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정신적 지주
이청조가 강렬하게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어릴 때부터 프로팀에서 뛰었던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 후 오랫동안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면서 국위 선양을 했다.
그러던 중에 상대 수비수의 인종차별이 담긴 태클로 정강이가 부러지는 사고도 겪었다.
자료화면으로 나온 것만 봐도 사람의 정강이가 저렇게 부러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끔찍한 부상이었다.
그렇게 1년을 온전히 재활에만 쏟아부었다.
‘이제 이청조는 끝났어.’
그의 오랜 팬들도, 관계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치명적인 부상.
1년이라는 공백 기간은 프로 선수에게 너무나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의 포지션은 더군다나 측면 공격수와 사이드 미드필더.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가 쉼 없이 요구되는 포지션이었다.
심지어 측면 쪽은 이상재처럼 대체 자원이 넘쳤다.
모두가 끝났다고 할 때.
이청조는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섰다!
“이청조 선수 슛! 골입니다! 장장 1년 6개월 만에 복귀한 경기에서 골을 넣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푸른 불사조, 푸른 주작으로 불렸다.
비록 전성기에 비하면 임팩트는 줄었지만, 이청조가 주는 이름의 존재감은 아직 건재했다.
그 역시 어느덧 30살.
유럽에서 도전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K리그의 부흥을 위해 과감히 국내로 복귀했다.
그리하여 지난 시즌 울산 근대가 챔피언이 되는데 일조했다.
올해는 연습 중에 대수롭지 않은 부상이 있었지만, 황보 감독은 행여라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까 봐 특별 관리했다.
“안 돼. 앉아있어.”
“내보내지도 않을 거면 저를 왜 참가자명단에 넣으셨어요!”
황보 감독은 단호했다.
부상 중인 이청조까지 나갈 만큼 울산은 약한 팀이 아니었으니까.
“왜냐고? 넌 정신적 지주니까.”
황보 감독이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랜 경험과 동료를 격려하는 행동, 비록 그가 부상 중임에도 벤치에 앉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것이 그라운드 밖에서 그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울산 근대. 동점골을 넣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세찬 FC의 수비가 너무나 견고합니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비진은 울산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냈다.
세찬 FC는 막기에 급급할 뿐,
감히 공격할 엄두를 못 냈다.
하프라인 근처에 있는 방성찬과 이만수는 공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방패연을 사용합니다.]
[회복침을 사용합니다.]
[언성을 사용합니다.]
이순신은 스킬을 사용하여 우주 방어를 펼쳤다.
생각하고 무엇을 사용할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사용했다.
“구멍. 나이스!”
“지선이 형. 멈춰!”
구멍, 정지선과 호흡도 좋았다.
설령 수비진을 뚫었다고 해도 보경풍이 든든하게 골문을 버텼다.
‘또 막힐 거 같은데… 차라리 슛을…’
이순신의 위치선정이 어찌나 교묘하던지, 윤빛강은 드리블보다는 중거리로 의외의 한 방을 노렸다.
“이순신 선수의 발에 맞고 코너킥이 선언됩니다!”
“젠장!”
윤빛강은 코너킥을 얻었음에도 오히려 화를 냈다.
양 팀의 코너킥 개수는 22 : 5.
울산이 숫자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골로 이어지진 않았다.
“울산 공격수의 헤딩! 아! 보경풍 선수가 뛰어올라서 깔끔하게 잡아냅니다!”
보경풍이 길게 찬 공을 오진성이 받았다.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툭툭 드리블을 쳤다.
하지만 몇 미터 가지 못하고 멈췄다.
“웰컴 투 뷜트하우스!”
뷜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울산의 수비진이 어느새 다 복귀했다.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울산은 확실히 한 수위의 기량을 가졌다.
“하-”
오진성이 할 수 있는 건 횡패스로 김혁규나 윤광섭에게 공을 주고받는 것뿐이었다.
치열한 수비로 인해서 경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좀 지루한데?”
“이러다가 끝나는 거 아냐?”
“세찬 입장에서는 이대로 끝내는 게 베스트지.”
“그래도 조금 아쉽다.”
오히려 골이 터지기 전 상황이 재밌었다고 관중들은 느꼈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15분.
“15분. 15분만 버티자!”
이순신이 팀원들을 독려했다.
이대로 버티면 울산 근대를 꺾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보상도 훌륭했다.
[울산 근대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십시오.]
[보상 : 비격진천뢰 횟수 +1 증가, 성공 시 상대 팀 사기 저하, 후원 장비칸 해제]
‘비격진천뢰 횟수가 늘어난다는 건 정확도를 더 올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골을 넣으면 상대편 사기가 떨어진다는 건 골 한 방으로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순신은 장비칸 중 하나인 후원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대충 스폰서 개념일 거 같긴 한데…’
이순신의 예상은 대충 맞았다.
아마추어 선수 중에서도 인기도에 따라서 대기업 스포츠 회사에서 개인 후원을 하는 일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 모든 혜택은 울산 근대를 이겨야지만 생겨나는 법.’
이순신이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오히려 그 기세에 울산 선수들이 기세에 살짝 눌린 듯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냐?”
“이란 놈들 침대 축구랑 너네랑 다를 게 뭐 있어?”
“관중들 지루해하는 거 안 보여?”
“여기서 너희가 이겨도 우리가 K리그 챔피언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
“평생 그따위로 축구를 하니까 프로에 못 간 거야.”
수위가 점차 높아져서 끊임없는 패드립 오브 패드립.
울산 근대의 선수들은 끊임없이 도발했다.
세찬 FC의 선수들은 그 누구 하나 발끈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침착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지키며 게임을 풀어나갔다.
“이 자식들. 우리 말이 들리지 않나? 이 정도 도발이면 빡칠 만도 한데?”
‘응. 안 들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윤빛강의 생각대로였다.
세찬 FC는 울산 근대 선수들이 하는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노이즈 캔슬링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발동시킨 주장 효과로 인해서 선수들은 비난, 야유, 도발이 알아서 필터링 됐다.
울산의 계속되는 공격 실패에 그들을 응원하던 순정 마초들은 깡패가 됐다.
“이 자식들아! 너희 연봉이 얼만데 저런 놈들한테 지는 거냐!”
“세찬 FC 연봉 합쳐도 윤빛강 반도 못 미친다!”
“그러고도 너희가 디펜딩 챔피언이냐?”
“오늘부터 난 수원이나 응원하련다!”
뷜트하우스는 팬들을 노려봤다.
‘18… 답답하면 너희가 뛰던지.’
오히려 울산 선수들의 멘탈이 서서히 무너졌다.
황보 감독도 이를 인지했다.
축구공은 둥근 법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져서는 안 될 경기였다.
울산 근대는 챔피언이니까!
그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청조. 준비해.”
“넵!”
이청조는 아까부터 몸을 풀며 황보 감독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울산 근대가 선수교체를 합니다! 이청조 선수가 나옵니다!”
이청조가 나오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가 쌓아온 경력만큼 팬들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청조 선수. 얼마 전까지 부상이었다고 들었는데 오늘 컨디션 점검 겸 나온 모양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나 할까?
이주성은 동점을 넘어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세찬 FC도 마찬가지였다.
“아씨. 이건 좀 오바 아냐? 이 타이밍에 프리미어 출신 국가대표라니!”
“지금도 개빡셌는데 이청조가 들어오면…”
“막을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이 자식아. 넌 반대편에 있어서 부딪힐 일이 없지만, 난 탈탈 털리게 생겼다고!”
그만큼 이청조가 주는 이름값은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
“이청조가 뭐 어쨌다고?”
세찬 FC의 선수들이 일제히 이순신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10분밖에 안 남았어. 한 골 더 넣어서 쐐기 골을 박아버리자.”
골을 지키는 게 아니라 골을 넣자고?
세찬 FC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미친놈. 그런데 저놈이 말하면 될 거 같단 말이지.’
탈탈 털릴 생각을 하던 조문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공만 넘겨주면 어떻게든 슛이라도 때려볼게.”
방성찬도 이순신의 의견에 동조했다.
“침착하시오. 이대로 잘만 버티면 우리가 이길지도 모르는데 왜 무리해서 공격하려고 하시오?”
구멍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니까. 내가 볼을 길게 차면 그때가 바로 역습 찬스야!”
어쩌면 이순신은 지금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둔 것이기도 했다.
끝이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공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 것.
경기가 끝날 때까지 채널을 돌리지 않게 하는 것이 이순신이 추구하는 축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순신의 바람대로 되진 않았다.
“이러면 나가린데?”
윤빛강의 발에서 시작된 패스를 받은 이청조는 날개를 단 듯 날아올랐다.
측면을 뚫리는 걸 이순신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청조가 뭐라고!”
조문돈이 태클을 날렸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우리 청조 다치면 가만 안 둔다!”
“꺼져. 문신충!”
울산 팬들로서는 조문돈의 과감한 태클은 PTSD를 유발했다.
이청조를 다치게 한다는 건 철천지원수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휘익-
하지만 이청조는 역시 클라스가 달랐다.
조문돈의 태클을 가볍게 제쳤다.
측면에 빈 곳이 생기자 이청조는 드리블을 시도했다.
전성기에 비하면 속도가 준 상태.
그렇지만 세찬 FC 선수들의 눈에는 미친 속도였다.
이청조의 돌파를 막아선 건 이순신이였다.
“너구나. 와- 기세는 이미 프로인걸?”
이청조가 씨익 웃었다.
국가대표팀의 김재민이 떠올랐다.
둘 다 신장이 크고 덩치도 좋았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리더쉽도 좋았다.
“재민이랑 비슷한 나이 같은데 실력은 비슷할지 모르겠네.”
이청조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자세를 잡고 대응했다.
데구르르-
이청조가 이순신의 다리 사이로 공을 보내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이청조 선수! 이순신 선수를 가볍게 제칩니다!”
이순신은 재빨리 몸을 돌려서 이청조를 따라갔다.
‘생각보다 빠르네? 몸싸움 붙으면 내가 바로 날아가겠는걸?’
이청조는 슬쩍 보더니 정지선 옆에 있는 공격수 뒤쪽으로 공을 띄웠다.
정지선이 따라가려고 한순간,
“멈춰!”
보경풍이 정지선에게 강력하게 말했다.
공을 잡은 울산의 공격수는 그대로 터닝슛을 날렸다!
하지만 공은 아쉽게도 골대 위로 날아갔다.
“울산의 슛! 아쉽게도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투입된 이청조 선수로 인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휴.”
이순신은 한숨을 쓸어내렸다.
아마 보경풍이 없었다면 영락없이 한 골을 내줬을 상황이었다.
중원의 윤빛강, 측면의 이청조가 펼치는 울산의 공격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약간씩 어긋난 톱니바퀴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거 같았다.
5분 동안 이주성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이청조였다.
“이청조 선수. 측면에서 공을 잡았습니다. 좌우 측면을 가리지 않고 돌격합니다! 구멍 선수와 홍반봉 선수가 달려갑니다.”
이청조는 개인기로 두 사람을 제치려고 했지만, 홍반봉의 커트에 넘어졌다.
“울산 근대가 프리킥을 얻습니다.”
[빙의를 사용했습니다.]
[회복침을 사용했습니다(0/3)]
이순신은 홍반봉의 몸에 빙의해서 이청조의 움직임을 적절한 반칙으로 끊어냈다.
[더블 상태가 해제 됩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