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벼락 맞은 축구 선수.
세찬 FC 선수들은 짐을 챙겨서 호텔로 이동했다.
이순신은 눈앞에 보이는 자칭 6성급이라 불리는 건물을 보며 생각했다.
‘헤어짐이란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배려인가?’
오늘은 그들이 다 함께 모이는 마지막 날.
즉 해산식이다.
“오늘이 지나면 마지막이네.”
“마지막은 무슨 연락하고 지내면 되지!”
이순신과 혁규는 주먹을 부딪쳤다.
함께 싸우고, 발을 맞춘 추억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찬 FC의 일거수일투족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에 앞으로도 자주 연락하기로 약속했다.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환영합니다. 세찬 FC 선수 여러분.”
호텔리어, 지배인이 입구부터 나와서 세찬 FC 선수들에게 깍듯이 인사했다.
이런 환대를 받은 적이 없던 선수들은 반사적으로 같이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호텔리어의 뒤를 따르며 세찬 FC 선수들이 이동했다.
로비에 들어서자 투숙객들과 방문객들이 알아봤다.
“이순신이다!”
“오진성. 힐킥에 한번 맞고 싶어요!”
“보경풍 선수. 샴푸 뭐 써요?”
“축구돌 윤광섭! 최고!”
호텔리어들이 재빨리 손님들을 제지했다.
“손님 여러분들의 성원 감사합니다. 사인회는 나중에 로비에서 진행될 예정이오니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순신 시주. 우리 뜬 거요?”
“나도 이런 환대는 처음이라서…”
이순신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세찬FC 선수들은 아무 말 없이 고급 진 외관을 구경하며 따라갔다.
“우와- 이거 진짜 금일까?”
“도금이겠지.”
갑자기 호텔리어의 발걸음이 멈췄다.
-스위트룸-
호텔리어가 거대한 문을 열자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선수들은 방안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랐다.
“이거 제작진이 준비한 거 맞아?”
“아무리 프로그램이 대박났다고 해도 이건 좀 오바같은데?”
이순신 역시 눈앞에 펼쳐진 케이터링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텔에서 파견된 요리사들.
갈비찜, 로브스터, 스페어립, 브리스킷, 토마호크 스테이크, 로제 파스타, 장어구이, 대게찜, 초밥, 연어회, 참치회, 마카롱, 케이크, 브륄레 같은 디저트도 맛깔나고 멋스럽게 펼쳐져 있었으며,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각종 음료수를 비롯해 와인, 샴페인도 준비되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감독님이 쏘시는 건가요?”
“그럴 리가. 익명의 팬으로부터 후원받은 거라고 보면 된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마음껏 즐겨.”
안태리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진짜죠? 이거 나중에 막 우리한테 청구되고 그런 거 아니죠? 제작비로는 감당 못할 거 같은데?”
“아니라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던가!”
안태리는 대게를 접시에 담으며 짜증냈다.
선수들, 제작진, 코치진은 다함께 만찬을 즐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모두들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와 마지막으로 회식한다고 그래서 김치찌개집 가는 줄 알았더니 이건 예상 밖인데?”
“스케일이 작네. 난 적어도 밥차 정도는 예상했는데!”
“호텔에서 출장뷔페라니! 축구 계속하길 정말 잘했어.”
그 순간이었다.
“식사들은 맛있게 하셨습니까?”
한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입장했다.
“이… 임청수다! 임청수 선수!”
“헐. 이게 무슨 일이야?”
선수들의 시선이 쏠린 곳에는 임청수가 나타났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선수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제작진 놈들.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제가 여기 왜 왔는지 궁금하죠? 여러분이 먹고 마시는 거 제가 다 쏜 겁니다. 이곳을 대여한 것도 저고요.”
임청수의 말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익명의 팬이 임청수였다니.
“여러분들의 멋진 모습에 감동해서 제가 밥한끼 쏘고 싶었습니다.”
“멋진 파티를 준비해주신 임청수 선수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짝짝짝.
이주성이 박수치자 선수들도 따라쳤다.
임청수들은 선수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섰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밥은 없는 거 아시죠?”
켁켁.
구멍은 먹던 갈비찜이 목에 걸렸다.
“여러분들은 각각 다수의 팀에서 좋은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제안할 게 있어서 제가 제작진에게 파티를 여는 조건으로 우선 협상권을 획득했습니다.”
이순신은 사뭇 놀랐다.
‘우선 협상권?’
임청수가 손짓했다.
“영상을 보고 설명하는 게 빠르겠죠?”
그러더니 방의 조명이 꺼졌다.
일제히 200인치가 넘는 TV를 쳐다봤다.
“안녕하십니까! 청수는국가대표의 임청수입니다!”
임청수가 보여준 영상은 약 한달전 자신의 채널에 올린 라이브방송 편집본이었다.
‘제목이 임청수 터졌다?’
이순신은 고개를 돌렸다.
안태리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여러분. 제 오랜 꿈이 뭔지 아십니까? 구단을 만드는 거죠. 오늘 바로 그 꿈을 이루는 날입니다.”
채팅창에는 ‘???’가 가득했다.
임청수가 내민 건 수십장의 복권이었다.
“얼마 전에 모BJ분이 생방중에 2천만 원이 터졌죠? 저도 오늘 한 번 터질 때까지 긁어보겠습니다! 박수!”
영상 속의 임청수는 박수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ㄴ 구단 하나 만드려면 1등이 몇 번 되야 하는 거냐?
ㄴ 시민 구단이라고 해도 50억은 있어야 할 걸?
ㄴ 2부 리그는 30억이면 됨.
그냥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진지하게 500원짜리 동전으로 긁는 모습과 꽝이 나오면 절망하는 리액션들이 웃음을 자아냈다.
“야 넘겨.”
안태리는 10분 동안 복권긁는 것만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조금만 넘길게요.”
임청수도 머쓱한지 영상을 앞으로 넘겼다.
한켠에는 꽝이 된 복권들이 산을 이뤘다.
즉석복권으로 당첨된 금액은 놀랍게도 13500원이었다.
“이야 복권을 이렇게 많이 샀는데 고작 이거 당첨됐다고? 구단은 개뿔.”
불쌍하다고 팬들이 쏜 슈퍼챗의 금액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여러분 끝난 게 아닙니다.”
임청수는 카메라에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6/45을 맞추는 로또 복권이 남았다.
댓글 창은 조롱이 넘쳤다.
ㄴ ㅋㅋㅋ
ㄴ 임청수. 도랏맨?
ㄴ 이건 아니다. 청수형.
ㄴ 차라리 정선을 가자. 거기서 잭팟 터트리는 게 더 가능성 있겠어.
영상을 지켜보고 있는 선수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순신아. 나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그래.”
갑자기 영상을 지켜보던 선수들의 눈이 커졌다.
- 8, 20, 6, 39, 43, 22 -
놀랍게도 임청수가 카메라에 공개한 로또 번호와 일치했다.
금액은 무려 60억원!
ㄴ 이거 실화여?
ㄴ 대한민국 축구계의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ㄴ 청수형. 축하해.
ㄴ 구단을 인수할 게 아니라 당장 아파트 계약부터 하러 가자.
ㄴ 이 형은 전생에 이순신이었나? 대박!!!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이게 왜?’
임청수의 정신은 멍해졌다.
본인조차도 실제로 당첨될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어… 어… 그러니까.”
그의 눈은 갈 곳을 잃다가 결국 방송을 종료했다.
급작스러운 방송 종료 후 그는 잠적했다.
임청수는 청수는빤스대표로 불리며 한동안 조롱을 당했다.
- 국가대표출신 전직 축구 선수 임청수. 60억 복권에 당첨-
- 임청수 선수 약속대로 구단을 인수할 것인가? -
- 임청수 잠적 중, 당첨금은 수령한 것으로 알려져… -
영상이 종료되고 불이 켜졌다.
“뭐 얼추 이런 상황입니다.”
임청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단순한 로또 당첨이 아니었다.
무려 1등.
더군다나 구단 인수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상황.
덕분에 대한민국은 임청수 이야기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순신은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러니까 저 형님이 로또 1등에 당첨되었고, 그걸로 지금 구단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
선수들의 가슴과 머리도 혼란해졌다.
‘그런데 구단 인수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음음.”
임청수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뭐 어떻게 보면 세컨드 찬스 시즌 3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임청수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등 뒤로는
- 꿈 FC -
라는 글자가 보였다.
“나 저거 들어봤어.”
이순신이 김혁규를 바라보았다.
“스페인에 한국인 선수들로만 이루어진 팀이 있다고 했는데, 7부인가 6부인가…”
그때 임청수가 말했다.
“나와 함께 스페인을 정복하러 갈 사람?”
스.페.인.정.복?
땅이든 바다든 뭐든 빼앗기만 했던 나라를 정복하러 가겠다고?
심지어 축구로 스페인을?
‘로또 당첨되고 머리가 맛이 간 건가? 저 사람은 정상은 아닌 거 같애. 그러니까 경기중에 상대선수 뒤통수를 후려치지…’
하지만 임청수는 궁서체였다.
누구보다 진지했다.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순신이 주장답게 손을 들고 말했다.
“사실 로또에 당첨되고 며칠동안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현실 감각이 없어졌거든요. 당첨금을 수령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돈 가지고 한국을 떠야하나, 조용히 쥐죽은 듯이 살아야 하나, 그런데 숙명이라고 느꼈습니다. 임청수는 공약대로 구단을 만들 겁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이바지를 할 겁니다.”
선수들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달랐다.
‘이거 하마터면 깜박 속겠는데?’
임청수에게서 왠지 모르게 루카의 향기가 느껴졌다.
“사실 당장 제가 구단을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중 재미있는 팀을 찾았습니다. 로또로 번 돈을 모두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팀을요.”
“그게 세찬 FC?”
“아니요. 스페인에 있는 꿈 FC입니다.”
꿈FC에 대한 관련 동영상이 틀어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스페인식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
어딘가 모르게 세찬 FC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꿈 FC 대표님과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나랑 함께 스페인 갑시다. 5부리그 씹어먹고, 4부리그 진출해서 국왕컵에 나가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도 씹어먹고 우승컵 들어 볼 야망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때 이순신이 손을 들었다.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연봉 2천, 출전수당 10만 원, 골수당 10만 원, 우승 수당은 개인당 천만 원씩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숙식 및 체류에 들어가는 비용은 꿈 FC에서 지원할 겁니다.”
선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너무 짠 거 아냐?”
“나 화성에서 제의받은 게 훨씬 좋은데?”
“하지만 언제 스페인을 또 가보냐?”
“정신 차려. 국내 리그도 지금이 기회야. 괜히 해외에서 똥싸다간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이 손을 들었다.
“전 가겠습니다.”
이순신의 선언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야. 미쳤어? 이 조건은 솔직히 아니잖아?”
“넌 울산이랑 수원에서도 제의받았잖아?”
“기껏 잡은 기회를 망칠 생각이야?”
“이순신.”
급기야 안태리가 나섰다.
“너 국가대표가 목표라며? 기껏 다시 잡은 재기의 기회를 날릴 생각이냐?”
“아니요. 전 국가대표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잡으면 좀 더 빨리 승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충격과 경악.
이순신은 결정타를 날렸다.
“국가대표가 되어 국가대표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