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31화 (32/161)

31화. 제 몸값이 어느 정도 될까요?

그는 3부리그에서 온 화성 FC 관계자였다.

“긴가민가했는데 맞네요. 이순신 선수! 세컨드 찬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인사하는 그의 첫인상은 호감형이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찬 FC는 해외로 전지훈련을 떠났다고 들었는데…”

“아 그게…”

그때 막내 피디가 끼어들었다.

“개인 사정으로 후발대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오호. 그렇군요.”

그는 쉽게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쪽에서 차나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뜻밖의 제의에 막내 피디와 이순신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하. 그냥 팬 미팅이라고 생각하세요.”

세 사람은 근처에 있는 별다방으로 향했다.

막내 피디와 이순신이 자리를 잡고 화성 FC 관계자가 커피를 받으러 갔다.

“피디 형님.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죠?”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실제로 막내 피디는 현재 자신이 피디인지 이순신 개인 에이전시인지 헷갈렸다.

“자, 드시죠.”

“감사합니다.”

이순신과 막내 피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화성 FC에서 운영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기수입니다.”

김기수는 명함을 내밀었다.

“그런데 저희 가게에는 어쩐 일로?”

“우연입니다. 우연. 새로 개업했다길래 함 와봤는데 여기서 이순신 선수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

“아. 네…”

세 사람은 잠시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좋아하는 축구 선수라던지, 그때 그 경기, 세컨드 찬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혹시 팀은 정했습니까?”

김기수가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아직이요. 정해진 건 없습니다.”

“이순신 선수라면 저희 팀 이외에도 여러 팀에서 제안이 왔을 텐데요?”

“그렇긴 한데 일단은…”

“여러 제안을 놓고 검토하는 중입니다.”

막내 피디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아무래도 이순신이 건강 검진을 먼저 말하면 좋을 게 없을 거 같아서였다.

실제로 이순신을 문의했던 팀들은 건강 검진 결과를 빨리 알려달라고 했다.

“다른 팀들은 건강검진결과로 아마 간을 보고 있겠죠?”

김기수가 씨익 웃었다.

이순신과 막내 피디는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특히 어떨지 모르지만, 저희 팀은 직접 붙어봤잖습니까? 감독님도 선수를 원하고 있고요. 다만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는 게 좀 안타깝네요.”

“지금 제 몸값이 어느 정도 될까요?”

이순신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으음-”

김기수가 잠시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는 그래도 다른 구단에 비교해서 선수 대우는 좀 좋은 편이죠. 1년 계약에 기본급 월 200에 승리 수당 90만 원 정도까지 맞춰줄 수 있습니다.”

한 달에 4경기에서 모두 이긴다면 총 560만 원, 일시적이긴 하지만,

능력에 따라 연봉 8000만 원에 육박한 월급이었다.

물론 무한정 지급은 아니고 상한선이 있었다.

구체적인 액수가 나오자 이순신의 눈빛도 조금은 흔들렸다.

그것은 아마도 아까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 그랬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스페인에 갔을 때 매년 받은 연봉만 4억 원이었다.

이순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개구리 올챙이 때 생각 못 한다더니.’

화성 FC가 제시한 돈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현재 화당 50만 원씩 출연료를 받는 처지.

화성 FC의 조건은 상당히 좋은 조건임에도 고민하는 자신이 어이없었다.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면 계약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해줄 수 있긴 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고 비공개테스트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다만, 저희와 계약 후에는 세찬 FC에서 하차하셔야 한다는 거 아시죠?”

“몇몇 선수는 세찬 FC가 끝나고 본격적인 논의를 한 거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는 이순신 선수를 즉시 전력감으로 보고 있거든요. 행여라도 다치면 곤란하죠.”

“네. 알겠습니다.”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김기수는 자리를 떠났다.

고민하는 이순신에게 막내 피디가 물었다.

“혹시… 하차할 거냐?”

“글쎄요? 분명 좋은 조건인데 뭐랄까… 썩 와닿진 않아요. 분명 나쁜 제안은 아니지만, 좀 더 높은 곳을 노려보고 싶은데요?”

막내 피디는 씨익 웃었다.

이순신이 처음 인터뷰를 하러 왔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국가대표를 꿈꾸는 미친놈이 들어왔다고.

그게 이순신이었고, 실제로 다른 선수들과 뭔가 다른 기운을 뿜어냈다.

마치 자신을 모셔가라고 기다리는 제갈량이나 태공망처럼 인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방성찬의 경기를 보러 간 이순신에게 K2 스카우트가 접근했다.

‘이건 좀 센데?’

막내 피디는 어쩔 수 없이 총괄 피디에게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

대전과 상무의 FA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성찬이 형 잘하자!”

관중석과 경기장의 거리가 제법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목청을 높여 열심히 응원했다.

“방성찬. 파이팅!”

방성찬도 방송 탓에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4명이 6명 팀을 이기는 모습들이나 양민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끝판왕 캐릭터를 구축했다.

덕분에 축구붐이 다시 불었다.

그중에서 가장 다행인 건 하부리그에 대한 인식변화였다.

축구 자체는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지만, 해외 리그보다 챙겨보는 사람이 더 적었다.

경기의 재방송률만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해외 리그 재방송이 훨씬 높았다.

선수들은 열심히 뛰고, 구단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알리고자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약간 엇박자가 났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2부리그를 2군 리그, 혹은 수준 격차가 많이 나는 하부리그쯤으로 취급했다.

2부리그도 엄연히 돈을 받고 뛰는 프로들이었다.

무엇보다 확실히 수준 차이가 났다.

어릴 때부터 밥 먹고 축구만 해온 선수들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엄연히 ‘프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방성찬이 상대하는 김천 상무 역시 마찬가지였다.

축구를 계속하면서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기 위해 입단한 선수들은 대다수 1부리그 소속의 선수들이었다.

개개인의 기량과 성장성을 놓고 보면 김천 상무 선수들이 좀 더 높으나, 매년 바뀌는 선수구성으로 조직력은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연고지가 바뀌면서 2부리그로 시작하는 바람에 동기부여도 낮았다.

그 결과.

방성찬의 헤딩 패스를 받은 대전 공격수가 천금과 같은 결승골을 넣어서 1:0으로 승리하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방성찬. 나이스!”

막내 피디는 기뻐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순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순신아. 무슨 문제 있어?”

“당분간 성찬이 형. 합류 못 하는 거 아니에요?”

순간 막내 피디는 ‘아차!’ 싶었다.

“그렇다고 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흠.”

“아냐. 주전 선수들이 복귀하면 다시 보내주지 않을까?”

“오늘 어시스트까지 기록한 공격수를 그리 쉽게 뺄까요?”

“…”

막내 피디는 할 말을 잃었다.

경기가 끝나고 두 사람은 잠시 방성찬을 만났다.

“형. 이긴 거 축하해요.”

“고맙다. 피디님도 오셨습니까?”

“아. 네. 오늘 나이스 플레이였습니다. 그런데 해외 원정 참여는 어렵겠죠?”

“하하. 안 그래도 그 문제로 감독님하고 면담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순신 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이따 연락할게. 고기나 먹자.”

“넵!”

“누군가?”

이순신이 방성찬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대전팀 감독이 나타났다.

“감독님. 이쪽은 세찬 FC에서 활약하고 있는 팀 동료입니다.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아- 그 귀화한다고 깝죽거리던 녀석.”

순간, 이순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전팀 감독은 썩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 같았다.

“하하. 감독님. 지금은 반성하고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래 봤자지. 뭐. 우리 성찬이 봐서 알지? 너희가 옛날에 아무리 날고 기었어도 2부리그 후보선수한테도 발리는 거.”

이순신이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이라도 면상을 갈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 정도 도발에 넘어갈 이순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웃었다.

“성찬이 형을 본받아서 더욱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대전팀 감독은 씨익 웃더니,

“그러시던가.”

냉소를 지으며 자리를 떴다.

‘이 정도 도발에 안 넘어가고 주눅이 들지 않는 건 마음에 드는구먼. 계속 지켜봐야겠어.’

그는 일부러 이순신의 인성을 테스트했다.

“미안하다. 원래 사람은 좋은 분인데… 이따가 연락할게.”

방성찬이 대신 사과하며 자리를 떴다.

“와- 큰일 벌어지는 줄 알았네. 난 네가 한 대 갈기는 줄 알았다.”

“에이. 형. 애도 아니고 왜 그래요? 저도 이제 21살이라고요. 무려 군필!”

30대 초반인 막내 피디가 볼 때 이순신은 아직 아이였다.

“혹시 이순신 선수 아닙니까?”

이순신과 막내 피디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저는 천안 호두과자팀 스카우트 이현수라고 합니다.”

막내 피디는 깜짝 놀랐다.

막내 피디가 메인 피디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사이 이현수는 영업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서 경기장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저희 팀에서는 이순신 선수의 가능성을 예전부터 높이 사고 있었습니다.”

“네? 제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저한테 연락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요?”

사실이었다.

실패한 유망주에게 그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하하. 당시 분위기가 어쩔 수 없었죠. 무엇보다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오니 다들 끝났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대한민국 운동선수에게 현역 입대는 경력에 상당히 치명적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요? 경기를 보면 옛날에 보여준 천재적인 능력도 되살아나고 있고, 무엇보다 상업적으로도 활용가치가 최고니까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으나, 가치가 있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기도 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압니다. 아마 눈이 달린 팀이라면 이순신 선수한테 제안했겠죠. 그러면서도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했겠죠?”

“네…”

“이 정도 조건이면 어떨까요? 일단 테스트를 받아보시죠. 최소 연봉 1억 정도. 테스트 여하에 따라서 여러 옵션이 붙을 수 있죠. 이 정도면 충분히 프로그램 하차를 고려해볼 만하죠?”

전화하고 온 막내 피디는 마침 그 제안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순신 역시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눈치였다.

***

한편 해외 원정 3주째.

세찬 FC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교체 이순신.”

이순신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그의 선택은 세찬 F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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