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1화 (22/161)

21화. 왁싱숍 예약해놨습니다.

삐이익-

분위기가 진정되고 오진성의 선축으로 경기가 재개됐다.

이순신은 명성 하락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당장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성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배수의 진이 발동되어 팀원들의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오히려 ‘배수의 진’이 발동되자 기분이 좋았다.

“한 골 넣자! 우린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순신이 외쳤다.

구멍은 이순신이 갑옷을 입고 지휘하는 장군처럼 보였다.

‘순신 시주. 마치 충무공이 강림한 거 같구려!’

의병의 마음으로 그 역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진성과 이만수의 공격이 상대편에게 막혔다.

곧바로 반격이 시작됐다.

1골 앞서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마음 놓고 치고 달렸다.

‘이따위 개인기는 어림없지!’

이순신은 상대편의 공을 가볍게 커트했다.

쓰윽 둘러보니 상대편의 진영이 무너진 상태였다.

“가자!”

하지만 공격진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한테 패스 안 주고 또 제멋대로 하겠지?’

이만수, 오진성, 막내는 전방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앞에서 움직이지 않자 이순신이 언성 스킬을 사용하려고 할 때,

“뭣들 하시오! 움직여야 공을 줄 것이 아니오!”

구멍이 비어있는 공간을 향해서 움직였다.

이순신은 바로 패스했다.

상대편의 수비가 구멍에게 몰렸다.

“후훗. 여러분은 블랙홀에 빠졌소.”

구멍은 올라오는 이순신에게 다시 리턴 패스를 했다.

이순신이 골을 툭툭 차며 앞으로 나갔다.

상대 팀의 남은 선수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언성 스킬을 쓸 타이밍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올라왔다.

“이쪽이오!”

“막아!”

구멍이 손을 들고 공을 달라고 했지만, 눈짓은 아니었다.

‘내가 유인할 테니 돌파하시오!’

이순신은 구멍의 의중을 알아챘다.

오진성이 입술을 깨물며 무언가 결심했다.

“순신아. 패스!”

전방에서 공을 달라고 소리만 쳤던 오진성이 내려와서 공을 달라고 했다.

“그렇지!”

이순신이 오진성에게 패스했다.

수비까지 가세한 공격에 상대 팀은 우왕좌왕했다.

오진성의 화려한 개인기로 가볍게 상대편을 제쳤다.

수비와 1:1 상황.

툭.

오진성은 뒤꿈치로 패스했다.

공을 받은 사람은 측면에서 돌아간 이만수였다.

그야말로 빈 골대.

‘여기서 후지산 대폭발 슛을 쏜다면 사람도 아니다!’

이순신의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인사이드로 찬 슛이 깔끔하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오진성 선수의 멋진 힐패스. 이만수 선수의 깔끔한 슈팅. 다시 균형을 맞춥니다!”

안태리는 흡족한 듯 웃었다.

“움직이면 공간이 나온다. 동료를 믿으면 기회가 생긴다.”

“명언 제조기냐? 연습했지?”

“아니.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김구름과 안태리가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사이에 경기가 재개됐다.

남은 시간은 10분.

순신네 팀은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언성 히어로의 역할을 스스로 자처한 구멍은 닻을 올리고, 볼배급에 신경 썼다.

때로는 상대를 유인하기도 하고, 공격수에게 가는 공을 즉시 차단하고 역습의 시발점이 되었다.

삐이이익-

그 결과 오진성이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역전 골을 어시스트했다.

상대편은 혼란에 빠졌다.

명량에서 휩쓸린 일본군처럼 처참하게 무너졌다.

오진성, 이만수가 차례대로 골을 넣었다.

마지막은 이순신이 천자포, 지자포로 두 골을 넣었다.

6:1.

이순신이 넣은 자살골이 아군이 아닌 상대편 골대로만 향했어도 해트트릭이었다!

“이겼다!”

5번 방은 서로 얼싸안고 좋아했다.

“안 태리 감독님, 오늘 경기 총평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주성이 물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선수들이 축구가 팀플레이라는 걸 잊고 따로 놀더군요. 딱 한 팀만 빼고요.”

“그게 어느 팀입니까?”

“방금 경기를 마친 5번 방입니다.”

“아…그러고 보니 5번 방의 이순신 선수가 의도적인 자살골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팀플레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안태리가 이순신을 잠시 쳐다봤다.

“그건 팬들이 판단해줄 겁니다.”

“아- 의미심장한 안태리 감독님의 평을 끝으로 3일 차 경기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

다른 선수들이 자신의 평가에 대해서 궁금해할 때 이순신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쏠렸다.

[지난 경기 자살골로 악명이 상승했습니다.]

[안티팬이 증가했습니다.]

‘악명이라… 결과적으론 이겼으니까 상관없지.’

[그런 마음가짐이 악명을 상승시킨다고 경고합니다.]

이순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윽고 악명에 관한 설명을 살펴보았다.

‘악동, 에이스 킬러? 매국노? 정강이뼈 수집가? 날강두? 뭐가 이렇게 무시무시해… 하지만 능력치는 폭발적으로 상승. 하지만 매 시즌 급격한 능력치 저하. 거의 1시즌 반짝하고 사라지네.’

짧고 굵게 살 것이냐. 오랫동안 잘하는 선수가 될 것인가?

‘최대한 악명이 쌓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그때 이후에 개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배수의 진을 치고 시작한 스페인 생활, 그리고 그다지 힘들진 않았던 군 생활. 그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지금쯤 해외 리그나 국가대표가 되지 않았을까 이순신은 조심스레 추측했다.

[지난 경기에서 8점의 평점을 받았습니다.]

[장비 스킬을 강화하시겠습니까?]

[현재 누적 평점 26점]

‘두 번 정도 뽑아볼 수 있겠네?’

이순신은 시험 삼아 장비 스킬 강화를 시도했다.

‘아, 그전에 목록과 확률부터!’

모 게임회사와는 다르게 스킬의 종류와 확률이 투명하게 공개됐다.

‘그럼 뽑아보자!’

휘황찬란한 빛이 번쩍이더니 스킬이 나타났다.

[점프력이 1Cm 상승합니다. (최대 10Cm)]

[무릎의 부담을 약간 줄여줍니다.]

[스킬 착용 (2/2)]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뽑은 스킬은 그다지 상위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점프력 스킬만 하더라도 최대 10Cm 증가인데 이순신이 뽑은 건 고작 1Cm 증가였기 때문이었다.

[천장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10개 중 최소 1개는 중급 이상의 능력치를 가진 스킬을 뽑을 수 있습니다.]

천장 시스템.

즉 최소한 1개는 괜찮은 스킬을 보존해주겠다는 뜻인데 그 중요한 걸 이제야 알려줬다.

이순신이 째려보자 충무공도 ‘감히?’라는 눈빛으로 째려봤다.

위압감에 쫀 이순신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다.

사람도 신도 완벽할 순 없었다.

***

이순신이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장했을 무렵,

다른 선수들은 제작진에게 졸랐다.

“작가님. 제발요! 댓글 좀 보게 해주세요.”

“안 됩니다.”

“그럼 경기 반응만이라도요.”

“조회수라도요!”

“현재 포지션별 1등은 누굽니까?”

“공개할 수 없습니다!”

작가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아- 너무하시네. 증말!”

선수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댓글은 양날 검과 같은 존재다.

선수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오히려 멘탈을 바사삭 부숴버리기도 했으니까.

현재 동영상 조회수, 그에 달린 댓글, 포지션별 순위는 피디, 안태리, 이주성, 김구름, 이갑용만 아는 극비사항.

“와- 이거 공개되면 난리가 나겠지?”

“응.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데?”

그들이 본 건 이순신에 대한 반응이었다.

ㄴ 이름만 애국자 새끼. 아직도 축구함?

ㄴ 매국노 골 탐욕 보소.ㅋㅋㅋㅋㅋ

ㄴ 자살골 지렸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튀려고 별짓 다 하네.

ㄴ 포지션이 중앙수비수? 왜지? 다침?

ㄴ 여러분은 지금 역대 최고급 재능의 멸망 쇼를 보고 있습니다.

“재밌네. 재밌어. 흐흐흐.”

이갑용이 댓글을 보면서 웃었다.

딱히 이순신에 대한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거 상대 선수의 뒤통수를 후려쳐서 갑용타라고 불렸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이게 웃을 일이야? 피디님. 절대 선수들한테 댓글 보여주지 마세요!”

“안 그래도 제작진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김구름은 매우 안타까웠다.

현역시절에도 좋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악플로 인한 자신감 하락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선수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포지션별 순위는 어떻게 돼요?”

포지션별 순위는 그들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순신은 중앙수비수 부분에서 꼴찌를 달렸다.

“아이고. 순신아.”

“구름 형. 뭘 걱정하고 그래. 어차피 스포츠는 기록이야.”

안태리가 3경기 동안 경기기록을 보여줬다.

김구름과 이갑용이 놀랐다.

“이순신이 말했지? 자기 포지션은 수트라이커라고. 야구만 세이버메트릭스가 있는 게 아니지.”

현재까지 골을 가장 많이 넣은 선수는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인 이순신이였다.

첫 경기 3골 2도움, 2번째 경기 1골 1도움, 3번째 경기 2골 2도움. 그리고 + 자살골.

이외에 커트, 패스, 태클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그야말로 공수 겸비!

“몇 경기 안 했잖아.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얘보다 공격 포인트 높은 애들도 나올걸?”

이갑용이 반문했다.

“난 안 나온다는 것에 턱수염 걸게. 갑용 형이랑 구름 형은 머리 밀기 어때?”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거기에 중요 부위 왁싱까지 겁시다.”

이주성이 판을 키웠다.

“콜!”

이주성이 판을 키우고 안 감독과 두 코치가 미끼를 덥석 물었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안태리는 이순신.

이갑용은 방성찬.

김구름은 울며 겨자 먹기로 김혁규를 골랐다.

“혁규야. 믿는다!”

하지만 다음날 열린 경기에서 혁규는 믿음을 저버렸다.

4번째 경기에서는 이순신의 5번 방과 김혁규의 6번 방이 만났다.

개인기 위주의 경기를 펼치던 선수들도 어제 순신네가 보여 준 팀플레이를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혁규네 팀은 오늘 비교적 손발이 잘 맞는 편이었다.

“고올! 김혁규 선수의 골입니다!”

“크- 이순신 봤냐? 내가 넣을 골? 이 정도면 내가 너 천적 아니냐?”

“응. 한 방이 있네.”

천자포의 반동 효과로 이순신이 경직된 사이에 김혁규는 빠르게 치고 달렸다.

김혁규가 슈팅을 때리고, 공이 이순신의 발에 걸렸고, 골키퍼가 줍기만 하면 되는 골이었는데 기름을 처발라놨는지 잡지 못하고 공이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었다.

삐이이익-

최종점수는 3:1.

이순신의 해트트릭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이 잔인한 놈! 1골 넣었다고 3골로 갚냐?”

김혁규가 분개했다.

이순신은 그저 어깨를 토닥거리며 씨익 웃어줬다.

5경기, 6경기에도 매 경기 골을 넣은 선수이자 득점 2자리는 이순신이 유일했다.

특히 6번째 경기에서 프리킥과 중거리로 4골을 몰아넣은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안태리는 싱글벙글하였다.

“이거 더 볼 것도 없겠는데? 왁싱숍 예약해놨으니 내일 갔다 오시면 됩니다.”

“내 중요 부위는 정강인데 뭐하러 왁싱숍까지 가냐? 그냥 여기서 밀자.”

“이 형님이 어디서 약을 팔아.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분이~”

옆에 있던 김구름이 격분했다!

“야. 아직 마지막 경기 남았잖아!”

“15골 6도움을 어떻게 이겨?”

현재까지 김혁규는 4득점 2도움, 방성찬은 5득점 10도움으로 두 사람의 공격 포인트를 합쳐야 이순신의 기록과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방성찬이 한 6골 넣을 수 있잖아?”

“형…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끄응-”

“피디님. 바리깡 좀 주세요. 형들 머리는 제가 직접 밀게요.”

안태리가 사악하게 웃자, 김구름과 이갑용은 사색이 됐다.

드디어 마지막 경기!

이순신의 5번 방과 방성찬의 9번의 경기였다.

“아- 구멍 선수의 팬클럽이 2명이나 추가됐습니다. 김구름 코치와 이갑용 코치가 머리를 빡빡 밀고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왜 머리를 밀고 왔을까?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죠.”

선수들은 두 코치가 왜 머리를 밀고 나타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성찬아. 기필코 이겨라.”

“알겠습니다. 코치님. 그런데 머리는 왜 미셨습니까?”

“몰라도 돼! 무조건 이겨서 복수 좀 해줘!”

방성찬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해외파와 천재.

그가 싫어하는 수식어가 이순신 앞에 두 개나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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