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4화 (35/161)

34화. 꼭 수비할 때만 쓰라는 법은 없잖아?

슛 파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헤진 홀슈타인의 그물망이 버티지 못하고 찢어졌다.

“이순신 선수 골입니다! 그물망을 뚫는 슛!”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이상재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순신은 가볍게 이상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골대를 뚫었습니다! 명성이 상승합니다.]

‘오? 개이득!’

하지만 이주성의 의견은 달랐다.

“와- 이순신 선수. 상대의 어깨를 두드리는 도발 세레머니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대가 축구계 선배이자 국가대표 이상재 선수예요! 이건 못 참죠.”

“이순신!”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왜요?”

이상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야. 너 물건이다~ 후반전 기대해도 되겠어!”

이상재는 대인배였다.

‘가볍게 어린 후배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진심으로 해야 하잖아?’

씨익 웃으면서 자기네 팀 벤치로 돌아갔다.

세찬 FC의 라커룸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와- 이순신 공 좀 차는데?”

“후반전에 역전 골 가즈아!”

‘고맙소. 순신 시주.”

구멍은 오늘 팀이 패배하면 엄청난 죄책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이순신이 나타나서 정말 다행스러웠다.

쾅쾅쾅!

안태리가 벽을 두드렸다.

“경기 아직 안 끝났다. 후반전 남았다!”

순간 선수들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마지막 경기에서 유종의 미.

승리로 거두고 싶었다.

“후반전에 상대 팀의 공격 박자는 더 빨라질 거야. 상재, 바르텔스, 뮐링의 삼각편대는 우리가 상대한 그 어떠한 적들보다도 위협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수비 후 역습전략으로 나간다. 남주작, 김혁규.”

“넵.”

“후반전에는 너희의 활동량을 믿는다. 측면이 뚫렸다 싶으면 무조건 돌파다. 알았냐?”

“넵!”

“만수.”

“네.”

“기회가 있으면 과감히 때려. 오진성도 마찬가지고. 최대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서 반칙을 유도한다.”

“네.”

“그리고 이순신.”

이순신과 안태리의 눈이 마주쳤다.

“후반전에는 최대한 수비에 집중한다. 대신…”

이순신은 안태리의 작전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삐이이이익-

후반전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홀슈타인의 공격은 매서웠다.

이상재는 공을 툭툭 차면서 수비수를 꾀어냈다.

세찬 FC 선수들은 섣불리 덤비지 않았다.

툭. 툭.

순간 이순신은 불길함을 감지했다.

이상재는 하프라인과 페널티에어리어 중간쯤 되는 거리에서 볼을 찼다.

6명이나 되는 세찬 FC의 선수들이 멍하니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지선. 막아!”

정지선이 달려오는 바르텔스에게 붙었다.

공은 골라인 앞에서 바운드가 된 후 바르텔스가 있는 방향으로 튀었다.

“오오! 바르텔스!”

이주성이 흥분하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이순신의 예측 덕분에 바르텔스는 슈팅 타이밍을 놓치고, 공은 그대로 골라인 아웃이 됐다.

“크~ 아깝다.”

이상재가 안타까운지 씨익 웃었다.

‘와- 감독님이 말한 게 이 뜻이구나. 섣불리 나가면 안 되겠네.’

이순신은 차원이 다른 그의 패스를 보고 식겁했다.

이상재는 패스만 잘하는 게 아니었다.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 또한 대단했다.

수비가 달려든다 싶으면, 바로 동료에게 패스를 줘서 탈압박을 시도했다.

“와- 저 좁은 공간에서 삼각 패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저게 안태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 아닙니까?”

안태리는 비록 상대편이지만, 속으로 감탄했다.

생긴 지 고작 두 달 정도 된 팀이 넘볼 수 있는 팀플레이는 아니었다.

심지어 궁지에 몰릴 땐 상대편의 몸을 맞춰서 공을 내보내고, 코너킥을 얻어내는 치밀함도 보였다.

“홀슈타인의 코너킥!”

뮐링의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오는 공을 바르텔스가 받았다.

[방패연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재빠르게 발을 뻗어서 막아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바르텔스는 번번이 막히자 서서히 짜증이 났다.

“상재. 왜 쟤는 국가대표면서 왜 저런 팀에서 뛰고 있는 거야?”

“무슨 소리야. 쟤는 프로도 아니라고.”

바르텔스는 깜짝 놀랐다.

두터운 스쿼드 덕분에 대표팀 근처에 가지도 못했지만, 노장의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시아 팀에서라면 충분히 국가대표로 활약할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뭐? 저렇게 잘하는데 국가대표는커녕 프로도 아니라고? 너희 나라 미친 거 아니냐?”

“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국내 축구가 미쳤나 봐.”

이상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방이 든든해지자 세찬 FC에 공격 기회가 찾아왔다.

보경풍의 롱킥.

오진성의 순두부 같은 볼 트래핑 후 펼쳐지는 개인기로 상대를 제친 다음 김혁규에게 패스!

“오늘 오진성 선수랑 김혁규 선수가 자신 있게 개인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브라질 듀오. 오늘 컨디션 최고입니다!”

삐이이익!

상대편은 김혁규의 드리블을 태클로 저지했다.

“세찬 FC 프리킥을 얻습니다. 다소 거리가 있지만, 충분히 골을 노려볼 만 한데요?”

골대와의 거리는 35m 정도였다.

세찬 FC에서는 오진성, 남주작, 정지선, 이순신이 킥을 준비했다.

호루라기가 울리고, 남주작과 이순신이 동시에 발 굴리기를 했다.

다다다다닥!

남주작이 공을 옆으로 흘려주고,

이순신이 비격진천뢰를 사용했다!

공격은 최대한 자세하고 세트피스에서 분출해라!

이것이 이순신에게 내린 안태리의 지령이었다!

[비격진천뢰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0/3)]

[성공률 85%]

나쁘지 않은 성공률이었기에 이순신은 과감하게 때렸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구석으로 향했다!

“이순신 선수! 골입니다! 아? 그런데 저게 뭔가요? 무효 골을 선언합니다!”

멋진 세레머니를 준비하던 이순신은 그대로 멈칫했다.

이순신이 공을 찰 때, 홀슈타인과 세찬 FC 선수들이 뛰어 들어갔다.

그때 뛰어 들어가던 조문돈의 플레이가 다소 거칠었다.

상대 수비수가 막아서자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눌러버렸다.

“미… 미안하다.”

조문돈의 얼굴에는 미안함이 가득 담겼다.

골은 취소되고, 옐로카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괜찮아. 문돈이 형. 기회는 또 올 거야.”

이순신은 조문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비록 비격진천뢰의 기회를 모두 날렸지만, 조문돈을 나무란다고 해도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기에 기까지 죽으면 아무리 이순신이라고 해도 홀슈타인의 공격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할 거 같았다.

‘퀘스트도 생겼고 말이지.’

[조문돈의 의욕이 상승합니다.]

[10분간 평소보다 능력을 10% 이상 발휘합니다.]

“고맙다. 이순신. 내가 목숨 걸고 저 코쟁이는 기필코 막는다. 못 막으면 정강이라도 빠개서 내보낸다!”

“…그러진 말고!”

조문돈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은 이순신이 처음이었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이순신이 싫었다.

팀워크가 어쩌고, 쓸데없이 밝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실력도 좋았으니까.

특히나 이순신의 공격력은 풀백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작았는지를 지금 이 순간 깨달은 것이다.

금붕어의 브레인을 가졌지만, 이 순간 이 경기만큼은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이순신은 경기에 집중했다.

아까 같은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홀슈타인의 파상공세가 이어집니다! 이순신 선수와 정지선 선수. 다행히 상대 팀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바르텔스의 슛은 보경풍의 선방에 막혔다.

뮐링의 프리킥은 이상재에게 도달하기 전에 이순신이 먼저 걷어냈다.

이상재는 개인기로 이순신을 돌파하려고 했으나,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정지선, 멈추지 마!”

이순신이 언성 스킬을 사용했다.

이상재가 중거리 슛을 쏘려고 했으나, 정지선이 각도를 좁혀서 타이밍을 아예 빼앗았다.

이순신이 쓰는 언성 스킬은 일시적으로 당사자의 능력치를 상승시켰다.

그렇기에 이상재의 예측보다 정지선의 움직임이 살짝은 더 빨랐다.

‘공격수는 옵션이고, 진짜 재능은 수비였던 건가? 평생 밥 먹고 수비만 한 애들보다 왜 더 나은 건데? 오히려 재민이 보다 더 빡센데?’

이상재는 전 소속팀 동료이자 국가대표의 부동의 센터백 김재민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어떻게 돌파할지 생각을 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정면돌파.

국가대표가 프로도 아닌 사람을 못 뚫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이상재는 생각을 전환했다.

치고 달리기를 시도하자 이순신이 방패연 스킬을 써서 달라붙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한바.

이상재는 공을 잡고 재빨리 회전을 시도했다.

이순신은 역동작에 걸렸다.

“됐다!”

슈팅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그대로 때렸다.

왠지 드리블하다간 이순신이 달라붙을 거 같았다.

퍽!

이순신이 다리를 뻗어서 공의 궤도를 바꾸며 스로인을 내줬다.

“야- 거기서 발을 뻗어?”

이상재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순신도 그저 멋쩍게 씨익 웃었다.

[체력이 29% 남았습니다. 체력이 30% 미만이 되면 방패연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아직도 10분이나 남았다.

‘와- 이거 큰일 났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순신에게 수비 스킬은 방패연이 밥줄이었다.

그게 빠지면

“아- 이순신 선수. 슬슬 체력적인 한계가 온 것일까요? 이성재 선수의 공격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순신의 몸놀림이 확실히 둔해졌다.

안태리도 그 사실을 눈치챘다.

이순신과 안태리의 눈이 마주쳤다.

이순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나갈 수 없었다.

[체력이 31%까지 회복되었습니다.]

템포를 조절한 이순신의 체력이 조금이나마 회복됐다.

헐떡거리는 이순신에게 메시지가 발생했다.

[더블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경기 내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순신은 이번에도 ‘아니오’를 선택했다.

더블의 부작용을 억제해줄 스팀팩이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돌발 퀘스트 : 방패연 10회 사용하기, 더블 없이 승리]

[보상 : ???]

‘당장의 승리보단 앞으로 펼쳐질 경기들을 위해서 스킬을 하나라도 더 받아놓는 게 더 낫지.’

말 그대로 돌발 퀘스트.

다음 경기에 방패연을 10번 사용한다고 해서 발동할지 안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사용한 방패연은 9번.

“코너킥!”

심판이 선언한 코너킥인데 문제는 우리 팀의 코너킥이라는 것이다.

“모두 올라가!”

안태리가 수비부터 시작해서 보경풍까지 상대진영으로 모두 올렸다.

‘이러면 나가린데?’

그렇다고 팀킬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충무공은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어쨌거나 오진성은 프리킥을 올렸다.

골 에어리어에만 7명의 선수가 뒤엉켰다.

이만수가 헤딩으로 따낸 공은 데굴데굴 굴렀다.

이순신은 공을 향해 달렸다.

[황자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황자포는 골 에어리어에서 강력한 헤딩슛을 펼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문제는 타점이 너무 낮은데 여기서 다이빙헤딩을 했다가는 갑용타를 맞고 코뼈가 부러질 확률이 높았다.

‘공에 발이 닿기만 하면 되는데…’

그 순간이었다.

‘방패연을 꼭 수비할 때만 쓰라는 법은 없잖아?’

[방패연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순신의 몸이 자동사냥을 하는 것처럼 공을 향해 끌려갔다.

툭!

“오호?”

한편, 경기장 근처에서 달갑지 않은 손님이 이순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순신을 버린 루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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