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9화 (30/161)

29화. 낙오된 이순신?

이순신은 상대편과 뒤엉키며 넘어졌다.

‘슛은?’

안타깝게도 상대편의 손에 막혔다.

“아!”

이순신이 얼굴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골키퍼가 장갑을 안 꼈지?’

삐이이익-

“페널티킥!”

“아 화성FC 선수들 당황했나요? 미드필더 선수가 손으로 공을 막았습니다!”

“미… 미안.”

화성FC 선수는 미안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순 없었다.

손으로라도 막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골을 헌납했다.

심판이 선수를 향해서 레드카드를 뽑았다.

결국, 그 선수는 퇴장당했다.

심판의 칼부림 같은 카드 부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직 이순신에게 태클을 건 선수에 대한 처벌이 남았다.

빨간색·노란색·빨간색·노란색.

양 팀 선수들이 초조하게 심판의 가슴팍을 주목했다.

레드카드!

심판은 호루라기와 함께 퇴장을 선언했다.

“와아-”

“으아아악.”

양 팀 관중석의 희비가 교차했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 것!”

안태리가 이순신을 데리고 나오라고 지시했다.

“부상 따위야 웬만하면 참아내고 싶지만…”

[상태 : 가벼운 부상]

[심각할 정도의 부상은 아니지만, 응급조치하고 경기에 다시 참여하기를 권장합니다.]

이순신은 충무공의 조언으로 라인 밖으로 나가서 부상을 살펴봤다.

“무릎을 굽힐 때 통증이 있나요?”

“아니요.”

팀 닥터는 이곳저곳 종아리와 정강이 쪽도 이곳저곳 눌러봤다.

“아픕니까?”

“괜찮습니다.”

“일단 파스를 좀 뿌리고, 얼음찜질 좀 한 다음에 들어가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팀 닥터의 말을 들어보니 큰 부상은 아닌 듯해서 안심했다.

[가벼운 부상 -> 주의 상태로 변했습니다.]

[이후 비슷한 부위에 부상을 당하면 심각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이순신은 축구화를 다시 고쳐 신었다.

‘휴. 다행이다. 부상 따위에 발목 잡히면 큰일 나지.’

이순신은 스페인에 진출했을 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잔 부상을 달고 살았다.

방귀가 모이면 똥이 된다는 말처럼, 잔 부상은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

그사이에 세찬 FC는 페널티킥을 준비했다.

키커는 방성찬이 준비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방성찬은 호흡을 길게 삼킨 후 찰 곳을 노려봤다.

타다다닥.

철렁~

“방성찬 선수의 골로 세찬 FC가 1:0으로 앞서갑니다!”

“나이스 샷!”

이순신은 필드 밖에서 손뼉을 쳤다.

방성찬이 세레머니를 하는 동안 이순신은 필드에 복귀했다.

정지선이 물었다.

“순신아. 다친 데는 어때? 괜찮아?”

“응. 별거 아니래.”

이순신이 무릎을 툭툭 치며 자신감을 보였다.

1: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

더군다나 상대는 두 명이 빠졌다.

“대량 득점 한번 노려보자!”

오진성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순신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배수의 진이 해제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화성FC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질 수 없다는 눈빛.

‘이제까지와는 다르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상대가 강하다면 더더욱 강하게 부딪히면 되는 일이었다.

“0:0이라고 생각해! 합숙 때 선발경기도 떠올려보고!”

이순신의 외침에 세찬 FC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4명뿐인 방성찬의 팀은 6명인 팀을 제압했다.

‘그렇군. 나도 모르게 경기를 쉽게 풀어가리라 생각했다.’

방성찬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흘렀다.

자칫 루즈해질 수 있는 경기.

양팀의 긴장감 있는 플레이는 팬들의 마음을 훔치기 충분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화성FC는 2명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오죽하면 이순신조차 공격 각이 나오지 않아서 수비에 전념했다.

방성찬과 이만수의 합은 썩 좋진 않았다.

비슷한 성향의 두 선수였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에게 마무리를 미뤘다.

무엇보다 K3에서 뛰는 개개인의 기량은 확실히 뛰어났다.

“저렇게 축구를 잘하는데 k3라고? 왜?”

“세찬 FC도 진짜 잘하는데 아직 소속팀이 없다고?”

“전국에 계신 축구 관계자분들 보고 계십니까? 세찬 FC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주성이 무심코 내뱉은 저 말은 훗날 씨가 됐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5분 정도였다.

빡겜을 하던 화성FC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릴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시즌도 아닌 비시즌인 상태라서 체력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

그들을 경기장에서 버티게 한 건 ‘축구 선수’라는 자부심뿐이었다.

이만수의 슛을 잡은 화성FC 골키퍼가 재빨리 스로인했다.

“들어가!”

쭉쭉 이어지는 롱패스.

화성FC의 마지막 측면 공격이 펼쳐졌다!

“잡히면 뒈진다!”

조문돈이 따라붙었다.

온 힘을 내어 뛰는 화성FC 선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순신은 주변을 살폈다.

‘이거 잘하면?’

이순신은 상대편에게 다가갔다.

툭.

애당초 패스를 정확히 읽은 이순신은 공을 가로챘다.

‘끝났다… 1:0이라니… 젠장…’

마지막 공격이 실패하자 화성FC의 공격수는 실망했다.

“아직 안 끝났어!”

이순신의 외침에 화성FC 공격수는 고개를 들었다.

“와-”

이순신이 거침없이 드리블을 펼치자 관중들이 환호했다.

화성FC는 재빨리 수비로 복귀했다.

[비격진천뢰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70%의 성공률을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모두 실패했다.

이제 남은 건 천지현황포였다.

하프라인 근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천자포!

상대편 골키퍼의 위치가 너무 잘 잡혀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뻐어엉-

이순신의 선택은 지자포였다!

이게 축구공을 찰 때 나는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공이 상대편 골대를 향해서 빠르게 날아갔다.

‘왼쪽!’

상대편 골키퍼는 방향을 정확히 예측했다.

철렁!

다만 속도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순신 선수 35m 중거리 슛이 성공했습니다!”

삐이이익-

때마침 경기 종료 휘슬도 울렸다.

“다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한 도전, 감동의 드라마를 펼치고 있는 세찬 FC가 이름 그대로 3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수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잘 아는 이주성은 감격의 눈물까지 보였다.

***

세찬 FC의 활약은 많은 화제가 됐다.

ㄴ 요즘 세찬 FC 봄? 장난 아님.

ㄴ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지면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

ㄴ 매국노 중거리 때리는 거 봤음?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ㄴ 매국노라 부르지 마라. 현역으로 군대 다녀옴.

ㄴ 그래? 그럼 까방권 줘야지. 국가대표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3부리그라도 가서 선수 계속했으면 좋겠다.

ㄴ 우리나라에 잘생긴 선수들이 이렇게 많았음?

ㄴ 나 몰랐는데 축구 좋아하더라…

덩달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피디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었다.

‘이대로만 가면 내년엔 연봉이 두 배로 오르겠어.’

그런데 안태리와 코치진의 얼굴은 어두웠다.

“안 감독님. 무슨 문제라도?”

피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주가 해외 전지훈련이잖아요.”

“아- 그것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청률 잘 나와서 제작비는 빵빵하게 지원받을 수 있을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강해지기 위한 해외 훈련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국내에 적수가 없어서 해외 전지훈련을 떠난다는 식으로 포커싱을 맞출 예정이었다.

“문제는 제작비가 아니란 걸 잘 아시잖아요.”

“네?”

“휴- 일단 밖으로 나가보시죠.”

운동장에서는 선수들이 훈련을 진행했다.

선수들을 지켜보는 눈이 훨씬 많아졌다.

“저거 안 보이십니까?”

“스카우트들이요? 오히려 잘된 일 아닌가요?”

당최 피디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빠르게 주목받은 만큼 관심도 빠르게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의 관심은 오히려 독입니다.”

안태리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다.

그로서는 아직도 세찬 FC는 좀 더 두드리고 다듬어서 단련해야 했다.

수많은 유망주가 성인 무대에서 사라진 이유를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여기서 한두 명이 이탈하면 팀 분위기는 어수선해질 겁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선수의 앞날을 전부 책임질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혹시 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니죠?”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피디는 뜨끔했다.

큰돈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감독이나 스카우트들에게 불려가서 몇 번 고급 한우를 얻어먹은 적이 있었기에 제 발이 저렸다.

“아니면 말고요. 일단 선수들에게 외부 관계자가 접촉하는 건 좀 차단해주세요.”

“그게…”

피디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해외 전지훈련을 앞두고 피디가 사고를 쳤다.

“이 양반이 진짜!”

결국, 안태리는 선수들을 강당에 소집했다.

김혁규가 이순신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글쎄. 분위기는 되게 심각해 보이던데?”

선수들이 웅성거릴 때 안태리가 매우 심각한 얼굴로 등장했다.

“너희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알려주려고 모이라고 했다.”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선수들의 집중도가 올라갔다.

“일단 우리는 다음 주에 해외로 나간다. 너희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덕분에 해외 클럽들과 연습 경기를 가질 기회가 마련됐다. 고맙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지만, 팀 사기 차원에서 그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우와아아아!”

해외라면 PTSD를 겪는 선수들도 있겠지만, 난생처럼 해외로 나가보는 선수들은 가슴이 울컥했다.

“어디로 갑니까?”

“아마도 유럽 쪽이다.”

“어느 팀과 붙습니까?”

선수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비밀.”

“아- 감독님 진짜!”

선수들이 매우 아쉬워했다.

이순신의 표정도 어두웠다.

‘좀 알려주지. 어느 팀하고 싸운다는 정보가 없으니 미리 보기도 사용이 안 되고…’

세찬 FC는 경기 당일에 상대편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덕분에 이순신은 시뮬레이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유럽 나간다는 사실만으로 저렇게 들뜨는데…하…’

들뜬 선수들의 모습을 보자 안태리의 얼굴에 수심이 묻어났다.

“와- 난 브라질밖에 못 가 봤는데 유럽은 첨 가본다. 순신아 너 에스파냐어 아직 기억나냐?”

김혁규가 물었다.

“음. 조금?”

탁탁탁.

안태리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단상을 내리쳤다.

“조용. 아직 전달사항이 다 끝나지 않았다.”

‘뭐가 또 남았나?’

선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너희들에게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우아아아아아!”

장내는 난리 도가니였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이유는 하나.

축구 선수로서의 재기였다.

그 꿈이 성큼 다가왔다.

“제안을 받은 선수들은 일주일 동안 입단 테스트와 협상을 진행하게 되고, 다른 선수들은 먼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게 된다. 또한…”

안태리가 말끝을 흐리자 선수들의 궁금증이 커졌다.

“제안을 수락하게 되면, 더는 세찬 FC와 함께하지 못한다.”

순간 장내가 얼어붙었다.

선수들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순신이 손을 들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팀에 합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렇다.”

안태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선수들은 프로그램이 끝날쯤에 스카우트 제의가 올 줄 알았다.

아직 선수들은 이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에게 온 제안을 살펴봤다.

일주일 후.

유럽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케빈 킴.

방성찬.

그리고 이순신은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