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66화 (67/161)

66화. 역대급 vs 역대급

국왕컵은 단순히 FA컵 대회가 아니었다.

스페인리그의 프로리그라고 할 수 있는 1, 2부 팀 전체와 3, 4, 5부 및 지역 컵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팀들이 8강전까지 단일 매치로 맞붙는 토너먼트였다.

꿈 FC는 4부 리그에 갓 들어온 신입이었지만, 5부 리그 우승 자격으로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1차 예선을 가볍게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팀 분위기는 좋았다.

“이대로 우승까지 가자!”

만약 꿈FC가 우승을 한다면,

챔피언스 바로 아랫등급인 ‘유로파’ 본선 진출권과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란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유로파리그는 유럽의 각국 리그와 컵대회 성적으로 출전팀이 결정된다.

한 단계 높은 대회인 챔피언스리그 32강전 조별 예선에 탈락한 팀들도 합류하게 되며, 우승하면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또 하나의 우승컵을 놓고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본선 조별 리그 상금만 대략적으로 2,600,000유로!

한화로는 약 35억 원에 이르렀다!

이것은 최저치.

만약 우승을 한다면 200억 원 가까이 획득할 수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에는 훨씬 못 미치는 상금 규모지만, 4부 리그인 꿈 FC에게는 상금뿐만 아니라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우승을 하게 되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 진출할 자격이 생겼다.

이 라리가 우승팀과 국왕컵 우승이 겨루는 대회였는데 여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해에 국왕컵을 32강전부터 시작할 수 있었고, 출전 상금만 900만 유로.

우리 돈으론 약 117억 원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아니. 하고 많은 팀 중에서 하필이면 발렌시아냐고!”

“어쩌겠어. 약팀의 숙명인걸.”

이순신은 애써 조문돈을 타일렀다.

다른 선수들도 사기가 저하된 건 마찬가지였다.

“우승까지 가자며? 그런데 고작 발렌시아한테 쫀 거야?”

“쫄긴 누가 쫄았다고 그러시오. 그저 객관적인 전력이 열세이고, 이왕이면 첫 국왕컵이니 되도록 높게 올라가고 싶었는데 128강전에서 탈락하게 생겼잖소?”

“이기면 되지.”

“또 나왔다. 이기면 되지.”

“이번엔 안 돼.

전력 차가 너무 커. 우리가 맞붙었던 상대 중 가장 센 게 울산일 텐데 거기보다 더 강한 게 발렌시아야.”

“우리가 발렌시아를 이길 수 있는 방법.

분명 상대는 2군이나 18세 유망주를 내보낼 거야.

고작 4부리그 팀을 상대로 128강전에서 모든 전력을 쏟아붓겠어?”

그 말을 듣자 선수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두 번째로는 분명히 방송으로 나갈 거야. 거기에 광인이가 있잖아.”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비록 뮤튜브를 통해서 경기 영상을 올려 주고 있긴 하지만, 어른들한테는 TV에 나오는 게 성공의 기준이었다.

“우리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의 묵직한 한마디에 선수들의 눈빛이 호랑이로 변했다.

“그래. 까짓것 해보자!”

“할 수 있다!”

“발렌시아를 고추장에 발라먹어!”

구멍의 눈이 돌아갔다.

입에서는 방언인지 랩인지 모를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이순신은 이광인과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예상대로 스페인리그를 중계하고 있던 방송사는 발렌시아 특집을 준비했다.

피디는 국왕컵 대진표가 나오자 긴급하게 회의를 열었다.

“꿈FC랑 발렌시아의 매치 업이라. 이거 꽤 재밌겠는걸?”

“그쵸? 완전히 역대급 유망주 vs 역대급 유망주의 대결이라니깐요.”

“이제는 성인 무대에서 뛰니까 유망주는 아니지.”

“한쪽은 득점왕 출신, 한쪽은 MVP 출신.”

“그래도 발렌시아가 이기지 않을까요?”

“장담할 순 없어. 레알 마드리드도 국왕컵에서 여러 번 하위 리그한테 잡혔으니까.”

흔히 약팀이 강팀을 잡으면 언더 독의 반란, 자이언트 킬링이란 말을 썼다.

레알 마드리드는 유독 국왕컵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이변의 제물이 자주 됐다.

피디는 모두의 의견을 들은 후 마침내 결론을 냈다.

“둘 다 올림픽 대표팀 승선이 확실한 상황이지. 좋아. 국왕컵 128강전 중계하자고!”

128강전은 스페인에서도 중계를 안 해줄 정도로 관심 밖인 매치였다.

하지만 피디는 과감히 투자를 결심했다.

피디의 결단이 스페인리그, 꿈FC와 그들의 가족들, 심지어 올림픽 대표에도 영향을 끼치는 나비의 날갯짓이 되리라고는 이때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

4부 리그에서 무패 1위를 달리고 있는 꿈FC의 홈구장에 발렌시아 선수들이 도착했다.

“잔디 상태가 왜 이래?”

“휴. 피곤해.”

발렌시아 선수들은 상당히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야. 어디서 바다 짠물 냄새 안 나냐?”

“그러게. 비린내가 아주 그냥 진동을 하네.”

꿈FC 팬들은 발렌시아 선수들에게 텃세를 부렸다.

128강전은 단판 승부!

그래서 그런지 많은 꿈FC 팬들이 몰렸다.

1부 리그 팀과 대결은 자주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초장부터 기를 팍 죽일 필요가 있었다.

발렌시아에는 교민들에게 익숙한 선수가 있었다.

“이광인이다.”

“진짜다!”

최근에 스웨덴 대표팀과 평가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한 이광인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비록 상대편이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인사했다.

“이광인 파이팅!”

뛰어난 재능과 인성을 갖춘 선수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다만 스페인 사람에게는 그 기준이 조금 다른 듯했다.

무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최우수 선수로 뽑혔지만, 발렌시아에서는 로테이션 멤버일 뿐이었다.

그에게 걸려있는 바이아웃 조항은 무려 1000억 원.

이것 때문에 이적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불안한 입지 때문에 이광인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광인아!”

임청수 단장이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잘 지냈어?”

“그럭저럭요.”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저두요. 잘 부탁드립니다.”

임청수가 씨익 웃더니 이순신을 불렀다.

“순신아. 이리 와봐.”

몸을 풀던 이순신이 뛰어왔다.

‘인사해. 여기는 이광인. 경기장에서는 처음 보지?“

임청수가 두 사람을 연결시켜줬다.

이순신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 반갑다. 너 축구 진짜 잘하더라. “

이광인의 눈은 이순신에게로 향했다.

“와- 크다.”

이순신은 장신의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를 가졌다.

거기에 눈으로도 보이는 단단한 근육.

“칭찬? 고맙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형 확실히 피지컬은 최고네요! 진짜 여기에 있기엔 너무 아까워요!”

이광인도 어린 시절부터 피지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피지컬은 센스, 학습 능력과 더불어 타고나야만 하는 부분.

유일하게 이광인에게 없는 재능이 그것이었다.

피지컬에도 체격, 밸런스, 힘, 지구력 등 세분화하면 끝도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체격이 좋아서 나쁠 건 없었다.

“피지컬만 좋은 거 아닌데?”

이순신이 웃으며 되받아쳤다.

“아. 형. 그런 뜻은 아니에요!”

이광인이 재빨리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이순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 같았다.

“장난이야. 어쨌든 이따가 필드에서 보자.”

이순신이 씨익 웃으면서 꿈 FC 진영으로 돌아갔다.

경기 시작 5분 전.

꿈FC 경기장에 관중들이 가득 들어섰다.

꿈FC 역사상 처음으로 입장권이 매진됐다.

방송국 PD는 이게 정말 4부 리그와 1부 리그의 대결이 맞는지 두 눈이 의심스러웠다.

“이거 128강전 맞아?”

꿈 FC 지역의 스페인 방송팀도 깜짝 놀랐다.

“꿈 FC와 발렌시아의 코파 델 레이 128강전이 시작됩니다!”

삐이이익-

꿈FC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아, 이순신은 선발인데 이광인은 벤치에서부터 시작하네.”

한국 팬들과 방송국 관계자들은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역대급 유망주들의 대결이라고 설레발을 잔뜩 쳐놨는데, 시작부터 김이 빠졌다.

“이거 발렌시아가 일방적으로 패면 나가린데?”

누가 봐도 전력은 발렌시아가 몇 수 위였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었다!

“윤광섭 선수. 이제는 무대보다 그라운드가 더 익숙하네요!”

윤광섭이 질주했다.

방심한 발렌시아의 수비수들이 그를 막을 순 없었다.

“측면 돌파 후 오진성 선수에게 패스.”

“오진성! 왼쪽에 김혁규, 전방에 페르난도 선수가 있습니다!”

오진성은 김혁규에게 패스했다.

완벽한 찬스!

삐이이익-

하지만 공격을 이어갈 순 없었다.

이미 공이 김혁규에게 갔지만, 발렌시아 선수는 공과 상관없는 반칙을 저질렀다.

“발렌시아의 미드필더가 옐로카드를 받습니다.”

“좋은 기회였는데 너무 아쉬웠습니다.”

오진성이 어깨를 붙잡았다.

“으윽.”

“진성아. 괜찮아?”

이순신이 재빨리 달려와 물었다.

“잠깐 쉬면 나을 거 같아.”

[한 번 더 충격을 받으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회복 침으로 부상 빈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회복 침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3/3)]

이순신이 회복 침을 오진성에게 사용했다.

“어깨 좀 돌려봐.”

오진성이 어깨를 앞뒤로 휙 돌렸다.

“아까보단 좀 나아진 거 같아. 역시 별거 아닌 거 같아.”

“그래도 조심해.”

이순신이 오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꿈 FC가 프리킥을 준비합니다.”

오진성, 이순신, 하비가 공 앞에 서 있었다.

“두 선수 중 누가 찰까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이광인도 벤치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순신이 형은 휘어지는 킥과 강력한 다이렉트 킥 둘 다 잘해. 저 위치라면 휘어지는 킥? 그런데 위치로 보면 저 어린 선수가 왼발로 찰 거 같은데…’

삐이익-

이순신, 오진성, 하비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순간이었다.

하비가 우선 달렸다.

동시에 오진성도 달려나갔다.

‘역시 순신이 형이네.’

이광인의 예상대로 프리킥 키커는 이순신이었다.

심지어 휘어지는 킥!

다만, 이광인이 예상하지 못한 건 이순신이 왼발로 프리킥을 찼다는 것이다.

“순신이 형이 양발잡이였어!?”

이광인이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자신이 아는 바로는 이순신은 오른발잡이였다.

그런데 왼발로 날카로운 프리킥을 때렸다.

[비격진천뢰가 발동했습니다.]

[비격진천뢰 횟수를 모두 사용했습니다.(0/4)]

[성공확률 50%]

“제발…”

비격진천뢰를 몰아 써도 성공률이 5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히든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1부 리그 팀을 상대로 약발로 프리킥 골 성공시키세요.]

[이순신 약발 : 왼발]

[히든 보상 : …]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자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렁.

이순신이 때린 공은 골문을 흔들었다!

“고오올! 이순신 선수의 골로 꿈 FC가 1:0으로 앞서갑니다!”

“우와아아아아!”

관중들이 환호를 질렀다.

방송팀들도 깜짝 놀랐다.

“됐어! 이젠 져도 상관없어!”

일방적으로 수비만 하다가 몇 골 먹히고 지는 그림을 상상했던 방송사 놈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그딴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해냈다!’

이순신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발렌시아에게 골을 넣은 이순신은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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