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바이아웃 금액은 1000억
이순신이 중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19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됐다.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스페인 명문구단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에 진출했다.
그러나 스페인 귀화를 외치며 거만과 자만의 상징이 되어 한국 축구 팬들이 등을 돌렸을 때, 다른 유망주들이 언급됐다.
ㄴ 이순신은 필요 없다. 우리에겐 바르샤 트리오. 이우승, 천승호, 임단결이 있다!
ㄴ 이름부터 이우승은 우승이다.
ㄴ 트리오가 잘 성장해서 이순신이 땅을 치고 후회하도록 만들어주자.
그동안 이순신에게만 쏠려있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선수들에게도 향했다.
ㄴ 빌어먹을 유망주 법. 말이 되냐? 선수가 경기를 못 뛰면 어떡해!
ㄴ 우승이랑 승호는 그래도 대표팀에서 경력을 쌓으면 되는데 단결이 어쩌냐…
ㄴ 우승이 경기랑 훈련도 못 뛰는데 이 정도다. 제대로 훈련했으면 다 씹어 먹었을 듯.
다행히 이우승, 천승호, 임단결은 나이대별 청소년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만 18세가 되었을 때,
바르샤 1군 진입을 꿈꿨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이순신조차도 B팀에서 헤맸다.
공격수인 이우승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후베닐 A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끝내 1군 계약에는 실패했다.
미드필더인 천승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단결은 그전에 해외 리그로 눈을 돌렸다.
그 외에 여러 유망주들이 1군 계약을 실패했고, 그 탓을 피파의 규제 탓으로 돌렸다.
ㄴ 그 아래. 슛돌이 출신. 이광인도 있다!
이광인은 어린 시절부터 ‘뻥차라 슛돌이’란 축구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난 뒤 스페인 발렌시아에 진출한 선수였다.
바르샤 트리오와는 다르게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위해 스페인으로 이민을 왔다.
그 결과 끊임없이 훈련할 수 있었고, 월반을 거듭했다.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도 월반을 하여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고, 최초로 피파 주관 남자대회 MVP를 수상했다.
이순신조차도 이루지 못한 기록이었다.
심지어 발렌시아와 정식 계약을 해서 1군 무대에서도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일단 광인이가 소속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긴 한데, 문제는 몸값이 너무 비싸단 말이지.”
이광인에게 걸려있는 바이아웃은 무려 1080억 원이었다.
즉 최소 이 정도 금액은 줘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현재 그만큼의 활약을 보이고 있지는 않으나, 아직 20살밖에 안 된 선수라는 점,
스페인 선수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
19세 대회에서 최고의 재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발렌시아는 쉽사리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일단 광인이는 포기하자. 3부도 아닌 4부 리그에 뛸 리가 만무하니…”
발렌시아 B팀, 즉 발렌시아 CF 메스타야는 같은 그룹에서 속해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단장님.”
“그래. 열심히 하고.”
임청수는 밥이나 한 끼 사주고 격려했다.
“저 단장님…”
“응?”
이광인이 무언가 고민하는 눈치였다.
혹시?
임청수의 기대감은 금방 부서졌다.
“저도 순신이 형이랑 한번 뛰어보고 싶긴 한데 좀 더 1부에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전해주세요!”
역시 눈치왕 이광인이었다.
“그래. 알았다. 그런데 순신이랑은 곧 같은 팀에서 뛰게 될 거야.”
“네?”
“올림픽에서.”
이광인은 씨익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임청수는 공항으로 향했다.
애초에 그의 목표는 전 바르샤 트리오 중 이우승이었다.
셋 중에서도 가장 스타성이 뛰어났으며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우승이가 들어온다면 확실히 팀 전력에 보탬이 크게 될 거야.”
현재 벨기에 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우승.
약간 높은 몸값이 좀 걸리긴 하지만, 충분히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닮은 악바리 기질이 발목을 잡았다.
“안 갈래요.”
이우승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승아. 일단 선수는 뛰는 게 중요해. 네가 원하는 연봉은 맞춰줄 수 없지만 네가 재기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마!”
현재 이우승이 팀에서 받는 연봉은 10억 원가량.
임청수가 제시한 연봉은 3억 남짓이었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무려 1/3이 깎이는 건 선수로서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선배님. 전 좀 더 벨기에리그에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조차 자리 잡지 못하면 다시는 상위리그에 갈 수 없죠.”
“올림픽은 어떡할 건데? 경기 감각 다시 끌어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
“올림픽과 경기 감각을 생각했으면 당장 오라는 K리그로 갔겠죠. 하지만 전 이우승이에요. 대표팀에서 다른 선수들과 손발은 금방 맞출 수 있어요. 승호 형도 어차피 선발될 테고, 다 17세 19세 때 발맞춰본 애들이니까요.”
이우승은 자신감을 보였다.
“그래. 네 뜻은 알았다…”
임청수는 아쉬웠지만, 그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자영이랑 같이 올 걸 그랬나?’
신자영이 홍보 일과 꿈FC 선수들의 에이전트 일로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다.
“순신이 형은 계속 그 팀에 있을 건가요?”
“그건 순신이가 알아서 하겠지?”
이우승은 이순신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튀는 성격을 가졌건만, 이순신 때문에 기질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순신이 늘 한발 앞서 있었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놓쳤다.
축구계에서 이순신이 사라지자 비로소 자신에게 관심이 쏠렸지만, 이순신의 재등장으로 다시 언론의 관심을 빼앗겼다.
심지어 평가도 역전된 상황.
ㄴ 이우승은 끝났어. 순신 코인을 타자.
ㄴ 솔직히 이우승이 한 게 뭐 있냐?
ㄴ 천승호는 피지컬이 그나마 되는데 얘는 자라다 말아서…
그런 말들이 이우승을 더욱 자극시켰다.
‘기필코 나는 유럽에서 성공한다!’
이우승은 개인 훈련에 매진하면서 훗날을 기약했다.
***
“단장님. 얼른 오셔야 될 거 같아요!”
임청수는 비행기에서 신자영이 전해준 자료를 검토했다.
“광고, 후원 계약, 좋아. 좋아.”
계약서를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다만 이건 좀 곤란하단 말이지.”
이순신에게 온 스카우트 제안서가 문제였다.
“선수 개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보내줘야 될까?”
꿈 FC의 운영비용은 1~2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만약 꿈FC가 3부 리그에 진출한다면 한국 선수들을 대량 방출해야 할 수도 있었다.
B팀과 A팀이 같은 리그에 있을 수 없다는 규정은 있어도, 외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3부 이상 올라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때까지 버텨야 했다.
임청수가 로또에서 당첨된 돈과 후원과 광고비가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우선은 이순신을 비롯한 세찬 FC 선수들의 고액연봉.
무엇보다 4부에 진출하니 이에로 감독은 스텝 충원을 요청했다.
만약 이순신을 트레이드하면 다른 선수들이 몇 년은 더 스페인에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임청수는 도착 즉시 이순신을 구단주실로 불렀다.
“안 갑니다!”
이순신의 대답은 단호했다.
“알았다. 네 뜻을 존중하도록 하마.”
“단장님. 구단에 요청할 게 있습니다.”
이순신 옆에 앉아 있던 신자영이 말했다.
“뭡니까?”
“이순신 선수가 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이아웃을 걸어뒀으면 합니다.”
“4부 리그 선수에게 바이아웃을요?”
강대범은 어이가 없었다.
“해당 금액을 부르면 순신이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거절이 잦아지면 나중에 오퍼가 오는 곳이 없을 텐데요?”
“그러니 좀 세게 걸었으면 합니다.”
“음.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얼마 정도 걸면 좋을까요? 한 20억?”
강대범은 현재 이순신의 연봉을 기준으로 좀 더 올렸다.
“1000억이요.”
푸슛!
강대범과 임청수가 동시에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이순신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순신이가 아직 월클은 아니잖아요?”
“물론 레알에서 2~300억 정도 제안만 오더라도 충분히 협상에 응할 조건은 되죠. 다만 4부 리그에서 1000억 원을 바이아웃 건 선수가 있다면 이목이 집중되지 않을까요?”
임청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사실 바이아웃이야 정하기 나름인데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차피 살 놈들은 살 테고, 우리는 홍보 효과를 얻자는 거죠?”
“네. 바로 그겁니다.”
신자영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은 작전이에요. 하지만 왜 많은 구단들이 그런 방법을 안 쓰는지는 생각해본 거죠?”
임청수가 물었다.
“물…물론입니다.”
이번엔 자신감이 조금 떨어진 신자영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
이순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바이아웃을 건다는 건 이 선수가 우리 구단의 핵심선수다.
내 남자다!
다른 구단에게 하는 선전포고였다.
당장의 가치보다 잠재력과 상품성을 염두에 두고 설정해야만 했다.
선수가 만약 그만큼 성장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팀의 에이스, 특급 유망주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는 꼴이었다.
그렇게 되면 실패한 선수, 먹튀, 퇴물이라는 욕을 달고 살게 된다.
여기에 이순신의 팀은 엄밀히 말하면 프로는 아니라는 것.
아무리 아마추어 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인다고 해도, 프로에서는 엄격하게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
“하-”
이순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순신아. 네가 느낄 부담감은 생각하지 못했어.”
신자영은 의욕이 과다해서 실수했다고 느꼈다.
“누나. 실망이에요.”
“죄송합니다. 구단주님…단장님…”
“제 몸값이 그거밖에 안 돼요?”
이순신의 말에 신자영이 고개를 돌렸다.
“흐흐흐.”
그제야 임청수가 소파에 기대어 웃음을 터트렸다.
“단장님. 어떡하죠? 제 몸값이 1년 사이에 천억이나 떨어졌어요.”
“어쩌긴 인마. 더 열심히 해야지.”
신자영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애매했다.
“제가 예전에 단장님한테 말한 게 있어요. 연봉의 100배를 벌어주겠다고.”
2억의 100배.
2천억이다.
축구계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적료를 2000억을 넘은 선수는 없었다.
“순신아.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신자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강대범, 임청수가 웃고 있었다.
“여긴 다 미친 사람들뿐이네요.”
“원래 미친 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죠.”
신자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도 더더욱 미쳐보겠습니다!”
“푸하하하.”
그렇게 이순신의 이적 건은 마무리가 됐다.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됐죠?”
“더는 이탈이 없습니다. 순신이가 안 떠난다고 하니 안 간다네요.”
다들 현대 축구에 어울리지 않은 로맨티시스트 같았지만,
4부 리그 선수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선적으론 연봉이 적었다.
3부리그에서 제시한 조건은 내년 시즌에 승격해서 2부 리그로 올라가자는 것뿐. 수당은 훨씬 적었다.
이럴 바에는 이곳에서 1년 정도 더 있다가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다들 아직 젊기에 패기가 넘쳤다.
“오케이. 한국에서 열린 공개 테스트는 어떻게 됐어요?”
“5명 정도 뽑혔는데, 그중에 임단결이 있습니다.”
“누구요?”
“임단결이요. 바르샤 트리오 임단결…”
생각지도 못한 대어에 임청수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