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호랑후 발동!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승빈 선수 PK를 차기 위해 공을 내려놓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봅니다.”
장승빈과 브라질 골키퍼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치열한 심리전이 펼쳤다.
“장승빈 선수. 달려갑니다!”
“슛!”
“아-브라질 골키퍼가 왼쪽으로 정확히 몸을 날리며 막아냅니다!”
한국 팀과 브라질 팀 선수들이 냅다 달렸다!
이순신은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혹시라도 흘러나온 공을 받으려고 대기했다.
“다시 한국 팀의 슛!”
“골대를 맞고 골라인 밖으로 벗어납니다!”
안태리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지난날의 악몽이 떠올랐다.
오래전 첫 월드컵 16강전에서 했던 실수.
그렇기에 그는 선수들을 다독일 수 있었다.
“괜찮아! 빨리 잊고 다시 넣으면 돼!”
한국 팀이 복귀하고 있을 때 장승빈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승빈! 고개 들어. 너 죄인 아니야!”
[호랑후를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장승빈에게 고함쳤다.
마치 저승사자가 ‘귀인’한테 외치는 것 같았다.
[장승빈이 자신감을 되찾았습니다.]
“미안해. 대신 다음엔 꼭 넣을게!”
장승빈이 눈을 부릅뜨며 의지를 불태웠다.
어쨌든 저 브라질에게 거의 골을 넣을 뻔하지 않았던가?
19살의 패기가 활활 불타올랐다.
브라질 골키퍼는 공을 멀리 찼다.
삼바의 반격이 시작됐다!
한국 팀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막아!”
“같이 붙어 줘!”
“자신감 있게 치고 나가!”
한국 팀의 의지는 모래 바람을 뚫었지만,
브라질의 막강함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자식들은 왜 점점 빨라지지?”
강현묵의 의문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어쩌면 현재 상황을 가장 잘 파악했다.
이집트의 습도나 온도는 사실상 브라질에게는 홈이나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팀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풀렸고,
한국 팀은 초반 러시를 실패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와. 이거 템포 미쳤는데?’
이순신조차도 당황스러웠다.
브라질의 축구는 유연함 그 자체였다.
마치 옛날의 광고처럼 축구를 하는 게 아니라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그나마 안드라지가 슛을 아끼고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야…’
하지만 그의 드리블, 속도, 패스는 이미 한국 선수들이 어찌해 볼 수준이 아니었다.
“또 뚫렸습니다!”
“한국 팀 안드라지 선수를 막지 못하고 있어요.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이순신이 언성을 사용하여 수비진을 조율했다.
파울루나 헤이니 에게 가는 최종 패스를 차단해서 슈팅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격언이 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브라질의 공격이 드디어 성과를 보였다.
공이 허공을 가르며 한국 팀의 골망을 갈랐다.
“아. 한국팀. 브라질에게 선취골을 내줬습니다.”
브라질에는 안드라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안드라지의 패스를 받은 파울루 선수가 너무도 쉽게 골을 넣었습니다.”
이순신의 키를 넘기는 패스.
뒤쪽에 있는 동료를 믿었지만,
그는 슬라이딩 태클로 막고자 했다.
“노노. 그런 태클에는 당하지 않아.”
파울루는 웃으며 태클을 가볍게 제치고 깔끔하게 슛을 날렸다.
[방패연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이순신은 고민하지 않고 거절했다.
방패연을 썼다간 오히려 같은 편의 머리를 깨 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파울루가 춤을 추면서 세레머니를 즐기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들 그래? 브라질한테 한 골도 안 먹힐 줄 알았어?”
이순신이 팀을 다독였다.
[배수의 진이 발동했습니다.]
[팀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순신도 묘하게 흥분됐다.
‘브라질은 브라질이라 이거지. 나도 전력으로 가볼까?’
[세컨드 윈드 더블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이순신은 ‘더블’을 사용하려다가 재빨리 멈췄다.
‘어차피 브라질은 친선 경기 상대일 뿐, 돌아가서 리그를 치르는 소속팀에 민폐를 끼칠 수 없지.’
이순신 자신의 스킬들을 살폈다.
그동안 어려운 경기를 펼치면서 얻은 스킬이 ‘더블’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초반의 격전으로 이순신은 세컨드 윈드에 들어선 상황이었다.
[체력이 느리게 감소합니다.]
[능력치가 일부 상승합니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가지고 있는 스킬을 잘 활용하면 해볼 만했다.
‘두 번째 골은 없다. 브라질 녀석들아.’
킥오프.
장승빈을 필두로 공격이 시작했다.
꽤 무난한 공격.
그렇기에 두터운 수비벽과 거미줄 같은 미드필드진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이순신은 살짝 답답했다.
‘녀석들을 뚫으려면 허를 찔러야 해.’
이순신이 슬쩍 둘러보더니 자신의 자리를 이탈했다.
“승빈!”
이순신이 하프라인을 넘었다!
장승빈은 이순신이 예전에 넣은 초장거리 슛을 떠올렸다.
‘그때는 뽀록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위협은 되겠지.’
장승빈은 이순신에게 패스했다.
그런데 브라질이 이순신한테는 붙지 않았다.
‘무시하나? 그럼 나야 땡큐고.’
뻐어엉!
[천자포를 발동했습니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이순신이 찬 슛이 빠르게 골대로 향했다.
“뭐야? 이 미친 속도는?”
브라질 골키퍼가 당황했다!
“하지만 못 막을 공은 아니지.”
그는 몸을 날려 펀칭으로 공을 쳐 냈다.
“이순신 선수의 엄청난 중거리 슛! 그걸 또 막아내는 브라질 골키퍼! 아 장승빈이 따라갑니다.”
“장승빈 슛!”
공을 브라질 선수의 몸에 맞고 골라인을 나갔다.
“한국 팀의 코너킥이 이어집니다!”
브라질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마크했다.
수비수들은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 있는 이순신을 경계했다.
“저 녀석 슈팅력이 좋으니까 잘 막아!”
“하아.하아.”
이순신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극심한 피로감.
아직 반동 효과가 조금 남았다.
“슈팅에다가 전력 질주를 했으니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도 될 거야. 오히려 한국의 공격수를 조심하자. 돌파력이 좋아.”
장승빈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승빈아. 좀 더 위치 좀 잘 잡아 봐!”
코너킥을 준비하는 한국 팀의 지시에 장승빈이 위치를 조율했다.
브라질 수비수가 둘이나 붙었다.
“한국 팀이 코너킥을 올렸습니다!”
선수들이 공을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헤딩을 하기에는 약간 높은 공.
“좋았어!”
장승빈은 뛰는 척을 하다가 다시 무릎을 굽혔다.
“뭐야?”
브라질 수비수들이 당황했다.
골키퍼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비수들이 뛰자 자연히 눈이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차!”
브라질 골키퍼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순간의 찰나.
한국 팀도 브라질 선수도 멈춰 있었다.
그제야 그는 안심했다.
“코너킥 기회를 이렇게 허망하게 날리다니. 쯧쯧.”
그 순간이었다.
골키퍼의 방심으로 시간의 균열이 깨졌다.
모두가 멈춰 있는데 단 한 사람.
이순신만이 달려들었다.
“어?”
순식간에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것이 이순신의 황자포를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순신 선수 다이빙 헤딩슛!”
“고오오오올!”
“브라질 골키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머리에 맞은 공이 골대를 철렁이게 만들었다.
꿈 FC도, 안태리도, 한국 축구를 응원했던 축구팬들의 가슴도 철렁했다.
“할 수 있다!”
이순신이 공을 꺼내서 하늘 높이 찼다!
펑! 펑! 펑!
기가 막힌 타이밍에 카이로 어디선가 폭죽이 터졌다.
[멋진 세레머니로 명성이 상승합니다.]
[히든 보상 : 브라질을 상대로 골을 넣었습니다.
[선수들의 사기가 상승합니다.]
이순신이 웃었다.
눈에는 광기가 담겼다.
주장 완장 효과로 선수들도 이제는 승리에 대한 열망이 같이 상승했다.
“진지하게 하자.”
안드라지가 제일 먼저 눈빛이 변했다.
운이라고 하기엔 완벽하게 당했다.
그렇기에 브라질이 강했던 것이다.
오만함을 버린 브라질은 한층 더 강해졌다.
즐기는 축구도 분명 중요하지만, 이기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브라질이었다.
‘확실히 막강해. 하지만 왜지? 왜 약점이 보이지?’
안드라지는 분명히 빠르고 뛰어난 공격수였다.
현재는 슬럼프 때문에 뛰어난 능력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안드라지 선수의 패스! 아 또 이순신이 막아냅니다!”
땅으로 가는 패스든, 공중으로 가는 패스든 상관없었다.
최종 목적지가 명확하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약점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
안드라지 자신의 열등감이 만들어 낸 버릇.
지나치게 완벽한 상황을 추구했다.
‘골을 넣지 못하면, 어시스트라도 해야 해.’
그가 브라질이라는 화려한 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건 공격 포인트였다.
오히려 안드라지가 아닌 뒤쪽에서 뿌려 주는 헤이니의 공격이 더 위협적이었다.
‘저 녀석은 어쩐다… 섣불리 나설 수도 없고…’
파울루를 두고 나간다면 필시 뒷공간이 뚫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간간이 공격이 안 풀린다 싶을 땐 중거리 슛을 날릴 정도로 킥력도 좋았다.
[방패연을 사용했습니다.]
이순신이 살짝씩 공을 건드리면서 커트했다.
‘너구나. 번번이 내 공을 막는 게.’
헤이니는 직접 돌파를 시도했다.
“이순신 선수와 헤이니 선수가 맞붙습니다!”
헤이니는 브라질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였지만 그 재능은 엄청난 선수였다.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레알마드리에서 영입했다.
하지만 워낙 스쿼드가 빵빵해서 그의 자리는 없었다.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현재는 독일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도르트문트에 임대간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자리를 확실하게 잡지 못했다는 것.
경험을 쌓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 올림픽을 통해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어디 레알산 드리블을 좀 볼까?’
툭.
헤이니는 자신감 있게 드리블을 쳤으나 이순신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순신은 공을 전방으로 걷어 냈다.
“뭐야?”
“뭐긴 뭐야. 뺏긴 거지.”
이순신이 유창한 스페인어를 하자 헤이니는 깜짝 놀랐다.
“너 뭐야? 어디서 뛰길래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거야?”
“스페인.”
“어느 팀?”
“꿈 FC”
“뭐?”
헤이니는 예전에 TV를 틀다가 본 적이 있다.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6부 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그에게 꿈 FC는 조기 축구회 수준일 뿐이니까.
그렇게 무시했던 팀의 선수가 지금 같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너 공을 좀 찰 줄 아는 거 같은데 왜 하위 리그에서 머무는 거야?”
“얼마 전까지 난 팀이 없었거든.”
“뭐? 거짓말!”
헤이니는 이순신의 말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이순신은 헤이니 에게 오는 공을 걷어 냈다.
“스피드라면 절대로 안 져!”
“응. 나도 안 져!”
이순신이 한발 먼저 공을 차지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브라질 골문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순신 선수. 질주합니다!”
이순신은 달리고 또 달렸다.
측면 수비수와 훌륭한 스위칭이었다.
저 건너편에서는 장승빈이 뛰어오고 있었다.
“승빈아. 이번엔 넣어라!”
장승빈은 날아오는 공을 그대로 차서 골대에 꽂아 넣었다!
한국이 브라질한테 역전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