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20화 (21/161)

20화. 자살골

이순신은 첫 경기에서 보상으로 천지현황포 스킬을 얻었다.

[천지현황포]

[거리에 따라서 슈팅 혹은 패스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사용횟수는 무제한입니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그렇다.

‘천자문’의 그 천지현황에서 따왔다.

그중에서 천자포는 하프라인 밖.

아군 진영에서만 사용 가능한 기술이었다.

이순신은 왼쪽으로 달려가는 오진성을 보고 천자포를 발동했다.

곡선으로 날아가는 비격진천뢰와는 다르게 시원하게 오진성에게 날아갔다.

오진성은 골을 받은 후 빠르게 상대 진영으로 침투했다.

“오진성 선수 슛!”

철렁!

아쉽게도 골은 옆 그물을 때렸다.

“으윽.”

순간적으로 이순신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이나 어시스트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반동 효과가 발동합니다.]

[반동 효과 : 체력소모 or 경직 or 시야 감소 중 무작위 발생]

[시야 감소가 10초간 발생합니다.]

“아까웠다. 진성아!”

“미안. 순신. 좋은 패스였는데 아쉽다.”

“괜찮아.”

이순신은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아직 시야가 회복되려면 3초 정도 남았다.

다행히 상대편 골키퍼가 공을 땅에 몇 번 튕긴 후 찼다.

펑!

길게 넘어온 골킥을 바라보며 이순신이 점프했다.

상대편의 공격수는 무참히 굴렀다.

최국성이 커버를 치려고 왔다.

그의 눈빛은 패배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기필코 한 골은 넣겠다는 의지.

[천자포가 발동했습니다.]

이순신은 상대편 수비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이만수에게 긴 패스를 했다.

이만수가 가슴으로 트래핑 후 몸을 흔들더니 상대 수비수를 제쳤다.

“슛!”

[언성 Lv. 2 발동!]

이만수는 이순신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슛을 때렸다.

철렁.

“우아아아아!”

이번엔 골이었다.

이만수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휴. 다행이다.”

이순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무모할 수 있는 패스였지만,

이순신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삐이이익-

순간 경기도 끝났다.

‘다른 것도 좀 사용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뭐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있으니까.’

“휴. 역시 넌 못 당하겠다. 실력이 점점 더 느는구나.”

최국성이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국성이 형.”

두 사람은 악수하고 경기장에서 퇴장했다.

“아오. 저 노친네.”

“후반에 다리 풀린 거 봤냐?”

“돌겠네. 진짜. 이러다가 우리 팀 전부 탈락하는 거 아냐?”

최국성은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묵묵히 들었다.

‘이젠 포기할 때도 된 건가?’

최국성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이 경기는 앞날이 창창했던 한 축구선수의 은퇴식이 되었다.

자신감을 잃은 최국성은 다음날 제작진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

똑똑똑.

“들어오세요.”

최국성은 제작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감독과 코치들이 다 모였다.

가볍게 인사를 한 최국성이 입을 열었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겠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최국성은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아, 이러시면 곤란한데요.”

피디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우리끼리 이야기해 볼 테니 나가 있어.”

안태리가 입을 틀어막고 코치와 제작진을 불러 모았다.

긴급회의가 시작됐다.

“하- 책임감 없는 건 여전하구만.”

“오히려 책임감이 과해서 그런 거 같아요. 예전엔 장점이었던 드리블도 이제는 평균 수준이고, 무엇보다 체력이…”

“어차피 관심 끌기용이었으니까 상관은 없는데 남은 선수들한테도 영향이 가지 않을는지…”

팔짱을 끼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안태리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반환점인 4경기가 끝나고 발표하려던 거 지금 하죠. 최종 선수 선발 방법이요.”

“안 감독. 그러면 선수 간의 호흡이나 팀워크보단 개인기 위주로 경기가 진행될 텐데?”

“뭐 어때? 인생이 어디 계획한 대로만 되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피디님?”

일정 변경은 피디로서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 일.

하지만 피디는 15년을 험하디험한 방송국에서 굴러먹은 베테랑답게 결단을 내렸다.

“안 감독님. 방송인 다 되셨네요. 선수들 강당으로 모이라고 할까요?”

피디와 안태리가 동시에 씨익 웃었다.

***

선수들이 강당에 모였다.

“무슨 일일까?”

“좋지 않은 예감이 드오.”

이순신도 궁금했다.

선수들이 다 모이자 안태리와 코치들이 등장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60명을 선발했지만, 오늘은 50명 정도 남았다.”

일수로 치면 약 10일 만에 10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오늘 포기한 선수가 또 나왔다.”

선수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 국성이 형이 없는데?”

“저희 팀 선수가 한 명 부족합니다. 안 그래도 지금 2패인데 팀 성적이 안 좋으면 저희 팀은 전원 탈락인가요?”

7번 방 선수가 물었다.

“팀 성적만으로 최종 멤버를 선발하지 않을 것이다.”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은 깜짝 놀랐다.

안태리가 눈짓하자 안태리 뒤로 PPT가 펼쳐졌다.

“시즌1과 마찬가지로 11명은 시청자 투표로 결정된다.”

시청자 투표라니?

“아니. 우리가 아이돌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생각해보면 시즌1은 아이돌 선발프로그램이긴 했지.”

“남주작. 포지션이 어디지?”

선수들의 시선이 남 주작에게 쏠렸다.

체력테스트 1위로 탈락 면제권을 가진 유일한 선수였다.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고, 오른쪽 미드필더도 할 수 있습니다…”

[21.]

전광판 뒤에 숫자가 큼지막하게 표시됐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21명을 선발할 것이다. 각 포지션마다 베스트 11자리가 있다. 그 베스트 11을 시청자가 투표로 결정할 것이고, 남은 10자리를 우리 코치진이 정할 것이다. 남주작이 베스트 11에 들면 남은 자리는 10명, 베스트 11에 들지 못하면 남은 자리는 9명이다.”

웅성웅성.

선수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포지션별로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혹시 전술은 어떻게 됩니까?”

이순신이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전술은 비밀이다. 대신 포지션별로 필요 인원은 알려주겠다.”

골키퍼 3명,

풀백 포지션 3명.

센터백 3명,

측면 미드필더 2명,

수비형 미드필더 1명,

공격형 미드필더 1명,

중앙 미드필더 2명,

측면 공격수 2명,

중앙 공격수 2명.

“아직 방영도 안 했는데 시청자 투표는 어떻게 합니까?”

김혁규가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그런 눈치는 필드에서 보이도록!”

안태리의 등 뒤에 인터넷 방송인 뮤튜브 화면이 떠올랐다.

선수들의 개인 소개, 이틀 동안 치러진 경기 영상, 체력테스트 영상 등이 업로드되었다.

심지어 경기는 실시간으로 방송되었다.

“생각보다 너희를 지켜보는 사람들, 너희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잠시 후 운동장에서 보자. 이상.”

안태리와 코치진이 퇴장했다.

선수들은 멍하니 뮤튜브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높은 조회수.

영상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피디는 고민 끝에 몇몇 영상을 틀어서 댓글을 보여줬다.

ㄴ 힘내세요!

ㄴ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고!

ㄴ 현실판 외인구단ㄷㄷㄷㄷ

ㄴ 언제 방영하죠? 꼭 본방 사수하겠습니다.

선수들은 뭉클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다들 축구선수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란 의문도 가슴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팬들의 믿음을 본 선수들은 강한 동기부여가 생겼다.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네.”

이순신의 말에 5번 방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필코 좋은 모습을 보여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다짐했다.

다만 대다수 선수의 방향성이 조금 잘못됐다.

안태리와 코치진은 경기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저기서 저걸 놓치나?”

“그러게 말이야. 오히려 평가하기 더 쉬워졌는걸?”

“이러니 개그프로그램이 망하지. 껄껄껄.”

예상했던 대로 대혼란 파티가 일어났다.

그나마 손발을 맞췄던 팀들이 자신이 돋보이려고 개인기 위주의 경기가 펼쳐졌다.

“완전히 해외 유소년팀이랑 똑같은데?”

이순신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소년 팀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이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짐을 싸야만 했다.

“빨리 리턴하시고, 막내 시주 뭐하십니까!”

이번 경기에서 주장 마크를 단 구멍도 초조한지 말이 많아졌다.

이순신은 그저 뒤에서 바라봤다.

오히려 상대편의 패스 플레이가 줄어들고, 무리한 슈팅 난사로 수비하기는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도 스코어는 0:0.

하프 타임에 오진성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말했다.

“후반에 나한테 공을 줘. 어떻게 해서든 내가 넣을게.”

“아니오. 나한테도 공을 좀 주시오. 우리 팀에서 나만 공격 포인트가 없소이다…”

“어차피 포지션별로 뽑잖아. 지금처럼 뒤나 잘 지켜.”

“그게 무슨 말이오! 스포츠는 기록이오. 기록!”

구멍과 오진성은 서로 자신에게 공을 달라고 실랑이를 벌였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순신은 무언가 큰 결심을 했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됐다.

이만수가 오진성에게 공을 건넸다.

타다닥!

순간 오진성은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퍽!

이순신이 오진성을 밀치고 공을 빼앗았다.

“뭐야?”

오진성은 매우 당황했다.

그것은 상대편도 마찬가지였다.

팀 내분.

훗날 팬들이 이걸 보면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진 않을 게 분명했다.

[지자포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센터 서클과 페널티 에어리어 사이에 있었기에 천지현황포 중에서 지자포가 발동됐다.

부우웅-

이순신의 지자포는 낮고 빠르게 골문을 향해서 날아갔다.

철렁!

문제는 그것이 자기 골대였다는 것이다!

0:1.

이순신의 골로 지루한 공방전이 끝났다.

“이순신 선수! 엄청난 중거리 슛입니다! 그런데 자살골이라뇨!”

이주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켜보던 이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임펙트만큼은 오늘 경기를 한 선수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뭐냐? 그렇게 튀고 싶었냐?”

오진성이 적대감을 드러냈다.

“순신 시주. 이게 뭐하는 짓이오!”

“이게 축구야?”

오히려 이순신이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흠칫 놀랐다.

“패스도 하지 않고, 튀기 위한 개인플레이. 이게 축구냐고?”

“방금 그딴 행동을 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럼 골을 넣던가. 왜 자꾸 드리블만 처하고 홈런만 날리는데? 여기가 야구장이야?”

이만수와 이순신이 서로를 노려보고 금방이라도 충돌할 거 같은 분위기였다.

팍!

이만수가 이순신의 가슴을 밀쳤다.

삐이이익!

잠시 경기가 중단됐다.

심판도 상대편도 와서 제지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구멍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따로 노는 팀. 패스조차 안 되는 팀. 이걸 보고 팬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네.”

순간 구멍은 눈을 번쩍 떴다.

“아니. 그렇다고 자살골을 넣는 건 팀킬이잖아!”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어. 난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서 골을 넣은 거야.”

“뭐? 미쳤냐?”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우리는 져. 그러니까 공격진은 합심해서 골 좀 만들어 봐. 서로 골 넣겠다고 싸우지 말고. 공격 포인트는 골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순신의 말에 이만수, 오진성, 구멍, 막내는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자살골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을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자살골로 명성이 하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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