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6화 (37/161)

36화. 닥쳐. 루카.

순간 루카는 얼굴에 빡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여유로운 척을 하기 위해 금방 웃었다.

“뭐~ 조크라고 생각하겠어. 우리 사이에 앙금이 조금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 행동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왜?”

“네가 방출된 건 실력이 없어서였어. 나 아니었으면 넌 입단조차 하지 못했다고!”

“난 당신을 믿었어. 하지만 내가 가장 힘들 때, 당신은 날 버렸으니까.”

“그래도 내 덕분에 축구 선수로 재기 한 거 아냐? 더욱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할 계기를 만들어줬잖아?”

전형적인 악당의 논리였다.

“닥쳐. 루카. 내가 재기하려는 건 너 따위에게 복수하려는 게 아니야! 나 때문에 인생이 꼬여버린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나라의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야!”

“순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방출되고서 마약을 너무 많이 한 거 아냐? 한국이 월드컵 우승이라니! 너네는 레스터시티보다도 못한 팀이야. 설마 네가 제이미 바디라도 되는 줄 알아?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내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을 할게. 하하하.”

이순신은 눈에 힘을 빡 줬다.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등 뒤에서 충무공도 같이 무섭게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양옆에서 카이저 코치는 축구공을, 허준은 30cm 대침을 양손에 쥐었다.

물론 루카한텐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 자식. 당장이라도 날 죽일 거 같은 분위기잖아? 옛날에 성공하겠다고 지 나라 배신했던 그 눈빛보다 더 미쳤는데?’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떨렸다.

“고마워.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널 죽일 수 있겠네. 약속 꼭 지켜.”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루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폭풍 뒤의 고요가 찾아왔다.

“휴-”

그제야 지켜보던 선수들은 숨을 쉬었다.

안태리가 물었다.

“뭐라고 한 거야?”

“순 사기꾼이더라고요. 꺼지라고 했습니다.”

안태리는 씨익 웃었다.

“잘했다! 순신아!”

김혁규도 예전에 에이전시에 데인 게 있어서 그런지 속이 후련했다.

이순신은 중대발표를 했다.

“전 방송 끝날 때까지 이 팀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설령 바르샤나 첼시에서 연락이 온다고 해도요!”

이순신의 선언에 세찬 FC는 가슴이 웅장해졌다.

의리.

자본주의에서 강호의 의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이순신의 외침은 선수들의 낭만을 자극했다!

***

한국으로 돌아온 선수들은 연·고대 연합팀과 경기가 있었다.

명실상부 최고의 라이벌이자 대학 최고의 두 팀이었다.

그러나 호랑이와 독수리는 결코, 함께할 수 없었다.

그들의 조직력보다 세찬 FC의 조직력이 한 수 위였다.

“골! 이순신 선수 골입니다!”

이순신의 골로 대학연합팀을 2:0으로 꺾었다.

다음 상대는 아이돌 축구단이었는데 윤광섭이 속한 팀이기도 했다.

가요계에서 축구를 좋아하고 공 좀 찬다 싶은 아이돌은 다 모였다.

“광섭이 형. 배신자!”

“미안. 내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축구 혼을 막을 수 없었거든.”

“그래도 형 요즘 인기 좋던데요? 축구돌. 이러다 진짜 프로 데뷔하는 거 아녜요?”

“나도 고민이긴 해. 프로그램 끝나고 제의 오면 진짜 한 번 해보려고!”

윤광섭에게 실제로 제의가 온 3부 리그 구단들이 있긴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였기에 기본 실력은 출중했다.

안태리 감독의 성격상 실력이 없다면 주전 멤버로 기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다만 단 한 가지!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절박함이 좀 부족했다.

또한, 그에게 중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관중수였다.

벤치에 앉는 것도 꽤 힘든 일이지만, 설령 벤치에 앉더라도 1부 리그 벤치에 앉고 싶었다.

팬이 없으면 흥이 나질 않았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경기력이 천지 차이였다.

“형. 살살 좀 해줘요. 알죠? 우리 얼굴이 생명인 거. 흐흐.”

아이돌팀의 주장은 두 손을 모아서 공손히 부탁했다.

“세상에… 세찬 FC의 경기중 역대급으로 많은 관중이 모였습니다.”

-우윳빛깔 000, 어머 나 치였어.

- 오메, 나 죽어!

차마 입으로 내뱉기 껄끄럽고 부끄러운 단어들이 아이돌 축구단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여기에 세찬 FC를 응원하는 진성 축구 팬들과 윤광섭의 팬들이 모여서 마치 국가대표전을 방불케 하는 응원전이 펼쳐졌다.

경기 전 열린 각종 축하 공연까지.

말 그대로 제대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아이돌 축구단으로부터 시작된 킥 오프.

조문돈이 커트해내자 엄청난 욕설이 쏟아졌다.

“야. 이 미친 문신충아! 우리 오빠 다치면 가만 안 둬!”

울컥!

조문돈은 관중들을 노려보았다.

“뭘 봐- 신상 한 번 털어줘!?”

“조문돈!”

조문돈이 주먹을 쥐자, 안태리가 재빨리 막았다.

“경기에 집중해!”

안태리는 잠시 옛 생각이 났다.

비록 경기에 부진해서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군 리그에서 뛰었던 시절,

상대 팀도 아닌 우리팀 팬에게서 들었던 패드립.

경기 중간에 다가가서 소리 질렀다.

“너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축구가 발전을 못하는 거야!”

결과는 벌금형과 사과문.

그 팬도 분명 잘못했지만, 그 순간 욱해서 팬한테 다가간 건 자신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TV 중계는 중계진의 목소리만 들리지만, 현장은 달랐다.

특히 원정 경기가 어려운 이유는 홈팀의 야유와 욕설, 압박감을 견뎌내야 했다.

안태리가 실력은 낮지만, 아이돌 축구팀과 경기를 잡은 이유가 바로 이 지점이었다.

세찬 FC 선수들이 진정한 축구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선 도발에도 강한 정신력을 갖춰야 했다.

오죽하면 세계적인 대머리 선수도 월드컵 결승전에서 박치기하고 퇴장을 당했을까?

“와- 씨- 저거 반칙 아냐? 심판 눈 안 달렸나? 눈깔이 개눈깔이냐? 확 그냥 뽑고 새로 달아줄까?”

아이돌의 팬. 특히 사생팬들은 강했다.

“와- 경기 분위기가 이렇게도 형성될 수가 있구나…”

세찬 FC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움츠렸다.

몸싸움을 피하게 되고, 볼을 돌리는 플레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기 박자도 느려졌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죄 없는 부모님 욕까지 들어야 하는가?

자괴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미안하오…’

오죽하면 구멍이 상대 선수의 공격을 차단하고 사과했다.

“음. 이래선 안 되지.”

이순신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촤아아악!

거만한 아이돌 공격수의 공을 슬라이딩 태클로 빼앗았다.

그가 운동장에 나뒹굴자 엄청난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훗. 이정도야.”

이정도 욕설은 이순신이 귀화한다고 했을 때 들은 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공격!”

이순신이 공을 끌며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아이돌팀이 재빨리 수비로 복귀했다.

하프라인 근처에 도달할 때쯤.

[천자포를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이 강력한 슛을 발사했다.

낮고 빠르게 날아가는 슛은 아이돌의 가랑이를 지나갔다.

‘내가 고자라니!’

순간, 아이돌은 고자가 되어 팬들이 떨어져 가는 상상이 주마등으로 스쳐 지나갔다.

주르르륵.

식은땀도 흘렀다.

공은 기류를 타고 상승했다.

그 앞에 아이돌팀의 선수가 분명 서 있었다.

‘이건 막으면 뒤진다.’

선수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공을 피하기 바빴다.

퉁!

공은 날고 날아서 골대를 맞고 밖으로 나갔다.

그 공은 가장 입담이 걸쭉했던 사생팬의 주둥이를 강타했다.

“…”

일순간 아이돌팀의 관중석 분위기는 경직됐다.

이순신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사과했다.

그러자 일제히 이순신을 향한 상대편의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반동 효과로 잠시동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스킬 노이즈캔슬링을 획득했습니다.]

[경기 중 선수를 향한 욕설과 비난을 차단합니다.]

[명성이 상승합니다.]

[악명이 상승합니다.]

‘오옷. 노이즈 캔슬링? 이정도면 반동이 아니라 보너슨데?’

이순신은 새로운 스킬이 생기자 오히려 싱글벙글 웃었다.

방금의 슛으로 팬과 안티팬을 동시에 얻었다.

“순신 시주. 어쩌려고 그랬소? 저들한테 신상이라도 털리면 얼굴 들고 못 다니오!”

구멍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이순신은 듣지 못하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복귀했다.

“뭣들 하는 거야? 우리가 쟤네들처럼 취미로 공 차는 거 아니잖아?”

[호랑후를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회복됩니다.]

‘맞아. 욕 좀 먹으면 어때? 어차피 경기일 뿐인걸.’

‘조문돈. 성격 다 뒤졌네. 이제 저 새끼들은 다 뒤졌어.’

‘악당 등장이다!’

세찬 FC의 진영에서 거센 바람이 불었다.

이순신이 찬 슛은 경기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 놓았다.

오진성, 김혁규, 이만수가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5:0! 전반에만 5골을 넣은 세찬 FC입니다! 아이돌팀은 팬들을 위해서 좀 더 분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전방의 공격진이 날뛰니 후방에 있는 수비진은 할 게 없었다.

이순신은 경기 막판에 헤딩슛을 가볍게 꽂아 넣었다.

“졸려…”

오죽하면 보경풍이 하품을 할 정도였다.

후반전에는 별다른 작전지시는 없었다.

안태리는 딱 한 마디 했다.

“마음껏 골을 넣어라.”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안태리는 이순신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을 교체했다.

“이 XX야! 쫄았냐? 안 나와!?”

[노이즈 캔슬링을 발동했습니다.]

“…”

“순신 오빠. 멋져요!”

“여기 좀 봐줘요!”

자신을 향한 악플과 비난은 차단되고, 응원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이거 되게 좋은 기능이네.’

이순신은 편안하게 동료들의 경기를 관람했다.

“8:0 이거 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할 수 있겠는데요?”

아이돌팀은 서로 교체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첫 번째로는 다치면 큰일 나니까,

두 번째로는 차라리 교체를 당해서 더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안 감독. 광섭이는 어떻게 할 거야? 무난하긴 한데 마음이 좀 그런 거 같은데?”

김구름이 물었다.

“내버려 두죠. 본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하니까요.”

동료와 동료들 사이에 윤광섭은 갈팡질팡했다.

한쪽은 추억으로 남을 테고, 한쪽은 앞으로도 오가며 계속 봐야 할 사이.

“형. 적당히 해요. 이벤트 경기에서 왜 이렇게 빡겜을 해요?”

평소 자신을 깔보던 아이돌을 보자 윤광섭도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경기는 경기일 뿐이야.”

윤광섭이 몸싸움을 펼쳤다.

자신의 장기인 치고 달리기를 하자 아이돌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졌다.

“윤광섭 선수 50M 드리블!”

“와아아아아아!”

누가 그를 망한 아이돌이라고 했는가?

축구를 하기엔 너무나 잘 생겼지만, 아이돌만 하기에는 축구를 너무나 잘한 그는 아이돌팀의 그물망에 공을 꽂아 넣었다!

“윤광섭 선수! 해트트릭입니다! 세찬 FC가 아이돌팀을 11:0으로 이겼습니다!”

“우아아아!”

세찬 FC 선수들은 기뻐했다.

“이런 경기 이겼다고 왜 저렇게 기뻐한담?”

대패를 당한 아이돌팀은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한 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상대가 누구든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의 마음가짐이었다.

벤치에서 지켜보던 이순신 또한 동료들과 기쁨을 만끽했다.

[두 자릿수 득점으로 승리했습니다.]

[장비칸 중 주장 완장이 해제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보상이 또 지급됐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예상치 못한 팀이었다.

“성찬이 형이 왜 여기서 나와?”

세찬 FC의 다음 상대는 2부리그에 속해있는 방성찬의 대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