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3화 (34/161)

33화. 이건 못 참지.

이순신은 3일에 걸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하루에 2시간씩 팀 훈련, 연습 경기, 전술 이해도 등을 평가했다.

“와- 쟤 축구를 2년 동안 쉰 애 맞아?”

천안 호두과자팀의 감독이 이순신을 보고 놀랐다.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니 장난 아니었다.

“워낙 재능있는 선수였으니까요. 일단 저 신체 조건은 확실히 탈아시아급이네요.”

보통 유망주들이 많이 사라진 이유는 근력 운동을 게을리했기 때문이었다.

속도가 줄어드니까, 몸싸움이 싫어서, 피곤하고 귀찮아서란 이유로 결국은 다치고 사라지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런 점에서 체격이 좋고 빠르다는 건 어느 정도 먹고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천안팀 감독은 이순신이 마음에 들었다.

“한 번 키워봅시다.”

이순신은 테스트가 끝나고 협상팀과 마주 앉았다.

총무팀장과 감독, 이순신이 건너편에 앉았다.

막내 피디는 양측의 허락하에 협상 과정을 촬영했다.

“이순신 선수. 테스트 결과 우리와 함께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건 계약서니까 한 번 살펴보세요.”

이순신은 계약서를 살펴보았다.

하얀 건 종이, 까만 건 글자…

[카이저 코치가 계약서를 검토합니다.]

카이저가 계약서를 검토하니 그제야 이순신도 계약 내용이 이해됐다.

“일단 연봉 1억으로 맞춰주신다고 했는데, 여기는 5천만 원 선이고…출전, 승리 수당이 10만 원? K3보다도 낮은데요?”

“상한제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5천만 원도 신입 급에서는 최고급 대우입니다. 리그의 수준을 생각하면 K3랑 비교할 바는 당연히 못 되고, 연봉은 활약 여부에 따라서 다음 해에 금방 올라갈 거고요. 혹시 알아요? 울산이나 전북에서 영입제의가 올지~”

계약 조건은 1+2년 계약.

이순신이 마음에 든 것과는 별개로, 계약조건은 매우 냉정했다.

계약을 목전에 둔 선수의 심리를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카이저가 계약서를 검토하지 않았더라면…’

결정적으로 이순신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계약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뭐?”

이순신의 거절에 협상 테이블은 완전히 무너졌다.

“제가 원하는 포지션은 중앙수비수입니다. 공격수는 제가 원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허허, 이 친구도 참. 전술에 따라 포지션을 변경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자네는 수비수보단 공격수로서 더 뛰어나단 말이야.”

“다른 공격수를 찾아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허허. 이러면 좀 곤란할 텐데.”

천안팀 감독은 쓴 입맛을 다셨다.

동시에 자존심도 상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하면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을뿐더러 프로의 세계에서는 발도 못 붙이게 할 생각이라는 걸 충무공이 알려줬다.

‘호두과자처럼 알맹이가 시커먼 사람일세.’

이순신은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순신 선수. 지금 2부리그 팀을 거절했는데 진심이신가요? 너무 좋은 기회를 차버린 거 같은데요?”

“아직 제 능력을 많이 못 보여드린 거 같습니다. 좀 더 열심히 갈고 닦다 보면 더 좋은 팀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막내 피디는 씨익 웃으며 카메라를 껐다.

이순신은 확신했다.

언젠가 국가대표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

그것은 능력을 얻기 전에도 성공했던 일.

[당장 이익을 위해 팀을 배신하지 않은 의리와 흔들리지 않는 신념에 대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주머니를 확인하세요.]

이순신이 주머니를 확인했다.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깜짝 놀랐다.

“형. 저 독일 갈게요.”

“뭐? 표가 어딨다고.”

이순신이 그의 앞에 무언가를 내밀었다.

‘독일행 비행기 표’였다.

그것도 두 장이나!

“너 그걸 어떻게 구한 거야? 설마 절대로 제작비에서 지원 못 해줘!”

“그냥 팬이 후원해줬다고나 할까? 오늘 저녁 비행기네. 형은 어떻게 하실래요?”

“당연히 따라가야지!”

막내 피디는 결국 이순신을 따라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찰싹!

아주 찰진 소리가 김혁규의 볼에서 들렸다.

“와- 꿈이 아니네? 어떻게 된 거야?”

김혁규가 볼을 어루만지면서 물었다.

사실 이것은 이순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카이저 코치가 코를 찡긋합니다.]

이순신은 카이저 코치가 독일 출신인 걸 깨닫고 이해했다.

“비행기 타고, 버스 타고 바로 달려왔지.”

“다행이다!”

“다행은 무슨. 3연패 각인데!”

조문돈의 입이 엄청나게 튀어나왔다.

이순신은 주변을 돌아봤다.

아직 경기 시간은 반이나 남았다.

하지만 이미 끝난 분위기였다. 어떠한 의욕과 전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반전이 끝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이순신은 정지선에게 주장 마크를 건네받았다.

“괜찮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린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

이상재는 그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더는 실점을 허용하지 않기만 해도 다행일 텐데, 감히 이긴다고?

인간이 얼추 80년을 산다고 쳤을 때 40살부터 새롭게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이미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찬 FC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이순신이 보여줬다!

[배수의 진이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의 능력치와 집중력이 올라갔다.

잔 실수가 눈에 띄게 줄자 점유율도 대등해졌다.

‘으흠. 조금은 해볼 만하겠는데?’

왼쪽 미드필더로 나선 이상재는 확실히 독일 2부리그에서 머물 선수가 아니었다.

공을 잡은 이상재는 드리블을 시도했다.

“제기랄!”

조문돈이 욕을 하며 전력을 다해 쫓아갔지만, 막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드디어 두 사람이 붙었다.

“네가 그 건방진 꼬마 놈이지?”

이상재는 볼을 툭툭 차며, 이순신이 나오도록 유인했다.

“…”

이순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상재의 눈을 바라봤다.

‘건방진 새끼.’

이상재는 왼쪽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방패연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순신은 과감한 태클로 이상재의 공을 단숨에 빼앗았다.

이곳의 심판은 프랑스처럼 개새끼들은 아니었다.

정당한 태클이라고 판단한 그들은 경기를 속행시켰다.

이순신의 드리블이 펼쳐졌다.

홀슈타인 선수들은 빠르게 복귀했다.

비격진천뢰의 성공률은 고작 5%.

‘와- 상당히 낮은데?’

이순신은 슛을 포기하고 옆으로 달려가는 남주작에게 공을 건넸다.

남주작이 측면을 따라서 드리블을 쳤다!

순식간에 상대편 수비가 둘이나 붙었다.

개인기로 돌파하기엔 그들의 능력이 더 뛰어났다.

남주작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뒤에!”

이순신이 소리쳤다.

남주작이 고개를 돌리니, 뒤에서 홍반봉이 달려왔다.

툭.

재빠르게 패스를 받은 홍반봉의 눈이 살짝 풀렸다.

“좋아. 가는 거야!”

홍반봉은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김혁규가 받아서 바로 논스톱으로 때렸다.

툭!

상대편 골키퍼가 놓친 공을 오진성이 잡는 척하더니 뒤로 슬쩍 흘렸다!

당연히 이순신이 쫓아오는 중이었다.

지자포와 비격진천뢰 중 이순신의 선택은 지자포였다!

[지자포가 발동했습니다.]

펑!

상대 수비수의 몸에 공이 제대로 맞았다.

다행히 공격 기회가 아직 세찬 FC에 있었기에 반동 효과가 발동하진 않았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3/3)]

[성공률 80%]

이순신은 비격진천뢰를 사용했다.

남은 횟수가 1회 차감됐다.

하지만 그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예쁘게 공이 날아갔다.

“아! 이순신 선수! 아깝습니다. 골대를 맞고 밖으로 벗어납니다!”

“젠장!”

이순신이 홧김에 잔디를 걷어찼다.

누가 봐도 아까운 슛은 분명했다.

그 누구도 대응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이순신은 웃었다.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성과는 확실했다.

선수뿐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도, 중계진들도 깨달았다.

“이순신 선수가 투입된 후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시차 적응도 아직 안 됐을 텐데 대단합니다. 세찬 FC가 이 기세를 이어가면 좋겠군요.”

얼핏 보면 이순신은 개인 성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팀플레이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공을 차는 동료들이 축구 그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오진성이나 김혁규의 눈빛이 살아났고, 남주작의 눈빛도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두 번째는 이상재에게 확실히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줬다.

‘국대에도 이런 유형의 수비수는 없었는데…’

골 넣는 수비수라고 소문은 익히 들어와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인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자신의 개인기가 앞으로도 통하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특기가 드리블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상재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패스였다.

얼마 전에 있던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골도 넣어서 자신감도 하늘을 찌르는 상태.

이상재는 동료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바르텔스는 그대로 뮐링에게 연결했다.

이상재, 뮐링, 바르텔스로 이어지는 패스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와- 이건 누굴 막아야 해?’

이순신조차도 환상적인 연계에 혀를 내둘렀다.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선수는 노장 바르텔스였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오가는 홀슈타인 공격의 핵심이었다.

비록 예전과 비교하면 폼은 많이 떨어졌지만, 노련함으로 충분히 메꿨다.

이순신이 다가갔다.

그러자 예리하게 감아 차기를 시도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보경풍이 공을 쳐 냈다.

바르텔스는 아까운 듯 머리를 젖혔다.

계속 이어지는 홀슈타인의 맹공에 세찬 FC는 속수무책이었다.

뮐링이 올린 코너킥을 바르텔스가 떨궈주고 뒤에서 이재성이 기습적으로 슛을 때렸다!

“들어간다!”

이상재는 무방비 기회에서 때렸기에 당연히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방패연 스킬을 사용해서 공을 걷어냈다.

정지선이 받아서 앞으로 찔러줬다.

오진성은 공을 받아서 질주했다.

이상재의 플레이를 보니 가슴이 끓어 올랐다.

‘지지 않아!’

“오진성 선수! 과감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떨쳐냅니다! 전방에는 이만수와 김혁규가 달리고 있습니다.”

오진성은 김혁규에게 낮고 빠르게 패스했다.

하지만 수비가 빠르게 달라붙자 오진성에게 다시 리턴패스를 하고 들어갔다.

오진성은 뒤꿈치로 가볍게 궤도를 바꿔서 남주작에게 넘겼다.

공을 잡은 남주작은 왼쪽 사이드로 빠졌다.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는 이만수가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치열하게 하는 중이었다.

남주작은 그대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만수가 잡기에는 어림도 없이 높은 공이였다.

공은 상대 수비를 넘어가서 김혁규에게 닿았다.

“김혁규 슛!”

공은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고 빗나갔다.

“홀슈타인의 골문이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네요! 세찬 FC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이순신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고작 1분 남짓.

‘한 번만 걸리면…’

이순신은 중앙선 근처에서 튕겨 나오는 세컨볼을 노렸다.

오진성의 코너킥!

이만수는 이번에도 공중전에서 상대 수비수에게 패배했다.

“이쪽으로!”

이상재, 뮐링이 동시에 달렸다.

다만 상대 수비수도 급하게 걷어내느냐고 공이 조금 길었다.

공 하나를 두고 이순신과 이상재가 마주 보고 달렸다.

바르텔스가 손을 뻗으며 이순신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이순신은 바르텔스가 옷을 잡으려는 손을 ‘방패연’을 사용해서 순식간에 앞으로 이동했다.

“뭐야?”

바르텔스는 당황했다.

이순신과 이상재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단 한 발 차이로 이순신이 먼저 공을 잡았다.

“아. 이상재 선수.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두 사람이 부딪히기 일보 직전입니다!”

이상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앞에서 달려오는 이상재를 가볍게 제친 후 그대로 천자포를 날렸다!

“나왔습니다! 이순신 선수의 대포알 같은 슛!”

팔짱을 끼고 앉아서 보던 안태리도, 김구름도, 이갑용도 순식간에 일어났다.

툭!

그 순간이었다.

경기장 안에는 무언가 툭 끊기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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