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3화 (24/161)

23화. 급격한 피로감

주변이 조용해졌다.

고요한 환경 속에서 숨소리가 이순신 자신의 숨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더블이라는 이름에 맞게 능력치와 감각이 상승 된 것이 느껴졌다.

체력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지만, 피로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자신감.

뽕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보경풍이 길게 공을 찼다.

방성찬이 받은 후 상대 진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야말로 노마크상황!

구멍 혼자서 조문돈과 방성찬을 막아야 했다.

‘둘 중에 누구를 막을 것인가… 방성찬의 슛이냐, 조문돈의 측면 돌파냐…’

무엇이 더 위협적일지 빠르게 고민했다.

구멍의 선택은 방성찬이었다.

‘방성찬은 어차피 조문돈에게 패스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구멍이 조문돈의 마크를 포기하고 방성찬에게 붙었다.

예상대로 방성찬은 프리 상태의 조문돈에게 패스하지 않고, 직접 돌파를 선택했다.

“으아아!”

구멍이 태클을 시도했다.

방성찬은 공을 멈췄다.

“아뿔싸!”

방성찬은 여유롭게 반대편으로 지나갔다.

“크흑.”

구멍이 아쉬운지 목탁 대신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저돌적인 드리블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방성찬 선수 침착합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인가요?”

“구멍 선수가 조급했습니다. 태클이 너무 성급했어요!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겁니다. 쯧쯧.”

안태리가 안타까운지 혀를 끌끌 찼다.

방성찬과 조문돈, 그 사이로 빠르게 뛰어오는 이순신.

케빈킴은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시켰다.

슛이냐? 패스냐?

방성찬은 강력하게 왼쪽을 향해 슛을 날렸다.

슈우우우웅-

엄청난 슈팅이었다.

케빈킴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런 슈팅이 편했다.

빠르게 공 쪽으로 몸을 날렸다.

퍽!

케빈킴이 민첩하게 대응했지만, 잡기에는 역부족이어서 펀칭으로 막아냈다.

“막았다!”

기쁨도 잠시.

튕겨져 나온 공은 조문돈 쪽으로 굴러갔다.

“젠장!”

엎드린 케빈 킴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크크. 감사!”

조문돈의 눈앞에는 먹기 좋은 빈 골대가 잘 차려진 상태였다.

툭툭 공을 두어 번 공을 끌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패스!”

방성찬이 공을 달라고 소리쳤지만, 조문돈은 듣지 않았다.

‘골 탐욕이 많아지셨군.’

조문돈은 디딤발을 강하게 내디디고, 반대 발을 높게 쳐들었다.

“님아 매너염!”

케빈킴이 다칠까 봐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걱정 마. 안 때려.”

그냥 툭 차도 들어갈 상황인데 조문돈은 기선제압을 위해서 일부러 강슛을 때렸다.

촤아아악!

이순신이 엄청난 바람을 일으키며 뒤에서 미끄러지며 몸을 90도로 꺾었다.

[방패연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힘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두 물체 사이에 쌍으로 존재한다.

차고자 하는 조문돈의 다리와 슛을 막으려는 이순신의 다리가 축구공을 사이에 두고 부딪혔다!

두 물체가 서로에게 작용하는 힘의 크기가 같고, 방향이 다를 때 반작용이 적용된다.

퍼엉!

엄청난 굉음을 났다.

고작 발바닥으로 지탱하며 서 있던 조문돈은 훨씬 큰 기저면을 확보한 이순신을 이겨낼 순 없었다.

마찰력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으윽!”

조문돈이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심판에게 페널티킥을 달라고 최대한 불쌍한 눈빛을 보냈다.

‘뭐하는 거야? 심판 놈아!’

심판은 휘슬을 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와- 엄청 깔끔한 태클인데?’

오히려 심판은 이순신의 완벽한 태클을 보고 놀랐다.

“이순신 선수의 엄청난 슈퍼 세이브입니다. 안태리 감독님 어떻게 보십니까?”

“한 골 넣은 것과 다름없는 수비입니다. 그렇죠, 이갑용 코치님?”

“…”

자신이 할 말을 안태리가 해버려서 이갑용 코치는 순간 멈칫했다.

“이갑용 코치님도 할 말을 잃게 만든 엄청난 수비가 나왔습니다!”

조문돈은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 일어나면 개쪽인데…’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욕을 먹는 건 당연지사.

심판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건 흥행참패를 넘어서 폭망 그 자체였다.

오히려 그를 일어나게 한 건 심판의 호루라기가 아니라 이순신의 비웃음이었다.

“엄살 피우지 마. 추하다.”

이순신이 냉소를 뿜으며 공을 치고 나가며 반격에 나섰다.

“이게!”

조문돈이 일어나려는 순간,

아직 다리가 찌릿찌릿해서 주저앉았다.

‘젠장!’

“아 조문돈 선수가 엄살을 부리는 거 같은데요?”

조문돈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멘트였다.

아프다고 하기에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고, 안 아프다고 하기에는 아까의 충격 여파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저 새끼도 가만두지 않겠어!’

조문돈은 이를 악물며 말을 듣지 않은 다리를 움직였다.

그사이 방성찬이 옆에서 재빨리 따라붙었다.

“이쪽이 아닌데?”

“?”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조문돈은 경직 상태.

방성찬은 자신에게 붙은 상황이라면 공격 쪽에서 우리 팀 한 명이 노마크 찬스라는 소리.

이순신은 힐끗 보더니 구멍에게 길게 패스했다.

“어… 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프라인을 넘은 구멍은 당황했다.

“뛰어!”

이순신이 언성 스킬을 사용하여 외쳤다.

“아아!”

마음속에 봉인해 둔 야차의 금제를 해제했다.

그 무엇도 구멍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왼쪽에 오진성, 중앙에 이만수가 같이 뛰었다.

3:2의 상황.

“멈춰!”

구멍이 멈춰서 수비를 끌어냈다.

정지선은 나오지 않았다.

발이 느려서 대인 마크보단 지역 방어에 특화된 센터백이었다.

자신의 위치가 코너킥보단 가까운 거리란 걸 깨달은 구멍은 크로스를 올렸다.

공은 높게 날아갔다.

이만수가 펄쩍 뛰어올랐다.

‘여기서 헤딩슛을?’

이미 수비가 자리를 잘 잡은 상황에서 무리한 헤딩슛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지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공이 이만수에게 다가오자 그는 냉큼 머리를 숙였다.

이만수의 선택은 슛이 아닌 백헤딩으로 뒤로 흘렸다.

공이 통통 튀며 오진성과 홍반봉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하는 쪽으로 굴러갔다.

그 순간 홍반봉과 몸싸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진성이 넘어졌다.

그때 오진성이 다리를 뻗었다.

만약 수비가 없는 상태에서 다리가 닿기만 한다면 들어갈 수도 있는 거리였다.

“그딴 슛은 안 통해!”

홍반봉이 앞에서 공을 커트할 준비를 했다.

“응. 슛 안 해.”

애초에 오진성은 슛을 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보다 슛을 더 잘 넣을 선수가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오진성은 발등이 아닌 뒤꿈치로 패스했다.

홍반봉은 당황해서 그저 공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방성찬 역시 역습을 준비했다가 되돌아가는 상황.

그 순간.

이순신이 바람을 타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까지 들어와서 다이빙 헤딩을 했다.

[현자포를 사용했습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력한 헤딩을 할 수 있습니다.]

펑!

이순신의 헤딩은 낮고 빠르게 골대로 향했다.

아쉽게도 공은 골대에 맞았다.

“젠장!”

이순신이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울분을 감추지 못할 때 그물이 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골입니다! 구멍 선수. 위치선정이 아주 좋았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구멍에게 향했다.

얼떨결에 넣은 골로 눈을 껌벅이던 구멍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우아아아나아무아미타불.”

“하하하. 저게 뭐야!”

겸손한 합장으로 마무리하는 구멍의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끝판왕 9번 방은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다른 선수들과는 한 차원이 높은 플레이.

‘이래서 수준 낮은 애들하고 하니까 나까지 실력이 떨어지네.’

2:1로 지고 있는 상황이 오자 방성찬의 자존심은 와장창 무너졌다.

결국, 애꿎은 팀원들에게 화를 냈다.

“똑바로 막았어야지. 그거 하나 못 막아?”

“미안. 거기서 그런 플레이가 나오다니. 브라질 출신은 역시 다르긴 다르네.”

“다르긴 뭐가 달라! 어차피 다 같은 다리 두 개 달린 사람이야!”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지선이 나섰다.

“멈춰…”

“아오- 진짜!”

방성찬이 땅을 걷어찼다.

“맨투맨은 포기하고 지역 방어로 가는 게 어때? 솔직히 쟤네도 6연승을 한 팀이야. 개개인 능력도 나쁘지 않은 데다가 팀워크까지 좋아.”

방성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K2리그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폐기된 것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젠장. 저런 놈들한테 내가!’

방성찬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냉정히 이성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아까보다 눈빛이 또렷해졌다.

“네 말대로 하자. 하지만 이순신은 내가 맡을게. 그리고 지선아.”

“응?”

“기회 되면 무조건 때려. 너도 슈팅력이 있으니까. 알겠지?”

“알았어!”

정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사이드를 열심히 뚫어주고”

“맡겨만 두라고!”

만기전역 병장의 상황수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방성찬은 비교적 팀을 빠르게 정비했다.

“가자!”

방성찬의 킥오프로 경기가 재개됐다.

이순신 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순신과 오진성이 자리를 바꿨다.

구멍은 조문돈, 이순신은 홍반봉을 막음으로써 사이드 돌파를 대비했다.

여기에 오진성과 이만수가 붙어서 방성찬을 막아냈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확실히 방성찬은 대단한 선수였다.

단숨에 두 사람의 마크를 떼어내고 돌파했다.

하지만 재빠른 오진성이 금세 따라붙었다.

“정지선. 넘어와!”

방성찬의 외침에 정지선이 하프라인을 넘어왔다.

중앙에서 패스를 받은 정지선은 그대로 슛을 날렸다.

파아앙!

엄청난 위력의 슈팅이었다.

케빈 킴이 잡았다 놓칠 정도로 강력했다.

그 순간 방성찬이 날아올랐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헤딩슛!

그런데 어느 순간 달려온 이순신이 발로 막았다.

“중거리 슛은 이렇게 하는 거야!”

[천자포를 발동합니다.]

이순신이 상대편 진영이 아닌 아군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슛을 때렸다.

“저기서 슛을? 저게 들어갈 리가 없죠!”

이주성을 비롯한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철렁~

그런데 들어갔다!

정지선이 공격에 가담했기에 골대와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보경풍은 저기서 슛이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기는 3:1로 앞서갑니다!”

이순신은 슬라이딩을 하면서 기도 세레머니를 펼쳤다.

“하하하. 합장에 이번엔 기도라니. 다음번에는 어떤 종교가 나올까요!?”

삐이이익- 전반전이 끝났다.

[천자포로 슛을 성공시켰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히든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순신은 문장 뒤에 붙은 ‘…’가 신경 쓰였다.

‘뭐야? 설마 그 거리에서 골을 넣을 줄 충무공도 몰랐던 건가? 이거 좀 섭섭한데?’

[충무공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물론 공식 경기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리도 훨씬 길고, 상대편의 수비도 훨씬 많으니까.

‘어쨌든 히든 보상! 빨리 경기가 끝났으면 좋겠다!’

전반전부터 더블을 사용했던 이순신은 평소보다 훨씬 더 피곤했다.

하지만 뜻밖의 보상을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다.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

“3:1로 우리가 앞서고 있어!”

“이대로 잘 버티면 우리가 이겨!”

들뜬 5번 방의 선수들과 다르게 이순신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체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세컨드 윈드 더블 상태가 해제됩니다.]

[세컨드 윈드(패시브) 상태가 해제됩니다.]

이순신에게 걸려 있던 버프가 모두 해제됐다.

‘졸려…’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프타임이 끝났을 때 이순신의 남은 체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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