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5화 (26/161)

25화. 공격수가 아니죠, 저격수입니다.

안태리는 4231과 442를 주로 사용했다.

안정적인 4231. 다양한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442.

투표는 4-4-2 전술을 기반으로 선정됐다.

김구름은 자신의 주포지션답게 골키퍼부터 살펴봤다.

“골키퍼 부분에서는 케빈 킴이 막판에 보경풍을 이기고 1등 먹었네.”

단순히 골키퍼적인 능력만 보면 보경풍이 더 뛰어났다.

다만, 마지막에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에게 3골이나 먹힌 것.

마지막에 빌드업이 엉망이었다는 것.

마지막 경기에서 긴 머리에 반감을 가진 팬들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순위가 하락했다.

“음. 케빈이든 경풍이든 둘 다 좋은 골키퍼니 골문은 문제없겠어. 수비진과 호흡이 중요하다고 봐. 일단 나라면 선발은 보경풍.”

“수비진이라 여긴 변수가 좀 있으니 다른 포지션부터 살펴보시고, 구름 형은 세 번째 골키퍼를 뽑아줘.”

“알았어.”

“일단 투표 결과부터 쭈욱 확인해보자.”

안태리는 이갑용의 의견에 동의했다.

“9번 방 선수들은 전부 뽑혔고…”

방성찬, 조문돈, 홍반봉, 정지선은 각각 공격수, 윙백, 중앙수비수 포지션에 1등을 했다.

그 외에 공격수 자리에 김혁규,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구멍, 측면 미드필더에는 인기가 많은 윤광섭이 뽑혔다.

“아이돌이 이러다가 진짜 프로 계약까지 하는 거 아냐? 잘하긴 하지만 역시 인기 투표빨이 좀 있는데?”

“상관없어. 투표 결과과 무조건 선발 멤버는 아니니까.”

“그건 그렇다고 쳐도, 당최 얘가 투표에서 안 뽑힌 게 이해가 안 되네.”

김구름이 언급한 사람은 이순신이었다.

이주성이 투표 결과를 살펴봤다.

“이순신이 투표에서 뽑히진 못했군요.”

“투표 결과는 4위? 왜지?”

“팬들 반응이 너무 갈렸어요. 한 번 보세요.”

댓글을 본 안태리는 어이가 없어서 눈이 커졌다.

ㄴ 수비수가 득점 1위? 골탐욕보소.

ㄴ 수비도 잘하는데? 나중에 11대 11경기에서 저런 득점력이 나올지는 의문이지만…

ㄴ 굳이 이순신이 아니더라도 골 넣을 선수는 많음.

ㄴ 이 매국노 새끼는 매장해야 합니다.

ㄴ 난 좋은데…뭔가 백의종군한 느낌 안 드냐?

ㄴ 어차피 전부 k 리그 꼴찌팀도 못 가는 수준.

“직접 보는 거랑 미디어 너머로 보는 건 아무래도 다르니…그래도 처음보다는 악플이 많이 줄었어요. 응원하는 댓글도 종종 눈에 띄고요”

“갑용이 형이 볼 때는 어때?”

“일단 전술 훈련을 해봐야 알겠지만, 데려갔으면 싶은데? 오늘 보여준 수비력만 놓고 보면 굳이 득점하지 않아도 괜찮은 선수는 맞아.”

“그런데 그 득점력이 너무 탐난단 말이지. 다시 원래의 포지션인 공격수로 돌아가면 좋을 거 같은데…”

“안 태리 감독님. 저격수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요? 본인도 수트라이커라고 했고…”

이주성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리베로 임무를 부여하면 팀 전술을 이순신 위주로 돌려야 하니까.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 사실 국대의 소흥민, 한이조, 황소찬같은 애들이 있으면 지금처럼 수비로 쓰면 되는데 방성찬이나 김혁규가 그렇게 득점력이 좋은 애들은 아니니까.”

공격수 출신인 안태리 감독은 세컨드 찬스에 참여한 공격수들은 뭔가 좀 아쉬웠다.

연계는 좋지만, 마지막 한 방을 결정지을 선수가 안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은 자신이 원하는 유형의 공격수였다.

피지컬, 슈팅력, 헤딩, 동료와의 연계 등 자신이 생각할 땐 무결점에 가까웠다.

“일단 순신이 깨어나면 물어보자고. 어디서 뛰고 싶은지.”

“아. 맞다. 골치 아픈 놈이네.”

김구름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웃었다.

자신이 추천한 선수가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고, 혁규도 최종 멤버에 뽑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순신이 다음날에도 깨어나지 못했다.

“언제쯤 깰까요?”

“으음…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고, 언제 깨어날지 장담을 못 하겠습니다.”

의사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혹시 건강상에 문제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니죠?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맥박, 호흡, 모두 정상입니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거니까요.”

피디는 고민스러웠다.

이도 저도 못 하는 교착상태.

“안 감독. 어쩔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애들 엔트리에 넣을 수도 없잖아.”

“아니면 깨어날 때까지 발표를 미루던지. 이순신 자리만 비워두면 되잖아?”

“하아-”

안태리는 팔짱을 끼며 고심했다.

모두가 안태리 감독의 입에 주목했다.

“하루! 딱 하루만 더 기다려보고 안 깨어나면 대체 인원을 뽑아서 갑시다.”

자신의 운명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은 걸 모른 채 이순신은 깊은 잠을 넘어서 과거로 갔다.

***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말라.”

총 맞은 것처럼 가슴팍에 바람이 스며들었다.

툭.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눈을 감았다.

의무실에 누워있던 이순신은 눈을 떴다.

“하아-하아- 완전 개똥 같은 꿈이네.”

이순신은 식은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여긴 또 어디야?”

이순신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의무실인가? 며칠을 잔 거지.”

이순신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에 걸으려니 뭔가 어색했다.

의무실의 문을 여니 혁규와 구멍이 앉아 있었다.

“순신아!”

“의사 시주!”

구멍은 의사를 부르러 뛰어갔다.

“웬 호들갑이야?”

“이 미친놈아. 너 3일 내내 잤어! 뒈진 줄 알았잖아.”

“3일? 오래 자긴 잤네.”

“우린 죽은 줄 알았다고!”

“에이. 마지막 경기 끝나고 긴장이 풀렸나 보지.”

이순신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상태를 살펴봤다.

[근력과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하루 정도의 휴식은 근육과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휴식시간이 길어질수록 몸 상태와 체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3일 내내 누워있었기에 근 손실이 예상되었지만, 다행히 컨디션에는 이상이 없었다!

‘깨어나기만 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는 기간. 좋은 스킬인 건 분명하지만, 좀 더 다른 스킬을 활용하며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겠어.’

“순신아.”

이순신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안태리 감독과 코치진, 몇몇 선수들이 달려왔다.

“자자. 일단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시죠. 바이탈 체크부터 할게요.”

의사는 이순신을 안으로 데리고 갔다.

청진기로 가슴을 몇 번 댔다.

‘으윽. 눈갱.’

의사가 강렬한 빛을 뿜는 플래시로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잠시만요. 금방 끝나요. 네. 전부 다 정상입니다.”

의사로부터 정상 사인이 떨어지자 뒤에서 지켜보던 코치진과 제작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어떻게 되는 줄 알았네.”

“이순신 선수. 정말 다행이에요!”

이순신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자 새삼 가슴이 울컥했다.

‘저번보다 오래 잔 거 보니 사용시간하고 분명히 연관이 있어. 이건 차차 나중에 좀 더 실험해보자.

그건 그렇고 더블은 앞으로 자제해야 되나. 사용하고 나면 주변 사람들 걱정을 끼치니…’

“순신아. 혹시 기면증 검사받아 본 적 있니?”

“기면증이요?”

이순신은 김구름의 표정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불치병을 앓고 있다면, 데리고 갈 감독이나 구단주는 없다.

“그런 건 없어요. 그냥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만큼 경기에 에너지를 다 쏟았으니까요. 혹시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병원에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계속 뛸 수 있습니다!”

이순신이 굳은 의지를 보였다.

안태리는 이런 눈빛을 좋아했다.

“의료진이 볼 때는 계속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큰 이상 소견은 없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중고등학교 때 입은 고질적인 부상으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데 그런 거에 비하면 잠 좀 오래 잔 거 가지고 못 뛴다고 하는 건 좀 그렇죠. 하하.”

“오케이. 이순신.”

“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최종멤버에 뽑힌 건가요?”

“아직은 아니야.”

김구름이 대신 대답했다.

“뽑아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요?”

“너 공격수로 뛸 생각 없냐?”

안태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순신은 당황스러웠다.

무엇보다 공격수로 뛰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여태껏 획득한 노력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공격수로는 대참사를 막을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이걸 어떻게 둘러댄다… 아니면 여기까지가 인연인 건가?’

이순신은 자진 하차도 생각했다.

어차피 시기도 딱 K3 리그 입단 테스트와 얼추 맞아떨어졌다.

“이순신. 다시 한번 묻겠다. 공격수로 뛸 생각 없냐? 포지션 변경제안은 유일하게 너한테만 하는 거야.”

“없습니다. 제 포지션은 수비수입니다.”

“으음.”

안태리가 생각에 잠시 잠기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알았다. 네가 선택한 포지션은 중앙수비수다. 투표에서는 아쉽게 뽑히지 못했고 감독 권한으로 널 뽑는 거다. 너의 선택이 탈락자를 바꿨다.”

“어차피 제가 공격수를 했어도 누군가는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 다만 계속 수비수를 한다면 너에게 공격 쪽으로 더 많은 기회를 줄 순 없다. 네가 연습경기 때 보여준 공격적 성향은 앞으로 많이 제한될 거다.”

“알겠습니다. 감독님.”

안태리는 솔직히 대들 줄 알았는데 너무 순순히 대답해서 놀라웠다.

그러나 이순신은 확신이 있었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증명하는 것. 지금보다 공격 기회는 줄어들 테지만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골을 넣을 것이라고…’

그 순간이었다.

밀려 있던 보상이 지급됐다.

[경기 보상이 지급됩니다.]

[최종멤버로 선발되었습니다.]

[명성이 상승했습니다.]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으로 보상이 지급됩니다.]

[세찬 FC 입단 보상이 지급됩니다.]

[히든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이 미쳤는데?’

하도 오래 자서 그런지 막대한 보상을 받아서 신났는지 이순신은 잠도 안 자고 보상을 확인했다.

우선 요약해보면 이번에 획득한 평점 10점을 통해서 총 평점이 50점.

명성과 악명의 비율은 10:10.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으로 태클 후 카드 받을 확률 10% 감소.

하지만 이 보상에 비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입단 보상으로 스팀팩이 지급됩니다.]

[히든 보상 : 팀을 위해 수면을 감수한 보상으로 스팀팩이 지급됩니다.]

[스팀팩 효과 : 경기전에 사용하면 세컨드 윈드 더블의 수면 상태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스팀팩 부작용 : 음주, 도핑, 경기 시작 후에는 발동하지 않음.

사용 시 뛸 수 있는 은퇴가 1년씩 빨라집니다.]

‘이거다!’

이순신은 뜻밖의 보상에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더블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대안이었다.

“나중에 바르셀로나랑 리그 마지막 경기랑 챔스 결승, 일본이랑 월드컵 토너먼트에서 만나면 꼭 써야겠다!”

이순신은 시원하게 김칫국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은퇴가 1년씩 빨라진다고?’

현재의 몸 상태로는 50년도 뛸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뛸 수 있을까?’

이순신은 자신의 은퇴 모습을 그리며 잠이 들었다.

앞으로 있을 긴 여정의 시작을 위한 마지막 꿀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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