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장외설전
삐이이익-
경기가 끝남을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렸다.
“와! 세찬! 세찬! 세찬!”
세찬 FC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관중석에 울려 퍼졌다.
언더독.
세찬 FC는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축구계에서는 엄연히 약자였다.
그간 방송을 통해서 시청자들은 하부리그의 실정을 알게 됐다.
2부 리그라고 해도 엄연히 돈은 받고 뛰는 프로들이었으며, 한때 촉망받던 유망주들이 k3도 못 가는 실정.
팀의 성장과 좋은 경기 결과와 예상치 못한 대어들을 낚음으로써 세찬 FC는 장감독의 ‘인천’, 한국판 ‘레스터시티’,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돌풍을 일으켰다.
심지어 이들은 프로그램이 종료되면 사라질 비운의 팀!
언더독이란 캐릭터에 이야기가 더해지니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졌다.
그렇기에 팬들은 더더욱 세찬 FC를 응원했다.
ㄴ 세찬 FC 최고예요! 이 맛에 스포츠 보는 거죠.
ㄴ 전직 축구 선수, 지금은 까대기 하는 청년입니다. 저는 다쳐서 신청조차 못 했지만, 옛날에 같이 뛰던 동료들이 멋진 모습을 보이니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ㄴ 안녕하세요. 형제 개그맨 동생 세찬입니다. 덕분에 제 인기도 같이 올라갔습니다. 감사합니다.
ㄴ 죽어도 선덜랜드? 아니죠. 죽어도 세찬 FC.
ㄴ 그냥 이대로 팀 만들면 되는 거 아님? 해체하기 너무 아까움. 국민 청원 갑시다.
ㄴ 요즘 국가대표 하는 걸 보면 차라리 얘네가 뛰는 게 더 나을 거 같음. 세찬 FC를 국가대표로!
ㄴ 이제 한 경기 남았다니 너무 아쉬워요…
이제 남은 것은 단 한 경기.
세찬 FC의 마지막 경기는 k 리그 순위표의 최정점에 있는 대마왕이 기다렸다.
***
안태리는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예상대로 선수들은 굉장히 들떠서 흥분된 상태였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마지막 상대를 알려주기로 했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남은 경기는 1경기다. 이번만큼은 마지막 상대를 사전에 공지하겠다.”
이순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나 대단한 팀이길래 미리 알려주시는 거지?’
선수들은 긴장된 얼굴로 안태리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우리의 마지막 상대는 울산 근대다.”
울산이라는 이름에 선수들의 표정이 변했다.
“울산이요?”
“그래. 다 들어놓고 왜 모른 척이야?”
선수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안태리는 만족한 듯 웃었다.
굳이 이렇게 알려준 이유는 하나였다.
다음날.
스포츠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안태리는 숨길 필요가 없던 것이다.
선수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이거 실화냐?”
“유종의 미는커녕 오대영으로 안 지면 다행아냐?
“프로와의 격차를 제대로 느껴보라는 거지. 안 그래도 막 우리 팀 국가대표 보내야 한다 이런 소리도 나오는 마당에 벨런스 패치 제대로 해보겠는 거지.”
“겁나 너무하네. 망했어. 선발로 나가기 싫다.”
“무슨 소리야! 어쩌면 축구 인생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데… 난 무조건 뛸 거야!”
울산 근대는 현재 k 리그에서 선두를 달리는 팀이었다.
무엇보다 감독부터 시작해서 선수진이 화려했다.
국가대표, 전 프리미어 리그, 천재라 불리던 미드필더, 몸값 비싼 용병들도 수두룩했다.
그 모든 걸 한데 묶은 이는 선수와 감독에서 전설을 찍은 황보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
그는 경기를 앞두고 인터뷰를 했다.
“황보 형. 인터뷰 좀 볼까?”
안태리는 뉴스를 클릭했다.
Q. 작년에 이어 올해도 K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거 축하합니다. 비결이 있습니까?
A. 감사합니다. 부족한 감독의 지도를 선수들이 열심히 따라와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요즘 화제의 중심인 세찬 FC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팬들한테 대마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원래 정상에 있으면 미움을 받는 법이죠. 마음 같아서는 져주고 싶은데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다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희를 응원하는 팬들과 K 리그 우승팀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꼭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Q. 세찬 FC에서 영입하고 싶은 선수가 있는지?
A. 좋은 선수들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울산 근대에서는 자리가 없습니다. 인기와 비교하면 실력에는 약간의 거품이 있다랄까? 오히려 저희 울산팀에 좋은 유망주들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고 안태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이 형님이!”
부모의 마음은 내 새끼가 어디 가서 무시 받는 꼴은 못 보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인터뷰를 읽어내려갔다.
Q. 혹시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세찬 FC와의 경기에서 투입할 예정인지?
A. 시즌 중이기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경기 막판에 고려해보겠습니다.
황보 감독이 이렇게 말한 건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창 시즌이 시작되는 중에 협회의 요청으로 인한 친선 경기가 그의 처지에서는 썩 반가울 리 없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제안을 수락한 것은 팬서비스적인 성격이 강했다.
‘질 수도 있다’라는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R 리그에서 뛰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다음,
경기 막판에 국가대표 출신 1~2명을 투입하는 게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태리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우리 애들을 아주 우습게 봤다 이거지.”
다음날.
울산의 코치는 황보 감독에게 달려왔다.
“감독님. 이것 좀 보셔야겠는데요?”
“뭔데?”
“안태리가 이번에 인터뷰를 했는데…”
이번엔 황보 감독이 안태리의 인터뷰를 보았다.
Q. 세찬 FC가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A. 세상은 그들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낙인찍고 다른 일이나 하라고 했지만, 세찬 FC 선수들이 하고 싶은 건 축구였다. 나나 이갑용 코치 조차도 한때는 잠시 축구를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것이 세찬 FC의 원동력이다.
Q. 세찬FC는 현실판 외인구단이라는 평도 받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토끼가 호랑이의 훈육을 견뎌낸다면 용맹해진다고 생각한다. 한 번 좌절을 겪고 일어난 선수들에게 무서울 건 없다. 그리고 이들은 앞으로 외인이 아닌 축구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Q. 한때는 국가대표에서 한솥밥을 먹던 황보 감독님과 감독으로 다시 만난 소감은?
A. 커리어적으로 너무나 화려한 분이라서 내가 비벼볼 순 없지만,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비벼볼 만하다. 그리고 맛있게 먹어보겠다.
Q. 그 말은 울산 근대를 이겨보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A. 그건 축구에서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다. 결과는 해봐야 아는 것이고, 축구공은 둥근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이뤄놓은 걸 보면 알 것이다.
선수들은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처음에는 k3 팀은 힘들지 않나 싶었지만, 이상재가 뛴 홀슈타인도 이기고, 프로팀인 대전도 이겼다. 만약 황보 형 말대로 정예를 투입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Q. 세찬 FC에서 눈에 띄는 선수라면 단연코 이순신 선수다. 그 외 오진성, 김혁규, 구멍 선수도 당장 k 리그에서도 통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언급한 선수들은 모두 뛰어난 선수들이다. 다만 이순신은 아니다. K리그가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할 선수다. 실제로 해외 전지 훈련 중에 에이전시로부터 스카우트를 받기도 했다.
Q. 혹시 국가대표도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A. 인터뷰에서도 보셨겠지만, 엉뚱한 친구다.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친구다. 다만 국가대표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실력이 뛰어나도 팀 안에 녹아들 수 있어야 한다. 반짝 잘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속팀이 필요하다. 세찬 FC는 마지막 경기에서 모든 걸 보여줄 것이다. 관계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이들을 국가대표에서 계속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편견은 갖지 않고 평가해주셨으면 한다. 이순신 선수 이외에도 정말 뛰어난 선수들이 많다.
ㄴ와 순간 슈퍼 매치인 줄.
ㄴ장외설전 오지네.
ㄴ황보 감독. 여기서 최정예 안 내보내면 쫄?
ㄴ세찬 FC는 잃을 게 없지만, 울산 근대는 부상이라도 당하면…한 경기에 걸린 승리 수당, 출전 수당이 얼만데…ㄴ
ㄴ …
안태리의 인터뷰는 축구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식의 선비 인터뷰가 아닌 명백한 도발이었다.
급기야 황보 감독은 기분이 상했는지 안태리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태리야. 황보형이다. 잠깐 통화할 수 있냐?”
“당연하지~ 무슨 일인데?”
“너 인터뷰 왜 그랬냐?”
“내가 뭘?”
“즐기자고 하는 경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어떡해? 후배들 자존심은 생각 안 해?”
“선수가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자존심 아닌가?”
“하- 태리야. 형 요즘 선두 경쟁 때문에 힘들다. 그런데 왜 거기에 기름을 부어?”
“그럼 형은 왜 우리 애들 기를 죽여? 다들 울산이랑 붙어서 좋아하고 있는데 뭐? 유망주를 내보내? 그건 무슨! 내 생각에는 좀 아니다 싶은데?”
“장난삼아서 하는 방송이랑 목숨 걸고 하는 리그랑 같아?”
급기야 황보 감독의 언성이 높아졌다.
“나도 목숨 걸고 하는 거야!”
안태리도 성깔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
“미안해요. 형. 목소리 높여서. 그런데 우리 애들 진짜 진지해. 난 얘네들이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그래.”
축구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은 진지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챙겨야 할 식구들과 상황이 달랐을 뿐이었다.
“그래. 태리야. 어차피 다 축구 발전을 위한 거니까 다치지 말고 잘해보자.”
“고마워. 형. 함께 좋은 경기 만들어보자고.”
“준비 단단히 해라. 이쪽은 전력으로 갈 거니까.”
“듣던 중 젤 반가운 소리네. 그래야 나중에 지고도 딴소리 안 나오지. 흘흘.”
황보 감독이 전화를 끊었다.
안태리의 손에도 아직 떨림이 남았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상황.
“그런데 너무 질렀나?”
내심 안태리는 5:0으로 지는 생각까지 했다.
“아니야. 순신이가 있는데 한 골도 못 넣으려고…제기랄 나 미쳤나?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한테 골을 넣도록 기대하다니.”
안태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편, 이순신은 오랜만에 상대가 정해진만큼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예전에 적토마 FC와 싸울 때처럼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주전급 3, 4명에 비주전이 나오겠지?”
국가대표 수문장인 주우현이 나올 때는 시뮬레이션에서 한 번도 골을 넣은 적이 없었다.
“비격진천뢰, 천지현황포, 방패연도 다 안 먹힌단 말이야?”
이순신은 침을 꼴깍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