광인이 발 안쪽으로 감아 찼다.

“됐어. 이건 들어갔어!”

발끝에 걸릴 때 골이란 느낌이 들었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빠르게 달려가더니 공을 걷어 냈다.

“뭐… 뭐야!”

이광인이 놀라는 사이에, 보경풍이 높이 뜬 공을 가볍게 잡아냈다.

아무리 발렌시아라고 해도 현재의 이순신을 뚫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꿈 FC도 마찬가지였다.

“윤광섭 선수 돌파를 시도합니다.”

“아. 가야 선수에게 가볍게 막히네요.”

“김혁규 선수의 개인기.”

“하지만 가야 선수가 이번에도 막아냅니다!”

이처럼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순신을 비롯한 꿈 FC의 체력과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하아-하아- 조금만 더 버티자!”

이순신에게 남은 체력은 고작 30%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기 시간이 앞으로 10분 정도 남았다는 것이었다.

“가야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가야가 측면 돌파를 시도했다.

지친 임단결이 따라잡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가야의 별명은 ‘체력왕.’

그렇게 드리블을 치고, 스프린트를 해도 체력은 교체 들어온 순간과 다를 바 없었다.

임단결을 가볍게 제친 가야는 횡패스를 했다.

이광인이 볼을 잡았다.

고메스가 다른 수비수들을 유인한 사이 이순신과 이광인의 대결이 펼쳐졌다.

“형. 지쳐 보이는데 괜찮겠어요?”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봐줄 것도 아니면서.”

“그렇긴 하죠.”

이광인이 먼저 개인기를 시도했다.

이순신은 끌려가지 않았다.

냉정하게 움직임을 파악했다.

두 사람의 숨 막히는 공기는 화면 밖으로 느껴졌다.

스페인리그에서 대한민국의 두 선수가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돌파는 어림도 없겠어. 그렇다면…’

‘슛이다!’

이순신과 이광인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이광인 선수의 감아 차기!”

이순신이 발을 뻗었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그 순간이었다.

슛을 하려던 이광인이 공을 끌면서 뒤로 뺐다.

“앗! 슛하는 척하면서 공을 뒤로 빼는 이광인. 다시 슛을 찹니다!”

다시 감아 차기를 시도한 이광인의 슛은 결국 그물망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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