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성찬이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세찬 FC한테 남은 경기는 단 두 경기.
“감독님. 저희 진짜 성찬이 형네랑 붙어야 해요?”
“뭐. 어쩔 수 있나?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봐. K리그 스카우트도 많이 온댄다.”
“2부라고 해도 엄연히 프론데…”
“그래도 다행인 건 성찬이 형이 우리 팀에 있다는 거죠!”
“성찬이 형. 반가워요!”
“응. 나 없는 동안 너희 잘나가더라?”
“에이, 형도 리그에서 좋은 모습 보여줬잖아요.”
방성찬은 세찬 FC로 복귀했다.
팀의 주전 공격수들이 복귀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FA컵에서 1부리그 챔피언 울산 근대를 만나서 패배한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이미 승격플레이오프도 물 건너간 마당에 오히려 대전 감독은 방성찬을 세찬 FC로 보냈다.
현재 인기의 중심에 있는 세찬 FC와 치르는 매치업은 상업적으로도 여러모로 남는 장사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스토리텔링 매치.
굳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한 번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들여다볼 만했다.
‘여기에 우리 대전이 이긴다면, 내년 시즌은 그럭저럭 기대해볼 만하겠어.’
대전 감독은 세찬 FC를 맛있게 차려진 밥상이라고 생각했다.
숟가락만 떠서 맛있게 먹으면 되는 손쉬운 상대.
그러나 대전 감독이 간과한 것은 하나 있었다.
이순신을 비롯한 세찬 FC의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으로 실력이 더더욱 늘었다.
현재 방송 시점은 중간에 특별 방송을 한 번 진행해서 유럽원정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중이었다.
이순신도, 방성찬도 없는 팀은 그야말로 오합지졸.
대전 감독이 충분히 방심할 만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지휘하는 팀은 방성찬이 지휘할 때보다 더욱더 뛰어난 조직력을 보였다!
장비칸 중 ‘주장 완장 효과’ 때문이었다.
[주장 완장 찼을 때 효과가 발동합니다.]
[팀이 주장의 성향과 목표를 따라갑니다.]
[선수들과 코치진의 가교 역할로 인해 전술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스킬 중 일부를 경기 때 공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이 압권이었다.
비격진천뢰, 방패연, 윈드 브레이커 더블 등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현재 공유할 수 있는 스킬은 ‘노이즈 캔슬링’이었다.
‘이것만 해도 꽤 효과가 좋으니까.’
축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보니 멘탈에 꽤 큰 영향을 받는다.
적어도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차단하면 능력치가 상승하는 선수들이 있었다.
반대로 칭찬을 하게 되면 오히려 능력치가 하락하는 선수도 있었다.
남주작이 그랬다.
일정치 이상의 칭찬을 듣게 되면 거만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럴 때는 살며시 노이즈 캔슬링을 해제해주면 금세 겸손해졌다.
대전과의 경기에서 방성찬은 선발로 나섰다.
그 누구보다도 대전을 상대로 골을 넣고 싶은 욕망이 강할 것이라는 걸 이용한 안태리의 용병술이었다.
여기에 이순신의 주장 완장 효과가 더해지니 방성찬은 훨씬 더 날았다.
오진성이 힐킥으로 흘려준 골을 방성찬이 그대로 처넣었다.
“방성찬 선수! 대단합니다.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서 오히려 앞서 나갑니다!”
“흐음. 저 녀석 골 결정력이 왜 우리 팀에서는 발휘가 안 되는 거지?”
대전 감독은 고민했다.
방성찬의 플레이는 대전과 세찬 FC에서 확연히 달랐다.
대전에서는 좀 더 포스트 플레이에 집중하는 반면, 세찬 FC에서는 뛰어난 위치선정으로 골을 노렸다.
두 팀에서의 차이는 전술이었다.
드리블 돌파와 점유율을 선호하는 대전의 팀전술과 간결한 패스와 과감한 슈팅으로 골을 노리는 세찬 FC의 팀전술은 너무나 달랐다.
‘확실히 난 이쪽이 더 맞긴 해.’
방성찬은 세찬 FC에서 맡은 역할이 더 좋았다.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
누군가의 백업 역할을 하는 건 너무나 익숙했다.
화려하지 않은 플레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찬 FC에 참여해서 그 역시 최전방에서 결정을 지을 줄 아는 선수라는 걸!
여기에 아이돌 은퇴도 고려하고 있는 윤광섭의 측면 돌파는 대전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2개월 만에 천재라 불리던 녀석들이 모두 각성한다고? 이건 말도 안 돼!”
대전 감독은 자신의 지도방식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다 오늘 대전이란 대어도 잡나요?”
이주성의 설레발이 결국 실점을 만들었다.
“아- 안타깝게도 대전에게 한 골을 허용합니다…”
공백 기간 없이 꾸준히 축구를 해왔던 선수들이었다.
축구장은 생각보다 넓다.
이순신 혼자서 5~6명이나 되는 선수를 전부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철저하게 이순신이 없는 방향으로 공략했다.
비록 정지선의 수비 실책이지만, 이순신은 자신의 실수처럼 안타까웠다.
‘하지만 해낸다. 그래야 내가 대한민국의 골대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세찬 FC 선수들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정지선 선수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홍반봉 선수의 볼이 터지려고 합니다. 잠시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순신은 허준을 바라보았다.
[허준이 회복침 3개를 건넵니다.]
[일시적으로 선수의 체력이 20% 회복되고, 체력이 느리게 소모됩니다.]
[사용법 : 사용하고자 하는 선수에게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주십시오.]
‘가장 좋은 방법은 후반전에 교체 카드를 모두 쓰고 사용하는 것인데…’
괜히 회복 침을 사용했는데 안태리가 교체를 해버리면 좋은 아이템을 하나 날리는 것이었다.
“지선이 형. 괜찮아. 이제부터 더 빡세게 잘 막아보자.”
[회복침을 사용했습니다.]
“반봉이 형. 한 번 뚫린 거로 의기소침한 거 아니지? 후반전에는 역전 가야지?”
“당연하지! 가즈아!”
[회복침을 사용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한 개는 남겨뒀다.
“이순신 선수가 수비진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더이자 수비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순신은 각오를 다졌다.
본격적으로 수비에만 치중하니까 대전은 뚫을 방법이 없었다.
드리블 돌파는 과감함 태클로 걷어냈다.
상대방의 크로스와 코너킥은 완벽한 위치선정으로 막아냈다.
정지선, 구멍, 조문돈, 홍반봉과 협력 수비를 펼쳐냈다.
문제는 공격이 답답해졌다.
남주작, 윤광섭이 열심히 치고 달렸지만, 대전의 수비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개인기가 뛰어난 오진성과 김혁규가 한두 명쯤은 제쳤지만, 곧바로 협력 수비에 막혔다.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이순신은 저격수처럼 숨을 참으며, 기다렸다.
전반전의 남은 시간도 어느덧 1분 남짓.
세찬 FC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수비에 집중하던 이순신이 드리블을 쳤다.
그의 발끝으로부터 빌드업이 시작됐다.
“달려!”
이순신은 전방으로 패스했다.
남주작은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패스!”
앞에는 오진성, 옆에는 이순신이 공을 달라고 외쳤다.
남주작은 오진성에게 줬다.
오진성은 원터치로 이순신에게 바로 연결했다.
전방에 방성찬과 김혁규가 달려갔다.
방성찬이 공을 잡자 상대 수비수들은 긴장했다.
슛과 패스라는 선택지가 있으니 당연했다.
이번에 방성찬의 선택은 김혁규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패스가 이어졌다.
“김혁규 슛!”
김혁규의 슛은 안타깝게도 상대 골키퍼의 펀칭을 막고 튕겨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이 날아올랐다.
[황자포를 발동했습니다.]
[골 에어리어에서 강력한 헤딩슛이 가능합니다.]
팡!
이순신이 멋진 다이빙 헤딩슛으로 상대편 골대를 흔들었다.
“골입니다! 이순신 선수 골입니다!”
“와!”
경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세찬 FC의 모습은 3부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만 한 실력이었다.
경기 결과는 끝나봐야 알겠지만, 전반전만 놓고 보면 그 기세는 K리그 못지않았다.
특히 이순신은 K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실력이었다.
‘다만 절대적인 약점이 있단 말이지.’
세찬 FC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과연 K리그 팀들이 이순신을 중심으로 팀을 리빌딩할까?
K2 리그에서도 그런 팀은 없을 것이다.
즉, 팀의 중심이 아닌 일원으로써 지금처럼 능력을 얼마만큼 발휘할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기에 스카우트 담당자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삐이이익-
전반전이 끝났다.
세찬 FC는 락커룸에 모였다.
“와- 우리가 대전을 이기고 있다니. 이게 말이 돼?”
“흥분하지 마. 아직 45분이나 남았어.”
안태리는 들떠 있는 선수들을 보며 고민했다.
‘비기기만 해도 대박인데.’
홀슈타인의 경우 이상재가 출전하긴 했으나 유소년 선수들이 반이나 됐다.
팀 수준 자체는 대전이 약간 우위였다.
“감독님. 후반전에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태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순신은 진심으로 이길 생각이었다.
“뭐? 진심이냐?”
“네. 게임을 했으면 이겨야죠.”
[주장 효과가 발동합니다.]
“맞아요! 이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추가 골 가즈아!”
안태리는 옛 생각이 났다.
“에이. 한국이 포르투갈을 어떻게 이겨요.”
“이탈리아는 오바지.”
“아무리 라울이 빠졌다고는 해도 스페인은…”
그 모든 편견을 깨고, 한국은 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세찬 FC에게 이 순간은 월드컵 그 자체였다.
“우리는 1점차로 앞서고 있다. 이 점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격이다! 그리고 난 이길 생각이 없다!”
“네?”
안태리의 말에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는 꽤 중요했다.
하지만 세찬 FC는 리그전을 치르는 팀도 아니고, 이벤트성으로 만들어진 팀이었다.
침대 축구.
승리를 지키기 위한 저질축구를 안태리는 가장 혐오했다.
“세찬 FC. 오히려 대전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황한 건 대전 감독이었다.
상대편이 승리를 위해서 텐 백 수비를 하겠구나 싶었는데, 공격으로 나왔다.
심지어 전반전에 선수들의 체력을 위해 비주전급 선수들을 내보냈던 걸 전부 주전급으로 바꿨다.
“건방진 것들!”
대전 감독은 전술을 변경했다.
상대의 공격을 대비하여 역습 전략으로 바꿨다.
체력을 앞세운 대전이 정면을 열심히 두드렸다.
“대전의 슛! 아! 안타깝게 골키퍼에게 막힙니다!”
“오진성 선수 슛! 골대를 빗나갑니다.”
안태리는 굳이 1점을 지키고 싶지 않았다.
역전패를 당하더라도 선수들이 자신 있게 플레이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프로그램이 끝나고 한 팀이라도 더 스카웃 제의가 올 거라고 봤다.
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이어졌다.
어느덧 시간은 30분이 훌쩍 지났다.
이순신은 더더욱 수비에 집중했다.
공격진이 뚫릴 때 들어오는 공격이 제법 매서웠다.
그러던 중 마침내 기회가 왔다!
세찬 FC가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이순신이 찰 테니까 단단히 대비해!”
대전 감독은 이순신의 킥력이 좋은 걸 일찌감치 알았다.
그러나 공을 찬 건 오진성이었다.
“저게 뭐야?”
대전 선수들이 점프한 사이, 오진성은 툭 하고 공을 옆으로 밀어줬다.
‘비격진천뢰 몰빵!’
엄청난 위력의 슛이 허공을 갈랐다.
프리킥을 차기 전에 70%였던 성공률이 무려 90%까지 올랐다.
들어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골입니다! 세찬 FC의 쐐기 골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지금 잊힌 천재들이 프로팀을 격침했습니다!”
대전 감독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