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56화 (57/161)

56화. 교체당하는 이순신

“아, 오늘 축구 경기하는 날이지.”

지금 막 리모컨으로 TV를 튼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가 브라질을 이기고 있다고?”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사실이었다.

“세상에…”

지켜보던 꿈FC도 역전 골이 터지자 깜짝 놀랐다.

“고미. 너 한국이 한 골도 못 넣는다에 걸었지? 이제 어떡할래?”

“…”

고미는 아가리 묵념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한국이 수비만 하다가 두 골 정도 먹히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스페인도 아니고 한국이 브라질을 상대로 두 골이나 넣다니.

“최고다. 이순신! 대한민국!”

구멍이 두 손을 내밀며 한국 팀을 응원했다.

“최고당. 이순쉰! 대한뮌국!”

현명하고 빠른 태세 전환!

그는 이순신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게 참으로 영광이었다.

더불어 꿈 FC의 한국 선수들의 심장도 뛰었다.

‘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순신이처럼 태극 마크를 달아보는 날이 오겠지?’

이순신은 그렇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갔다.

지켜보는 이들도 이러한데 현장의 분위기는 더더욱 최고였다.

“한국 팀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습니다.”

“안태리 감독의 전술이 제대로 적중했어요.”

“이제 한국산 침대의 편안함을 브라질에게 선물해 줘야 합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거든요!”

다급해진 브라질은 끊임없이 몰아쳤다.

“아, 브라질 선수들이 한국산 침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거센 공격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야수를 다루는 건 침착한 야수보다 상대하기 쉬웠다.

‘자존심이 어지간히 상했나 보지?’

“안드라지 선수가 크로스를 올립니다! 아 조금 높았어요.”

“파울루 선수. 전방에서 고립되고 있습니다.”

“헤이니 선수. 돌파를 시도합니다. 김대한 선수가 그 전에 커트합니다.”

무리한 개인기 시도와 잦은 패스 미스, 그저 빠르기만 한 공격을 보고 이순신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

한국 팀은 강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이렇게 빡세!”

장승빈도 브라질의 수비를 뚫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순신 역시 중거리 슛을 날릴 타이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파울루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치고 들어옵니다!”

이순신이 파울루를 막아섰다.

찰까? 말까?

현란한 발놀림으로 이순신을 도발했다.

이순신은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파울루가 슬쩍 왼쪽을 봤다.

이순신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파울루 선수. 오른쪽으로 돌파를 시도합니다.”

파울루는 시선으로 상대를 속인 후 반대편으로 빠져나가서 슛을 할 생각이었다.

“파울루 슛!”

“아! 안타깝게도 골대를 벗어납니다.”

“젠장!”

파울루가 아까운지 잔디를 걷어찼다.

“뭘 그렇게 아까워해? 너도 알고 있었잖아. 확률이 너무 낮았다는 거.”

이순신이 따봉과 함께 묵직한 팩트 폭행도 같이 날려 줬다.

파울루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저 녀석의 말도 틀린 건 아니지.”

이순신을 제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아까운 슛 기회만 날린 것이다.

오른쪽에서 때리는 슈팅 위치는 좋지 않았다.

좁은 골문에 골을 넣기 위해선 강력한 슈팅뿐.

그 결과 평소답지 않게 발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공이 붕 뜬 것뿐이었다.

한국 팀의 골킥이 이어졌다.

‘한 골 정도는 더 넣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미드필더에서 의미 없는 패스를 주고받았다.

별다른 전개가 없자 주심이 시계를 봤다.

“삐이이익-”

“전반전이 끝납니다. 한국 대 브라질. 한국이 2:1로 앞선 채 마무리됩니다. 잠시 후 후반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잘했다!”

이보다 더 큰 칭찬은 없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 봐야 잘한 건 잘한 것일 뿐이었다.

선수들의 얼굴은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상대 팀의 템포가 굉장히 빠르다. 절대로 말려들면 안 돼. 오히려 조급해지면 실수가 나올 테니 그때를 노린다. 알겠지?”

“네. 감독님!”

“이순신.”

“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모두의 시선이 이순신에게 집중됐다.

주장으로서 이순신은 대답해야만 했다.

“물론입니다.”

“좋아!”

“오늘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보자!”

한국 팀이 분위기가 좋은 반면, 브라질 라커룸은 완전히 우울했다.

“너희가 누구냐?”

“브라질 대표팀입니다.”

“아니다. 브라질은 이렇게 축구를 하지 않는다.”

안드라지, 파울루, 헤이니가 고개를 들었다.

“브라질에서 축구를 잘하는 건 곧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브라질 삼총사가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과 다르게 일찍 해외로 진출하고 겉멋만 들어 버렸지. 즐기는 축구는 어느새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수단이 되었다. 축구는 우리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지만, 축구공은 우리가 젤 먼저 사귄 친구다.”

혈기가 왕성한 브라질 친구들이 숙연해졌다.

그리고 각자 회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게 브라질의 축구다.”

브라질 선수들의 눈빛이 변한 채 경기장에 들어섰다.

헤이니가 물었다.

“파울루”

“왜?”

“우리 바스쿠 다 가마에서 함께 뛰었던 거 기억나?”

“언제 적 이야기야.”

파울루는 중간에 팀을 옮긴 헤이니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맞아. 기억도 안 나. 그런데 나 감독 말 듣고 조금 감동했어. 저기 저 한국 수비수 보이지?”

“저 녀석이 왜?”

“알아보니 나처럼 포지션을 변경했던 녀석이더라. 물론 나랑은 반대지만.”

헤이니는 어릴 때 센터백으로 뛰었지만, 지금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는 중이었다.

“그게 왜?”

“재밌잖아. 반대로 가는 거.”

“그럼 조금 더 분발해. 저 녀석은 벌써 1골 1도움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보면 네 패배야.”

“아직 후반전이 남았어. 그러니 협력하자. 좀 더 팀을 생각하자고. 앞으로 전설이 될 우리가 여기서 발목 잡히면 쪽팔리잖아.”

“흥. 너나 내 발목을 잡지 마라!”

파울루는 묘하게 헤이니 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 뛰어난 재능, 운, 무엇보다 빅클럽의 관심으로 헤이니와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에게 훈계를 한다?

하지만 파울루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잘 아는 선수였다.

‘저 녀석들. 라커룸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왔기에 침착해진 거지?’

이순신은 더운 열기 속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우려한 대로 파울루와 헤이니의 콤비 플레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파울루와 헤이니가 전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플레이보다는 욕심을 버리고 팀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어요!”

전반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브라질이 몰아쳤다.

한국 팀은 막기에 급급했다.

‘브라질 3총사를 막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다.’

이순신이 공을 김대한에게 넘겼다.

“MTS. 너네 이대로 발릴 거야?”

MTS.

수원 유스팀이 만든 성공의 산물.

약간의 자존심만 건드려 준다면 이들은 폭발할 것이고, 브라질로 넘어간 분위기를 되찾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뭔 소리야! 경기 아직 안 끝났거든?”

제일 먼저 발끈한 건 강현문이었다.

중앙에서 번번이 브라질 삼총사에게 뚫려서 수치플을 계속 당했다.

그나마 장승빈이 골을 넣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MTS란 이름은 허세 가득한 별명이 될 뻔했다.

김대한도 좀 더 민첩하게 움직였다.

“김대한 선수. 안드라지를 태클로 막아냅니다!”

다행히 두 사람이 힘을 내니 전방에 있는 장승빈에게도 기회가 왔다.

“장승빈! 달립니다!”

“브라질 선수 막아섭니다만…그걸 뚫어냅니다?”

비교적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장승빈은 튼튼한 몸을 가졌다.

[쇄빙선 효과가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주장으로서 공유한 스킬은 ‘쇄빙선’이었다.

조금이라도 장승빈의 돌파력을 올려 주기 위해서 공유한 스킬이었다.

‘쇄빙선이 꽤 자주 발동한다는 건 피지컬로 안 밀린다는 건데…대단하네. 장승빈.’

장승빈이 브라질 선수를 제치고 슛을 날렸다.

골키퍼가 공을 쳐 냈다.

하프라인까지 날아간 공은 이순신이 커트했다.

그 순간이었다.

엄청난 태클이 자신을 향해서 들어왔다.

전직 수비수 출신인 헤이니의 태클이었다.

[거북선이 발동합니다.]

이순신과 헤이니가 공을 두고 발등과 발바닥이 부딪혔다.

“아으악!”

헤이니가 발목을 잡고 뒹굴었다.

이순신이 공을 밖으로 뺐다.

“괜찮아?”

이순신이 손을 내밀었다.

헤이니는 이런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겁에 질려 있었다.

‘흐음. 어쩐다…’

헤이니는 얼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부상을 참고 뛰려는 모양이었다.

현재 소속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에, 이런 실전 경험이 그에게는 중요했다.

이순신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했다.

“아, 헤이니 선수 다행히 일어났습니다.”

“고맙다.”

“왜 그랬어? 내 다리를 부술 각오로 들어오던데?”

헤이니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담부터 그러지 마. 그러다 진짜 다쳐.”

이순신의 압도적인 기운에 헤이니가 침을 꼴깍 삼켰다.

‘독일 리그에서도 느껴 보지 못한 위압감을 5부 리그 선수가 풍긴다고?’

브라질 선수가 이순신에게 드로잉을 건넸다.

경기는 약간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MTS 약발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후반 10분이 지날 무렵,

한국 팀은 체력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소모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순신은 이기고 싶었다.

현재 남아 있는 스팀 팩은 2개.

‘브라질을 이긴 경험을 갖게 되면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세컨드 윈드 더블을 발동하겠습니까?]

‘남은 시간 저 세 명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순신은 결심을 굳힌 그 순간,

“한국 팀에서 교체가 있습니다.”

“아, 이순신 선수를 교체한다고요?”

중계진이 놀랐다.

“왜? 잘하고 있는 나를?”

이순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얼떨떨한 순간이었다.

단 한 사람.

이 교체를 지시한 안태리 감독을 제외하고 말이다.

***

“헤이니 선수 슛!”

“골입니다!”

“브라질이 2:2로 동점을 만듭니다.”

“안드라지 선수의 패스.”

“파울루 선수가 가볍게 밀어 넣습니다.”

“한국 팀 브라질에게 역전을 허용합니다.”

삐이이익-

“한국이 2:3으로 역전패를 허용합니다.”

“젠장!”

이순신이 팀의 패배를 보고 있자니 빡침이 절로 올라왔다.

“안태리 감독의 용병술이 매우 아깝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잘하고 있는 이순신 선수를 교체한 걸까요?”

오히려 이순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브라질 삼총사는 경기가 끝나고 이순신에게로 달려왔다.

“유니폼 내놔.”

이순신은 유니폼을 벗었다.

브라질 삼총사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고마워요!”

이순신은 관중석에 있는 꼬마에게 던졌다.

“아씨!”

브라질 선수들의 표정에는 실망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때 헤이니도 자신의 유니폼을 관중석으로 던졌다.

그리고서는 이순신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중에 같은 팀에서 한 번 뛰어 봤으면 좋겠어.”

“알았다.”

브라질의 유망주들이 이순신을 주목했다.

그것도 동료로!

잠시 뒤,

안태리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태리 감독님. 도대체 왜 이순신 선수를 교체하신 겁니까?”

첫 질문부터 좀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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