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믿을 수 있는 동료
“우웩.”
이순신은 헛구역질이 나왔다.
자신을 보고 느끼한 윙크를 날린 이 남자.
모하메드 때문이었다.
그는 이순신과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으로 인한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바로 영국에서 뛰고 있는 ‘모하메드 살라’ 덕분이었다.
현재 그는 이집트에서 신으로 추앙받을 정도로 인기가 매우 대단했다.
엄밀히 말하면 모하메드는 이름이 아니라 성.
하지만 외국인들한테는 그냥 모하메드로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됐다.
“영국 모하메드는 잘하는데 넌 왜 이 모양이야?”
“우리 구단주 사기당했네. 크크크.”
“개새끼들.”
모하메드는 이를 악물고 실력으로 보여줬다.
“나도 이름을 모하메드로 바꿔야 할까 봐.”
“영국 모하메드는 늙었어, 이제는 이탈리아 모하메드가 대세야!”
모하메드는 그 콧대 높다는 이탈리그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증명했다.
그렇게 갈고 닦은 창이 무딜 리가 없었는데 멀리 한국에서 온 동양인에게 번번이 막혔다.
“이순신 선수! 모하메드를 선수를 잘 막고 있습니다!”
이순신이 깔끔한 태클로 모하메드에게 가는 공을 걷어 냈다.
“너 누구야?”
“스페인 5부 리그 선수.”
“뭐?”
모하메드가 깜짝 놀랐다.
스페인 5부 리그 선수에게 막히는 세리에 A선수라니.
더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뜁니다! 모하메드!”
어떻게든 골을 넣겠다는 의지로 스프린트를 남발했다.
‘확실히 위협적인 속도다. 한 번 만 뚫려도 바로 실점으로 이어지겠는걸?’
이순신은 좌우에서 막 들어오는 모하메드의 속도에 감탄했다.
하지만 순순히 뚫려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모하메드 선수 슛!”
“이순신! 몸을 날려서 슈팅을 막아냅니다!”
이순신이 거센 모래 폭풍을 잠재우는 동안,
한국 팀 공격수들은 모래 늪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최전방에서 공격을 이끌어야 하는 장승빈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 했다.
번번이 이집트 수비수에게 드리블이 막혔다.
첫 국제 대회.
올림픽이 아닌 국가대표팀 승선까지 이야기가 나오는 그는 부담감을 느꼈다.
“젠장!”
아직 어린 선수라서 그런지 감정 조절이 힘들었다.
‘청심환은 쟤가 먹어야겠는데?’
그 순간이었다.
허준이 장승빈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으아아아!”
정신을 차리고자 장승빈이 고함을 질렀다.
툭.
허준이 청심환을 입에 던졌다.
“퉤퉷. 웬 날파리가!”
장승빈은 운동장에 침을 뱉었다.
찰싹찰싹.
장승빈은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쳤다.
“대한민국 파이팅!”
장승빈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순신은 그런 장승빈에게 공을 연결했다.
“장승빈 선수! 달립니다!”
파파파파팟!
“그래 봐야 넌 안 돼!”
“응. 안 들려.”
장승빈이 가볍게 비웃는 이집트 수비진을 제치고 슈팅을 했다!
“아! 아깝습니다!”
아쉽게도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슬슬 공격이 풀리고 있어요!”
이 슈팅을 기점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던 경기가 대등한 경기로 이어졌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재미없는 지루한 경기일 수 있었으나, 선수들에게는 잠깐의 방심이 실점과 골로 일어지는 치열한 경기였다.
경기 마지막쯤 이순신에게 기회가 왔다.
이순신 앞에 빈 공간이 펼쳐졌다.
‘치고 나갈까?’
이순신이 툭툭 드리블을 치자, 한국 팀 선수들이 공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이순신의 선택은?
중앙에 있는 김대한에게 공을 돌렸다.
한편, 스페인에서는 꿈FC가 모여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 저 타이밍이면 순신이가 치고 나가야 하는 거 아냐?”
“너무 몸을 사리는데?”
“태리 형… 순신이 사용법을 잊은 거 같은데? 감독님 생각은 어때요?”
임청수가 물었다.
“흠.”
이에로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국 팀의 슛은 골대를 크게 벗어나며 수포로 돌아갔다.
삐이이익-
결국, 0:0으로 전반전이 끝났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 무더운 날씨 속에서 선방했습니다. 후반전에는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해설자도 꽤 아쉬운 듯했다.
라커룸에 보인 선수들은 빠르게 수분을 보충했다.
평소보다 땀이 많이 흘렀다.
“전반전 뛰느라고 고생이 많았다.”
안태리가 선수들을 격려했다.
“다만 아쉬운 건 결정력. 공격진들은 조금만 더 세밀하게 차도록.”
“넵!”
“그리고 이순신.”
“네.”
“너 마지막에 그 플레이 뭐야?”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치고 나가지 않고, 패스했냐고!”
“저… 수비수인데요?”
“아-오. 이 답답한 새끼!”
안태리가 가슴을 툭툭 쳤다.
“야 인마. 너 갑자기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왜 대표팀에서 경기 스타일이 바뀌냐고! 이러려고 너 뽑은 줄 알아? 너 포지션이 뭐야?”
“센터백입니다.”
“아니. 너 수트라이커야!”
몇몇 선수는 스트라이커로 들었다.
“야. 감독 미친 거 아냐?”
한국 팀 선수 중 하나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옆 선수에게 물었다.
“어쭙잖은 패스하지 말고 골을 넣으려고 노력해!”
감독이 미친 거 맞구나.
아니면 더위에 뇌가 녹아버린 건가?
대부분의 선수는 비슷하게 생각했다.
“아까처럼 공격 찬스에서 머뭇거리면 당장 빼 버릴 거야. 알겠어?”
“…”
이순신은 침을 꼴깍 삼켰다.
“순신이는 대표팀의 무게에 짓눌려서 전반에 안전한 플레이를 고집했다. 물론 단 한 번의 실수로 대표팀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수도 없이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선수들이 안태리의 말을 주목했다.
“무색무취한 선수는 우리 팀에 필요 없다. 안전한 선수보단 특출난 장점이 있는 선수를 난 선호한다. 그렇다고 개인플레이를 하라는 건 아니다. 팀이 지고 있으면 사명감을 갖고, 팀이 이기고 있으면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해라. 난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올림픽에 나갈 거니까.”
선수들에게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와일드카드를 제외하면 20개의 자리.
아직 합류하지 않은 해외파 선수들도 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이 포지션에서 최고다.’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설령 해외파가 합류해도 말이다.
후반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이순신은 안태리가 한 말을 계속 되뇌었다.
‘골을 넣어라.’
수비수한테 내려진 임무인가 싶지만, 이것은 이순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순신은 늘 그래 왔다.
팀이 필요로 할 때 골을 넣었다.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데뷔 골을 넣으십시오.]
[보상 : ???]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올림픽 대표 원정 경기 승리]
[보상 : ???]
심지어 퀘스트가 두 개나 발동했다.
‘수비수의 명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순신은 암살자처럼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법.
공을 잡은 이순신은 달렸다.
“이순신 선수 달립니다!”
“크흑.”
이순신으로부터 시작된 역습에 이집트는 당황했다.
장승빈, 강현문을 상대의 진영으로 전진시켰다.
강현문과 2:1 패스 후 장승빈이 수비수를 유인하자 기회가 왔다.
[천자포를 발동합니다.]
뻐어엉!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 문명에 이순신은 강력한 대포를 날렸다.
위이이잉.
낮고 빠르게 날아가는 공을 그저 이집트 선수들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거리에서 슛을 쐈는데 위력이?’
이집트 골키퍼는 펀칭으로 이순신의 공을 걷어 냈다.
“아 이순신 선수. 아깝습니다. 하지만 세찬 FC에서 보여줬던 플레이가 이집트 대표팀에게 먹히다니. 이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해설자만 예상하지 못했을 뿐, 안태리와 TV를 지켜보던 꿈 FC 선수들은 예상했다.
강현문이 프리킥을 올렸다.
이집트 선수들은 발 빠른 장승빈을 견제했다.
하지만 진짜 경계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뛰어오는 이순신이었다.
그런 이순신을 유일하게 막은 건 모하메드의 전방 압박이었다.
‘이 녀석만큼은 꼭 막아야 해.’
오늘 경기에서 수차례 맞붙은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이 높은 점프력과 뛰어난 폭발력을 가진 선수라는 것을.
‘결코, 5부 리그에 머물 선수는 아니야. 분명 농담일 거야.’
모하메드는 공격 능력과 판단력은 뛰어났지만, 아쉽게도 수비력은 그렇지 못했다.
삐이이익-
“아- 모하메드 선수. 이순신 선수를 막다가 반칙을 범합니다!”
만약 모하메드가 반칙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집트는 순순히 골을 먹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 팀은 프리킥을 준비했다.
프리 키커는 이순신.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성공률 53%]
‘생각보다 높은 성공률은 아니다.’
이순신은 다음 기회를 노릴까? 고민했다.
“후으읍.”
이순신이 호흡을 내뱉었다.
[성공률 80%]
모든 기회를 이 한방의 프리킥에 쏟아부었다.
‘두 번은 없다.’
이집트는 공수 전환이 뛰어나며, 수비가 단단한 팀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찬스는 없다고 생각했다.
‘공… 공이 흔들려!’
이집트 골키퍼는 당황했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공이 날아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집중. 집중!’
이집트 골키퍼는 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
마침내 그는 몸을 날렸다.
철렁.
하지만 공이 꽂힌 곳은 야신도 막기 힘들다는 왼쪽 상단!
“이순신 선수의 골입니다! 한국 팀이 1:0으로 앞서갑니다!”
이순신이 두 주먹을 꽉 쥔 채 손을 뻗었다.
한국 팀 동료들은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감히 접근할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저것도 약속된 세레머니인가요? 이순신 선수, 마치 사이보그 같네요. 이집트 신화를 부수어 버리는 사이보그요.”
선수들의 어색함 덕분에 이순신은 팬들에게 재미난 세레머니를 보여줬다.
홈에서 한 골 먹히자, 이집트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골을 넣겠다는 분위기가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경기는 치열했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다.
“장승빈 선수 골!!! 아, 오프사이드 판정이 나네요. 아깝습니다.”
35분쯤 터진 장승빈의 슛이 참으로 아쉬웠다.
이집트 팬들은 패배의 그림자가 짙어지자 그 책임을 모하메드에게 돌렸다.
자꾸 이순신과의 1:1 대결에서 패배한 결과였다.
‘한 골 정도는 더 넣고 싶었는데…’
이순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슛을 때렸지만, 이집트 수비에 막혔다.
반동 효과로 오히려 역습을 허용할 뻔했다.
삐이이익-
치열한 혈투였다.
그제야 이순신은 경기장에 누웠다.
“이… 이겼다!”
이순신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올림픽 대표에서 처음으로 데뷔 골을 넣었습니다.]
[보상 : 광고 모델 제의]
[올림픽 대표로 선발돼서 첫 원정 경기를 승리했습니다.]
[보상 : 동료들의 신뢰]
‘음 어떻게 보면 굳이 퀘스트로 얻지 않아도 될 보상 아닌가?’
이순신이 보상에 대해서 약간 아쉬워할 때 히든 보상이 발동했다.
[데뷔 골이자 쐐기 골을 넣어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믿을 수 있는 동료]
이순신은 처음 보는 보상에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