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부상 발생
축구공은 둥글다.
한때 EPL 1부리그에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를 감춘 선덜랜드.
2부리그를 전전하다가 승격 후 리그 우승까지 해버린 레스터 시티.
축구에는 언제나 반전이 일어나는 법이다.
- 리그의 발전 없이는 국가대표팀의 발전은 없다.
최근의 유럽축구가 남미축구보다 객관적인 평가에서 우위를 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리그의 활성화다.
대한민국도 21세기 들어와서 이제 겨우 승강제를 논의했지만, 탁상공론으로 잘되지 않았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스포츠 산업은 ‘돈’이다!
보통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승격이 되면 금전적 혜택이 엄청났다.
EPL을 예로 들면, 2부에서 1부로 승격되면 팀마다 최소 몇백억 원의 중계료를 받는다.
그런데 K리그는?
오히려 몇십억이라는 추가비용이 발생하니, 승격을 거부하는 일이 잦았다.
구단과 협회가 힘겨루기는 아시아축구연맹의 초강수로 진행됐다.
- 승강제를 하지 않는 나라의 리그는 ‘AFC 챔피언스 리그’ 참여 티켓 수에 불이익을 받게 되리라는 것!
생각보다 긴 축구 역사를 가졌음에도 케이리그에 승강제가 도입된 건 이순신이 태어난 한참 이후였다.
승강제가 적용되면서 시민구단 팬들의 반발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이어간 선수들이 많아졌다.
아직 K3의 선수들은 승강제를 통해서 K2나 K1 리그로 갈 순 없었다.
협회가 곧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K3소속 선수들의 가슴은 뜨거웠다.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 무엇보다 뜨거웠으며, 엄연히 연봉과 승리 수당을 받고 축구 선수란 직업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그중에서 화성FC의 선수들은 시와 지자체 기업의 빵빵한 투자를 받아서 선수에 대한 처우와 훈련환경이 좋은 편이었다.
즉 기반을 갖추는 단계였다.
언젠가 k1으로 올라가기 위한 발판을 차근차근 다지는 중이었다.
이순신을 포함한 세찬 FC의 대다수 선수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K3 입단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3부리그 팀이라고 해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안태리는 당황스러웠다.
“얘네 오늘 단체로 약 먹었나?”
“아니, 밥 먹었는데?”
안태리가 김구름을 째려봤다.
농담이 아니라 잘해도 너무 잘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전광판을 봤다.
전반전 30분이 지나도록 0:0이란 스코어를 유지했다.
“와아아아!!”
화성FC의 선수가 공을 잡자 환호성이 일어났다.
“우우우우!”
그러자 세찬 FC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형. 아마추어 경기가 이렇게 뜨거운 거 처음 봐.”
“응. 나도 그래.”
안태리와 이갑용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케이리그 슈퍼매치만큼 경기 내용 역시 박진감이 넘쳤다.
특히 방송의 영향으로 화성FC 구장에는 몇백 명의 팬들이 가득 찼다.
누가 이걸 보고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관중 덕분에 이주성 역시 중계하는 맛이 났다.
“방성찬 선수. 공을 잡았습니다. 김혁규 선수에게 패스. 그대로 흘리면서 윤광섭 슛!”
“꺄아아아!”
확실히 윤광섭은 팬이 많았다.
그의 슛은 골대를 벗어났지만, 팬들의 심장을 제대로 철렁거리게 했다.
“윤광섭 선수 아깝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윤광섭은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런 계집애같이 생긴 놈이 뭐가 좋다고.”
“맞아. 남자라면 나처럼 수염이 좀 있어야 매력적인 거 아닌가?”
조문돈과 홍반봉은 투덜거렸다.
이순신은 그들의 질투 어림이 텔레파시를 통해 들리는 거 같았다.
“말씀드리는 순간 화성FC가 공격합니다. 저 선수 테크닉을 보십시오. 우리나라 K3가 이 정도입니다!”
구멍이 다리를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성FC의 공격수는 크루이프 턴을 하면서 제쳤다.
그 모습을 본 이순신은 생각했다.
‘확실히 선수들이 경험이 많아. 기량도 다들 뛰어나고… 저 정도는 해야 돈 받고 뛰는 선수답지.’
화성FC의 공격수는 슛을 때리려고 자세를 잡았다.
“그대로 슛!”
부으오 윙.
공이 이순신을 지나 골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재빨리 몸을 날린 케빈킴이 공을 잡아냈다.
“후훗. 맡겨두라고!”
아무도 케빈킴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현재 하이텐션이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더더욱 각오를 다졌다.
다른 포지션과 달리 골키퍼는 대체 불가능한 자리였다.
차지하느냐, 빼앗기느냐 밖에 없는 포지션이기에 보경풍과의 주전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보경풍. 너한테는 절대로 안 진다!’
나이는 보경풍이 훨씬 많긴 했다.
“순신 받아!”
케빈킴이 전의를 다지며 이순신에게 스로인했다.
이순신은 빠르게 굴러오는 공을 인사이드로 받았다.
몸을 돌려서 상대편 골대를 응시했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3/3)]
[성공률 10%]
‘성공률이 똥인데?’
이순신은 터무니없이 낮은 성공률에 시도해볼 엄두가 안 났다.
그때 관중석에서 이순신의 이름이 들렸다.
“이순신 슛!”
“때려!”
“중거리 가즈아!”
팬들은 슛을 원했다.
2화를 보고 이순신의 팬들이 부쩍 늘었다.
세찬 FC 선발전에서 가장 많은 골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건 이순신이었으니까.
심지어 3화 예고편은 이순신이 첫 경기 때 보여준 초장거리 슈팅이었다.
미공개였지만 그 경기를 찍었던 팬들에 의해서 뮤튜브에 선공개 된 것이 큰 관심을 일으켰다.
“팬들이 원하면야…”
이순신이 공을 차려고 큰 모션을 취했다.
전진 압박을 하던 상대편 공격수가 움찔했다.
“미안.”
이순신의 페이크.
씨익 웃으며 상대를 가볍게 제쳤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돌파!
하프라인을 넘어온 포지션 브레이커에 화성 FC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우리를 상대로 돌파를?’
최소 연봉 2000, 승리 수당만 50만 원 이상씩 받는 세미프로 선수들이 발끈했다.
화성FC의 선수들이 접근했다.
이순신은 주변을 살폈다.
전방에 오성진, 측면에 남주작과 윤광섭이 보였다.
‘우리 팀에는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있지.’
이순신이 공을 띄웠다.
방성찬이 가슴으로 공을 받았다.
공을 받은 그는 수비를 끌어내고 달려오는 선수에게 패스했다.
오진성은 공을 받아서 돌파했다.
화려한 브라질산 개인기!
“지난 경기에서 자신감을 되찾은 오진성 선수. 물이 제대로 올랐어요! 거침없이 전진합니다!”
자신감이 붙은 것까지는 좋았다.
너무 흥분해서 스텝이 꼬였다.
슛으로 연결됐다면 좋았을 텐데 드리블이 좀 길었다.
“오진성 선수! 커트! 골라인 아웃이 선언됩니다!”
오진성은 아쉬운 듯 땅을 걷어찼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방성찬은 오진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확실히 맏형다웠다.
삐이이익-
전반이 0:0으로 끝났다.
선수들이 라커룸에 모였다.
안태리 감독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결심한 듯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너희 정말 상대 팀을 이겨볼 생각이냐?”
감독이라면 당연히 팀의 승리를 위해 존재해야 하거늘, 지금 이 질문은 선수들에게 혼란을 가중했다.
“모두 입을 꿰맸어? 대답하는 놈이 한 명도 없어?”
“이길 겁니다.”
모두가 이순신을 쳐다봤다.
눈에는 안광이 빛났다.
진심이 담겼다.
안태리가 씨익 웃었다.
“사실 너희들에게 아직 3부리그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반전을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좀 더 공격적으로 녀석들과 붙어봐도 될 거 같다.”
안태리의 말에 선수들의 가슴이 벅찼다.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진 말고, 팀으로서 붙어볼 만하다는 거지, 개개인의 능력이 몇몇을 빼곤 아직 저 팀보다 못해.”
당근과 채찍.
하지만 선수들은 맛있는 당근 덕분에 맞아도 아픈 줄 몰랐다.
“그럼 후반전에는 작전을 변경한다. 혁규 대신 만수가 들어간다.”
“넵.”
이만수는 드디어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돌파보다는 진성이가 좌우 측면에 공을 던진 후 크로스를 노린다.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 코너킥이나 세트피스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이순신.”
“넵.”
“그때 과감히 공격을 시도해도 좋다.”
“네!”
이순신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우리 팀에는 가짜 공격수가 있다는 걸 잘 알 것이다. 너희들이 진짜로 이기고 싶다면 그 녀석을 이용해라!”
모두의 시선이 이순신에게로 향했다.
구멍, 혁규, 만수, 진성이는 합숙 때부터 발을 맞춰봐서 이미 잘 알았다.
“이순신.”
방성찬 또한 이순신을 불렀다.
“우리가 전방에서 마무리를 못 하면 후방에서 센 거 한 방 날려. 알았지?”
“넵!”
주장이자 맏형인 방성찬이 지지했다.
조문돈과 홍반봉은 이순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순신이 공격을 나가게 되면 자신들의 공격 성향을 죽이고 수비에 치중해야 했다.
‘그래도 이기고 싶단 말이지.’
이순신은 묘한 기대하게 하는 선수였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세찬 FC의 눈빛이 전반과는 달라졌다.
전반보다 더더욱 날카롭게 화성FC를 노려보았다.
‘떨거지들이 진짜 우리를 이겨보겠다는 건가? 2부리그 선수 하나 믿고?’
스포츠에서 가장 큰 적은 자만심이다.
그것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보면 증명됐다.
인지도가 낮은 아프리카를 개무시했다가 4:1로 발렸고,
북중미의 빈민국을 무시했다가 털려서 메달 면제를 받지 못한 일.
한국은 강팀이 아니다.
100%만 발휘해서는 세계의 강호들을 이길 수 없다.
적어도 120%는 발휘해야 비벼 볼 정도였다.
[배수의 진이 발동했습니다.]
[선수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이 순간 세찬 FC는 3부리그 팀이 아니라 1부 리그 팀이 와도 쉽사리 이길 수 없었다.
그야말로 미친 호흡, 미친 전개를 보여주며 점유율에서도 앞서갔다.
적어도 방성찬은 확실히 통했다.
화성 FC가 간과한 건 단 한 명.
이순신이였다.
그들은 그저 망한 유망주 취급을 했다.
경기 내내 이순신의 실력을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니까.
그러나 재능과 연기는 쉽게 감출 수 없었다.
재능을 가진 선수가 노력까지 한다면?
그리고 한때 대한민국의 미래라 불리던 공격수라면?
“이순신 선수의 중거리 슛! 상대편 겨우 펀칭으로 막아냅니다!”
이순신이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쏜 지자포가 안타깝게도 상대편의 선방에 막혔다.
[반동 효과로 경직이 발동합니다.]
이순신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사이 공을 정비한 오진성이 코너킥을 올렸다.
상대편 골대로 휘어져 들어가는 공.
“헤딩이다! 헤딩만 막아!”
상대편 골키퍼도 세찬 FC의 트윈타워가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퉁!
방성찬, 이만수를 넘은 공이 수비까지 들어왔던 상대편 공격수에게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순신이 어느새 나타나 그의 앞에 섰다.
‘이 녀석만 제치면, 완전 역습 가능이다!’
공격수로는 해서는 안 될 일.
화성FC 공격수는 자기편 진영에서 개인기를 시도했다.
툭!
“헉!”
이순신은 너무나 가볍게 뺏어버렸다.
“아… 안 돼!”
공격수답지 않은 태클 시도.
이순신은 무시하고 그대로 슛을 질렀다!
[부상이 발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