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44화 (45/161)

44화. 엄청난 제안들

세찬 FC의 숙소.

이순신은 따스한 햇볕을 덮으며 잤다.

어제 라커룸에서 기절한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마침내 이순신은 눈을 떴다.

“아- 잘 잤다.”

이순신은 두 팔을 벌리며 기지개를 켰다.

“이제야 꿈에서 깨어났나?”

“꿈이라고요? 누구신지…?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한 남자가 자신을 바라봤다.

역광으로 인해서 얼굴이 제대로 안 보였다.

이순신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자,

눈동자가 커졌다!

“임청수 선수?”

임청수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2002년 레전설 임청수다.”

“아…안녕하세요.”

이순신은 그의 플레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동영상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임청수는 당시 20대 초반.

대표팀에서 무서운 막내로 불렸다.

그는 안태리, 김구름, 이갑용, 황보와 더불어 2002년 월드컵에서 함께 활약한 공격수였다.

다만 2002년 월드컵에서는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강렬한 임팩트와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멤버들 중 가장 먼저 빅리그에 진출했다.

비록 그것이 훗날 화근이 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감으로 무장한 임청수는 첫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임청수 선수 슛! 아 동료팀 선수가 골을 가로채서 도움으로 기록됩니다.”

출발은 좋았다.

이후에 이어진 인터뷰도 당돌했다.

- 몸값을 올려서 레알 마드리드에 갈 것.-

ㄴ 실력부터 키우는 게…

ㄴ 혀청수. 나대지 마라.

ㄴ 아무리 월드컵 4강이래도 맨유, 아스널 같은 빅클럽은 솔직히 앞으로도 힘들지 않나?

ㄴ 그나마 안태리가 가능성이 젤 크지.

ㄴ 황보형이 5살만 어렸어도 충분히 바르셀로나는 갈 수 있었을 텐데 ㅠ.ㅠ

“흥. 두고 보라지! 나 임청수야! 노력으로 재능을 이긴 천재!”

임청수는 자신에게 달린 악플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시아의 베컴으로 불리며 위력적인 돌파를 보여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너 위컴’마저도 못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라리가에서 0골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을 남겼다.

‘할만큼은 했다. 돌아가자.’

결국, 향수병으로 국내에 돌아온 그는 향수 광고 CF를 따내기도 했다.

오만한 천재라느니, 건방지다는 비난들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나 K리그에서는 그 누구도 임청수를 욕할 수 없었다.

“임청수 골입니다!”

“올 시즌 MVP에는 울산 근대의 임.청.수.”

그는 축구계에서 파란만장한 발자국을 남겼다.

임대, 임의탈퇴, K 리그복귀 등 어쨌거나 아름다운 마무리로 현역생활을 은퇴했다.

“천재가 아닌 악바리로 팬들에게 기억되길 원합니다.”

이처럼 입담이 뛰어났던 임청수는 많은 방송을 출연하며 셀럽의 삶을 살다가 서서히 잊혔다.

하지만 그의 과거 기행이 요즘 시대에는 워낙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노룩 엘보우,

심판에게 주먹 감자를 날리고 총쏘기,

이탈리아 수비수 뒤통수를 고의로 후려치기,

침대축구하는 중동 선수에게 손찌검하려고 했던 일 등은 예의범절을 중요시하는 아시아에서는 보지 못한 캐릭터였으니까.

현재는 축구 전문 콘텐츠 채널에서 축구 강의나 2002년 추억 팔이 같은 축구 콘텐츠를 운영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어요?”

“너 한번 보고 싶어서 왔다.”

“저를요?”

이순신은 임청수가 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세컨드 찬스 재밌게 잘 보고 있거든. 너 혹시 청수는국가대표는 보냐?”

“그게 뭐죠?”

‘청수는국가대표’는 임청수가 운영하는 채널이름이었다.

“뭐? 나중에 꼭 구독과 좋아요. 박아라. 그런데 너 경기 끝날 때마다 이렇게 매번 쓰러지는 건 아니지?”

“아닙니다. 마지막 경기라 모든 힘을 다 쏟아서 그렇습니다.”

이청수가 약간 놀랐다.

“요즘도 이런 선수가 있네? 하하. 나 때 우리 팀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투혼의 대한민국. 좀 짱이지?”

“아… 네.”

“요즘은 너 같은 선수들이 참 드물어. 역시 한 번 보러 오길 잘했네. 이래서 사람은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니까. 소문대로 진짜 싹수없는 놈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 놈이네? 하하.”

“하하…”

임청수가 호탕하게 웃었다.

이순신도 따라 웃었다.

그의 호탕함이 싫지는 않았다.

갑자기 임청수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프로그램은 끝났는데 혹시 이후에 일정은 생각해둔 게 있어?”

“아직 정해진 건 없습니다. 일단 여러 제안이 오면 한 번 검토해보려고요.”

“음.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한 거지?”

“일단은요. 엄마도 힘들게 고생하고 계시고… 저 때문에 희생을 많이 하셨으니 이제는 제가 보답해야죠.”

이순신은 고생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

“축구랑 가족 중에서 네 선택은?”

“네?”

갑자기 치고 들어 온 밸런스 게임에 이순신은 당황했다.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

이순신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축구입니다.”

엄마가 들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이순신에게는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이었다.

숙명.

한국 축구의 대참사를 막기 위해 그는 지금껏 고군분투하고 있다.

“축구.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 그게 제가 참회하는 길이니까요. 백의종군하듯이 저를 원하는 팀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서 뛸 겁니다.”

“너의 최종 목표는 뭐야?”

“선배님들이 이룬 4강 신화를 넘어서 월드컵 우승을 하는 겁니다.”

이순신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결의에 찼다.

순간 임청수는 이순신 등 뒤에서 거센 파도 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전진하는 거북선이 보였다.

“크크. 재밌네. 이왕이면 큰물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벅저벅 걸어서 방문을 열었다.

나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몸조리 잘하고.”

그는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큰물에서? 무슨 뜻이지?”

이순신이 갸우뚱하는 사이에 안태리가 들어왔다.

“몸은 좀 괜찮냐?”

“네. 감독님.”

“그래도 이번엔 좀 빨리 일어났네?”

이순신은 머리를 긁적였다.

최소 1주일은 누워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청수랑 무슨 이야기 했어?”

“그냥 자기 자랑 좀 하고,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축구랑 가족 중에 뭐 선택할지도 물어보고.”

“하- 또라이 새끼.”

안태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역시 한 성격하지만, 임청수는 결이 달랐다.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이제 세찬 FC는 끝이죠?”

이순신의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담겼다.

그런 모습을 보던 안태리는 팔짱을 끼며 뜻밖의 대답을 했다.

“세찬 FC는 끝났지만, 방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내일쯤 세찬 FC는 해산식을 할 거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너희들의 근황을 다뤄서 연장전이라는 이름으로 특별방송을 할 거거든.”

“아… 결국, 끝이군요.”

이순신은 아쉬웠다.

지난 3개월이 꿈만 같았다.

비슷한 처지의 선수들과 만남,

입단 테스트를 보려고 했던 k3 소속의 화성FC를 이기고, k2 리그에 소속된 대전도 이기고,

무려 k 리그 챔피언인 울산도 이겼다.

만약 다시 붙는다면?

또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순신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제 함께 뛰었던 선수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모두 안 된다고, 퇴물이라고, 축구 선수로는 끝났다고 비난과 악담을 퍼부었던 사람들에게 이순신과 세찬 FC는 증명했다.

안티팬도 팬으로 돌아서게 했다.

특히 이순신의 가장 큰 안티팬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도 이제는 그의 편이 됐다.

가게에 있는 TV에서는 이순신의 모습이 담긴 세찬 FC가 연속으로 나왔다.

“쟤가 우리 아들이에요. 이순신.”

“와 멋진 아들을 두셨네요.”

“감사합니다. 여기 서비스 좀 더 드려야겠네.”

이순신 덕분에 엄마가 운영하는 불백집은 손님이 늘었다.

안태리는 감상에 빠진 이순신을 단숨에 깨워버렸다.

“왜 끝이야? 축구 선수로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

이순신이 고개를 들었다.

안태리가 A4 용지를 내밀었다.

“이건?”

“순신이 너한테 꽤 많은 제의가 들어왔다. 그중에서는 K리그 팀도 있어. 축하한다. 이제 다시 제대로 축구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다른 애들은요? 혁규나 구멍은요? 경풍이 형은요?”

“물론. 게네들한테도 지금까지 온 제안을 건네줬다. 너희가 울산을 이기는 바람에 막판에 문의가 더 쏟아졌어.”

“다행이다.”

이순신은 씨익 웃으면서 자신에게 제안이 들어온 팀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나 많아요?”

“우리도 놀랐다니까. 너를 비롯한 선수들은 세컨드 찬스를 제대로 잡았어.”

안태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무려 열 군데 팀에서 입단제의가 왔다.

조건은 천차만별.

그중에서는 무려 K리그 팀인 수원과 울산도 있었다.

“K리그? 이거 실화에요?”

“유일하게 K리그에 제안을 받은 건 너뿐이다. 이순신.”

이순신은 조심스럽게 그들이 제안한 조건을 살펴봤다.

이내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연봉은 낮네요. 오히려 연봉만 놓고 보면 K2 리그가 더 나은 수준이네요.”

이전에 제의를 받았던 2부리그보다도 낮은 수준.

하지만 출전수당과 골 수당으로 그 부분을 메꿔주고, 1년 후 2년 재계약을 하겠다는 옵션이 붙었다.

“어쩔 수 없지. K리그 로컬룰에 의한 신인 선수 계약 연봉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도 K리그에서 뛸 수 있다는 건 분명한 메리트지. 다만…”

안태리가 말끝을 흐리자 이순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볼 땐 k2 리그도 나쁜 선택은 아니야. 너도 잘 알겠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아직 젊으니까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가면서 적응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안태리의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그런데도 이순신의 표정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찬희나 상재도 다 2부나 하위리그부터 시작했다. 아까 나간 청수가 맨유에서 활약한 성지처럼 차근차근 올라갔으면 한국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 됐을 거다!”

“그게 아니라…”

“무슨 문제 있어?”

“혹시 제안 온 팀은 여기 있는 팀이 전부인가요?”

“응. 혹시 기대했던 팀이 아니라서 그래? 어디 가고 싶은데? 내가 연결은 해줄 수 있어. 입단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 하지만…”

안태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약간 화가 났다는 뜻이다.

“혹시 해외 리그에서 연락 온 건 없나요?”

“해외? 왜? K리그 우승팀 이겼다고 네가 라모스나 반 다이크라도 된 줄 알아? 너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아 K리그를 무시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에요…아까 청수형 말이 신경 쓰여서요. 큰물에서 보자길래 혹시 해외에서도 오퍼 온 게 있나 싶었죠.”

이순신은 기절하기 전에 충무공이 준 보상이 신경 쓰였다.

해외 진출.

그런데 이순신에게 제안 온 팀 중에 해외팀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보상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은 적은 없는데…’

안태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청수. 이 자식을 진짜. 괜히 애들한테 헛바람 넣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왜 그러세요?”

“그것도 해외 진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난 말리고 싶다…”

임청수와 해외 진출.

도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순신은 해산식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또한, 안태리 감독이 왜 그렇게 말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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