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46화 (47/161)

46화. 국가대표란 이름의 무게

국가대표.

떡볶이집이나 단순히 영화 이름이 아니다.

해당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되거나 해당 국가를 잘 나타낼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에 쓰는 말이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유구한 역사에서 내전은 많았어도, 침략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곳.

수비는 킹왕짱이지만, 공격은 젬병인 게 바로 한국이다.

“임청수! 너 때문에 애들 헛바람만 들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아니 그게 내 잘못인가? 얘네들도 다 성인인데 진로 선택은 자기네들이 알아서 하겠지.”

임청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너 이 자식!”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연락처는 제작진에게 남겨놨으니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기한은 한 달입니다. 그럼 이만.”

임청수는 능청스럽게 퇴장했다.

음식이 다 식었다.

싸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만수가 고상인에게 속삭였다.

“야- 순신이 스페인 간다는데 따라갈 거야?”

“미쳤어? 아까 말한 조건이면 K4가 훨씬 좋지. 여기서 하는 고생이 커피면, 거기서 하는 고생은 더치 커피지.”

그의 말대로 고생의 진함이 달랐다.

이순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중에서 몇 명이나 함께 할 수 있을까?’

이순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선수, 피하는 선수도 있었다.

씨익.

웃었다.

이제는 정말 작별을 해야 할 때가 됐다.

“팀의 주장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겠습니다.

세찬 FC는 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며, 다시 축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의 말한 ‘마지막’이란 단어에 다들 울컥했다.

김구름이 휴지로 눈물을 가렸다.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세찬 FC 출신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요.”

안태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순신은 그를 보며 말했다.

“끝으로 안태리 감독님, 이갑용 코치님, 김구름 코치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신이 안태리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선수 일동이 모두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결국, 안태리도 팔짱을 풀었다.

“너희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하겠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까. 다만 중간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라. 그러면 내가 찾아서 가만 안 둔다. 알겠지!?”

“넵!”

“하지만! 이순신…아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웃음으로 시작된 해산식은 결국 울음으로 마무리됐다.

***

이순신은 오랜만에 엄마를 찾아갔다.

“저 왔어요. 엄마.”

“순신아. 어서 오렴.”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와 불고기를 구워줬다.

간만에 솜씨를 발휘했다.

아들이 대견스러웠다가 개견스러워지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 앞으로는 국내에서 축구 선수를 할 수 있는 거지? 어느 팀으로 갈 거니?”

“꿈 FC요.”

“꿈 FC? K리그에서는 못 본 거 같은데 몇 부 리그니?”

“5부리그에요…”

순신의 엄마는 실망했다.

반응을 보면 K리그는 아니더라도 2부나 3부리그 정도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내뱉은 순신의 말은 도리어 기름을 부었다.

“그래도 스페인에 있는 팀이에요.”

“뭐? 스페인에 다시 간다고?”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엄마?”

“그냥 축구 그만두면 안 되겠니? 방송에서 그렇게까지 활약을 했는데도 프로에 데뷔하지 못할 정도면 네 재능은 딱 거기까지인 거야. 엄마랑 같이 식당이나 운영하면서 오순도순 살자.”

“저 K리그에서도 제의받았어요…”

“너 미친 거 아니니? K리그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리그고, 연봉이나 대우도 5부리그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

“…”

순신의 엄마는 가슴을 팍팍 쳤다.

침묵이 이어졌다.

도저히 계속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

순신의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히려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더니 맥주잔에 따라 마셨다.

이순신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온사인이 빛나는 도시를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응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현실적인 조언에 이순신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의심했다.

‘아니야. 난 대한민국을 월드컵에서 꼭 우승시킬 거야. 그러기 위해선 세계적인 선수들을 가까이 볼 필요도 있어.’

이순신은 오래전 충무공에게 받은 백의종군 칭호가 떠올랐다.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축구를 위해서 다시 시작한 인생이 아니었던가?

눈앞에 누가 버리고 간 깡통이 보였다.

이순신은 지그시 바라보더니 깡통을 띄워서 쓰레기통을 향해 찼다.

깔끔하게 빗나갔다.

이순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 터벅터벅 걸어서 깡통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이깟 깡통 못 넣었다고 마음을 바꿀 일이 없는 거 보니 역시 난 스페인으로 가야겠어.’

이순신은 결심을 굳혔다.

충무공의 뜻일까? 하늘의 뜻일까?

황 관장, 엄마, 안태리 등 이순신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났다.

***

한 달 후.

국내 리그의 선수등록이 끝났다.

세찬 FC 출신의 선수들도 소속팀을 찾았다.

방성찬은 무려 K리그에 속한 수원 사성으로 이적했다.

이순신은 울산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 외에 방송 출연 제의를 거절하며 훈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광고 촬영 제안을 수락했다.

광고계가 젊고, 잘생기고, 몸 좋은 부활의 아이콘을 내버려 둘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그 외에는 훈련에 매진했다.

스페인에 가는 것은 철저한 엠바고.

마침내 떠나는 날이 됐다.

이순신이 차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운전을 해주는 건 그의 엄마였다.

두 사람은 딱히 아무 말이 없었다.

임청수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인마. 주인공 병에 걸렸어? 꼭 그렇게 마지막에 등장해야겠어?”

출발 시각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

임청수가 농담을 던지며 이순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 옆에는 안태리, 이갑용, 김구름, 황 관장, 이운장, 김남호, 최국성 등이 서 있었다.

“이순신이다!”

그 주변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팬들이 와 있었다.

“다른 애들은요?”

“저쪽에 오네.”

“순신아!”

김혁규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옆에는 오진성, 보경풍, 구멍, 조문돈, 윤광섭이 서 있었다.

“안녕!”

이순신도 그들을 보자마자 반가워서 손을 흔들었다.

‘광섭이 형은 의외였지만.’

윤광섭은 축구에 전념하기 위해 아이돌을 때려치웠다.

“순신아. 밥 잘 챙겨 먹고,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

“네. 엄마.”

순신의 엄마가 이순신의 팔뚝을 토닥였다.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너희들이라면 팀을 승격시키고, 내친김에 국왕컵 우승도 할 수 있을 거다.”

“당연하죠! 감독님.”

김혁규가 너스레를 떨었다.

“혁규야. 너무 깝죽거리지 말아라. 넌 다 나쁜데 그게 젤 나빠.”

“아이참! 너무 하십니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한 달 만에 태세전환이라니.’

안태리, 김구름도 태도가 바뀌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응원한다?

절대로 아니었다.

이순신은 임청수를 바라보았다.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해준 것은 임청수의 돈이었다.

이순신은 임청수와 계약을 하러 가던 날 깜짝 놀랐다.

“이 금액이 맞나요?”

“너 숫자 못 세? 일,십,백,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2억이잖아?”

연봉 2억.

그 외 수당은 별도였다.

임청수가 해산식 때 제시한 금액보다 무려 10배나 올랐다.

“금액이 왜?”

도리어 놀란 건 이순신이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제시하고자 했던 건 연봉 1억 선이었고, 가장 먼저 지원하는 선수한테는 + 1억 더 주려고 마음먹었지.”

이 정도면 임청수가 아닌 임수르였다.

“어때? 필요한 축구용품도 사고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겠지? 그냥 투자하는 거 아니야. 너한테 투자한 거 10배로 뽑아 먹을 거야.”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이후로 처음 받아본 금액.

“감사합니다.”

이순신은 고개를 숙였다.

“난 다른 선수들도 믿지만, 특히 너를 믿는다. 넌 나 같은 풍운아가 되지 말고 전설이 되길 바란다.”

임청수가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이순신은 계약하고 곧바로 엄마네 가게로 갔다.

“왜 왔어?”

“저 스페인에 가 있는 동안 이걸로 생활비라도 하세요.”

“방송 출연료? 됐다. 그걸 내가 왜 쓰냐. 내 생각하기 전에 네 앞가림이나 잘해.”

이순신은 핸드폰에 있는 계좌를 보여줬다.

순간 엄마의 눈이 엄청나게 커졌다.

남들이 볼세라 얼른 핸드폰을 두 손으로 가렸다.

주변을 살피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너. 이게 다 무슨 돈이야?”

“제가 일해서 번 돈이에요. 조만간 TV에서 광고가 나올 거에요. 그리고 이거.”

이순신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뭐야? 이거 사기 아냐?”

엄마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이 정도면 제 앞가림 정도는 한 거 아닌가요?”

“아들. 뭐 먹을래?”

그제야 엄마가 웃었다.

계속 나무라기에는 너무나 큰 액수였다.

곧 10첩 반상이 차려졌다.

“잘 먹겠습니다.”

젓가락을 집자마자,

엄마가 울었다.

“미안하다. 순신아. 엄마가 뒷바라지를 못 해줘서…”

“아니에요. 엄마는 저 때문에 회사 경력도 포기하고 스페인으로 와주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걸요.”

두 모자는 그렇게 화해를 했다.

그 순간이었다.

안태리한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순신아. 아무리 생각해도 청수 따라서 스페인 가는 건 좀 아닌 거 같단 말이지!”

“감독님 이거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돼요.”

이순신은 계약금을 말해줬다.

안태리는 못 믿었다.

“사진 찍어보네!”

이순신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순신아. 남자라면 야망이 있어야지. 스페인 리그의 도전은 K리그에 도전하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다. 더도 말고 3부리그까지만 가자! 그럼 스페인 1, 2부 리그에서 분명히 널 스카우트할 거야. 그러면 네가 꿈에도 그리던 국가대표가 될 수 있어!”

이순신은 얼마 전 일을 회상하며 웃었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으며, 충분히 도전에 대한 보상을 미리 받았으므로 말릴 수 없었다.

“이순신 선수. 지금 출국을 앞두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이순신과 함께 다녔던 세컨드 찬스 조연출이었다.

사표를 내고 ‘청수는국가대표’ 피디로 취직했다.

“다시 돌아가려니까 떨리네요. 이번엔 먼저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이순신이 각오를 다졌다.

“자자. 이제 탑승하러 가자.”

이순신은 마지막으로 엄마를 안아줬다.

그리고서는 비행기에 올랐다.

***

스페인에 도착한 이순신 일행은 꿈 FC가 있는 ‘이에스까스’로 향했다.

긴장한 김혁규가 입을 열었다.

“우리 꼭 그거 같지 않냐?”

“뭐?”

“공포의 외인구단.”

“?”

이순신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듣고 있던 임청수가 웃었다.

“하하. 우리 때도 오래된 만환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분명히 텃세가 심할 거야… 순신아. 네가 잘 제압해야 한다.”

“굳이? 사이좋게 지내면 좋잖아?”

“이 바보야! 그게 되겠냐! 어쨌든 우린 기세에서 밀리면 안 돼.”

어느덧 꿈 FC 구장에 도착했다.

‘저게 뭐야?’

- 청수는국가대표 임청수 단장님. 환영합니다. -

혁규의 우려와는 다르게 꿈 FC의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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