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축구는 원래 그런 스포츠
10분 후.
축구선수들이 90분 경기에서 평균 뛰는 거리는 9~11Km.
두 사람은 거의 풀타임을 소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한민국 축구계의 앙팡 테리블 이순신.
불꽃 남자 남주작.
두 사람의 마지막 쿠퍼 테스트가 시작됐다.
둘 다 평소에도 열심히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다.
심지어 이순신은 자신의 상태를 봐가면서 뛸 수 있는 상태였다.
[세컨드 윈드(패시브)가 발동된 상태입니다.]
[세컨드 윈드(액티브)를 발동하시겠습니까?]
[세컨드 윈드 더블로 발동합니다!]
[남은 체력 : 50%]
‘세컨드 윈드 더블? 막 설마 날아다니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페이스가 삐끗할 정도로 궁금했다.
‘혹시 체험판 같은 건 없나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함에 충무공이 감탄했습니다.]
[세컨드 윈드 더블을 체험하시겠습니까? (효과는 실시간으로 적용됩니다.)]
‘와우. 감사합니다!’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주변에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순간 주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숨쉬기도 편해졌다.
발을 딛는 소리.
흐으읍. 코로 들이마시는 들숨의 소리.
후우우. 입으로 내뱉는 날숨의 소리.
몸을 스치는 바람 커튼이 스르르 감겼다.
이순신은 웃었다.
마치 아침 해변을 달리듯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탈락 면제권은 자신의 것이라고 굳게 생각한 그때!
“하아. 하아.”
눈앞에서 남주작이 괴롭게 달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거 같은 표정.
새빨갛게 달아오른 몸에서 빠르게 흐르는 땀들이 너무나 잘 보였다.
이순신은 1등 상품을 떠올렸다.
‘탈락 면제권과 남주작 은퇴… 이 테스트에서 2등 했다고 은퇴하는 건 정신력 문제 아닌가?’
그 순간 매우 빠르게 주마등이 스쳤다.
이순신이 아닌 남주작의 미래.
그걸 본 이순신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포기하겠습니다…”
이순신이 손을 들고 외치자 지켜보는 이들이 깜짝 놀랐다.
“미친 거 아냐? 잘 달리다가 왜?”
남주작은 운동장에 대(大)자로 뻗었다.
“하아, 하아.”
남주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순신이 안타깝게 바라봤다.
‘계속 달렸다면… 남주작은 심장이 터졌다. 탈락 면제권은 받았겠지만, 선수로서는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이 손을 뻗었다.
“괜찮냐?”
“하아. 하아.”
남주작은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1등을 한 남주작 선수에게는 탈락 면제권이 부여된다.”
탈락 면제권이란 말에 선수들은 놀랐다.
“와씨- 목숨을 걸고 뛰었어야 했네.”
“이순신은 탈락 면제권이라는 거 알았으면 끝까지 달리지 않았을까? 남주작 꼴을 보아 하니까 금방 지쳤을 텐데.”
“근성 없네. 크크.”
이순신이 알면서도 포기했다는 걸 그들은 꿈에라도 모를 것이다.
“왜 포기했나?”
안태리가 물었다.
“경기도 중요하지만, 동료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뛸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으면 자칫 오만하게 보일 거 같았다.
“이순신 선수. 그렇게 나약한 마음으로는 이곳은커녕 험난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주성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이주성MC의 말이 옳다. 상대편 선수가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면 어떻게 할래?”
이순신은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경기를 잠시 멈추겠습니다. 축구는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하지만, 저에겐 사람 목숨이 더 소중합니다.”
이순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허허…”
이주성은 안타까운지 혀를 끌끌 찼다.
“이순신 선수는 스포츠맨십을 잘 알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승부도 중요하지만, 동료에 대한 존중, 상대편에 대한 존중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니, 이 형은 맨날 나만 악역을 만들어…’
이주성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남주작 선수의 근성, 이순신 선수의 스포츠맨십에 박수를 보내줍시다.”
짝짝짝.
선수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컨드 찬스는 절박한 여러분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야 할 기회가 아니라 선의의 경쟁이 기본임을 전제로 진행해야 합니다. 선수이기 전에 인간이 먼저 될 것. 그래야 팬들이 여러분을 존중해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쿠퍼 테스트가 종료됐다.
이순신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충무공의 동료를 생각하는 당신의 선택에 흡족해합니다.]
[보상 : 장비 칸 해제]
뜻밖의 선물에 이순신은 기분이 좋았다.
***
며칠이 지났다.
처음에 강도 높은 체력 훈련도 다들 익숙해졌다.
고기와 채소가 가득한 영양가 높은 식단이 제공됐다.
어지간한 프로팀 식단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순신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아직도 안태리가 말한 ‘팬’이란 단어에 가슴이 뭉클했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 그것은 확실히 벌 받을 짓이지.’
그는 재기에 성공하면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워서 밥이 안 넘어가냐?”
안태리가 상자를 들고 와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이거나 받아라.”
안태리가 이순신에게 상자를 넘겨줬다.
5번 방 선수들이 이순신 근처로 모였다.
“아. 맞다! 축구화! 구경이나 좀 해보자.”
“참 좋은 물건 같소. 나무아미타불.”
구멍은 불심 대신 물심을 드러냈다.
혹시라도 이순신이 남주작에게 탈락 면제권을 양보해준 것처럼, 자신에게 축구화를 양보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은근히 떠봤다.
턱도 없었다!
5번 방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무려 캥거루 가죽으로 만든 나이킹의 최고급 붉은색 축구화였다.
“미친. 색깔 봐.”
“영롱하다. 영롱해.”
“순신아. 얼른 신어 봐!”
메시가 비싼 축구화를 신었다고 해서 드리블을 잘 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삼선 슬리퍼를 신어도 어지간한 동네 선수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를 이길 수 있을까?
때론 장비의 차이가 결과를 가르기도 한다.
예전에 북한은 월드컵에서 브라질한테 근성으로 맞섰지만, 아깝게 졌다.
큰 기대를 하고 이어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대량실점을 했다.
아오지 탄광의 무서움도, 근성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게 축구화의 차이였다.
당시 북한팀이 수중전용 축구화만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대패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는 결국 장비빨이 승패를 가른다.
더군다나 이순신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장비 칸이 해제되었습니다.]
[나이킹 축구화]
[내구성 40/40 경기]
[축구화 착용 시 필드에서 슈팅력, 태클 증가]
[사용자의 발에 딱 맞춰지진 않았지만, 뛰어난 착용감, 수비수 포지션에 특화된 축구화입니다. 향후 평점 포인트 상점으로 장비 관련 옵션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와, 생각보다 엄청나잖아?’
이순신은 감탄했다.
아직 해제되지 않은 장비 칸은 5개나 더 있었고, 해제 조건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았다.
“나도 한 번 신어 봐도 되겠소?”
구멍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이순신은 축구화를 벗어서 구멍에게 건넸다.
순신과 구멍의 키는 20Cm 정도 차이가 나지만, 신발 크기는 똑같았다.
[장비 칸이 해제되지 않은 선수가 착용하여, 장비 효과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같은 장비라도 사용자에 따라서 효과가 다를 수 있구나.’
이순신은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다.
***
선수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너희는 이제 겨우 경기를 뛸만한 체력을 다졌다. 이제 미니 테스트를 통해서 최종 멤버를 선택할 것이다. 2차 테스트는 7:7 대결이다!”
7:7이란 말에 선수들은 웅성거렸다.
이순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골키퍼들로 이루어진 방은 6명 그대로였다.
이순신의 5번 방은 5명, 어떤 방은 6명.
심지어 4명인 방도 있었다.
즉, 인원수가 제각각인 상황!
“그럼 첫 번째 경기인 3번 방과 5번 방의 경기를 잠시 후에 시작합니다.”
5번 방과 3번 방 선수들이 운동장에 섰다.
5번 방은 골키퍼를 포함해서 6명, 3번 방은 골키퍼를 포함해서 7명이었다.
“우리 팀은 아예 1명 없이 시작하는 거 실화냐?”
“애초에 너무 불리한데?”
“심지어 저기 골키퍼 좀 봐. 용병이다.”
3번 방의 주요 구성원은 쿠퍼 테스트에 가까스로 합류한 고상인, 윤광섭, 케빈 킴이 포진했다.
“그럼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삐이이익-
전후반 20분씩.
이만수와 오성진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섣불리 공격을 들어가진 못했다.
5번 방은 수비가 이순신과 구멍 둘뿐이었다.
혹시 모를 역습에 대비하여 상대의 수비수를 좀 끌어 올릴 요량이었다.
경기가 약간 지루한 양상으로 갈 거 같아 보이자 이주성이 2차 선발전에 관한 규칙을 소개했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주성의 말에 선수들의 시선은 설치된 화면으로 향했다.
“일주일 동안 9개의 방은 총 6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즉 모든 골키퍼와 한 번씩은 팀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6경기를 치른 후 세컨드 찬스 최종 멤버가 선정될 것입니다!”
불안한 팀원들의 얼굴을 보다 못한 이순신이 외쳤다.
“수비는 내가 할 테니 가서 때려 박아!”
7:7 대결의 경기장 크기는 하프라인의 반 정도 크기였다.
즉 동네 스리가보다도 작은 크기라서 이순신이 수비를 해야 할 반경이 그만큼 적었다.
이만수나 오성진도 공격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볼이나 돌리는 건 너무나 답답했다.
“간다!”
결국, 오성진이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브라질 유망주 시절의 화려함이 아직 죽지 않았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3번 방 선수들의 수비를 무력화시키고 슛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골키퍼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케빈 킴을 뚫진 못했다.
“뛰어!”
케빈 킴의 긴 스로인으로 공은 순식간에 아이돌 출신이었던 윤광섭에게 전달됐다.
구멍이 접근했지만, 빠르게 제치고 어느새 이순신과 1:1 상황이 됐다.
“아! 수비가 1명이 부족하니까 바로 뚫리네요! 5번 방 위기입니다!”
“괜찮습니다. 축구는 원래 그런 스포츠입니다.”
“선수들 사이에는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적어도 인원수는 맞춰주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저희는 분명히 방마다 6명씩 포지션별로 맞췄습니다. 몇몇 선수의 포기로 일정 전부를 바꿀 순 없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축구는 1~2명 퇴장당하면 불리해지긴 해도 이기지 못하는 스포츠는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축구는 더 재밌어집니다.”
억지스럽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6명으로 이루어진 골키퍼 방을 제외하고는 6명이 온전하게 있는 방은 2번 방, 3번 방, 6번 방뿐이었다.
최국성이 속해 있는 7번 방과 쿠퍼테스트를 3등으로 통과한 방성찬이 속한 9번 방은 심지어 4명이었다.
5명이 뛰는 5번 방은 그나마 준수한 편이었다.
“말씀드리는 순간 3번 방 공격수가 공격을 도와주러 오고 있습니다!”
공격 둘에 수비는 1명인 상황!
윤광섭이 힐끗 보며 뒤꿈치로 패스를 했다.
“원래 5번 방에 권병태 선수가 있어야 했는데 첫날에 탈락했어요! 고교 시절 꽤 유망한 수비수라고 들었는데 탈락만 안 했어도 쉽게 수비해줬을 텐데 이렇게 첫 실점을 허용하나요…”
툭!
하지만 이순신의 발 안쪽에 걸렸다.
[배수의 진 스킬이 발동하여 팀원의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팀원 부족한 상황이라 본인의 능력치가 10% 추가 상승합니다.]
평소였으면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다.
1명이 적다는 부담감은 이순신의 집중력을 평소보다 끌어올렸다.
“순신 시주. 어딜 가시오!”
“골 넣으러.”
이순신은 빈 곳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