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6화 (17/161)

16화. 쿠퍼 테스트

삐이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이순신이 빠르게 치고 나갔다!

타타타닥!

‘뭐가 이렇게 빨라?’

지켜보는 이들이 깜짝 놀랐다.

다른 선수들이 100M를 20초에 뛸 때, 이순신은 100M 18초에 들어왔다.

스포츠에서는 1~2초가 굉장히 중요하다.

2초의 차이는 1000M가 됐을 때 300~400M의 차이를 만들었다.

‘축구화에 눈이 돌아갔나? 저래서는 금방 퍼질 텐데…’

몇몇 선수들은 이순신을 아니꼽게 봤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으아. X발. 나무아미타불!”

놀랍게도 염불과 욕을 동시에 읊고 있는 구멍이 2등으로 바짝 뒤쫓았다.

산에 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효과를 톡톡히 봤다.

6분 후.

이순신이 1800M를 통과할 때 메시지가 발생했다.

[체력이 약 40% 정도 남았습니다]

[세컨드 윈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이순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면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듯.’

무엇보다 테스트 첫날이 아니던가?

기껏 잘 뛰고 며칠 동안 퍼져있으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일이니까.

10분쯤 지났을 무렵 이순신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하아. 이거 숨 좀 차네.’

힐끗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 김혁규, 오성진, 구멍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순신을 페이스메이커 삼아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질 수 없지.’

그 순간,

[세컨드 윈드(패시브)가 발동했습니다.]

[체력 소모량이 줄어듭니다.]

[남은 체력 : 30%]

‘뭐야?’

사용하지도 않은 스킬이 발동해서 이순신은 당황스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순신이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보는 이들이 깜짝 놀랐다.

“뭐야? 아직도 체력이 남아있어?”

체력만큼은 자신 있는 순신이었다!

삐이이익-

“종료.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세요!”

“하아, 하아.”

이순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은 체력 : 20%]

코치들은 선수들의 기록을 측정했다.

“이순신 3500M, 구멍 3230M, 오성진 3210M, 이만수 3150M, 김혁규 3230M…”

3조에서는 한 번에 무려 4명의 합격자가 나왔다.

이만수는 50M 차이로 10분 후 3200M를 더 뛰어야 했다.

“50M 차이인데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만수가 애원했다.

“응. 안 돼.”

“너무 하세요!”

“나중에 경기에서도 그럴래? 1분만 더 있었으면 골을 넣었을 터라며 아쉬워하려고? 너 포지션이 공격수였지? 한 발자국 더 뛰느냐, 못 뛰느냐가 골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와 없느냐의 차이야.”

안태리 감독한테 묵직한 한 방을 얻어맞은 이만수는 더는 토 달지 않았다.

“하아, 하아. 이 자식.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덕분에 나도 들어왔다.”

김혁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순신의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순신은 대꾸가 없었다.

“야. 너 괜찮아?”

“응? 아, 어.”

이순신은 의도와 상관없이 발동한 스킬 덕분에 깜짝 놀랐다.

최국성이 속한 4조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순신은 왜 스킬이 발동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충무공.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충무공이 씨익 웃습니다.]

[카이저 코치가 설명을 시작합니다.]

[세컨드 윈드(패시브)는 임의로 발동할 수 없으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따라서 페널티가 없습니다. 또한, 세컨드 윈드(패시브)는 체력을 매우 느리게 소모합니다.]

‘임의로 발동할 수 없다? 페널티가 없다?’

이순신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질문했다.

[혹시 상태표시?]

[충무공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제야 이순신의 얼굴에 화색이 돋았다.

하지만 이 능력이 언제 생겼는지 의문이었다.

‘딱히 스킬이 생길만한 미션을 하진 않았는데…’

그때 불현듯 합숙소에 입소할 때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놀리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그럼 상태표시가 보상으로 주어진 건가?’

[축구는 눈치가 중요하다고 카이저 코치가 일깨워줍니다.]

이순신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 ‘상태표시’ 스킬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태표시 : 선수의 남아있는 체력, 기분 상태, 부상 여부, 몸 상태 등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체력도 표시되던데, 기분과 부상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으면 페이스 조절하기가 한층 더 쉽겠군.’

[카이저 코치가 훈련하기에도 쉽다고 알려줍니다.]

이순신이 뜨끔했다.

‘운동할 때 힘이 드는 게 몸인지 마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잖아…’

“우아아아아아!”

그가 새로운 스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쿠퍼 테스트를 지켜보던 선수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졌다.

“순신아. 네 기록 깨졌다.”

이순신이 고개를 돌렸다.

‘내 장비 칸! 어떤 놈이 앞길을 막았는지 얼굴을 똑똑히 기억해둬야겠네!’

“쿠퍼 테스트 1등 남주작 3800M!”

조작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결과였다!

그 뒤 다른 조들의 테스트가 진행되었어도 남주작의 기록은 깨지지 않았다.

“남주작 선수. 현역 선수들과 버금가는 체력을 가지고 계시는데 혹시 비결이 있나요?”

“집에서 놀기는 뭐하고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마라톤 동호회 가서 뛰었습니다.”

남주작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남주작 선수의 열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마치 불꽃 남자 그 자체를 보는 거 같습니다.”

붉은 머리 덕분에 남주작의 캐릭터는 확실히 잡혔다.

추후 방송될 편집본에서는 불꽃 남자, 붉은매로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게 잡았다.

이순신의 최종기록은 4위로 1차 쿠퍼테스트가 끝났다.

***

“아이고. 근육통이야.”

“미치겠네.”

테스트가 끝나고 스트레칭을 하긴 했다.

평소보다 운동량이 과했거나, 오랜만에 운동한 선수들은 근육통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다들 관심사는 오늘 있을 쿠퍼 테스트 결선이었다.

“응? 쟤는 뭐야?”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 쿠퍼 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고상인? 쟤는 어제 못 들어와서 탈락일 텐데?”

“지금 안 감독님이 특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네?”

패자부활전은 없다고 말한 안태리가 특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말에 다들 놀랐다.

고상인의 얼굴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오케이. 여기까지. 몇 미터 뛰었는지 체크~”

안태리가 팔짱을 낀 채 자리를 떴다.

“안 감독님. 고상인 선수에게 기회를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주성이 물었다.

“다른 선수들은 다 돌아갔는데 저 선수만 밤새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근성을 높이 샀습니다.”

“결과는 3201M입니다!”

“세상에. 고상인 선수가 3200M를 넘었습니다. 설마 오늘 결선에 진출시키실 건 아니죠?”

안태리가 걸음을 멈추고 대답했다.

“아니요? 고상인 선수도 이따 결선에 참여합니다. 밤새고 3200M 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충분히 세컨드 찬스에 참여할 기회가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54명에서 55명으로 경쟁자가 한 명 늘어나니 선수들의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뭐해? 훈련 안 해?”

안태리가 호통치자 선수들은 운동장으로 나왔다.

고상인이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다른 선수들은 여러 가지 체력 훈련을 했다.

“김혁규. 똑바로 안 해? 지금 탈락시켜줄까?”

요령을 피우던 김혁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후 시간.

드디어 쿠퍼 테스트 결선이 시작됐다.

안태리가 높은 곳에서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자! 결선 규칙을 설명하겠다.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12분 동안 3200M를 뛴다. 1R는 4명, 2R는 3명이 떨어진다. 상위 2명 중에서 순위를 정하는데 1등한테는 상품이 있는 게 좋겠지?”

1등 상품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눈이 번쩍였다.

“1등 상품은 비밀이다!”

“아―”

선수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안태리는 방송 출연으로 다져진 진행실력으로 선수들을 무자비하게 농락했다.

“결승에 오르면 죽기 살기로 뛰십시오. 그 정도로 엄청난 상품입니다!”

이주성이 씨익 웃었다.

“자. 예선전 순위대로 서도록!”

안태리의 외침에 선수들이 레인에 섰다.

1번 불꽃 남자 남주작.

2번 이순신이 첫날 본 군복남 방성찬.

3번 혼혈 골키퍼 케빈 킴.

4번 이순신.

5번 오성진.

6번 구멍.

7번 김혁규.

8번 윤광섭.

9번은 마지막으로 통과한 고상인이 섰다.

“준비!”

삐이이익-

호루라기가 울리자 선수들이 뛰었다.

“안 감독님. 어제 1등으로 통과한 남주작 선수가 부담감 때문인지 앞으로 못 치고 나가고 있어요. 고상인 선수도 회복이 다 안 된 거 같고요. 저러다 큰일이 나는 거 아닐까요?”

“누가 빨리 세컨드 윈드에 도달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세컨드 윈드요?”

안태리가 세컨드 윈드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남주작 선수가 점점 올라오고 있어요! 이순신 선수도 표정이 달라졌는데요? 이게 안 감독님이 말한 세컨드 윈드군요!”

[세컨드 윈드(패시브)가 발동했습니다.]

[체력이 70% 남았습니다.]

이순신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페이스를 조절했다.

삐이익-

첫 번째 라운드가 끝났다.

윤광섭, 케빈 킴, 고상인, 김혁규가 탈락했다.

[체력이 20% 남았습니다.]

“하아. 하아.”

이순신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털썩.

아침부터 무리한 고상인은 결국 드러누웠다.

안 감독은 고상인을 일으켰다.

“잘 뛰었다. 너희들도 그라운드에서 이렇게 해라. 어차피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휘슬이 울릴 때까지 계속 뛰란 말이야. 알겠냐?”

이주성은 그제야 안태리의 안목에 감탄했다.

선수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재료가 있을까?

반면 케빈 킴은 골키퍼치고는 잘 달렸다고 자부해서 탈락해도 꽤 밝은 표정이었다.

“10분 후에 2R를 시작한다.”

“아니. 안 감독님. 10분은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이게 진짜 쿠퍼테스트의 목적이 이겁니다. 뛸 때 뛰고, 회복할 때 빠르게 회복하고.”

안태리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순신아, 내 몫까지 부탁한다…”

김혁규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알았어.”

[동료의 몫이 추가되었습니다.]

[체력을 10% 회복합니다.]

김혁규 덕분에 이순신은 약간의 버프를 받았다.

‘체력 회복 관련 스킬이 있나?’

이순신은 자신이 가진 스킬을 살펴보았다.

딱히 쓸만한 능력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스킬에만 의존할 순 없지.’

이순신은 마음을 굳게 먹고, 2R에 임했다.

“으아아아악!”

구멍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머리가 새빨개지도록 때리면서 달렸지만, 탈락을 면할 순 없었다.

오성진도 체력의 한계에 도달했다.

강인한 군인 같은 인상을 풍긴 방성찬은 3위를 확정 짓자 페이스를 조절했다.

‘어차피 축구화는 확보했고, 여기서 힘을 다 쏟을 필요는 없지.’

그 모습을 본 이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성찬 선수가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저러면 안 될 텐데요…”

이주성이 안태리의 눈치를 봤다.

농땡이를 피는 걸 싫어하는 안태리의 성격상 욕이 나올 듯했는데 의외로 칭찬했다.

“축구선수가 90분 내내 뛰어다닐 필요는 없죠. 방성찬 선수는 그걸 잘 알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주성은 방성찬의 스펙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 남은 건 이순신과 남주작의 순위 결정전만 남았다.

‘1등 상품이 뭘까…’

장비 칸이 날아간 시점에서 1등 상품이라도 획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고민을 충무공이 해결해줬다.

[쿠퍼테스트 1등 탈락 면제권 / 남주작 탈락]

[쿠퍼테스트 2등 안태리의 독설/ 남주작 생존]

‘이건 누가 봐도 1등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이순신은 2등을 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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