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8화 (19/161)

18화. 7:7 미니게임

툭툭.

이순신은 공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막아!”

윤광섭의 지휘로 3번 방 선수들은 순식간에 이순신을 에워쌌다.

‘속도 장난 아닌데?’

TV로만 축구를 보는 것, 라이브로 축구를 보는 것, 선수 관점에서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건 모두 같은 시간에 일어나지만, 체감속도가 다르다.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하지만 이순신에게 중요한 건 이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속도감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멈춰진 공간 속에서 달리는 오진성과 이만수가 보였다.

힐끗.

시선이 골대로 향했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3/3)]

[성공률 43%]

‘생각보다 성공률이 낮은데? 여기서 몰빵? 아니면…’

이순신이 재빨리 주변을 살피고 판단을 끝냈다.

뻥~!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이순신은 주저하지 않고 오진성에게 공을 넘겼다.

그대로 이만수에게 다이렉트로 연결하면 케빈 킴과 1:1 상황!

‘브라질 유학파 출신들이 감각은 있으니까.’

그의 센스를 믿었다.

굳게 믿었다.

‘아니. 이 미친놈이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순신이 당황했다.

오진성의 선택은 드리블이었다!

‘브라질 출신 새끼들은 이래서 안 돼.’

스페인 시절에도 브라질 출신의 유망주들이 있긴 했다.

개인기는 확실히 뛰어났다.

문제는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으나, 유망주 레벨에서는 뻔한 패턴이 결국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

거기에 오진성이 가진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리블은 수준급이지만, 문제는 속도.

벌써 수비수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전방으로 패스!”

[언성이 발동했습니다.]

[상대가 현재 주장 마크를 달고 있습니다.]

[명성이 비루합니다.]

[당신은 아직 팀의 에이스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대상자가 강력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어서 언성이 먹히지 않습니다.]

언성의 조건은 동료의 믿음이었다.

아직은 서로가 알아가는 단계라 팀워크보단 개인플레이 위주였다.

‘젠장. 이게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이었어?’

이순신이 스킬이 통하지 않자 당황했다.

오진성은 눈을 부릅뜨고 상대 수비수와 대치했다.

1:2 상황.

“패스하라고!”

전방에서 이만수도 짜증이 났는지 소리쳤다.

그사이 수비가 이만수에게도 붙었다!

“차라리 스로인이라도 유도하든가!”

이순신으로서는 그게 최선 같았다.

오진성의 선택은 이만수에게 패스하는 척하면서 돌파를 하는 것이다.

즉!

이만수를 미끼로 쓰고, 본인이 슛을 할 계획!

“오진성 선수! 브라질 유학파 출신답게 개인기가 정말 화려하네요! 말씀드리는 순간 슛!”

팡!

하지만 케빈 킴은 너무나 쉽게 오진성의 슛을 막았다.

“젠장!”

오진성이 아쉬운지 땅을 걷어찼다!

그의 세 번째 문제.

슈팅력의 부재다.

이순신이 역시 아쉬운 건 매한가지.

재빨리 되돌아가고 다음 기회를 엿봤다.

‘개판이네. 개판이야.’

3번 방의 반격이 시작됐다.

고상인과 윤광섭이 공을 돌리면서 기회를 엿봤다.

중앙에서는 구멍과 이순신이 단단하게 버티니 도무지 틈이 안 나왔다.

윤광섭의 선택은 측면 돌파였다!

“3번 방의 윤광섭 선수. 수적 우위를 이용해서 측면으로 돌파하고 있습니다!”

수비수가 1명이 부족하기에 이순신이 위치를 벗어나면 구멍 혼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크로스가 올라오더라도 커트하면 돼.’

예상대로 윤광섭은 크로스를 올렸다.

5번 방이 사람은 적지만, 신장에서는 우위를 점했다.

이순신이 족족 헤딩으로 걷어내서 전방에 있는 오진성과 이만수에게 공을 전달했다.

“이만수 선수! 슛! 막힙니다!”

“오진성 선수의 헤딩! 벗어나네요.”

“양 팀 다 골 결정력에 문제가 있네요.”

이주성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0:0으로 마무리됐다.

“골키퍼만 아니었어도 몇 골 넣었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인간적으로 케빈 너무 잘 막는 거 아냐? 저런 애가 왜 대표팀에 한 번도 못 뽑힌 거야.”

“혼혈이라서?”

“에이, 설마.”

어릴 적부터 촉망받던 케빈 킴은 한국 축구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기대를 모았다.

195Cm, 80Kg.

남다른 피지컬에 독일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의 장점만 모아서 외모도 실력도 뛰어났다.

늘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프로에서 처음 좌절을 맛봤다.

세 번째 골키퍼도 아닌 2군 골키퍼.

그 뒤로 그는 하염없이 나락의 길을 걸었다.

2부리그, 3부리그.

급기야 4부 리그까지 떨어졌다.

그곳에서도 주전이 아닌 후보로 활약을 하다가 김구름의 설득으로 이번 오디션에 참가했다.

그는 오진성이나 이만수의 슛을 막아보니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순신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후반에 나에게 슈팅 기회를 줘.”

“뭐?”

“우리 팀에서 골을 마무리해줄 선수가 필요해.”

오진성과 이만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릴 못 믿겠다는 거야? 저쪽은 안 그래도 1명이 많은데 1골 넣고 잠그기라도 하면 우린 질 수밖에 없어.”

오진성의 자존심이 좀 상한 듯했다.

“그건 가정법이고, 그 순두부 같은 슛으론 절대로 저 스트링 치즈 같은 놈을 뚫을 수 없어.”

“이 새끼가!”

오진성이 발끈했다.

“그만들 하시오. 소승이 뒤에서 지켜보니 확실히 우리 팀에 부족한 건 공격력이오. 그래도 한때 순신 시주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공격수니 기회를 줘보는 것이 어떻소?”

“그런 새끼가 왜 지금 수비수나 하고 있냐고?”

이만수가 격분했다.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한다.

그 임무를 못 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답답했다.

“무조건 때리겠다는 거 아니야. 그냥 공격 패턴에 변화를 좀 더 주자는 거지.”

이순신이 최대한 배려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우리 팀이 결국 이긴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오진성은 고민했다.

‘어차피 1명이 적어서 이기긴 힘들어. 다만 개인 평점으로 봤을 때 난 이미 여러 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고, 돌파도 기록했다. 순신이가 포지션을 벗어나서 수비수답지 않은 돌발 행동을 한다면…’

즉 평점이나 평가에서 자신은 이미 충분히 보여줄 만큼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삐이이익-

후반전이 시작됐다.

윤광섭의 치고 달리기로 3번 방의 공격이 시작됐다.

이순신이 가볍게 컷!

윤광섭의 공격은 단순했기에 이순신은 그 패턴을 전부 파악했다.

재빠르게 오진성에게 공을 넘겼다.

그러면서 서서히 라인을 끌어 올렸다.

이순신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구멍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인자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뜻대로.’

“5번 방이 공격을 시작하자 구멍 선수가 합장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뭐, 신앙심이 두터운 선수들이 가끔 저런 행동을 보이기도 하죠.”

안태리는 중동, 이탈리아, 터키 등지에서 활약할 때가 문득 떠올랐다.

이순신은 오진성에게 패스했다.

측면에서 공을 받은 오진성은 주변을 살폈다.

이만수는 이미 집중견제를 받고 있고, 막내 녀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드리블!

“막아!”

케빈 킴이 수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오진성은 드리블하는 척을 하면서 이순신에게 패스했다.

완벽한 프리 상태였다.

3번 방 수비수들은 당황했다.

오진성이 오지는 패스를 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나이스!”

이순신은 다이렉트로 슛을 때렸다.

슈우우우우웅!

이순신이 찬 공이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이 순간 가장 당황스러운 건 케빈 킴이었다.

간만에 차원이 다른 슛이 골대로 향해서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퍽!!

몸을 날려서 겨우 이순신의 슈팅을 손으로 쳐냈다.

‘뭐야. 쟤? K3에서도 이 정도 슈팅력은 본 적이 없어.’

K3라고 아마추어 리그가 아니었다.

프로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엄연히 ‘세미프로’ 최상위 리그다.

비록 승강제가 없어서 2부로 못 올라가지만, 엄연히 수당 받고 뛰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코너킥!]

오진성이 코너킥을 준비했다.

키가 큰 이만수는 페널티 라인에서 상대 수비수들과 고군분투 상태였다.

‘대가리에만 걸려라.’

오진성이 큰 기대를 안 하고 프리킥을 올렸다.

“흐아압!”

뭔가를 보여줄 시점에서 이만수가 헤딩했지만, 공이 안타깝게도 뒤로 빠졌다.

“나이스 패스.”

[성공률 100% 비격진천뢰가 발동합니다.]

그 순간 이순신이 달려가서 슛을 때렸다.

“바로 저게 이순신이지.”

경기를 지켜보던 김구름이 흐뭇하게 웃었다.

공이 궤적을 그리며 오른쪽 모서리에 박혔다.

삐이이익-

[1:0]

지루한 공방전으로 이어진 팽팽한 균형이 드디어 깨졌다.

첫 경기 첫 골 주인공의 이름은 이.순.신.

케빈 킴은 망연자실하게 골대에 들어갔다 나온 공을 바라보았다.

이순신이 어느새 달려와서 공을 집었다.

“감사.”

이순신이 공을 번쩍 들고 가져갔다.

케빈 킴은 화가 나기보단 두려웠다.

기껏 쌓고 있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저런 애들이 또 있을지도 몰라…’

축구는 기세 싸움이기도 했다.

동료의 신뢰를 얻은 이순신에게 좀 더 많은 공이 왔다.

“진성 패스!”

[언성이 발동합니다.]

오진성은 재빠르게 이순신에게 패스했다.

패스를 받은 이순신은 중거리 슛을 꽂았다.

탕!

이번에는 아쉽게도 빗나갔다.

공은 골대 앞에 서성이던 이만수 앞에 떨어졌다.

“앗. 골대에 흘러나온 골을 이만수 선수가 집어넣습니다!”

“만수 형. 최고!”

“순신아! 사랑해!”

이만수도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자 몸놀림이 가벼워졌다.

3번 방 선수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오진성을 막자. 쟤가 공격의 시발점이니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진성 막아!”

하지만 3번 방의 선수들이 오진성을 막는 것도 힘들었다.

전방에 있는 이만수를 막으면 후방에 있는 이순신에게 패스했다.

아예 패스를 못 하게 붙으면 드리블을 친 후 이만수에게 볼을 배급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근성의 고상인이 달려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덕분에 이순신이 뿌리는 롱패스는 프리 패스였다.

“하아, 하아.”

오진성은 이순신에게 리턴 패스했다.

고상인은 죽을힘을 다해서 이순신에게 돌진했지만, 이순신은 재빨리 오진성에게 공을 다시 줬다.

“5번 방 선수들이 패스 플레이를 하기 시작합니다. 오진성 선수. 역시 브라질 유학파라 그런지 경기장을 보는 시야가 넓어요. 오늘 벌써 3도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주성은 오진성에 대해 입이 마를 틈 없이 칭찬했다.

“진짜 플레이 메이커는 따로 있네요.”

“그게 누굽니까!?”

안태리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이순신을 쳐다봤다.

이갑용, 김구름도 마찬가지였다.

“말씀드리는 순간 이순신 선수가 또 슛을 날리네요! 들어갑니다!”

5 : 0 !!

첫 골과 첫 해트트릭의 주인공은 이순신이었다.

3골 2도움.

공격수가 낸 기록이 아닌 수비수가 낸 기록이었다!

삐이이이익-

“경기가 종료됐습니다! 5번 방이 수적 열세를 이겨내고 3번 방 선수를 이겨냈습니다.”

[평점 9점을 획득했습니다.]

[10점이 되면 장비 스킬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한 경기에서 중거리 슛을 10회 시도하여 천지현황포를 스킬을 개방했습니다.]

이순신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골을 넣는 건 즐거웠고, 무실점은 더더욱 즐거웠다.

그런데 방성찬의 플레이를 보자 기분이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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