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88M 골
상대편 진영으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이건 못 참지.’
이순신이 남은 횟수를 모두 털어 넣었다.
[비격진천뢰를 모두 사용했습니다.(0/3)]
[성공률 90%]
남은 횟수를 모두 사용했다!
100% 확률이 아닌 게 조금 찜찜했다.
그래도 날아가는 걸 보니 안심이 됐다.
돛을 단 듯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서 가볍게 중앙선을 넘었다.
“와- 공이다…”
세찬FC와 청소년대표팀은 그저 멍하니 구경했다.
“설마?”
김구름은 소름이 돋았다.
데자뷔가 느껴졌다.
그것은 그에게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경기장 안에 있던 김혁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재빨리 공 쪽을 향해 달렸다.
그때 그 일이 충분히 백신 역할을 했다.
“뛰어!”
김혁규의 말에 방성찬도 정신이 들었다.
공이 떨어질 지점을 예상해서 방성찬도 달렸다.
공이 날고 날아서 어느새 상대편 페널티라인 근처까지 날아갔다.
‘어느 쪽으로? 누굴 막아야 하지?’
청소년대표팀 수비수는 김혁규와 방성찬을 빠르게 살폈다.
타다다닥.
“이쪽이닷!”
그의 선택은 좀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방성찬!
‘어차피 사람만 막으면 돼. 뒤에 우리팀 골키퍼도 있으니까.’
퉁.
안타깝게도 이순신이 찬 공은 방성찬, 김혁규, 김대한보다 조금 멀리 떨어졌다.
“공이 예상보다 멀리 떨어졌습니다. 골키퍼가 어찌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주성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번쩍 일어났다.
당황한 골키퍼는 뛰쳐나갔다.
수비선에서 처리될 줄 알았던 공이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왔다.
심지어 한 번 튕긴 공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높은 궤도로 날아오른 공은 앙칼진 고양이처럼 자신에게 덤볐다.
‘아니 무슨 바람이 이렇게…’
평소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
난생처음 겪어보는 역풍에 골키퍼는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었다.
툭.
손끝으로 공을 건드리긴 했으나, 공의 궤도를 바꾸기에는 무리였다.
‘데구르르’도 아닌 ‘철렁’.
“들어갑니다! 세찬FC의 첫 공식경기의 어시스트의 주인공은 보경풍 골키퍼, 첫 골은 수비수 이순신입니다!”
이주성이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들어간다고?’
다들 믿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허허.”
당사자인 이순신 역시도 믿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설마설마했는데 이렇게 멋지게 들어갈 줄은 몰랐다.
“이순신!”
주변의 선수들이 이순신 쪽으로 달려왔다.
심지어 혁규는 골이 들어가는 걸 보자마자 이순신 쪽으로 제일 먼저 달려왔다.
“멈춰!”
정지선이 아닌 이순신이 외친 소리였다.
흥분한 선수들을 자제시키는 듯한 퍼포먼스.
[세레머니가 발동했습니다.]
“아, 이순신 선수! 오히려 축하하러 오는 동료들을 자제시키고 있어요!”
안태리 담당 VJ도 한마디를 부탁했다.
“후배들을 배려하는 선배의 품격 보기 좋군요.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수 낮은 상대를 배려하는 페어플레이도 중요한 법이죠.”
안태리는 흐뭇했다.
경기를 보면서 암 걸릴 거 같았는데 말끔히 나은 기분이었다.
이순신은 그저 보상을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다.
[88m 골을 넣었습니다.]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팬이 증가합니다.]
[히든 보상 : 호랑후를 터득했습니다.]
[정신 나간 선수를 회복시킵니다.]
양측 선수들이 진영을 정비했다.
이순신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위치에 섰다.
삐이익.
상대편이 킥오프하는 순간,
이순신은 겨우 가라앉힌 흥분이 다시 돋아났다.
‘보상 좋고요. 정신 나간 선수라?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네.’
그 순간이었다.
청소년대표팀의 공격을 이끄는 장승빈이 빠르게 다가왔다.
‘이 자식… 피할 생각이 없는 거 같은데?’
이순신은 장승빈의 의도를 알아챘다.
자신을 돌파하고 골을 넣을 생각이었지만, 어림없었다.
“장승빈 선수를 커트하는 이순신! 오늘 MTS가 전혀 힘을 못 씁니다.”
빠른 돌파력이 특징인 중앙 공격수 장승빈,
뛰어난 볼 간수 능력을 갖춘 강현문,
뛰어난 피지컬과 대인방어 능력을 갖춘 김대한은 중학교 때부터 호흡을 맞춘 동료였다.
프로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준 그들을 통틀어 그들의 출신 중, 고교인 매탄소년단(MTS)이라고 불렸다.
이순신은 역습 기회에서도 나가고 싶은 걸 참고, 주변의 동료에서 패스했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아직 이순신으로부터 시작된 빌드업 전술은 안태리의 구상에 없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이것이 안태리 감독의 지론이었다.
이순신은 그 이념을 존중했다.
그렇기에 그가 원하는 수비수가 지녀야 할 능력을 우선 보여줬다.
“오늘 청소년대표팀이 정지선, 이순신 라인을 뚫지 못하고 있어요!”
이순신에 비하면 정지선은 느린 수비수에 속했다.
만약 이순신이 없었더라면, 정지선은 장승빈에게 여러 번 뚫려서 결국 골을 허용했을 것이다.
“강현문 선수. 또 패스가 잘리네요.”
이순신은 장승빈에게 가는 패스를 족족 잘라냈다.
‘옛날에 아무리 뛰어났던 선수들이라고는 해도 이 조직력은 뭔데?’
장승빈의 시야는 점점 좁아졌다.
청소년대표팀은 공격이 번번이 막히자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자 방성찬 및 공격수들에게 기회가 왔다.
“방성찬 패스. 김혁규 슛! 아! 아쉽게 옆 그물을 때립니다.”
“윤광섭 중거리 슛! 골키퍼에게 잡힙니다.”
“코너킥을 올리는 남주작 선수. 아쉽게도 조금 길었습니다.”
수비진은 이순신을 필두로 정지선, 구멍, 홍반봉, 조문돈이 좋은 합을 보여주었지만,
공격진은 아직 좀 더 소통이 필요해 보였다.
삐이이익-
마침내 경기가 끝났다.
“세찬FC가 출범 경기에서 청소년팀을 상대로 1승을 따냈습니다!”
“우와와아!”
세찬 FC가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의외의 패배를 당한 청소년대표팀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특히 초특급 유망주로 평가받던 장승빈을 비롯한 MTS의 충격을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젠장. 이딴 팀한테 지다니.”
장승빈이 분한지 잔디를 걷어찼다.
“이딴 팀이 어떤 팀인데?”
그의 앞에 이순신이 나타났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팀에게 방심해서 졌습니다…”
“한 수 아래? 프로에서 뛴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쟤들은 너희들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했어.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해.”
“뭐라구요? 그 행운의 골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겼을 겁니다.”
공은 둥글다.
그래서 변수가 일어나기도 한다.
전혀 불가능할 거 같았던 독일이나 브라질을 한국팀이 이기는 것처럼.
하지만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뻐어엉!
상대편의 골대를 향해서 공을 찼다.
[천자포를 사용했습니다.]
공은 시원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엄청난 킥 능력에 장승빈은 당황했다.
“너도 한 번 차봐.”
장승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온 힘을 다해서 슛을 찼다.
그가 찬 공은 페널티 에어라인 부근에 떨어져서 데구르르 굴러갔다.
“행운은 준비된 자,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법이지. 나도 옛날엔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이순신이 장승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에 다시 보자.”
[호랑후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멘탈이 나간 장승빈에게 호랑후를 사용했다.
장승빈은 눈앞에 호랑이를 본 거 같았다.
이를 계기로 자만심을 줄이고 한층 더 훌륭한 공격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세찬 FC 벤치로 돌아갔다.
[충무공이 매우 흐뭇해합니다.]
[신뢰하는 동료가 늘었습니다.]
안태리는 둥글게 모여있는 선수들에게 한마디 했다.
“모두 잘해줬다. 솔직히 첫 경기에서 이길 줄 몰랐는데 생각보다 잘 싸웠다. 앞으로 경기도 지금처럼 찬스를 잘 살려봐. 알겠지?”
“넵!”
“오늘 다시는 넣기 힘든 불가능한 골을 넣은 이순신 선수에게 박수를!”
옆에 있던 이주성이 마무리를 했다.
이순신의 오늘 활약은 충분히 MVP로 뽑힐만했다.
그런데 안태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불가능하다뇨. 마그누스 효과 때문인데.”
“마그누스요?”
안태리는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마그누스 효과를 설명했다.
문과 출신인 이주성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을 했다.
“오 그러면 앞으로 이순신 선수가 또 이런 골을 넣을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당연하죠.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때리라고 할 겁니다.”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수비적인 부분만 요구하겠다던 안태리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순신 선수는 킥 능력뿐만 아니라 정확도도 상당합니다. 이순신 선수로부터 시작하는 빌드업도 고려해볼 겁니다.”
안태리의 선언대로 이순신에게 역할이 하나 더 부여됐다.
일주일 후.
두 번째 팀은 대학 최강이라 불리는 하늘 대학교와 경기를 치렀다.
원래 제작진의 의도대로라면 청소년대표팀에게 패배한 후 자신감 회복 차원에서 그보다 난이도가 좀 더 낮은 대학교팀과 경기에서 기를 살려줄 계획이었다.
첫 경기처럼 골 기회는 오지 않았으나 공격 기회를 많이 만들었다.
“골! 오진성 선수. 오늘 벌써 두 골째입니다. 지난 경기에서 부진한 분풀이를 제대로 하고 있어요!”
“방성찬 선수의 헤딩슛! 대단합니다!”
경기 막판 무렵, 상대의 수비 실수를 캐치한 이순신이 슛을 때렸다.
“앗! 말씀드리는 순간 오늘 2도움을 기록한 이순신 선수의 중거리 슛! 골문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최종 스코어 5:0.
이순신은 이 날 1골 2도움을 기록했다.
세찬 FC는 이름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1화가 방영됐다.
세찬FC 선수들은 모여서 TV에 나오는 자신들의 모습을 봤다.
“내가 저랬냐? 악마의 편집이다!”
“무슨 소리. 완전 천사의 편집이구만.”
대체로 선수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비록 탈락해서 함께 한 동료들이 TV에 나올 때는 씁쓸함이 지나갔다.
몰입하며 즐겁게 보던 1화가 어느새 끝났다.
“와- 벌써 끝이야?”
“그렇게 개고생했는데 난 10초 나왔어.”
“넌 10초라도 나왔지. 난 통편집이야!”
“1화 주인공은 완전히 광섭인데?”
윤광섭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선 대중들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아이돌의 축구 선수 도전기는 시청자에게 리얼 다큐같은 느낌을 줬다.
여기에 쿠퍼테스트를 1위로 통과한 남주작이 마지막에 포커싱을 받았다.
[다음 주 예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양민 학살하는 선수는 누구?]
[합숙소를 뒤집어 놓은 선수가 있다?]
[과거에는 공격수. 이제는 백의종군!]
[그만두겠습니다. 충격의 자진 하차!]
[세컨드 찬스를 잡은 베스트 11이 다음 주에 공개됩니다!]
시청률은 꽤 괜찮았다.
뮤튜브에 올라온 경기 영상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제작진은 세 번째 경기를 기대했다.
이쯤에서 대패하고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서 실력을 키워온다는 클리셰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세찬 FC의 팀워크이 너무 좋았다.
“안 감독님, 설마 화성FC까지 이기는 건 아니겠죠?”
“K3 우승팀이에요. 아직 세찬 FC가 비벼볼 상대는 아니죠.”
안태리조차도 세찬 FC가 K3 우승팀을 이기긴 힘들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