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축구란 무엇인가?
이순신은 9KG의 중량 조끼를 매고 200개의 푸쉬업을 끝냈다.
곧바로 스쿼트가 이어졌다.
하나, 둘, 셋, 넷…
선수들이 해야 하는 개수는 무려 300개!
계속 중량 조끼를 입은 상태였다.
두 팔은 추진력을 위해 열심히 노를 저었다.
‘점점 빨라지는 거 같은데?’
먼저 스쿼트를 하고 있던 윤지원이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자신 있지!’
축구 선수에게 상체 근육이 그라운드에서 버틸 수 있는 갑옷이라면, 하체 근육은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이자 무기였다.
육각형 능력치, 밸런스를 지향하는 크로스핏보단 이순신이 스쿼트 만큼은 윤지원보단 이순신이 유리했다.
단순 근력 측정이 아닌 근지구력의 영역!
300개란 개수는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영역이었다.
만약 바벨을 들고 스쿼트를 했다면, 윤지원이 긴장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9KG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였다.
초반 100개 정도 차이가 났지만, 지금은 불과 50개 정도 차이가 났다.
“으으윽!”
그때 윤지원이 비명을 질렀다.
이순신의 페이스에 말려서 갑작스럽게 쥐가 났다.
“코치님! 도움! 도움!”
데이비드는 재빨리 ‘마사지건’을 건네줬다.
지이이이이이이잉!
선수들은 하던 운동을 멈추고 윤지원을 쳐다보았다.
마사지하면서 스쿼트를 했다.
‘정신력이 미쳤는데?’
이순신은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허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허준이 회복 침을 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윤지원 선수처럼 이기기 위해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지.’
이순신은 회복 침을 사용했다.
100%의 회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 다리가 움직이기 편했다.
윤지원은 마사지 건을 내려놨다.
이제 프로그램의 마무리인 1.6KM 달리기가 남았다.
“으아아!”
이순신이 포효했다.
[호랑후를 발동했습니다.]
주장이 근성을 보였다.
“일단 닥치고 하자!”
“파이팅!”
“욕한 놈 누구야?”
머리로는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투지.
100M, 50M, 10M…
마침내 이순신이 역전에 성공했다!
“와- 아무리 지원이가 선수들 봐주면서 했다고 해도 대단한데요?”
“그렇죠? 분명 저 녀석은 세계적인 선수가 될 거에요. 밑바닥이 아닌 지옥에서부터 시작했으니까.”
내 새끼를 칭찬하는데 기쁘지 않은 부모가 누가 있으랴?
임청수는 매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아-하아-”
이순신은 그라운드에 누워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수고했어요. 40분 만에 머프를 끝내는 건 미친 짓인데.”
불과 1분 차이로 윤지원이 늦게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아직 힘이 남아 있는지 이순신을 챙기는 여유를 보였다.
‘체력이 대단하네. 역시 챔피언은 챔피언.’
이순신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순신아. 여기.”
신자영이 수건과 음료수를 챙겨줬다.
“고마워요. 누나.”
이순신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땠어?”
“90분 같은 40분이었어요.”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축구가 90분이지만, 90분 내내 뛰진 않는다.
포지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회복을 누가 얼마나 더 빨리하는지, 누가 순간적으로 폭발력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야 기술도 먹히고, 전술도 먹히는 것이었다.
“그래도 1등으로 끝냈네. 역시 주장이라서 그런가?”
신자영이 싱긋 웃었다.
이순신이 침을 꼴깍 삼켰다.
‘퀘스트 보상이 누나의 호감도 상승이라고 어떻게 말해요…’
차라리 현판 웹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태창’을 외치는 것이 덜 쪽팔렸다.
“1등 한 상으로 뭐해 줄까?”
“네?”
“소원 없어?”
“엘 클라시코 보러 가요. 단둘이.”
“그래. 나도 좋아~”
이순신이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이윽고 김혁규, 구멍이 차례로 들어왔다.
신자영은 그들에게도 수건과 마실 것을 챙겨줬다.
수고했다고 말할 뿐, 이순신처럼 별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다.
‘나이스.’
이순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열심히 뛴 보람이 있어.’
마침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날씨 좋다.”
이순신이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기분 좋게 휴식을 취했다.
기초 체력훈련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훈련이 이어졌다.
그날 하루 동안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감독이 선수들을 모았다.
일종의 소통시간이었다.
팀에 대한 불만, 원하는 점, 개선사항 등을 터놓고 말하는 자리였다.
이에로가 물었다.
“끝으로 마지막 질문만 받겠다.”
이순신이 손을 번쩍 들었다.
“말해봐.”
“저희 훈련에 크로스핏이 추가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이곳에는 데이비드와 윤지원도 있었기에 선수들이 갑자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술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선 강도 높은 체력훈련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훈련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감독도 알고, 임청수도 알고, 구단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선수들이 훈련에 불만을 가진 것 역시 이순은 잘 알고 있었다.
공개된 자리에서 모두가 납득하고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오케이.”
이에로가 무언가를 보여줬다.
중국 선수들이 정신력을 강화한다고 군사 훈련소에 입소시켜서 극기 훈련을 진행한 것이다.
“어휴. PTSD.”
조문돈이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아니 저러니까 맨날 삽 푸지.”
“쟤네들이 인구수만 많지, 축구를 못 하는 건 이유가 있다니까.”
선수들의 비웃음이 이어졌다.
이에로가 다음 사진을 보여줬다.
갑자기 선수들의 웃음이 뚝 멈췄다.
“이번엔 잉글랜드 선수들이 군사 훈련소에서 극기 훈련을 받는 모습이다.”
잉글랜드의 괴짜 감독 웨스트 게이트.
몸값만 몇백억 하는 선수들을 데려다가 굴렸다.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인 영국 리그에서 뛰기에 인지도가 있는 선수들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우승 전력이라고 하기에는 매번 2% 부족했다.
잉글랜드는 한때 최고의 캡틴 제라드와 람파드를 둘이나 보유했다.
하지만 공존에는 실패했고, 우승 트로피와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에서 종이호랑이로 불린지 오래된 것처럼,
잉글랜드는 오래전부터 늙은 사자로 불렸다.
그런데 웨스트 게이트감독의 괴짜 운영방법이 통했다!
유로 축구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다들 군사 훈련소에서 최소 한 달 이상은 훈련하는데 우승을 못 하는 거야?”
막내 하비의 당돌한 발언에 형들이 매서운 눈초리 대공포 미사일을 투하했다.
“웨스트 게이트 감독이 단순히 극기 훈련을 해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그는 NFL에서 세트피스 전술에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로의 말에 선수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이순신.”
“네.”
“축구란 무엇인가?”
너무도 짧고 간단명료한 질문.
하지만 이순신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축구란 포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발로 하는 스포츠입니다.”
김혁규가 도와주기 위해 대답했다.
“혁규. 그렇다면 태권도도 스포츠인가? 손을 쓰는 골키퍼는?”
“그건 좀 다르죠.”
이에로가 눈을 부릅뜨자, 김혁규가 시선을 회피했다.
감독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스포츠입니다.”
이순신이 내린 결론은 고작 이것이었다.
하지만 ‘고작’이 때론 최선일 때가 있었다.
“그렇다. 나 역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고 깊은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배움으로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축구란 스포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이에로가 NFL 선수들의 훈련 영상을 틀어줬다.
오늘 꿈 FC가 했던 운동, 앞으로 꿈 FC가 해야 할 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저건 미식축구 아냐?”
“멍청아. 감독님 말씀을 지금까지 뭐로 들었냐?”
영상이 끝났다.
선수들의 얼굴에는 생각이 많아졌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이에로가 촉매제 역할을 했다.
“미식축구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축구에서 요구하는 능력치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전술을 너희들이 펼치려면 기존의 방식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너희들이 나를 믿고, 내 전술을 이해하고 따라오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선수들의 가슴속에 무언가가 막 끓어올랐다.
이에로가 선수들의 가슴에 제대로 불을 지핀 것이다.
“하다 보면 하게 되겠죠.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감독님.”
이순신이 이에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외국 선수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코치님. 잘 부탁합니다.”
이순신이 데이비드와 윤지원에게도 인사했다.
주장이 인사를 하는데 별수 있으랴?
김혁규를 비롯해서 다른 선수들도 인사했다.
외국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군사 시설 입소보다야 크로스핏을 병행하는 게 200배는 낫다고 생각하오.”
구멍의 말에 군필자인 이순신과 조문돈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떼는 말이야.”
“형. 공익근무요원이었잖아. 그만 말해. 버피 하기 싫으면.”
“응. 미안.”
오진성이 단숨에 조문돈을 제압하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그 뒤로 스페셜 체력훈련에 불만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
오히려 바벨 운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아했다.
“이 정도면 4부 리그 애들 갈비뼈 다 부술 수 있겠는데?”
조문돈이 사악하게 웃었다.
몸이 올라오니 자신감이 붙었다.
스피드가 주 무기인 김혁규와 임단결도 처음에는 몸이 둔해질까 봐 꺼려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만족했다.
“와- 혁규랑, 단결이 속도가 더 빨라졌는데?”
“광섭이도 몸이 단단해졌어. 저번에 아웃스타에 올린 사진 대박 났던데?”
하지만 오진성은 유독 힘들어했다.
웨이트를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질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식사량이 적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먹는 행위 자체가 고역이었다.
먹는 것까지가 운동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훈련은 가까스로 소화했으나, 식단에서 뒤처지는 것이 그의 불만 요소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여러분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힘든 훈련을 잘 따라와 줘서 고맙습니다.”
“코치님. 안 가시면 안 돼요?”
“안 돼. 데이비드 코치님이랑 윤지원 코치님 몸값 비싸다.”
“아-”
선수들은 매우 아쉬워했다.
“이건 선물입니다.”
데이비드와 윤지원의 이름이 새겨진 꿈FC 유니폼이었다.
“오- 운동할 때 입으면 딱이겠는데요?”
며칠 후 그는 SNS에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인증했다.
이순신 및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채.
데이비드는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넵.”
그때 데이비드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동안 보여준 상상을 뛰어넘는 운동능력, 행운, 혹시… 특별한 힘을 얻으신 겁니까?”
‘이 사람 뭐야? 그걸 어떻게 안 거지?’
이순신은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질문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