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실패한 유망주 vs K2 리거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이 각자의 진영에서 몸을 풀었다.
이순신이 상대편 진영을 힐끗 보았다.
“첫날에 눈에 띄던 녀석들이 저기 다 모여있어. 그러니 강할 수밖에.”
축구선수를 접고 잠시 어둠의 세계에 있다가 온 문신 덩어리 조문돈.
턱 하관이 유럽사람처럼 검은 털로 뒤덮인 홍반봉.
엄청난 덩치로 ‘멈춰’라고 말하면 멈춰야 할 거 같은 정지선.
여기에 현재 6경기에서 3골밖에 허용하지 않은 장발의 골키퍼 보경풍까지…
개성이 넘치는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기 위주로 경기를 진행했다.
반면 이순신은 하나의 팀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던 오진성, 열등감이 강했던 이만수, 존재감이 없는 막내, 팀에 적당히 묻어가려고만 했던 구멍의 한계를 끌어올렸다.
이런 팀원들을 보니 이순신은 매우 든든했다.
여기에 객원 골키퍼는 케빈 킴!
비록 첫 경기에서 5실점을 했지만, 이후에 자신감을 되찾고 5경기 무실점을 이뤄냈다.
“오늘 잘 부탁한다.”
이순신이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케빈 킴은 웃는 얼굴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아직 앙금이 남았다.
‘너 때문에 하마터면 첫날에 나갈 뻔했어. 0:1 오늘 너희 팀이 받을 스코어다. 크크.’
케빈은 실수를 가장한 척 한 골 먹힐 계획이었다.
우월한 성적, 우월한 외모를 가진 자신이 떨어질 리는 만무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너 엄청 잘하더라.”
“정말?”
케빈 킴에게 가장 현재 가장 필요한 건 자신감.
그걸 회복하는데 칭찬만큼 좋은 건 없었다.
“골문을 내게 맡겨두라고! 한 골만 넣어라. 그럼 내가 1:0으로 이기게 해줄게!”
팡!
케빈 킴의 눈빛에 적대감 대신 친근감이 돌았다.
‘훗. 단순한 녀석.’
[팀의 불안요소를 제거했습니다.]
[해당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능력치가 약간 상승합니다.]
‘좋았어.’
이순신은 팀 버프를 받아서 자신감이 붙었다.
“양 팀 모두 모여봐.”
안태리가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라. 단 한 경기 때문에 인생 망친 선수들 여럿 봤다. 반면 단 한 경기로 인생에 꽃이 핀 선수들도 있으니 명심하도록. 알겠나?”
“넵!”
“성찬이네 잠깐 모여봐.”
안태리가 그들에게 무언가 조언을 해줬다.
“알겠습니다!”
방성찬을 비롯한 팀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5번 방도 잠깐 모여봐.”
5번 방이 우르르 안태리 앞으로 모였다.
“개개인의 전력만 놓고 보면 난 저쪽 팀이 더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는 팀플레이야. 너희는 그게 장점이고, 각자의 역할에 집중하면 그걸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알겠지?”
“넵!”
안태리의 조언에 5번 방은 가슴이 웅장해졌다.
다만 이순신은 생각이 좀 달랐다.
‘각자의 역할… 이게 좀 걸리는데…’
“순신 시주. 주장으로서 기운 넣고 갑시다!”
“그러자.”
5번 방은 어깨동무를 하고 허리를 숙였다.
“우리는 팀이다!”
구호를 외친 5번 방의 눈빛 역시 자신감이 붙었다.
‘반드시 이긴다!’
팀원의 능력상승, 리플레이로 한 시뮬레이션.
복습과 예습을 철저히 했다!
하지만 경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초반에는 미드필더쪽에서 점유율 싸움이 치열했다.
방성찬네도 뭔가 쉽사리 공격을 하진 않는 기분.
탐색전을 끝내자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방성찬을 필두로 홍반봉과 조의 삼각편대가 너무나 위협적이었다.
홍반봉이 오른쪽 골라인을 따라서 질주했다!
막내가 빠르게 따라붙었다.
“꺼져!”
“으아아악!”
막내와 홍반봉의 어깨가 부딪혔다.
오히려 튕겨 나간 건 막내였다.
막내의 작은 체격으로는 홍반봉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소승이 가겠소!”
구멍이 달려가는 사이 이순신은 방성찬과 조문돈을 살폈다.
‘역시 직진인가?’
방성찬네 팀은 오로지 공격!
그것도 선이 굵은 공격이었다!
“꿀 크로스 간닷!”
홍반봉이 날카롭게 크로스를 올렸다.
방성찬이 뛰어올랐다.
‘분명히 뒤에 들어오는 조근선에게 패스를 하겠지?’
이순신은 예측했다.
굳이 불필요한 움직임을 펼치고 싶지 않았다.
예상대로 조근선이 뛰어오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해. 느낌이 너무 쎄하다.’
뒤늦게 이순신이 뛰어올랐다.
공이 방성찬의 머리에 맞았다.
이순신의 예측대로라면 포스트플레이에 능한 방성찬은 헤딩으로 조문돈에게 패스를 해야 했다.
그런데 공이 우리팀 골대로 향했다.
공은 바운드가 되고, 케빈 킴의 손을 넘어서 골대로 들어갔다.
“1:0!!! 초반에 터진 방성찬의 골로 9번 방이 리드합니다!”
방성찬은 안태리가 있는 쪽으로 가더니 90도로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태리가 씨익 웃었다.
아까 방성찬에게 한 조언은 단 하나였다.
-양보하지 말고 직접 골을 넣어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양보 인생이었다.
파트너 공격수를 받쳐주는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 포스트 플레이는 뛰어나지만, 스스로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조금 부족했다.
덕분에 눈에 띄는 선수가 되지 못하고, 0:0으로 비기는 경기에서는 전봇대냐는 비웃음을 많이 들었다.
다행히 홍반봉과 조문돈은 공격성이 넘치는 풀백이었다.
닥공을 목표로 하지만, 공격 횟수에 비해선 슛 성공률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늘 안태리는 늘 안타까워했다.
‘차라리 직접 골을 넣으면 더 좋겠는데?’
그 약점을 보완하니 방성찬네 팀은 중요한 순간에 성장했다.
“한 방 먹었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6경기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하는 선수의 분석이 의미가 없어졌다.
마치 상대가 오소독스인 줄 알고 철저하게 준비했는데 정작 사우스포로 나오면 멘탈이 무너지기 마련이지만,
5번 방은 달랐다.
“뭐야? 경기 시간 아직 많이 남았어!”
“맞아. 프로선수를 상대로 한 골도 안 먹힐 순 없잖아?”
이순신운 한 골도 먹힐 생각이 없어서 그랬는지 머쓱했다.
“그래, 아직 진 건 아니니까.”
골은 먹혔어도,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즈아!”
저쪽에 방성찬이 있다면, 이쪽에는 이순신이 있으니까!
다만 아쉽게도 그 기세가 쉽게 끊겼다.
오진성의 패스를 받은 막내가 드리블을 쳤다.
촤아아악-
막내를 향해 들어오는 조문돈의 태클.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막내가 넘어졌다.
“아 부상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이주성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순신이 물었다.
“막내야. 뛸 수 있겠어?”
“으으-”
막내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찡그렸다.
‘혹시 동료를 치료하는 스킬은 없나?’
[충무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팍!
이순신이 애꿎은 잔디를 내리쳤다.
결국, 막내는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순신이 조문돈을 째려봤다.
“뭘 봐?”
“너. 절대로 사과하지 마라. 절대 안 받아줄 거니까.”
“미친놈. 네가 뭔데 사과를 받네 마네야? 뒤질래?”
“닥쳐. 문신충아.”
조문돈이 인상을 쓰며 걸어왔다.
경기가 과열되는 분위기를 저지한 건 정지선이였다.
“멈춰!”
손을 뻗으면서 외친 낮고 굵은 목소리.
‘뭐야. 마치 언성 스킬을 쓴 이 느낌은?’
이순신도, 조문돈도 그 자리에서 멈췄다.
“뭣들 하는 짓이야? 잠깐 카메라 좀 꺼봐.”
급기야 안태리도 화가 났는지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방성찬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이순신을 쳐다봤다.
‘5번 방. 우리한테 기세로 안 밀리다니. 제법인걸?’
방성찬은 내심 감탄했다.
“순신 시주. 흥분하지 마시오. 여기서 일을 크게 만들면 주장으로서 자격 미달이오.”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경기다. 서로 후회 없이 싸우고 얼굴 붉힐 일은 없었으면 한다.”
“넵!”
다시 경기는 재개됐다.
이순신은 묵묵히 프리킥을 준비했다.
막내가 나갔다고 해서 0:1로 지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센터서클과 페널티 에어리어 사이로 제법 거리가 있었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성공확률 52%]
[남은 횟수 (3/3)]
이순신은 남은 횟수를 전부 몰아줬다.
[성공확률이 100%로 상승합니다.]
삐이이익-
이순신이 달려가면서 프리킥을 찼다!
“멈춰!”
엄청난 궤도에 최종 수비를 보던 정지선은 그저 손을 뻗어서 ‘멈춰’라고 외치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바람을 타고 오는 공이라…”
보경풍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날렸다.
우측 골 모서리를 통해서 날아오는 공.
‘흔히 야신 사각지대라고 부르는 지역. 그러나 예측을 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골이다!’
슈우웅.
“!!!”
보경풍은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공을 보고 당황했다.
퉁~
한 번 바운드 된 공은 깔끔하게 골대로 들어갔다.
“우아아아아!”
이만수가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순신은 별다른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피식-
그저 조문돈을 보며 썩소를 날려줬다.
“저 자식이!”
“멈춰!”
정지선은 발끈한 조문돈을 말렸다.
방성찬도 거들었다.
“저런 것들 밟아줘야 제맛이지. 안 그래?”
방성찬을 제외한 9번 방은 외인구단 느낌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축구를 그만둔 선수들이 많았다.
자신도 백이 있었다면 유학도 가고, 대표팀도 갔을 텐데…
그것이 9번 방을 강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알죠. 절대 안 질 겁니다.”
조문돈은 팔뚝을 걷었다.
삐이이익-
방성찬의 선축으로 경기가 재개됐다.
“아. 이럴 수가 있나요?”
이주성은 경기를 보면서 혼란에 빠졌다.
원래대로라면 골키퍼를 제외하고 6:6으로 진행됐어야 하는 경기.
양쪽이 사정이 있어서 4:4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공만 축구공이지 농구를 보는 것 같았다.
이순신은 방성찬, 오진성은 홍반봉, 구멍은 조문돈을 이만수는 정지선과 대치를 이뤘다.
축구에서 전 선수가 맨투맨이라니.
덕분에 경기 진행은 꽤 빨랐다.
패스 속도.
1:1 돌파.
다만 양 팀 다 빡센 수비로 슈팅 찬스가 쉽게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공을 돌리다가 방성찬이 공을 잡았다.
“후훗. 걸렸구나.”
방성찬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뭐가?”
“이런 맨투맨 상황이라면 더 강한 쪽이 이기니까.”
“그럼 내가 이기겠네.”
이순신이 너스레를 떨었다.
“너같이 실패한 유망주에게 발릴 만큼 K2 리그가 만만한 줄 알아?”
방성찬은 왼쪽으로 치고 나갔다.
이순신은 조용히 따라갔다.
“패스!”
조문돈이 공을 달라고 손을 흔들었다.
방성찬은 힐끗 보더니 따라오는 수비수가 보였다.
이순신이 쫓아오지만, 과감하게 때려보고 싶었다.
휙!
케빈 킴이 몸을 날려서 공을 잡았다.
“나이스 케빈!”
이순신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케빈은 그대로 이만수가 있는 곳으로 골킥을 날렸다.
가슴으로 공을 받은 이만수는 턴을 하려는 순간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뭐야? 웨이트 몰빵인가?’
이만수가 어찌할지 모를 때, 저 멀리 이순신이 달려왔다.
“순신아. 받아!”
이순신은 공을 받았다.
그 순간 홍반봉과 조문돈이 스리백을 결성했다.
“멈춰라!”
“넌 멈추라는 말밖에 못 하냐?”
이순신이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지자포를 갈겼다!
직접 노린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갔다.
“아, 이순신 선수의 슛이 안타깝게 빗나갑니다!”
정지선의 볼에는 아직도 이순신이 찬 공의 온기가 남았다.
섬뜩.
17세 이하 청소년대회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 찼던 공이 이랬다.
[반동 효과로 체력 저하가 적용됩니다.]
“하아, 하아.”
무언가 엄청난 돌이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휴. 다행이다.”
[세컨드 윈드(패시브)가 발동합니다.]
[세컨드 윈드 더블을 발동하겠습니까?]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변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