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54화 (55/161)

54화. 진화한 비격진천뢰

“오늘 경기 수고했다. 푹 쉬고 내일 경기 잘 준비하자.”

“넵!”

선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아직 승리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일 경기를 준비해야 했다.

친선 경기는 말 그대로 팀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 잡은 일정.

단 이틀 동안 치러지는 토너먼트!

얼마나 빨리 체력을 회복하느냐가 변수였다.

관광? 그런 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한 이순신은 밥을 먹고 샤워를 끝마쳤다.

다른 선수들이 SNS로 자신들의 반응을 살폈다.

이순신은 아예 핸드폰을 껐다.

오히려 일찍 잠자리에 들 예정이었다.

“아, 피곤타.”

밤 10시. 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럴까?

쉽사리 잠이 오진 않았다.

내일은 축구의 상징 그 자체.

브라질과 겨뤄야 하는 날이었으니까.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겠습니까?]

이순신은 순간 멈칫했다.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고 나면, 피로도가 꽤 쌓였다.

경기 일수가 많이 남았으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지만, 다음날 경기라면 밤을 꼬박 새우고 경기를 해야 하는 꼴이었다.

컨디션은 당연히 망가질 테고,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정보와 분석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알게 될 테니까.’

이순신은 대표팀의 전력 분석관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경기를 회상했다.

‘이집트 녀석들. 강했어.’

태극 마크를 달고 뛴 첫 국제 대회의 무게감이었을까?

100%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는 패배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만큼 90분간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축구였다.

‘특히 올림픽 같은 단기 토너먼트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올림픽 대회까지는 앞으로 1년.

이순신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단 하나.

경험이었다.

모하메드의 경우 수준 높은 리그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고 더 강해질 것이다.

한국 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소속팀이 좀 아쉽긴 해…’

선수가 매 경기에 출전한다는 가정하에,

환경이란 건 그만큼 중요했다.

막상 대표팀에 뽑히고, 자신의 기량이 통한다는 걸 알게 되니 욕심이 생겼다.

‘1년 후에도 과연 그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마도 본인이 대표팀에 선발되는 걸 알게 됐다면, 꿈 FC가 아닌 K리그를 고르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하.’

이순신은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 전까지 소속팀도 없던 내가 진짜 배부른 소리 하네. 5부면 어떻고 1부 리그면 어때? 나에게는 최고의 팀원들이 있는데.’

매우 빠르게 무언가 이순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까 보상 확인을 안 해봤네.”

이순신은 경기에서 승리한 후 받은 보상을 살펴보았다.

[믿을 수 있는 동료]

[같은 소속팀에서 뛰는 선수와 함께 성장하며 대표팀에 선발됩니다.]

[신뢰 이상 동료한테 가능]

[선정되면 한 달 이상 교체 불가능/ 스킬 1가지 공유 가능]

[함께 대표팀에 선발될 경우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뭐?”

이순신은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거면 한국 축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축구는 결코,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동료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혁규가 천지현황포를 쓸 수 있게 된다면 돌파 후에 골 결정력이 더 좋아질 거야.’

‘구멍이나 문돈이 형이 방패연을 사용하게 되면, 수비력이 엄청 강해질 테고,’

‘진성이가 비격진천뢰를 사용한다면, 세트 피스가 더더욱 정교해질 수 있어!’

‘경풍이 형한테는 줄 만한 스킬이라 하면 언성 정도 되려나?’

하지만 이 중에서 딱 1명만 고르라고 한다면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 했다.

[허준이 이제 슬슬 자라고 권장합니다.]

‘큰일이네. 잠이 안 오네.’

[허준이 동의보감을 읊기 시작합니다.]

스르르.

뜻을 알지 못하는 말이 난무하자 이순신의 눈이 감겼다.

***

선수들은 회의실에 모였다.

‘푹 자서 그런가? 컨디션이 엄청 좋은데?’

이순신은 동의보감 덕분에 숙면했다.

“뭐 브라질이 호주를 5:0으로 이기고 올라왔다. 우리 전력이 호주랑 비슷하다고 볼 때 우리도 5:0으로 발릴까?”

“아닙니다!”

우렁찬 대답과는 다르게 선수들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얼굴에 너네들 쫄았다고 다 나와 있어. 이 녀석들아!”

안태리가 너스레를 떨었다.

덕분에 긴장된 분위기는 다소 완화됐다.

“브라질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똑같은 사람이다.”

경기 브리핑이 시작됐다.

요주의 인물은 영국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안드라지였다.

이적료만 무려 744억 원.

현재 한국 팀 선수들의 몸값을 전부 다 합쳐도 안드라지 에게 턱없이 부족했다.

윙 포워드와 스트라이커를 오가는 공격수이자 골 결정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

“그나마 안드라지가 요즘 부침을 겪고 있다는 게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다.”

호주를 5:0으로 이길 때 그의 득점은 없었다.

하지만 어시스트는 무려 4개.

‘연계가 뛰어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약간의 슬럼프로 골문 앞에서 주저하고 있군.’

실제로 안드라지는 슛을 두 번 정도 실패하고 나니, 패스가 부쩍 늘었다.

“문제는 안드라지가 이렇게 슬럼프를 겪어도, 특급 공격수 파울루가 옆에 있고, 헤이니라는 특급 유망주가 바로 뒤를 받쳐 주고 있다.”

둘 다 최고의 무대에서 뛰고 있는 유망주였다.

특히 헤이니는 유일한 10대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야심 차게 영입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현재는 도르트문트에 임대를 간 19살 소년이지만, 잠재력은 브라질 내에서도 현재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수비수들.”

안태리가 이순신을 쳐다봤다.

“얘네들 막을 수 있겠냐?”

선수들이 대부분 사색이 됐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막을 수 있습니다.”

“???”

“순신이 형.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강현문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막지 못하면?”

“제가 넣어서라도 이겨 보겠습니다.”

선수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미친 소리인가?

브라질한테 골을 넣어서 이기겠다고?

이순신이 능력이 있다는 건 선수들도 이제는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만방자함의 끝을 모르니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순신. 오늘 경기에서 주장을 맡아라.”

주장이란 말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기존의 주장을 맡고 있던 선수는 얼굴이 썩었다.

“감독님. 전…”

“왜? 쫄?”

안태리가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을 쓰면서 이순신을 살살 자극시켰다.

“아씨! 브라질이 뭐라고! 이번 경기에서 기필코 저도 골을 넣겠습니다!”

장승빈이 패기롭게 외쳤다.

“하겠습니다!”

이순신이 응원에 힘입어 안태리가 넘겨준 주장 완장을 받았다.

“우리가 5부 리거 명령을 들을 짬밥이냐?”

“내 말이.”

선수들이 수군거리는 걸 이순신도 잘 알고 있었다.

쾅!

이순신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5부 리거가 뭐?”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전장에 나가려면 우선 아군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무공이 말합니다.]

이순신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K리그? 내가 안 간 거야. 우물 안 개구리 되기 싫어서.”

“뭐 이 새끼야?”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경기 시간은 앞으로 8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

현지 시간으로 저녁 7시.

이집트는 호주를 3:0으로 이겼다.

이제 한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준비 중이었다.

이순신은 주장 완장을 찬 채 경기장에 입장했다.

“안태리 감독이 오늘 이순신 선수에게 주장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만큼 신뢰를 한다는 뜻이겠죠?”

“그래도 그렇지…과연 스페인 5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의 말을 잘 들을지 의문이군요.”

해설들의 망언이 어디 하루 이틀이겠는가?

하지만 축구팬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스페인이라고 해도 5부 리그면 K4,5 수준.

프로가 세미프로의 지시를 따른다?

고등학생이 중학생의 지시를 따르는 꼴이었다.

‘이순신. 증명해라. 네가 23세 팀에서 주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을 이겨내야지만, 넌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

안태리는 유심히 이순신을 지켜보기로 했다.

삐이이익-

마침내 경기가 시작됐다.

“브라질의 선축으로 공격이 시작됩니다. 안드라지. 툭툭 치고 나옵니다.”

브라질의 공격수들은 공을 돌렸다.

그러면서 한국 팀을 파악했다.

“이 새끼들. 쫄았네.”

파울루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강현문을 제껴버렸다!

“파울루 선수의 엄청난 개인기. 측면에서 안드라지와 헤이니가 달립니다!”

고작 3명이서?

이순신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공을 받은 안드라지한테 측면도 뚫렸다.

이순신답지 않게 안드라지한테 달려들었다.

안드라지가 상체를 흔들어 재꼈다.

이순신은 그의 어깨를 쫓아가기 바빴다.

“너네는 몇 대 0으로 이겨 줄까?”

안드라지는 오른쪽으로 툭 하고 빠져나왔다.

[방패연이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매우 깔끔한 태클로 안드라지의 공을 빼앗았다.

“어?”

오히려 안드라지가 당황했다.

“작전 성공.”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성공시킨 이 한 번의 커트는 초반에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부쉈다.

“가자!”

이순신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풍겼다.

절대 5부 리거가 풍길 수 있는 아우라가 아니었다!

[언성을 사용했습니다.]

‘5부 리거면 어때? 지금은 저 녀석이 주장이야!’

‘어느 경기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 아니야?’

‘어디 네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봐.’

한국 팀이 각성했다.

수비로 일관할 것이라는 브라질의 전략에 허점을 뚫었다.

이순신의 패스가 미드필더에게 전달됐다.

‘어디로 줘야 하지?’

그 순간이었다.

미드필더가 두리번거릴 때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이순신이었다.

한 나라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이라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안 줄 수 없는 위치.

이순신이 공을 받아서 질주했다.

“브라질 선수들 빠르게 쫓아옵니다!”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시위를 당긴 화살처럼 선수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3명에게 포위당했다.

1초.

잠시라도 멍을 때린다면 공을 뺏기기에 충분한 시간.

이순신은 상대가 들어올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몸을 틀었다.

“이순신 선수 탈압박! 브라질 선수 세 명을 잘 묶어 두고 있습니다.”

“형!”

이순신은 등 뒤에서 장승빈의 목소리를 들었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슛 성공률 0%]

이순신은 어젯밤 ‘믿을 수 있는 동료’ 사용법을 떠올리다가 오진성이 슛 파워가 약해서 패스나 크로스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했습니다.]

파워는 최대한 적게, 회전은 최대한 많이.

마치 당구의 비껴 치기처럼 공을 찼다.

떼구르르.

굴러간 공은 정확히 장승빈의 왼발에 닿았다.

“엄청난 패스가 나왔습니다! 장승빈 선수 여기선 치고 달려야죠!”

천하의 브라질이 당황했다.

“막아!”

브라질 골키퍼가 고함을 질렀다.

“때려! 승빈!”

하지만 장승빈은 좀 더 완벽한 찬스에서 슛을 쏘고 싶었다.

결국, 장승빈과 브라질 수비수가 충돌했다.

“아악!”

“승빈아. 괜찮아?”

장승빈이 어깨를 잡고 뒹굴었다.

삐이이익-

심판은 PK를 선언했다.

“됐어!”

안태리가 환호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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