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41화 (42/161)

41화. 페널티킥 허용

후반전이 시작되자 세찬 FC는 변화를 줬다.

4-2-3-1 전술 대신 4-4-2로 변경했다.

안태리는 지친 남주작 대신 윤광섭을 투입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고 있던 고상인 대신 최전방에 이만수가 들어갔다.

수비를 강화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공격에 좀 더 비중을 두는 전략이었다.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아마 이런 긴장감과 피로도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 45분이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개같이 뛰어보자!”

그러자 스킬이 발동됐다.

[배수의 진이 발동합니다.]

[선수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이순신의 격려에 세찬 FC 선수들은 각오를 다졌다.

[더블을 사용합니다.]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빙의를 사용하면 더블 상태가 풀립니다.]

이순신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세컨드 윈드 더블’을 사용했다.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

울산의 공격은 파도처럼 거침없이 휘몰아쳤다.

아무리 견고한 모래성이라도 휩쓸리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맹렬했다.

“순신 시주! 막으시오!”

“멈춰!”

“위치 지켜!”

구멍, 이순신, 정지선, 보경풍은 대화를 하며 끊임없이 소통했다.

목이 터져라. 외친 것이 효과가 있는지 울산의 공격을 잘 막아냈다.

울산 근대 공격의 핵심인 윤빛강의 드리블도, 패스도, 감아 차기도 번번이 막혔다.

“윤빛강 선수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듯합니다. 교체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윤빛강이라도 나가면 세찬 FC에게 조금이라도 좀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주성의 바람을 윤빛강과 황보 감독이 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점점 윤빛강의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순 없지.”

윤빛강은 세찬 FC의 선수들이 롤모델로 삼아도 충분히 될 만큼 축구 인생 굴곡이 심했다.

그 나이대에 윤빛강만큼 특출난 선수는 없었다.

천재 오브 천재.

윤빛강의 마음속에서 자만심과 자부심이 자라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축구는 재능순이 아니다.

천재라 불리는 선수 중 한 명이었지만, 이적 문제로 자칫 축구 커리어가 끝날 뻔했다.

유명세를 치르듯 어쩌면 사소한 발언일 수 있으나 기자들이 부풀려서 여론을 형성했다.

윤빛강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했지만, 어린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시점. 그는 축구가 너무 재미없었다.

-올림픽 대표 최종선발 완료. 윤빛강 제외-

같이 뛰던 선수들이 올림픽 대표에 선발될 때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윤빛강 해외 진출 이적 무산-

또 다른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추진한 해외 진출도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한테만…’

결국, 축구 선수로서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를 잃었다.

ㄴ 윤빛강. 그 쌉퇴물새끼!

ㄴ 먹튀 새끼. 넌 이쪽으로 오줌도 누지 마라.

ㄴ 천재라고 떠받쳐주니까 기고만장해서는.

ㄴ 윤빛강은 천재 맞습니다. 무득점의 천재, 팀킬 패스의 천재,

ㄴ 일단 군대부터 가자. 해병대로!

오죽하면 이전 소속팀 중 하나에서는 윤빛강의 이름이 언급되면 욕부터 나왔다.

진짜 축구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

옛 은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 윤빛강 아직 죽지 않았네! -

- 천재는 더 침묵하지 않는다. -

- 스승과 제자의 감동적인 부활 스토리! -

윤빛강은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이적한 팀에서 부활의 빛을 뿜었다.

유럽은 아니지만, 중국, 일본, 중동에서 자신이 왜 천재라고 불렸는지 보여주며 당당히 금의환향했다.

만년 2위였던 울산 근대가 1등을 차지하기 위해 황보 감독을 영입했고, 그런 그가 가장 먼저 영입했던 건 바로 윤빛강!

대한민국 최고의 팀인 울산 근대에 오기까지 험난한 인생 굴곡을 거치며 이제는 레전드의 길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뜻밖의 굴욕을 당하는 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윤빛강이 공을 잡자 구멍과 이순신이 달려들었다.

‘이 자식들은 진심으로 우릴 이겨 보겠다는 건가?’

그는 세찬 FC의 눈빛을 보았다.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축구로 꼭 재기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흡사 자신이 그들의 앞길을 막는 것 같은 기분이 잠시나마 들었지만, 윤빛강은 프로였다.

‘마음 같아서는 져주고 싶지만, 너희가 진짜 축구 선수가 되려면 능력껏 이겨 봐!’

윤빛강의 플레이 스타일은 평소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평소보다 한 발자국 더 뛰기 시작했다.

꼭 이기고 싶어졌으니까.

힐끗.

그는 옆에 들어오는 동료를 보았다.

툭.

동료에게 패스했다.

구멍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멈춰!”

이순신이 제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울산의 선수는 다시 윤빛강에게 패스했다.

감각적인 2:1 패스로 단숨에 세찬 FC의 진영을 무너트렸다.

“윤빛강 선수. 구석을 보고 크로스를 올립니다!”

윤빛강은 견고한 중앙보다는 조문돈과 홍반봉이 있는 측면을 노렸다.

“뺏을 생각하지 말고 붙기만 해. 각만 줄이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막아볼게!”

조문돈과 홍반봉은 이순신의 지시대로 섣불리 뺏기기보다는 각을 좁히는 데 주력했다.

“울산 근대의 크로스!”

세찬 FC는 잦은 크로스를 허용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세찬 FC는 거의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그러나 크게 위력적이진 못했다.

이순신은 집중력 있게 공을 걷어냈다!

오히려 뷜트하우스의 잦은 오버래핑으로 울산은 역습 기회를 허용했다.

“올라가!”

이순신이 구멍에게 패스했다.

구멍은 원터치로 오진성에게 공을 주려고 했는데 검은 물체가 빠르게 다가왔다.

쿵!

“으으윽!”

구멍이 신음을 내뱉으면서 뒹굴었다.

뷜트하우스의 의도적인 반칙이었다.

그는 구멍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어서 옐로카드는 면했다.

뷜트하우스는 씨익 웃더니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구멍. 괜찮아?”

“소승은 괜찮소. 그런데 저 외국인 노동자는 상당히 노련하구려. 내심 퇴장도 기대해봤건만.”

구멍이 어깨를 어루만지며 아쉬워했다.

어쨌거나 세찬 FC는 간접 프리킥을 준비했다.

킥이 좋은 이순신이 오진성 쪽으로 찼다.

“성찬이 형!”

오진성이 날아오는 공의 방향을 틀어서 방성찬에게 바로 연결했다.

방성찬은 옆으로 흘려주기보다 그대로 강력한 발리슛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뷜트하우스도 속수무책이었다.

“주우현 선수. 몸을 날립니다.”

주우현이 몸을 날려서 공을 튕겨냈다.

흘러나온 공을 이만수와 뷜트하우스가 달려들었다.

“꺼져!”

“너나 꺼져!”

삐이이익-

“아 뷜트하우스 선수의 태클이 조금 위험했다는 주심의 판단입니다!”

이만수가 공을 잡으러 가다가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뷜트하우스의 태클에 어깨를 가격당했다.

“만수. 괜찮아?”

방성찬이 재빨리 달려왔다.

“멀쩡해! 일단 이 기회를 잘 살려야지!”

사실은 이만수는 멀쩡하지 않았다.

교체되자마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허세를 부렸다.

이순신과 방성찬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심판은 세찬 FC에게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와아아아아-”

“심판! 눈이 삐었냐?”

“포청천이 따로 없네!”

관중들은 흥분했다.

골이 터지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는 경기였지만, 역시 축구는 골이 터져야 재밌다.

드디어 골이 터질 타이밍이 왔다!

“형이 찰래?”

“아니…”

“그럼 만수 형은?”

“아냐. 나 지금 다리가 떨려서 서 있는 게 고작이야.”

결국, 이순신이 공을 찰 준비를 했다.

“이순신과 주우현의 1:1 대결. 아무리 주우현 선수가 국가대표 골키퍼라고 해도 페널티킥은 전혀 다른 영역이죠!”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관중들 역시 당연히 이순신이 골을 넣을 거라고 예상을 넘어서 확신하는 상황!

‘이거 부담감이 장난 아닌데?’

정작 이순신은 신중했다.

이순신과 주우현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주우현의 눈을 오래 보면 안 돼. 그럼 읽혀.’

이순신은 보경풍이 조언한 대로 재빨리 시선을 회피했다.

주우현은 씨익 웃었다.

‘심리전은 내가 이겼어.’

주우현의 페널티킥 방어 성공률은 꽤 높았다.

시뮬레이션에서도 50%의 방어율을 자랑했다.

그 이유가 바로 심리 싸움에 능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마친 이순신을 발을 구르며 앞으로 뛰어갔다.

주우현이 침을 삼켰다.

‘왼쪽? 오른쪽?’

전반전에 이순신의 강력한 슈팅을 경험해봤기에 방향을 찍고 몸을 날릴 계획이었다.

0.1초 차이로 놓칠 수 없었으니까.

이순신의 발등이 공에 닿았다!

‘왼쪽이다!’

주우현은 이순신의 스텝과 발의 방향을 끝까지 파악한 끝에 결정했다.

‘뭐야?’

주우현은 당황스러웠다. 예측한 방향이 완전히 빗나갔다.

심지어 강슛을 날릴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이순신이 찬 공이 매우 느리게 중앙 쪽으로 날아갔다.

[비격진천뢰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성공률은 70%.

‘이 정도면 오늘 경기중에서 가장 높은 성공률이지.’

이순신은 간절하게 공을 바라보았다.

“이순신 선수의 선택은 파넨카킥입니다!”

체코의 파넨카란 선수가 차기 전까지 골키퍼 정면으로 느린 슛을 차는 선수는 없었다.

그 이후 수많은 선수가 그를 모방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페널티킥의 다른 이름은 승부차기.

한 번의 슈팅과 한 번의 선방이 경기의 승부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했다.

이순신은 반사신경이 매우 뛰어난 골키퍼라는 점을 역이용했다.

“망했어.”

뷜트하우스는 눈을 질끈 감고 단념했다.

“이대로 멍청히 보고만 있지 않아!”

주우현은 몸을 바닥에 재빠르게 밀착시켰다.

팔을 개구리처럼 튕기며 발을 뻗었다.

‘미친. 저게 가능해?’

이순신의 파넨카킥은 제대로 허를 찔렀지만, 너무 느리게 날아가는 게 문제였다.

성공률이 70%라는 건, 실패할 확률도 30%라는 뜻이었다.

주우현의 발에 공이 닿았다.

이제 이 공이 어디로 튕기느냐에 따라서 세찬 FC의 운명이 달렸다.

이순신이 파넨카킥을 날릴 때 양 팀 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여우 구슬에 홀린 듯 공만 바라봤다.

‘아차- 공을 걷어내야 해!’

뷜트하우스가 마음을 먹은 사이에 이순신은 이미 공을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황자포를 사용합니다.]

[골 에어리어에서 강력한 헤딩슛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페널티킥 거리에서 골대까지 방패연을 사용하기에는 거리가 다소 멀어. 그렇다면!’

천지현황의 황자포를 사용하면 공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히 다이빙 헤딩을 했다.

“맞아라!”

공을 향해 이순신이 머리를 날리자 주우현이 재빨리 다리를 접었다.

‘이런 미친!’

툭!

이순신의 머리에 맞은 공이 그물을 출렁거렸다.

곧바로 이순신의 몸도 그물에 엉켰다.

“골입니다! 골! 이순신 선수의 골! 팽팽한 균형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그제야 이순신이 웃었다.

하지만 울산 근대 벤치에 앉아있던 푸른 주작 이청조는 불타올랐다.

“감독님. 저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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