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60화 (61/161)

60화. 사내 연애는 안 된다.

“신자영 아나운서는 꿈 FC에 전격 합류하기로 했다.”

구멍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신자영 보살님이 내년 시즌부터 꿈 FC 선수로 뛴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자랑 축구를 하는 것은 좀…”

“뭐 아예 없는 사례는 아니지. 이탈리아에서도 있었고…”

이순신 또래가 태어난 시기에 이탈리아 리그에 속한 페루자에는 미친 구단주 가우치가 있었다.

안태리가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골을 넣자 계약을 해지하고 폭언을 퍼부었다.

“샌드위치도 먹을 돈도 없는 거지새끼가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 그에겐 단 한 푼도 지급할 수 없다!”

망언을 넘어선 폭언.

하지만 그의 기행 중에 최고는 독일의 전 여자축구 선수 프린츠의 영입이었다.

장난인 줄 알았건만 결국,

피파가 나서서 영입 불허를 선언했다.

“그런데 신자영이 축구 선수도 아니었잖아? 단장님은 가우치를 뛰어넘으려고 하고 있어!”

“이 자식들아. 헛소리 그만해!”

계속 놔뒀다간 이야기가 끝이 없어질 거 같아서 강대범이 저지했다.

“잘 들어라. 신자영 씨는 앞으로 꿈 FC의 홍보모델과 에이전시 업무를 맡아주기로 했다.”

두둥!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리인가?

“질문 있는 사람?”

“홍보모델은 이해가 되는데 에이전시 업무도 맡는다고요?”

윤광섭이 물었다.

“그래. 너희들이 속한 리그의 수준은 낮지만, 난 엄연히 너희를 프로로서 대우해주고 있다. 그 말인즉슨 더 좋은 조건이 오면,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 언제든지 보내줄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맨입으로는 못 보내주지만.”

임청수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세찬 FC에 있을 때 계약문제로 고생을 하긴 했지.”

선수들은 많은 제의를 받았지만, 계약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몇몇 선수들은 K3 리그와 계약을 했지만, 몇 경기 뛰어보지 못하고 은퇴한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에이전시는 필요했다.

다만 그 에이전시가 구단 소속이라는 점과 신자영이 과연 에이전트로서 적합한지는 의문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이순신이 먼저 신자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이순신 선수. 꿈 FC와 함께 동행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이 미친 동행을 함께하다니, 정상은 아니시군요.”

“뭐 인마!”

이순신의 농담에 임청수가 발끈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50억으로 구단을 사는 일은 드물 테니까.

“안녕하십니까. 구멍이라 하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구멍이 손대신 머리를 내밀었다.

“아. 예.”

신자영이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구멍의 머리를 어루만져줬다.

“머릿결이 참 곱네요.”

“감사합니다.”

구멍은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

“오진성입니다.”

“김혁규입니다.”

“윤광섭입니다.”

“올라. 하비라고 해.”

“보경풍입니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서서 신자영과 악수를 하며 열렬히 환영해줬다.

그날 밤.

꿈 FC의 우승 축하 파티와 신자영의 환영회가 열렸다.

조문돈이 미친 듯이 토마토 파스타를 흡입했다.

“와 이거 내가 알던 스파게티 맞아?”

“형. 스파게티가 아니라 파스타.”

김혁규가 조문돈에게 핀잔을 줬다.

“야. 누굴 바보로 알아? 이탈리아에서나 파스타지, 스페인에선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하하하!”

조문돈의 당당함에 꿈 FC 선수들은 할 말을 잃고 외면했다.

“으음. 그간의 번뇌가 잊히는 맛이구려.”

구멍이 미오글로빈을 뚝뚝 떨구며 스테이크를 뜯었다.

“구멍아. 넌 오계 중에 지키는 것이 뭐냐? 술 먹고, 고기 먹고…”

보경풍이 물었다.

구멍은 먹던 스테이크를 내려놓았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금하셨지, 육식을 금하시지 않았소이다.”

‘불살생’이라 하여 다른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긴 했다.

“즉 내가 직접 도축한 건 아니며, 이 고기도 내년에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먹어두는 것이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오호.”

보경풍이 거의 넘어갈 때쯤, 하비가 한마디를 날렸다.

“구멍은 고자야. 한 번도 여자랑 해본 적이 없대. 오계 중에서 그거 하나 지키고 있을걸?”

“푸하하.”

주변에 있던 선수들이 크게 웃었다.

“야. 이 마구니 새끼야!”

구멍은 들고 있던 스테이크 뼈로 하비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해보자는 거야?”

하비 역시 맞섰다.

난장판이 됐지만, 두 사람은 깔끔하게 샴페인을 원샷하고 기분을 풀었다.

“너희 팀 너무 웃겨. 아니지. 이젠 우리 팀이지.”

이순신과 신자영이 먼발치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구경했다.

“누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제 연락할 때도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잖아요.”

“놀라게 해주려고 했지. 히힛.”

“그랬다면 성공. 놀라긴 했으니까.”

“사실 아나운서는 생명이 짧아. 은퇴할 때쯤 프리선언해서 재벌이나 운동선수랑 결혼하고 싶진 않더라고.”

“누나 혹시 비혼?”

“응. 나 결혼할 생각 없어.”

“아-”

이순신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농담인 줄도 모른 채.

신자영은 순진한 이순신을 놀리는 게 은근 재밌었다.

“꿈 FC 목표가 4년 안에 1부 리그 진입이라고 했지? 순신이 네가 볼 땐 가능할 거 같아?”

“물론이죠!”

“그럼 만약 중간에 네가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면?”

“…”

이순신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절 데리고 갈 구단은 없을걸요? 제 바이아웃은 2000억이니까.”

바이아웃은 선수와 협상할 수 있는 권리였다.

구단에 해당 금액만 지불하면 바로 선수와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이순신이 과거에 임청수에게 제시한 금액이기도 했다.

“역시 넌 포부가 대단해. 하지만 레알이나 바르샤나 뮌헨 같은 명문클럽에서 오퍼가 온다면?”

“왜 자꾸 날 보내려고 해요~”

이순신은 순간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양쪽 모두 좋은 거 아니야? 너는 명문 팀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이적하고, 꿈 FC는 많은 이적료를 챙겨서 구단이 더 커질 수 있고.”

“그건 1부 리그 간 다음에 생각해보죠. 그전까지 전 여기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이순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이 눈빛이야.’

신자영은 씨익 웃었다.

이 눈빛에 이끌려서 기꺼이 국내의 유명 에이전트의 입사를 포기하고 꿈 FC를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네.”

신자영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이순신의 눈빛이었다.

“그치.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 건배할까?”

신자영이 잔을 내밀었다.

짠-

두 개의 잔이 부딪쳐야 하는데 3개의 잔이 부딪쳤다.

얼굴이 빨개진 임청수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났다.

“순신아. 자영아.”

그는 취기가 약간 오른 상태였다.

“사내 연애는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이순신은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슨…”

“물론이죠. 단장님. 원래 스포츠 물이나 오피스 물에서는 연애 코드 들어가면 망하는 거 잘 알거든요!”

신자영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이순신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가슴이 약간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꿈FC! 내년에도 열심히 달려봅시다! 파이팅!”

“파이팅!”

꿈FC의 작은 성공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의 시작일 뿐이었다.

이순신도 충무공도 결코 여기서 만족할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눈은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

4부 리그 개막까지는 대략 몇 개월 정도가 남았다.

그사이에 꿈FC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장 먼저 연고지를 이전했다.

이예스까스를 떠나 엘비소로 갔다.

“우리 쪽으로 구단을 옮겨 주시오!”

엘비소측은 꿈FC의 가능성과 상품성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구단주님 생각은 어떠세요?”

“확실히 그쪽에서 제시한 조건들이나 훈련장은 훨씬 좋네요.”

강대범, 임청수, 이에로는 회의 끝에 연고지를 이전하기로 결심했다.

“왠지 넥스트 레벨로 올라간 기분인데?”

선수들도 새로 옮긴 홈구장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숙소도 좀 더 넓어졌다.

“무엇보다 이제 마드리드 경기는 챙겨볼 수 있어서 좋겠네.”

엘비소는 마드리드에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매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드리드 스카우터들도 자주 찾아오겠네요.”

신자영이 당돌하게 말했다.

“에이- 설마요.”

임청수는 겸손을 떨면서 입은 웃고 있었다.

내심 기대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또 자영 누나랑 경기 보러 가긴 힘들겠지? 아마 가도 다 같이 가겠지.’

그 순간 이순신의 눈에는 혁규가 보였다.

“누나. 나중에 또 레알 경기 보러 같이 가죠. 혁규도 레알 팬이에요.”

“그래? 그럼 담에 시간 맞춰서 셋이서 같이 가자.”

신자영이 눈웃음을 지었다.

이순신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얼마 후 혁규가 물었다.

“순신아. 난 바르샤 팬인데 웬 레알?”

“혁규야. 우린 친구잖아.”

이순신이 눈빛을 보냈다.

남자들끼린 통하는 게 있었다.

“알았어. 인마. 엘 클라시코만 아니면 돼. 괜히 레알 응원석에서 바르샤 응원하다가 나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알았다.”

조기 축구회 때부터 이어온 우정은 굳건했다.

한편, 구단 프론트도 바쁘게 움직였다.

“신자영 씨가 홍보 모델로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뮤튜브 조회수가 많이 늘었어요!”

임청수가 입이 귀에 걸렸다.

“홍모 모델만 잘하는 게 아닙니다. 벌써 광고 유치만 3개에요. 기존에 은행 스폰은 연장하기로 결정됐고요. 협상가로서의 기질도 뛰어나요.”

“팬도 많이 늘었습니다. 선수들의 사기도 많이 올랐고요.”

이 모든 게 이순신이 만든 파급효과라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선수도 선발을 해야겠죠? 특히 몇몇 선수들이 이적을 할 예정이니까요.”

5부 리그 득점 2위인 고미는 3부 리그 팀에 스카웃됐다.

“떠나긴 싫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겠지?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름 선수들과 좋게 지내서 매우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이것이 프로였다.

하지만 이런 해피엔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7부 리그부터 4부 리그까지 올라오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4부에서 살아남기에는 다소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은 방출 통보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꿈 FC는 한국인팀.

군대를 피할 수 없었다.

세찬 FC의 남은 선수는 12명뿐이었다.

스쿼드가 아슬아슬했다.

결국, 인원을 대량 보강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추가 선발을 해야겠죠?”

“일단 한국에 공개 테스트를 진행하고, 스페인에서도 진행해 봅시다.”

“감독님이 보실 때 젤 취약한 포지션이 어디에요?”

“수비 쪽보단 공격 쪽이 아무래도 불안하군요. 오진성은 슬럼프고, 김혁규와 윤광섭은 결정력이 약합니다.”

“음-”

임청수는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선수를 한 번 만나봐야겠네요. 그래도 재능만큼은 최고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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