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50화 (51/161)

50화. 전설의 골 넣는 수비수.

스페인 ISDE 고등 법 경제 연구소.

스페인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였던 이에로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공식적으로는 축구계에서 은퇴한 상태.

그런 그를 찾아온 낯선 동양인은 임청수였다.

“누구십니까?”

“이거 섭섭하네요. 예전에 같이 경기도 뛰었었는데.”

“네?”

이에로의 국가대표 은퇴경기는 월드컵에서 한국과 치른 8강전이었다.

예전에는 경기 결과에 대해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앙금이 모두 풀린 상태.

“아. 그 노랑머리?”

두 사람은 뜨겁게 악수했다.

옛 추억을 회상하며, 담소를 나누다가 이에로가 물었다.

“그런데 왜 날 보자고 한 거요?”

“우리 팀 감독을 해주십사 하고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꺼져!”

전설의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전설과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감독’이라는 두 글자에 PTSD가 올 정도였다.

과거를 다 잊고 평범한 삶을 사는 그에게 느닷없이 감독해달라고 부탁하다니,

이에로의 심기가 불편한 것도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경질된 게 내 탓인가? 왜 나한테 화를 내요.”

통역은 난처한 표정으로 임청수의 말을 전했다.

이에로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경질 혹은 방출.

그의 인생에서 그때까지는 없던 단어였으니까.

스페인 국가대표를 역임했고, 최선을 다했으나 26일 만에 사임했다.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어.’

국가대표의 무게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기에 독이든 성배를 스스럼없이 마신 사람이 바로 이에로였다.

“오늘은 많이 피곤한 거 같으니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오지 마시오!”

이에로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본데?’

악바리 임청수는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그의 시선에 무언가 들어와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와- 저거 거북선이네?”

임청수는 그의 사무실에 전시되어있는 거북선을 발견했다.

과거 한국에서 열린 월드컵이 끝난 뒤 초청행사에서 기념품을 받은 걸 아직 간직했다.

“다행히 한국에 대한 기억이 당신에게 최악은 아니었나 보네요.”

“당신 때문에 곧 최악으로 바뀔 예정이요.”

“우리 팀에 당신과 똑같은 선수가 있습니다.”

이에로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 감독으로서 재기할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당신과 같은 선수를 키워내는 거죠. 그리고 그 선수가 당신을 뛰어넘는다면 당신은 실패한 감독이 아니라 성공한 감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허풍이 심하군.”

이에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낫겠지.”

임청수는 이에로에게 1만 유로(약 1300만 원)를 내밀었다.

생각보다 거금을 내밀자 이에로가 놀랐다.

“차비입니다. 시간 되면 저희 팀을 보러 한 번 오시죠.”

“돈으로 내 마음을 살 순 없소.”

“당신에 대한 존경심. 우리 팀에 대한 믿음일 뿐.”

임청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다 녹화되고 있다. 이에로. 이대로 먹튀하면 우리 채널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걸?’

***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이에로는 몰래 꿈 FC 경기장을 방문했다.

그는 신의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 봐야 아시아에서나 통할 재능이지. 여기에서는 평범한 재능일걸?”

이에로는 꿈 FC의 연습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첫 번째는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이순신의 플레이를 보고 놀랐다.

꾼은 꾼을 알아보는 법.

이에로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임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군. 저 녀석. 내 현역시절을 보는 거 같은데?”

이에로의 현역시절 별명은 ‘골 넣는 수비수’였다.

수비수라는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국가대표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선수였다.

라울이 그의 골 기록을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에로는 유심히 살펴봤다.

‘피지컬은 완성형, 슈팅은 공격수 이상, 그렇다고 수비가 약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 약점이라 불리던 스피드도 뛰어나다. 다만…’

이에로가 고민에 빠진 사이,

이순신이 또 골을 넣었다.

“나이스. 순신!”

‘경험이 부족해…수비수로 전향한 지 얼마 안 된 건가?’

이에로는 단숨에 이순신의 약점을 꿰뚫어 보았다.

‘경험만 갖춘다면 저 녀석… 진짜 물건이 될 수도 있겠는데?’

이에로가 마음이 급변하게 된 계기는 또 있었다.

카이저, 충무공, 허준이 끊임없이 이에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꿈 FC 감독이 되어서 이순신을 키워보자.’

무의식부터 세뇌를 당하니 이에로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임청수는 이에로를 발견했다.

그의 놀라는 표정을 보자 임청수가 웃었다.

‘미끼를 불어부렀어!’

그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환영합니다!”

임청수 단장이 해냈다.

그는 입단 선물로 금으로 된 거북선을 이에로에게 선물로 줬다.

“와우- 거북선!”

“이 거북선에 꿈 FC를 태워서 프리메라리가로 이끌어주십시오.”

“당신은 미친 사람이오. 그러니까 맨정신에 말디니 뒤통수를 후려 깠지.”

한동안 분위기가 다운되어있던 꿈 FC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에로를 영입하자 지역 일간지에 대서특필됐다.

- 꿈 FC. 전설 이에로를 감독으로 영입!!!-

- 이에로! 축구계 복귀! -

- 이에로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

그들은 전설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그 뒤 열린 공개테스트에는 많은 선수가 몰렸다.

은퇴한 전설 앞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축구인이라면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꿈 FC는 5부리그의 팀이지만, 단숨에 지역의 인기팀이 됐다.

***

“순신. 수비가 아직 투박해. 그 상황에서는 좀 더 간결하게. 아직도 불필요한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이순신은 빠르게 이에로의 가르침을 습득했다.

그 결과,

시스템도 같이 반응했다.

[방패연의 발동 속도가 0.1초 증가했습니다.]

[방패연의 발동 거리가 1cm 증가했습니다.]

[방패연을 사용할 때 소모하는 체력이 약간 감소합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스포츠에서는 0.1초, 1cm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스킬 플로타를 획득했습니다.]

[스페인 함대는 무적입니다. 영국팀(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을 제외한 나라의 선수들에게 높은 태클 성공률을 보입니다. *영국 선수들에게 사용 시 부상 혹은 카드를 얻게 될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

스페인 함대가 무적이라 불렸던 시절.

영국 해적에게 개박살이 난 걸 기가 막히게 반영한 스킬이었다.

‘이런 건 또 금방 써줘야 제맛이 아닌가?’

이순신은 상대편에 있는 김혁규를 향해 플로타를 사용했다.

깔끔하며 우아한 태클로 김혁규의 공을 걷어냈다.

‘방패연이 방어라면 이건 공격이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제대로 된 태클한다면, 역습 찬스도 만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오! 저 새끼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네.”

김혁규가 볼멘소리를 냈다.

플레이성향이 비슷해서인지 이순신과 이에로는 괜찮은 궁합을 보였다.

어쩌면 이순신에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멘토였다.

그렇다고 수비 스킬만 습득한 것은 아니었다.

[쇄빙선을 습득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태클 따위는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역습 기회에서 이순신은 폭풍 드리블을 펼쳤다.

이번에 새로 영입된 측면 수비수 루이스가 이순신을 막아섰다.

슬라이딩 태클!

[쇄빙선이 발동했습니다.]

[3분 동안 부상 위험이 커집니다.]

공을 사이에 두고 루이스와 이순신의 정강이가 부딪혔다.

놀랍게도 튕겨 나간 것은 루이스였다.

“루이스! 거기서 태클을 시도하면 어떡해!”

이에로가 불같이 화를 냈다.

이순신을 막아서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진입하기 직전,

[지자포를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강력한 중거리 슛을 쐈다.

보경풍이 방향은 예측했지만,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나이스!”

이순신이 주먹을 불끈 쥐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순신! 끼에로(quiero)!”

벌써 이순신의 열성 팬들도 생겼다.

정열의 나라답게 화끈한 금발미녀들이 연습구장을 찾아와서 좋아한다고 외쳤다.

“순신 시주. 좋겠소…”

구멍이 이순신의 인기에 질투를 느끼며 성욕을 드러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자신의 머리를 목탁 삼아서 자신에게 찾아온 음란마귀를 다스리는 구멍이었다.

그렇게 꿈 FC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개편됐다.

스페인에 온 지 단 두 달 만에 누가 이 팀에서 에이스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에로가 이순신만 편애하진 않았다

이에로의 방침 역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를 고수했다.

“순신. 너의 슈팅력은 좋은 무기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남발하면 안 된다.”

골 넣는 수비수가 해준 조언치고는 약간 의외였다.

“왜죠?”

“축구는 한 골 싸움이기도 해. 꾹꾹 참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꽂아라.”

이순신은 이에로의 말에 공감했다.

‘나의 공격 패턴이 상대방한테 읽힌다면 난 더더욱 골을 넣을 수 없을뿐더러 자칫 수비진이 붕괴할 수 있어.’

하지만 이에로 역시도 임청수 단장의 시련을 피해갈 수 없었다.

바로 이순신이 없는 경우를 대비하기였다.

이순신이 출전하지 않는 연습 경기라서 선수들은 다소 긴장했다.

“너희들이 어떤 심정인지 잘 알고 있다. 두렵고 불안하겠지? 그것을 즐겨라. 그러면 너희는 더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로의 말에 선수들은 자극을 받고 경기에 임했다.

확실히 임청수가 단장으로 부임한 뒤 꿈 FC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우선 외국인 선수들의 영입이 기존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된 건 사실이었다.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자발적으로 훈련에 더 임했다.

“이순신 이외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아. 예전에 한국이 4강에 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야.”

“그렇습니다.”

이에로와 마르코는 유심히 경기를 지켜봤다.

“하비 시주! 정강이 좀 그만 차라니까! 내 말 안 들려? 이 새끼야!”

구멍과 하비의 조합은 의외로 찰떡이었다.

공격적인 하비와 수비적인 구멍은 팀의 핵심 더블 볼란치로 자리 잡았다.

“다만 아쉬운 건 역시 공격력.”

이 문제 만큼은 이에로도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공개테스트를 통해서 무니를 뽑았지만, 결정력이 다소 아쉬웠다.

물론 그 부분을 메꿔줄 수 있는 게 이순신이지만,

언제까지나 그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니겠는가?

한 명의 공백으로 무너진다면, 그 팀은 우승전력이 될 수 없었다.

삐이이익-

경기가 끝났다.

“됐다.”

그제야 임청수가 웃었다.

5부 리그중위권 팀과의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두 달. 26일이 아니라 두 달 만에 이에로는 전혀 다른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페인 5부리그가 개막했다.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경기에 임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 안태리,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으로 발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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