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52화 (53/161)

52화. 한국 vs 이집트

이순신은 당황했다.

안태리가 씨익 웃으며 서 있었다.

“인사 안 하냐?”

“아…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지?”

안태리가 이순신의 팔을 툭툭 쳤다.

“여긴 어쩐 일로?”

“올림픽 대표 선발로 너 체크해 보려고 왔지. 다행히 컨디션은 최상이네.”

“제가 대표팀에요?”

이순신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 인마. 너 나랑 일 한번 내보자.”

“형. 아무리 그래도 시즌 중에 선수를 차출하면 됩니까? 아니 막말로 대한민국 선수가 그렇게 없어요? 스페인 5부 리그까지 차출해야 할 정도로.”

임청수가 불만을 토로했다.

“응. 우리 순신이만 한 선수가 없어. 이 자식이 워낙 눈을 높여 놨어야지.”

이순신은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들으면서도 아직도 얼떨떨했다.

‘내가 정말 대표팀에 뽑혔다고?’

이순신은 한참을 생각했다.

“알았다!”

“뭘?”

안태리와 임청수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이거 몰래카메라죠? 안 감독님이 미치지 않고서야 절 뽑을 이유가 없잖아요! 하하하.”

“뭐. 인마?”

순간 안태리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

“진짜네… 이게 몰래카메라면 진짜 인정이다.”

이순신은 이집트에서 훈련하고 있는 올림픽 대표팀을 보자 의심을 거뒀다.

취임한 안태리가 맡은 첫 임무는 이집트에서 열리는 4개국 친선 경기였다.

개최국인 이집트를 비롯해서,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가 토너먼트 형식으로 겨루는 평가전이었다.

“이순신. 뭐해? 빨리 안 오고!”

“네. 넵!”

이순신이 얼른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형. 안녕하세요.”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일명 MTS라 불리며 수원팀의 미래라고 불리는 장승빈이었다.

일전에 세찬 FC 시절에 이순신과 한 번 맞붙은 적이 있었다.

“어. 안녕!”

그 외에 강현문과 김대한도 다가와서 인사했다.

“와- 해외파에서는 형 혼자 뽑힌 거 알아?”

이번에 해외파 대신 국내파의 기량을 점검하기 위해 안태리가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선발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의 눈초리는 그다지 친근하지 못 했다.

아무래도 단 두 경기에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 속에 경쟁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이순신은 짐을 풀자마자 팀원들과 함께 가볍게 몸을 풀었다.

“스페인 5부면 아마추어 아냐?”

“도대체 감독님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K리그 까고 간 해외파 실력 좀 보자.”

이순신의 플레이를 TV로만 접한 선수들은 당연히 실력에 대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이순신은 축구화 끈을 단단하게 묶었다.

정확히 7분 32초 후.

선수들의 평가는 바뀌었다.

“점프력 뭔데?”

이순신이 다른 선수들보다 한발 빨리, 한 발 높이 공을 따냈다.

선수들은 대부분 K리그에서 주전이나 로테이션 멤버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이순신보다 제공력이 뛰어난 선수가 없었다.

“공중에서 뚫지 못하면 땅으로 뚫으면 되지.”

장승빈은 키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빠른 발과 드리블을 앞세워서 이순신에게 돌진했다.

다른 대표팀 선수들은 장승빈을 응원했다.

이순신과 장승빈의 1:1.

먼저 선공을 펼친 건 장승빈이었다.

왼쪽으로 가는 척하면서 재빨리 오른쪽으로 빠졌다.

마치 고무줄을 튕기듯 엄청난 탄성을 보이며, 옆으로 빠졌다.

이순신이 재빨리 따라붙었다.

“이 정도에 뚫렸으면 섭섭할 뻔.”

장승빈은 세찬 FC에게 진 후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언젠가 다시 붙을 날만 기다렸는데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와- 승빈이 치달 좀 봐!”

스피드에 자신이 있던 장승빈은 치고 달렸다.

‘혁규보다도 빠른 듯.’

이순신과 장승빈의 스프린트 대결이 펼쳐졌다.

근접하게 따라붙던 이순신의 어깨가 승빈의 어깨와 맞닿았다.

그러자 마지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속도 때문인가? 덩치는 작은데 전혀 안 밀리네.’

어느새 이순신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져 줄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둘 중에 누가 먼저 쓰러질까를 두고 선수들이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와- 저기서 슈팅을 날려?”

장승빈이 넘어지면서 슛을 날렸다.

“됐다!”

장승빈이 웃으면서 주먹을 쥐었다.

툭!

이순신이 뛰어오르면서 허벅지로 장승빈의 슛을 튕겨 냈다!

“아오! 저 형은 시차 적응도 안 하나?”

장승빈이 땅을 쳤다.

이순신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시차 적응이 왜 필요해?”

“와 무슨 주인공 병이세요?”

“카이로와 마드리드는 시차가 없어.”

“!”

장승빈이 이순신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깜짝 놀랐다.

오히려 그저께 한국에서 온 선수들이 고생깨나 했다.

안태리는 재미난 듯 팔짱을 끼고 씨익 웃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안태리는 오후에 있을 기자회견을 준비하러 떠났다.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샤워를 마쳤다.

기자회견은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안태리의 기자회견을 기자들 뒤에서 바라봤다.

말끔하게 정장을 입은 안태리가 등장했다.

“오오.”

과거 테리우스란 별명을 되찾기에는 어려웠지만, 중년의 멋이 느껴졌다.

안태리가 자리에 앉았다.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터졌다.

“안녕하십니까?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안태리입니다.”

안태리가 가볍게 인사했다.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안태리 감독님. 이번 올림픽 대표팀은 어디까지 올라가시리라 생각하십니까?”

“황보 감독님이 저번에 동메달을 땄으니 이번엔 금메달을 노려보겠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선수들의 전력 차이가 많이 나는 거 같습니다만…”

“아니 시작부터 왜 우리 애들 기를 죽이고 그래요? 언론의 수준은 10년 전과 변함없지만, 한국 축구는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내실부터 탄탄히 다져 가고 있고요. MTS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안태리의 입담은 거침없었다.

예능에서는 불평불만 많은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축구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인 남자였다.

“19세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이광인 선수는 왜 빠진 겁니까?”

“공문을 보냈지만, 답이 없네요. 하하하!”

안태리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번에 국내파 선수들로 이집트, 브라질, 호주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내가 점쟁이 문어도 아니고 경기 결과를 어떻게 예측합니까?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잘 해보는 거지. 그리고 이번에 해외파가 한 명 합류했습니다.”

“네? 그게 누구죠?”

기자들은 의아했다.

“스페인에는 이광인 선수만 있는 게 아니죠. 마침 테스트를 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는데 이 친구는 제가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컨디션이 좋아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 선수가 있었나요?”

“스페인 5부 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이순신입니다.”

“이. 순. 신이요? 잠깐만요? 5부 리그?”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저기 뒤에 있네요.”

기자들이 몸을 돌려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이어지는 카메라 셔터!

이순신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겠습니다.”

안태리가 씨익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태리 올림픽 감독. 제정신인가? 스페인 5부 리그 선수 깜짝 발탁. -

- 이순신. 5년 만에 태극 마크 다시 다나? -

- 안“축구는 인맥이 최고.” -

- 예능에서 국가대표까지? -

“난리 났구만. 난리 났어.”

이순신은 한국에 난 기사를 봤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시샘 반, 부러움 반으로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나 때문에 감독님만 욕먹는 거 아닌지 몰라…”

본인이 욕먹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이순신과 눈이 마주친 선수들은 시선을 회피하기 바빴다.

그런 이순신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 MTS뿐이었다.

“형 신경 쓰지 마.”

“딱히 신경 안 쓰는데?”

“와- 이 형 눈치를 밥 말아 먹었네.”

“…”

장승빈이 적절한 선을 지켰다면, 강현문은 신호등을 안 보고 들어오는 자동차 같았다.

김대한은 그저 두 뒤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일명 막내 라인.

이순신이 오기 전까지 이들은 선배들의 시샘을 받았다.

“자! 모두 회의실로 집합!”

때마침 코치가 나타나서 선수들을 한데 모았다.

“오늘 이집트 친선 대회 상대 팀이 결정됐다. 이집트랑, 브라질이 시드를 배정받았고, 우리는…”

선수들은 속으로 브라질만 아니길 빌었다.

“개최국인 이집트다.”

“우와!”

“이 자식들이 갑자기 왜 환호성이야! 이집트는 만만해?”

“…”

선수들이 모두 조용해졌다.

“올림픽까지는 고작 1년뿐이다. 그리고 아직 해외파는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번 평가전에서 해당 포지션에선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증명해라. 알겠냐?”

“넵!”

그날 이후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저 연습에 몰두했다.

이순신을 배척하는 분위기 또한 없어졌다.

그 시간에 오히려 공을 한 번이라도 더 차는 게 나았다.

마침내 이집트와의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

한국 vs 이집트의 경기가 열린 날.

“내가 태극 마크를 달다니.”

이순신은 감회가 새로웠다.

심지어 선발!

주장 완장을 차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외에 한국 선수들은 원정 경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긴장했다.

반면, 이집트 선수들은 여유가 넘쳤다.

“쟤네들 나이 속인 거 아냐? 왜 하나같이 털북숭이지?”

거친 입담의 강현문이 이집트 선수들을 보며 필터링 없이 내뱉었다.

확실히 이집트 선수들이 좀 더 성숙미가 느껴졌다.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모하메드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이집트는 홈팀의 이점을 살려서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한국 팀은 순식간에 측면을 내줬다.

측면 수비수가 빠르게 달라붙었지만, 이집트의 크로스가 더 빨랐다.

“모하메드 뛰어오릅니다!”

모하메드는 이순신보다 한발 먼저 헤딩했다!

“모하메드의 헤딩 슛!”

불행 중 다행으로 공은 골키퍼 쪽으로 날아갔다.

엉겁결에 골키퍼가 공을 쳐 내자 모하메드가 다시 날아올랐다.

하지만 이순신이 먼저 헤딩으로 공을 걷어 냈다.

“이순신 선수. 다행히 먼저 공을 걷어 냅니다! 저거 못 막았으면 실점을 허용했어요.”

아나운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가대표의 무게는 다르네.’

이순신은 아직 몸이 덜 풀렸다.

[허준이 청심환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경기에서 긴장감이 사라집니다.]

이순신이 씨익 웃으며 거절했다.

‘이순신.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면 넌 큰 그릇이 될 수 없다!’

곧이어 이집트의 코너킥이 이어졌다.

이번에도 모하메드에게 공이 가기 전에 차단했다.

“달려!”

이순신이 전방을 향해서 공을 건넸다.

“아- 이순신 선수의 다소 아쉬운 롱패스. 오히려 역습을 허용합니다!”

다시 밀려오는 이집트의 공격.

“모하메드를 막아!”

[언성이 발동합니다.]

“내가 왜 쟤 말을 듣고 있지?”

한국 팀의 측면 수비수가 모하메드에게 따라붙었다.

주장 완장은 없지만, 적어도 수비진은 언성으로 충분히 지휘할 수 있었다.

마치 거북선처럼 단단했다!

결국, 모하메드는 공을 빼앗겼다.

그는 자신에게 따라붙은 수비수보다 그걸 시킨 수비수.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제법인데?”

모하메드는 이순신을 가리키며 윙크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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