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위기의 올림픽 대표팀
“그게 무슨 말이죠?”
이순신은 냉정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에게는 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특히 그 눈빛.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을 때 나오는 안광이죠.”
사람의 눈은 고양이처럼 빛을 낼 순 없다.
어떻게 보면 은유적인 표현.
이순신은 굳이 이 사람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싶진 않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한 번 나락으로 떨어져 봐서 그런 거 같네요.”
“힘내십시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리지 말고요.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을 잃을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는 이순신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순신은 그날 밤 데이비드에 대해서 검색을 해봤다.
먹방 BJ에서 운동으로 인생 역전한 크로스핏터.
재밌는 점은 이전에도 데이비드라는 한국계 미국인 크로스핏터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순신은 호기심이 생겼다.
조금 더 검색해봤다.
데이비드는 크로스핏이란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다.
짧은 전성기를 보낸 후 남은 것은 내리막길뿐이었다.
그때 그에게 엄청난 제안이 왔다.
로봇과 대결한 크로스핏 대결.
말도 안 되는 대결의 승자는 인간의 의지와 대단함을 증명한 데이비드였다.
하지만 모든 걸 불태운 그는 예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못 냈다.
28살이란 젊은 나이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네.”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그의 후계자가 대를 이어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
기사를 계속 읽다가 이순신은 데이비드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회에 참여한 그는 자신을 애지중지하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도 못 갔다.
로봇 따위와 대결하느냐고 아들의 장례식, 친구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설마…”
이순신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데이비드가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면, 그 대가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괜스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이왕이면 얼굴을 볼 수 있게 영상통화로 연결했다.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별일 없으시죠?”
“응. 엄마는 잘 지내. 너는 별일 없고?”
“네.”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그런지 서먹서먹했다.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할게요.”
“아. 순신아. 잠깐만!”
엄마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계속 머뭇거렸다.
“혹시 한국에 언제 오니?”
“프리시즌에 준비할 게 많아서요.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면 한국에서도 경기를 치를 수도 있으니까 그때 찾아뵐게요.”
“그래. 엄마가 가게 문 닫고서라도 응원 갈게.”
“고마워요. 그리고 보내드린 돈은 팍팍 쓰세요. 어차피 여기선 돈 쓸 일도 없어요.”
이순신에게는 그저 ‘엘 클라시코’만 보러 갈 돈만 있으면 됐다.
“고맙다. 순신아. 효자네. 효자. 밥 잘 챙겨 먹고. 혹시 김치 안 필요하니?”
“김치 많이 있어요. 하하. 건강하세요.”
“응…그래.”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이순신은 기운이 났다.
먼 곳에서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난 혼자가 아니다!’
이순신은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흥분돼서 잠이 안 올 법도 하지만,
고된 훈련과 도전으로 졸렸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잘 지내서 다행이다. 순신아. 난 너만 잘 되면 된다…”
엄마의 손에는 A4용지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동수원 병원이라고 적힌 하얀 봉투가 뜯겨 있었다.
***
훈련을 마친 꿈FC는 숙소로 모였다.
오늘은 올림픽 대표팀의 평가전이 있는 날이었다.
“야. 팝콘 어디 있어?”
“음료수는?”
선수들이 분주했다.
한국계 선수들은 모두 모인 반면, 외국계 선수들은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한국 대 스웨덴의 올림픽 대표 친선 경기가 화성종합운동장에서 열립니다.”
안태리는 이번 대회에서 이순신을 선발하지 않았다.
저번에 충분히 능력을 보여줬다.
이번엔 소집되지 않은 해외파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하지만 이순신으로서는 다소 아쉬웠다.
“아- 선발됐으면, 집에도 좀 들렀다 올 수 있었는데…”
“순신 시주. 여기가 집이고, 우리가 가족이오. 향수병을 일으키는 단어는 좀 자제해주시오.”
“아. 미안.”
이순신이 머쓱했다.
따르르릉-
구멍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주지 스님?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전혀 다른 말투였다.
구멍은 황급하게 핸드폰을 껐다.
“구멍아. 너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주지 스님이 소인의 부군이오…”
“아―”
단숨에 이해됐다.
“야. 조용히 해! 경기 시작했다!”
조문돈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삐이이익-
“경기 시작됐습니다.”
이번 대표팀의 특징은 황금세대의 조화였다.
19세 월드컵에서 축구 강호 아르헨티나를 농락했던 공격수 이우승, 미드필더 천승호.
2년 뒤 남자축구 최초로 피파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 핵심 멤버였던 17세 천재 미드필더 이광인.
한국 최초로 바이에르 뮌헨에 입단한 멀티 플레이어 정대건 까지.
4년 동안 한국 축구의 역대 최고의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멤버는 진짜 화려하네.”
“축구를 이름으로 하냐?”
조문돈이 열등감을 느끼며 동료에게 핀잔을 줬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 스웨덴의 슛! 그대로 한국 팀의 골망을 가릅니다.”
“0:1로 스웨덴이 앞서갑니다.”
꿈 FC는 먹던 팝콘을 내려놨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우승. 돌파합니다!”
“드리블과 스피드는 수준급이지만, 피지컬이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요.”
해설자가 3년째 같은 이우승의 몸무게를 보고 지적한 것이다.
“천승호 선수는 국내에 복귀한 뒤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선수들과의 호흡에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공격 조율을 전혀 못 하고 있어요.”
“말씀드리는 순간! 대한민국. 추가 실점을 허용하고 맙니다. 스코어는 0:2 위기입니다.”
“안태리 감독.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게 0:2로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안 감독님…경질설 흘러나오는 거 아냐?”
한국 축구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였다.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했다.
연패라도 당할 때면 감독 교체가 만병통치약인 듯 취급했다.
“순신이가 저기서 뛰고 있었으면 두 골은 안 먹혔겠지?”
“오히려 두 골 앞서고 있을 수도 있지.”
“아니야. 우승이 형이랑 승호 형은 순신이 형 싫어해.”
유일하게 임단결이 이순신, 이우승, 천승호와 모두 뛰어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단결아. 네가 볼 땐 순신이 외에 우리 중에서 대표팀에 들어갈 만한 선수가 또 있을까?”
“…”
임단결은 말을 아꼈다.
그러더니 조용히 고개를 돌려서 조문돈을 바라봤다.
“문돈이 형?”
“설마!”
“왜! 나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지!”
“형은 23살이 넘었잖아요!”
“와일드카드가 있잖아!”
임단결은 씨익 웃었다.
그의 옆에 있던 보경풍을 보고 웃은 것이었다.
말이 없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실력 면에서는 자기가 본 키퍼 중에선 최고였다.
‘저 형은 충분히 K리그에서도 뛸만한 실력인데…’
“후반전 시작됐다. 광인이랑 대건이 나왔다.”
임단결이 고민하는 동안,
이광인과 정대건이 킥오프를 했다.
두 사람은 시작부터 스웨덴을 몰아붙였다.
“드리블이 다르긴 하네.”
이광인의 공을 뺏기지 않는 탈 압박,
정대건의 스피드는 스웨덴의 수비진을 휘저었다.
하지만,
골이 터지지 않았다.
“프리킥을 얻은 대한민국. 이광인 선수가 준비합니다.”
이순신은 주의 깊게 봤다.
만약 둘 다 대표팀에 선발되면 키커자리를 두고 대결을 펼쳐야만 했다.
“주심이 휘슬을 불었습니다.”
“이광인 선수. 직접 찰까요?”
이광인이 주변을 살폈다.
“이광인 선수. 슛!”
이광인이 찬 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스웨덴의 골대로 향했다.
“아! 안타깝게도 골키퍼의 손을 맞고 터치라인 아웃! 코너킥으로 이어집니다.”
이광인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굉장히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코너킥이 이어졌지만, 그 역시 실패로 끝났다.
“안타깝습니다.”
TV로 경기를 보던 꿈FC도 보기 힘들었다.
이름값으로 축구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역대급 올림픽 대표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선수 3명이 골키퍼, 수비수, 타겟형 공격수만 보강된다면?
메달도 충분히 노려볼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경기를 계속 뛰는 게 중요한 거야.”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임청수가 입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천승호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체력. 진짜 너희 세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심장이 터진다는 느낌이 뭔지 모르지?”
“아닙니다!”
선수들은 크로스핏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래. 어떤 기술이든, 전술이든 체력이 기본이다. 그게 안 되면 아무 소용 없는 거야.”
“넵!”
꿈FC 선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경기는 한 골을 더 허용해서 0:3으로 끝났다.
전반전과는 다르게 유효슈팅이 몇 개 늘어난 거 빼고는 완패였다.
그러나 안태리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꿈 FC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오늘 보셔서 아시겠죠? 선수는 무조건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합니다. 이름값이 아니라 경기력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설령 그것이 4부 리그라고 해도 말이죠.”
이순신은 그 인터뷰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에게 말하는 거 같았다.
재밌는 점은 그렇게 느낀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우리도 할 수 있어!”
“맞아!”
“목표는 대표팀!”
이순신은 가슴이 벅찼다.
의지의 열정.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으니까.
적당히 안주하던 선수들에게 목표가 생긴 것이다.
얼마 후 안태리가 이순신을 점검차 꿈 FC도 방문했다.
“감독님!”
선수들은 안태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안태리가 말뿐인 감독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심지어 이에로 감독과 진지하게 이야기도 나눴다.
선수들의 눈빛이 불타올랐다.
그 결과는 개막전에서 바로 나왔다.
“꿈FC가 개막전에서 3:0으로 승리했습니다!”
김혁규, 윤광섭, 이순신이 골을 넣었다.
“이순신 선수. 30M 골을 성공시킵니다!”
특히 이순신이 꽂아 넣은 중거리 슛은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꿈 FC는 단순한 돌풍일 뿐입니다. 곧 본래의 실력을 드러낼 것입니다.”
“스페인 축구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몇몇 축구 평론가들의 예상처럼 꿈 FC는 본래의 실력을 드러냈다.
“꿈 FC 벌써 5연승입니다!”
이순신을 필두로 한 꿈 FC의 실력은 4부 리그를 훌쩍 뛰어넘었다.
연전연승을 이어가던 중 꿈 FC는 ‘코파 델 레이’.
즉 꿈FC의 목표 중 하나인 국왕컵을 치르게 됐다.
128강전부터 시작되는 단판 승부.
“이러면 나가린데?”
이순신은 대진표를 보고 놀랐다.
그들의 연전연승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팀은 라리가 1부 리그에 속한 이광인의 소속팀.
발렌시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