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2화 (33/161)

32화. X 같은 마구니 새끼야

세찬 FC가 유럽에서 처음 마주한 팀은 AFC 튀비즈였다.

“어서 오십시오. 안태리 선수. 아 지금은 감독인가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AFC 튀비즈의 구단주 중 한 명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이름은 심찬.

무려 50년이란 역사를 가진 팀이었고, 한국 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인수한 팀이었다.

한때는 4위에 오를 정도로 강팀이었지만, 지금은 하위권에서 맴돌며 강등을 앞뒀다.

“좋은 선수들 있으면 스카웃해도 되죠?”

“물론이죠.”

“그 유명한 이순신 선수는 안 보이는데요?”

“아 지금 국내에서 사정이 좀 있어서 이번 해외 원정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크. 영입 1순위였는데 아쉬웠네요.”

두 사람은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각자의 위치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공격의 방성찬, 수비의 이순신이 빠진 세찬 FC는 국내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오진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격은 몇 번의 감각적인 패스가 나왔다.

아쉽게도 이만수나 김혁규가 골로 성공시키지 못했다.

후반전이 되자 그동안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골키퍼인 보경풍까지도 교체됐다.

안타깝게도 그의 용병술은 실패였다.

두 골을 내리 먹히고, 수비에 치중한 세찬 FC는 추격골을 넣지 못한 채 경기를 마무리했다.

“아쉽게 됐습니다. 아직 선수들이 시차 적응도 문제고,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튀비즈의 올시즌 성적 기대해봐도 좋겠는데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해외 원정 첫 경기가 마무리됐다.

락커 룸에 모인 선수들의 분위기는 다소 무거웠다.

시차 적응?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변명할 수 없었다.

여독? 원정?

그것 역시 다 변명뿐이었다.

“왜들 풀이 죽어 있어?”

“죄송합니다. 감독님.”

“하- 왜? 뭐 죽을죄를 지었어?”

“경기에서 패배했으니까요.”

안태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야. 3경기 이기고 고작 한 경기 진거야. 이래가지고 다음 경기하겠어?”

“…”

“기운 내라. 오늘 저녁은 소고기로 내가 쏜다.”

“…”

의기소침한 선수들을 보자 결국 안태리는 제대로 빡쳤다!

“대답 안 해? 그냥 돌아가서 와플이나 먹고 때울까?”

그때 구멍이 손을 들었다.

“감독님. 질문이 있소이다.”

“뭔데?”

“무제한으로 먹어도 됩니까?”

키득키득.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구멍은 머쓱한지 혀를 내밀며 머리를 긁적였다.

덕분에 얼어붙은 분위기가 다소 녹아내렸다.

***

소고기를 먹고 심기일전을 한 세찬 FC의 다음 상대는 프랑스에 있는 FC 메스였다.

비록 1년뿐이긴 했지만, 한때 안태리 감독이 몸담았던 팀이기도 했다.

덕분에 리그 앙 1부리그의 팀과의 경기가 성사될 수 있었던 1등공신이었다.

똑똑똑.

안태리가 묵고 있는 방에 아침부터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아흠. 이른 아침부터 뭡니까?”

안태리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문을 열었다.

“감독님. 이거 어쩌죠?”

“뭐가요?”

“방성찬 선수랑 이순신 선수가 3일 후에 있을 메스와의 경기에 합류가 어려울 거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아니, 감독님. 핵심 전력이 둘이나 빠졌는데 혹 대책은 없나요?”

피디는 똥줄이 탔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

이를 해결해줄 공수의 핵심이자 인기를 담당하는 두 선수가 참가는커녕, 하차하게 생겼다.

그 말인즉슨 시청률 하락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있는 자원들 가지고 잘 꾸려봐야죠. 하암.”

“아니. 감독님. 적어도 왜 참여가 어려운지는 물어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부상만 아니면 되죠. 피디님도 이 상황 예상하셨잖아요?”

“…”

피디는 할 말을 잃었다.

결국은 안태리가 우려한 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좀 더 거국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제야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전 좀 더 잘게요. 이따 훈련해야 하니까…”

안태리는 매몰차게 방문을 닫았다.

“피디님. 어떡하죠?”

“물 좀 떠와라.”

“네?”

“물 떠놓고 잘되길 빌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조연출은 그 순간만큼 진심으로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한편, 안태리는 씨익 웃었다.

“거, 선수들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 갑자기 왜 그런데? 팀에서 중용 받고, 2부에서 입단 테스트 받으면 좋은 일이지.”

안태리는 이미 이순신과 방성찬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감독님. 잘 지내십니까?”

“어. 순신아. 별일 없지?”

“네. 그런데…”

이순신은 천안 호두과자 팀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에 대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테스트 일정과 합류 날짜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세미프로도 아닌 프로팀에서 온 연락이었다.

2부리그라고 해도 승강제를 통해서 1부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팀이기에 이건 안태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대단한데? 일단 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테스트 해보는 것도 중요하니까 걱정 말고 테스트 봐라. 너 하나 없다고 세찬 FC 안 무너진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래. 나중에 계약서 잘 살펴보고.”

안태리는 잠을 좀 더 청하려다가 김구름과 이갑용에게 연락했다.

경기 당일이 되자 세찬 FC의 선수들은 사뭇 긴장했다.

비록 1부와 2부를 넘나드는 팀이지만, 자신들이 만났던 팀 중에 가장 수준 높은 팀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주로 19세 유망주들과 2군으로 이루어진 맴버들이었다.

그럼에도 엄연히 프로인 건 사실이었다.

이순신은 없었지만, 배수의 진이 발동된 것처럼 선수들의 기합이 팍 들어갔다.

오진성과 이만수는 지난 경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또 뛰었다.

초반의 기세는 오히려 세찬 FC가 앞섰다.

다만 경기 시작하자마자 상대에게 헌납한 페널티킥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시작과 동시에 0: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남주작이 크로스를 올리고, 이만수가 헤딩을 꽂아 넣었다.

“우아아아아!”

이만수가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포효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졌다.

“아니. 이게 왜?”

이만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제스처를 보였는데 그것이 심판의 눈에는 불쾌한 모양이었다.

곧바로 옐로우 카드가 지급됐다.

“와. 이 코쟁이 새끼들 미치겠네.”

“참으시오. 만수 시주!”

구멍이 말리지 않았다면, 이만수는 심판을 갈겼을 것이다.

경기 양상은 점점 거칠어졌다.

공을 보고 태클을 해야 하는데 정강이를 보고 태클을 하는 메스 선수들을 보면서 급기야 안태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기야 3:0으로 스코어가 벌어졌다.

선수들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경기 막판까지도 상대편은 여전히 거칠었다.

결국, 90분이 다 돼서야 마지못해 페널티킥 하나를 받았다.

삐이이익-

김혁규가 공을 찼다.

안타깝게도 공은 골대를 맞고 튕겨져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뒤에서 노려보던 구멍이 매우 빠르게 달렸다!

구멍이 찬 공은 상대편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지나갔다.

철렁~

골대 그물과 상대편 가슴이 철렁했다.

“잘했다!”

세찬 FC는 만회 골이라도 넣은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구멍은 아니었던 거 같다.

자신이 찬 공을 들고 향한 곳은 심판이었다.

공을 심판 앞에 강하게 튕겼다.

심판은 얄밉게도 살짝 고개를 돌려서 피했다.

“이 X 같은 마구니 새끼야. 너한텐 지옥 불도 아깝다. 부처님의 여래 신장으로 귓방망이를 쳐 맞아봐도 귀축으로 환생할 새끼야. 아니 귀축도 감지덕지지. 번데기로 태어나서 변태도 못 하고 쪽쪽 빨려 먹다가 뒤져라.”

화룡정점으로 주먹 감자를 날렸다.

주먹 감자는 프랑스에서도 꽤 심한 욕이기에 심판은 손바닥으로 구멍의 대가리를 후렸다.

야구에서 볼만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대환장 파티에 안태리, 이갑용, 김구름은 동시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하.하. 그냥 물이 아니라 에비땡이라도 사 와서 빌었어야 했나?”

피디는 그저 생방송이 아님을 감사히 여겼다…

쾅!

세찬 FC의 라커룸은 난리가 났다.

“야! 너 뭐야? 미쳤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녀석들도 그렇고 심판도 너무 개같이 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구멍은 합장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감독님은 이게 공정한 게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완전 편파 축구입니다!”

“맞아요. 감독님도 화내셨잖아요!”

쾅!쾅!

안태리가 강하게 철로 된 사물함을 때렸다.

“이 새끼들아. 우리가 지금 여기 놀러 왔어?”

“…”

선수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프로는 꽃밭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다. 10경기를 잘했어도 한 경기를 못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단 한 번의 행동이 평생의 커리어를 끝장낼 수도 있다.”

안태리가 구멍을 보면서 말했다.

구멍도 느끼는 바가 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상대편이 반칙을 쓰면 압도적인 실력으로 제압하면 된다. 조금 더 빠르게, 심판이 판정을 내리기 전에 조금 더 먼저 움직이면 된다. 평생 홈경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

“…”

“그리고 구멍.”

“네. 말씀하시지요.”

“넌 다음 경기에서 뛸 수 없다.”

“!!!”

***

원정 마지막 경기는 독일의 2부리그 소속인 홀슈타인 킬이었다.

국내 무대를 씹어먹던 이상재가 소속된 팀으로 곧 1부 승격을 앞뒀다.

심지어 그는 아시안 게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상태였다.

“진성아. 오랜만이다.”

이상재가 세찬 FC쪽으로 와서 오진성에 인사를 건넸다.

“형. 오랜만이에요.”

오진성이 고등학교 시절, 이미 프로팀에서 뛰고 있던 이상재는 모교로 찾아와 후배들을 지도하며 재능기부를 한 적이 있어서 두 사람은 친분이 있었다.

“너네 프로그램 인기 많더라.”

“하하…”

오진성도 어렴풋이 눈치챘다.

해외 원정이 끝나고 나면, 여론이 바뀔 것이라는 걸.

벌써부터 쏟아질 악플이 걱정이었다.

“살살 해줘요.”

“응. 최선을 다할게.”

2부리그에서 뛰어도 보이는 저 여유로움.

자신의 재능을 믿고 언젠가 1부리그로 갈 자의 뒷모습이었다.

삐이이익-

마침내 경기가 시작됐다.

세찬 FC는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했다.

이순신, 방성찬에다가 후방에서 팀을 조율한 구멍까지 빠졌다.

그야말로 가운데가 뻥 뚫린 상태였다.

“아, 세찬 FC의 바람이 여기서 무너지나요!”

스케줄 때문에 마지막 경기에 참여한 이주성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국내에서 2연패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한참 걱정했었다.

“이상재 슛!”

보경풍이 몸을 날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골입니다. 이상재 선수의 선취골로 킬이 앞서갑니다!”

세찬 FC의 선수들은 꿈을 꾸는 거 같았다.

청소년 대표, K3 팀을 이길 때만 하더라도 과거에 영광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보니 자신들은 그저 허접이었다.

“세찬 FC에서 선수교체가 있습니다. 이순신 선수가 들어갑니다!”

“뭐? 이순신이?”

이순신이 들어온다는 말에 선수들은 벤치로 향했다.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몸을 풀던 이순신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순신아? 이거 꿈 아니지?”

이순신이 김혁규의 싸대기를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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