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5화 (36/161)

35화. 새로운 팀 닥터.

슈우웅.

이순신이 미끄러지면서 슬라이딩 태클을 펼쳤다.

보통 태클이라 하면 슛을 막거나,

공을 걷어내거나,

상대편 정강이를 부러트리기 위함이었다.

이순신의 태클은 꽤 위협적이었다.

살의는 없었지만, 기백으로 인해서 홀슈타인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회피했다.

‘내가 왜 피했지?’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이순신의 발바닥에 공이 닿았다.

데구루루.

공은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충무공이 당신의 잔머리에 경악합니다!]

[수비기술을 공격에 쓴 걸 보고 카이저 코치가 놀랐습니다.]

‘와- 이게 되네?’

이순신도 반신반의하면서 기술을 사용했다.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이순신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머릿속으로만 한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홀슈타인 골키퍼를 비롯하여 모든 선수가 넋을 놓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골입니다! 이순신 선수! 경기 막판에 멋진 골을 넣습니다! 안태리 감독이 마지막 순간에 전부 올라오라고 한 작전이 통했습니다!”

홀슈타인 골키퍼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좌절했다.

‘방심했어. 젠장!’

아무리 되뇌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공이었으니까.

심판은 시계를 봤다.

삐이이익-

경기의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도 울렸다.

‘이겼다고? 우리가 정말 이겼다고?’

믿기지 않았다.

전반전까지만 해도 패배의식에 절다 못해 젓갈이 된 선수들이 어느새 승리했으니까.

그래서 공은 둥글다고 하는 것이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말이 있는 것이었다.

이게 축구이자 스포츠였다!

2:1. 그것도 역전승!

2연패 뒤 얻은 값진 1승이었다.

“우와! 최고다. 이순신!”

세찬 FC의 선수들은 이순신을 에워쌌다.

답답했던 자신들의 처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순신은 밥, 선수들은 튀김처럼 높게 높게 쌓여서 마치 튀김 덮밥 같았다.

‘켁켁. 숨 막혀’

잠시 후 선수들이 떨어지자 이순신은 해방감을 느꼈다.

“날씨 좋다!”

이순신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쟤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였지. 수비수가 중간에 투입돼서 경기 흐름을 바꾼 것도 모자라서 골을 넣고 승리를 이끌다니, 이건 나도 첨 해보는 경험인데…’

이상재는 자신의 축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묘한 벅참을 느꼈다.

양 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후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상재와 이순신이 악수했다.

“이야. 너 잘하더라. 공백기가 있어도 이 정도인데 공백기가 없었다면 진짜 장난 아니었겠는걸?”

“감사합니다.”

“나중에…”

“…?”

이상재는 나중에 ‘대표팀’에서 보자는 말을 아꼈다.

지금 기량을 잘만 유지하면 충분히 될 수 있으나, 우선 이순신에게 필요한 건 팀이었다.

또한, 괜한 부담감으로 자칫 지금의 폼이 무너지거나 부상으로 이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 그땐 형이 밥 살게. 진성아. 너도!”

후배 사랑은 내리사랑.

이상재는 이순신 옆에 있는 오진성도 챙겼다.

“고마워요. 형.”

오진성도 씨익 웃었다.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기…”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바르텔스가 웃통을 벗어서 유니폼을 내밀었다.

‘아. 유니폼 교환하자는 건가? 그러고 보니 유니폼 교환은 처음이네.’

이순신은 처음에 의아했으나 곧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서 바르텔스에게 줬다.

“저 녀석은 언젠가 월클이 될 거야. 그때 비싸게 팔아야지.”

바르텔스는 매우 기뻐했다.

두 사람은 간단히 포옹하며 상대의 등을 두드렸다.

양 측 감독의 부름에 자신의 팀으로 돌아갔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흔적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정리했다.

오히려 처음 왔을 때보다 더욱더 깨끗했다.

짐을 챙긴 세찬 FC는 버스 앞에 모였다.

버스에 타기 전에 안태리가 한마디 했다.

선수들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그만큼 승리의 여운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동안 해외 전지훈련을 하느라 수고했다. 모두 한 명의 부상자도, 낙오자도 없이 잘 따라와 줘서 너무 좋다. 오늘은 슈바인학센에다가 맥주를 실컷 먹자.”

조문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슈바인슈타이거? 그건 축구 선수 아냐?”

“못 배운 놈아. 슈바이학센 몰라?”

홍반봉이 옆구리를 툭 치며 핀잔을 줬다.

“그게 뭔데?”

“…”

“뭐냐고. 개놈아. 지도 모르면서.”

“있어. 맛있는 거.”

“븅신. 먹어보지도 못했으면서 맛있는 건 어떻게 알아?”

“이름부터 멋있잖아! 분명 엄청 비싸고 맛있는 음식일 거야!”

***

슈바인학센을 본 홍반봉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족발이네? 이런 족 같은…”

“내가 독일까지 와서 족발을 먹어야 한다니…”

홍반봉과 조문돈은 실망했다.

조문돈의 집 근처에는 시장이 있어서 족발을 자주 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는 물려서 먹지 않는 수준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맛있긴 하구려.”

구멍은 족발에 대해 염불을 외우면서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불상생 따위는 이미 지키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래도 슈바인학센! 이러니까 좀 있어 보이지 않냐?”

김혁규가 감탄했다.

“어차피 독일말로 해도 족발이야.”

“…”

이순신이 무심하게 따끈따끈한 살점과 으깬 감자를 같이 먹었다.

“자- 잠시 주목!”

안태리가 잔을 들고일어났다.

“고생 많았다. 이제 국내에서 딱 4경기 남았다. 그러니 남은 경기에도 최선을 다하고 오늘은 딱 1잔씩만 마셔라. 2잔 마시면 방출이다. 알았지?”

“저 소주는 안 됩니까? 족발에는 아무래도 맥주보단 소주가…”

구멍은 불음주 따위는 이미 지키지 않은 지 오래됐다.

“구멍, 대가리 박아.”

“죄송합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 돌발 퀘스트 보상!’

이순신은 아까 얻은 보상을 살펴봤다.

[돌발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카이저의 코치 능력이 향상됩니다.]

[보상으로 전담 닥터 ‘허준’이 합류합니다.]

[충무공이 옛 동료를 환영합니다.]

‘허허. 동료가 또 늘었나?’

이순신의 눈에는 슈바인학센을 보고 침을 흘리는 카이저, 근엄하게 이순신 뒤에 서 있는 충무공, 무릎을 꿇고 옆에 앉아있는 허준이 보였다.

[허준이 인사를 합니다.]

‘허준이라… 유명한 분이긴 한데 과연 어떤 능력이 있으실까나?’

이순신이 맥주를 들이켰다.

그 순간이었다.

푹!

허준이 눈을 번쩍이더니 이순신의 몸통에 대침을 찔렀다.

물리적인 아픔은 없었으나, 갑작스러운 행동에 흠칫 놀랐다.

[의사 허준이 알코올을 해독합니다.]

“와나- 겁나 깜짝 놀랐네.”

“독일 맥주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긴 해.”

김혁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순신의 놀람과 김혁규의 대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알코올을 해독해준다고?’

[의사 허준은 체내에 들어온 나쁜 물질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오 그러면 술을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거네?’

[아니 되오!]

허준이 흠칫 놀랐다.

‘닥터가 아니라 리액션 담당인가? 재밌는 분이네.’

이순신은 슈바인학센을 입에 넣었다.

[근섬유 회복을 위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했소. 더 먹었다간 똥이 되거나 지방으로 쌓일 뿐이오.]

[물론 에너지 체계에 따라서 유산소 운동에서는 지방을 먼저 사용하여 유산소 운동에는 좋으나…]

일반 사람들이 다이어트나 벌크업을 할 때 가장 힘든 점이 혼자서 관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군가 식단을 관리해주고, 누군가 필요한 운동을 알려주면 확실히 편하다.

허준은 그런 점에서 엄청나게 필요한 존재였으나 문제는 말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먹은 게 올라올 거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거 이러다가 나중에 잠자리에서도 참견하는 거 아닌지 몰라.’

[지금이 절정이오. 싸시오.]

이순신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설마 그러지는 않겠지.’

“저 피디님. 이분이 자신을 에이전트라고 하는데 하실 말씀이 있다는데요?”

“네?”

그는 루카였다.

옛날에는 제법 잘 나가는 에이전트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신사답지 못한 횡령으로 회사에서 쫓겨난 신세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에이전트와 선수를 연결해주는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약간의 수수료를 챙기며 생계를 유지했다.

“안녕하세요. 루카라고 합니다.”

루카는 겁나 어색한 한국말로 친근하게 제작진에게 다가갔다.

“아예. 무슨 일이시죠?”

제작진 중 한 명이 통역했다.

“당신들의 팀이 홀슈타인과 경기를 하는 걸 우연히 지켜봤습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괜찮다면 제가 해외 에이전트와 연결할 수 있게 도와드려도 될까요?”

해외 에이전트라는 말에 피디는 화들짝 놀랐다.

‘이거 잘하면 해외 진출하는 선수도 생기는 거 아냐?’

“야. 꺼져.”

안태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행복회로를 오버클락하다 못해 터질뻔한 피디는 화들짝 놀랐다.

“저. 감독님.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심이…”

“듣긴 뭘 들어요. 해외에 저런 사기꾼들이 한 둘인 줄 아세요? 꼬드길 땐 온갖 입바른 소리를 하다가 테스트비용이니, 돈 뜯어 가고, 월급 명목으로 또 뜯어가고, 계약은 성사됐는데 계약금 챙겨서 도망치고, 방출되면 네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거라고 하면서 해외에다가 버리는 게 쟤네 일상이에요.”

“그래도 이건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요. 일단 검증부터 해보는 것이.”

“아니. 통역. 똑바로 전해요. 사기꾼 새끼야. 당장 꺼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른다고.”

루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 저 사기꾼 아닙니다. 저기 순신이랑도 잘 아는 사이입니다!”

피디와 안태리는 동시에 이순신을 바라봤다.

선수들도 이미 루카와 제작진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순신!”

루카가 이순신을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루카?”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루카를 다시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잘 지냈어? 여전히 축구를 잘하는구나!”

영어에 이은 에스파냐어.

“물론.”

“와! 미친 이순신 해외 에이전트가 스카웃하려나봐.”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러면 우리 구단 최초로 해외 진출하는 건가? 역시 난 놈이었어.”

세찬 FC 선수들은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쳐다봤다.

이순신이 두 팔을 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에는 맥주잔을 쥔 채로.

루카는 이순신이 건넨 맥주잔을 받았다.

“이 사람들에게 이야기 좀 해줘. 내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너랑도 비즈니스적으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언제 시간 돼?”

“응. 꺼져.”

이순신은 웃으면서 루카에게 맥주를 들이부었다.

“씨발! 뭐 하는 짓이야?”

“오. 용케 내가 가르쳐 준 욕은 기억하고 있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깜짝 놀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