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6화 (27/161)

26화. 세찬FC vs U-20청소년 국가대표

다음날.

마침내 최종명단이 발표됐다.

아침이 되자 제작진은 선수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축하합니다. 세컨드 찬스 프로젝트 최종 멤버로 선발되셨습니다. 저희 제작진은 000 선수의 아름다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최종 멤버에 선발되지 못하셨습니다. 저희는 000 선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또한 안태리 감독님, 김구름 코치님, 이갑용 코치님의 추천서가 필요하면 연락 주십시오.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아무리 그래도 문자 통보는 좀.”

김구름은 제작진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래도 한 명씩 불러서 너 합격, 너 불합격보단 낫지. 그간 정이 들어서 눈 보며 직접 이야기하진 못하겠더라.”

이갑용의 말투에서는 측은함이 드러났다.

“우린 충분히 기회를 줬어. 조금 더 간절했던 선수들을 챙겼을 뿐이고.”

안태리도 창문을 보면서 말했다.

말은 차갑게 했어도 가슴이 뜨거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만남은 설레지만, 헤어짐은 가슴 아픈 것.

그러나 그것이 프로의 세계였다.

자신을 입증하지 못하면 방출당하는 곳.

그런 전쟁터에서 안태리는 무려 10년 이상을 버텼다.

김구름, 이갑용도 마찬가지였다.

“피디님. 10분… 아니 30분 후에 합격한 선수들은 강당으로 모이라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안태리는 최종선발된 멤버들을 어떻게든 축구화를 매고 그라운드에 서게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선수들의 숙소.

환호성과 괴성이 흘러나왔다.

같은 방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우와와아! 됐다!”

이만수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났다.

꽤 높은 경쟁률을 뚫었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는 주변을 살펴봤다.

이순신, 오진성, 구멍이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구멍! 넌 베스트 11에 뽑혔고, 순신이랑 진성이 설마 떨어진 거야?”

“아니. 붙었어.”

오진성이 합격 문자를 보여줬다.

“순신이는 당연히 뽑혔을 거고! 우리 방 전원 합격…?”

눈치가 겁나 없던 이만수는 그제 서야 다른 선수들이 왜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 알았다.

5번 방 선수들은 중 막내를 제외하고 모두 뽑혔다.

막내는 아쉽게도 부상으로 계속 함께할 수 없었다.

“막내야. 부상 때문일 거야! 조문돈 그 개자식만 아니었어도! 분명히 뽑혔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막내는 애써 웃었다.

2주간 같은 방에서 자고, 먹고, 싸고 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

이순신이나 다른 선수들도 사실 알고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막내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는 것을.

“제 몫까지 부탁합니다! TV로 보면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막내는 퇴소 때까지 씩씩했다.

“알았다. 인마.”

이순신이 어깨를 토닥여줬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더니 문 밑으로 무언가를 집어넣었다.

“설마 제작진이 보낸 러브레터!?”

시커먼 남자들 속에 여성 작가들은 그야말로 여신 대우를 받았다.

“막내한테 온 거다! 최후의 승자는 막내다!”

이만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편지를 읽어 본 막내는 씨익 웃더니 편지를 주변에 돌렸다.

“미친. 캐릭터 겁나 반전이네.”

편지를 본 5번 방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하지만 헤어짐의 시간을 피할 순 없었다.

절뚝. 절뚝.

그렇게 막내는 목발을 짚고 퇴장했다.

5번 방 선수들은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선수들 강당으로 모여주세요.”

“가자.”

제작진의 안내에 선수들은 짐을 챙겨서 강당으로 이동했다.

강당으로 가는 도중 조문돈과 마주쳤다.

“이…”

이만수가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잘했어. 만수 형. 어차피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묵은 감정은 털어내야지.”

이순신이 이만수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조문돈도 머리를 긁적이더니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태세전환, 손절각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5번 방 선수들이 조문돈을 향해 따지진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 역시 약간은 미안한 감정을 가진 게 보였다.

막내에게 자필로 쓴 사과의 손편지를 건넨 사람이 조문돈이었다.

강당에 선수들이 모이자 안태리와 코치진이 등장했다.

“최종 멤버에 선발된 걸 축하한다.”

안태리가 박수치자, 선수들도 서로를 격려했다.

“최종 멤버에 선발되었지만, 끝이 아닌 시작이다. 앞으로의 경기가 너희들의 축구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

경기를 뛴다.

이것만으로도 선수들의 가슴이 뛰었다.

“일주일 후 너희의 첫 경기가 잡혔다. 경기전까지 우리는 이제부터 전술훈련을 보강할 것이다.”

“질문 있습니다.”

홍반봉이 손을 들었다.

“말해봐.”

“혹시 경기에서 지면 1명씩 탈락하나요?”

“와- 넌 게임 만들어도 되겠다. 그렇죠? 피디님?”

피디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탈락은 없다. 성공을 맛봐도 함께 맛보고, 실패를 맛봐도 함께 맛보는 연대 책임이다. 다만, 연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

“부상 당하지 않도록 몸 관리에 특별히 조심해!”

김구름이 부상을 언급하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순신은 방금 떠난 막내가 생각났다.

남주작은 안 좋은 기억이 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단 남주작뿐 아니라, 선수들이 부상이라면 치를 떨었다.

안태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우리의 팀명이 정해졌다.”

선수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집중했다.

안태리가 현수막을 펼쳤다.

‘세찬 FC.’

몇몇 선수들은 인기 개그맨이 먼저 연상됐는지 혹은 생각보다 촌스러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젤 크게 웃은 놈 엎드려!”

“죄송합니다!”

홍반봉은 즉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기세나 형세 따위가 힘 있고 억세다라는 뜻으로 외인구단 성격을 가진 세컨드찬스 FC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줄여서 세찬FC 어떠냐?”

답은 정해졌다.

선수들은 대답만 하면 됐다.

“멋집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선수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내일부터 팀 훈련에 들어간다! 알았나?”

“넵!”

생존했고 내 옆에 또 생존한 동료가 있다.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지금만큼은 매우 든든했다.

***

일주일 후.

세찬 FC의 첫 공식전은 19세 이하 청소년국가대표팀 경기였다.

최고령이라고 할 수 있는 방성찬과 국가대표팀의 나이 차이는 무려 10살!

세찬 FC에는 이순신을 비롯해서 한때 태극마크를 달았던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런 세찬 FC에게는 초심을 되찾는 계기가 될 거라고 안태리 감독은 생각했다.

반면 19세 대표팀에게 세찬FC는 좋은 연습 상대였다.

협회의 의도도 있지만,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울 좋은 기회였다.

‘실패한 선수들의 말로’가 어떤지는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세찬FC의 라커룸에서 처음으로 유니폼이 공개됐다.

“자- 받아라.”

김구름과 이갑용이 무언가를 가지고 들어왔다.

파란색 상의와 하얀색 하의로 이루어진 유니폼이었다.

이순신의 등 번호는 4번.

‘죽을 각오로 뛸 생각이 절로 드는 번호네.’

이순신은 뭉클했다.

“스타팅 멤버를 발표하겠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두근거렸다.

첫 경기, 첫 선발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으니까.

“골키퍼 케빈킴, 라이트백 홍반봉, 레프트백 조문돈, 중앙수비수 정지선…”

‘설마?’

호명된 선수들의 이름을 들으며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미드필더에 윤광섭, 구멍… 공격수에는 방성찬, 김혁규. 이상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첫 스타팅 멤버는 팬들이 뽑은 베스트 11으로 결정됐다.

팬들이 뽑았다는 상징성.

혹은 윤광섭처럼 실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선정됐다.

그 결과 이순신, 오진성, 이만수, 보경풍 등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너희들이 생각한 대로 팬 투표로 선정된 멤버들이 첫 번째 선발이다. 하지만 이게 확정적인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포지션 변경이 있을 수 있고, 전술이 변경될 수도 있다!”

안태리는 선수들이 가진 아쉬움을 단숨에 잠재웠다.

“주장은 방성찬이 맡는다. 이상.”

안태리는 라커룸을 나섰다.

피디가 쫄래쫄래 뒤따랐다.

‘역시 안 감독은 방송을 잘 안다니까.’

피디는 첫 경기만큼은 팬들의 투표대로 선발 라인업을 짜주길 바랐다.

하지만 선수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덕분에 그림이 나오겠는걸요?”

“뭘요. 늘 말했잖아요. 팬이 없으면 선수도 없다고.”

안태리 감독은 씨익 웃었다.

멀리 보고 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처음부터 팬들의 반감을 사고 갈 필요는 없었다.

팬 투표로 선정된 선수들은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선수들.

하지만 자신이 구상한 팀에서는 몇몇 선수들을 교체해야만 했다.

“시주. 먼저 다녀오겠소.”

5번 방에서 유일하게 선발 멤버인 구멍은 벤치 멤버들에게 인사했다.

“진짜 팬 투표 뭐냐. 내가 안 뽑힌 거야…”

그중에서 오진성의 불만이 젤 심했다.

외모, 실력 모두 상위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이름도 없는 선수에게 발린 것이 자존심 상했다.

이순신도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가는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으니까.’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삐이이익-

19세 국대 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젊음. 패기.

19세 대표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달리고 또 달려서 세찬 FC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멈춰!”

정지선이 손을 내밀었다.

19세 팀 공격수인 장승빈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현문!”

장승빈은 옆으로 달려오는 강현문에게 볼을 돌렸다.

강현문이 거침없이 질주했다.

“잡히면 뒤진다!”

조문돈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강현문은 코너킥 부근에서 공을 뺏기지 않고 잘 간수했다.

“힘 빼지 말고 빨리 밖으로 빼.”

하지만 강현문은 씨익 웃었다.

보다 못한 윤광섭이 도와주러 왔다.

그 순간이었다.

수비를 끌어낸 강현문이 재빠르게 조문돈의 다리 사이로 공을 빼고 측면으로 돌파했다.

“이런!”

윤광섭이 진심으로 놀랐다.

“넌 왜 자리를 안 지키고 올라온 거야!”

“죄… 죄송합니다.”

위축된 윤광섭이 빠르게 사과했다.

“승빈!”

그대로 장승빈에게 이어지는 크로스!

다행히 케빈킴이 먼저 공을 쳐 냈다.

삐이익.

“으윽.”

착지 과정에서 그만 케빈킴이 발을 삐끗했다.

사이드라인 밖으로 나와서 치료를 받았다.

“괜찮냐?”

김구름이 물었다.

“뛸 수 있습니다.”

“교체.”

케빈킴의 의지와는 다르게 안태리는 단호했다.

“감독님!”

“이번 경기만 뛸 거 아니잖아? 보경풍 준비해.”

케빈킴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나왔다.

경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세찬 FC는 이름에 걸맞지 못하게 세찬 공격 한번 못해보고, 전반전을 0:0으로 마쳤다.

“이순신, 오진성 후반에 나간다.”

“넵!”

보경풍이 교체될 때부터 몸을 풀고 있던 이순신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후반전도 미드필더 싸움이 치열했고, 청소년대표팀의 공격이 매서웠다.

머리를 묶은 보경풍이 쉽사리 공을 잡았다.

“바람이 분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이순신에게 공을 굴려줬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3/3)]

[성공률 70%]

‘응? 우리 편 페널티 에어리어 앞인데 70%? 자살골 확률인가?’

뻥-

이순신은 그대로 상대 골문을 향해서 공을 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