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보상 : 장비 칸 해제
“이런 법이 어딨어요! 들여보내 주세요!”
애절한 외침에도 안태리는 무자비하게 뒤돌아섰다.
“반갑습니다. 세컨드 찬스에 참여해주신 선수 여러분. 저는 진행을 맡게 될 이주성이라고 합니다.”
이주성이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삭막한 분위기를 깨고자 노력했다.
[…]
선수들의 반응은 매우 어색했다.
‘아. 태리 형. 진짜…’
이주성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때, 안태리가 선수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자연스럽게 태리의 기적이 벌어졌다.
“반갑다. 난 앞으로 여러분들과 3개월간 동고동락할 안태리 감독이다.”
안태리가 선수들을 또렷이 보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인터넷 쳐보면 알 것이고, 이쪽은 여러분의 성장을 도와줄 김구름 코치님, 이갑용 코치님이시다. 박수.”
짝짝짝.
선수들 사이에서 박수가 조금 들렸다.
“난 여러분들이 다시 선수로 재기할 것을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거니까 우리를 마음껏 써먹어라. 알겠냐?”
“네!”
이순신이 대답하자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다른 녀석들은 대답 안 해? 대가리 박고 시작할까? 놀러 왔어?”
안태리가 펙트라는 미사일을 폭격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축구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던 상황.
그러던 차에 내려온 동아줄.
문밖에 있던 녀석들처럼 멍청하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네!”
그제야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좋다. 숙소는 여기 배정된 곳으로 가면 되고, 짐 풀고, 1시간 후에 운동장으로 집합. 이상.”
“넵!”
제작진은 선수들에게 숙소와 향후 일정이 적힌 종이를 나눠줬다.
이순신은 꼼꼼히 살펴봤다.
‘첫 장에는 방 위치…’
6인 1조가 한 팀이었으며 총 10개의 방으로 나뉘었다.
60명의 인원 중 골키퍼가 6명, 수비수가 17명, 미드필더가 17명, 공격수가 20명.
이순신은 그중에서 수비수로 분류가 됐다.
“휴- 다행이다.”
행여나 저번처럼 공격수로 분류되면 스킬이 발동되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순신아. 넌 어디냐?”
“난 5번 방, 넌?”
“난 6번 방. 국성이 형은 7번이던데 다 찢어졌네.”
“그래. 나중에 보자.”
이순신은 정해진 숙소로 들어갔다.
어색한 분위기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곁눈질을 하며 탐색했다.
‘쟤는 아까 혁규가 말했던 오진성? 승려복을 입은 애랑, 까만 애도 있네?’
짐을 내려놓고 이순신이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스포츠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삭막한 분위기가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침묵.
승려복을 입은 선수는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아미타불. 반갑습니다. 시주님.”
“아, 네. 성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이순신은 자기도 모르게 높임말을 썼다.
“속세의 이름은 박영주. 나이는 21살. 출가 명은 들어가는 길을 막는다는 뜻으로 구멍이라 합니다. 편한 대로 부르십시오.”
“푸하하.”
5번 방 선수들은 구멍의 자기소개 덕분에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짐을 얼추 푼 선수들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이름은 오진성. 나이는 21살. 포지션은 공미를 선호합니다.”
짧고 굵은 자기소개였다.
“이름은 이만수. 나이는 24살. 포지션은 공격수랑 윙을 선호하고, 보시다시피 혼혈입니다. 어릴 땐 16세 대표로 뽑혔던 경력이 있습니다.”
“대표팀? 못 봤는데?”
“필리핀 대표팀.”
“아…”
이만수는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혼혈이었다.
좀 더 큰 시장에서 축구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이순신. 유명인이지?”
오진성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담겼다.
“철없을 때 이야기지. 이제는 안 그래.”
이순신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외에 한 명은 20살의 어린 선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했고, 현재는 대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선수였다.
5번 방은 존칭은 해주되 말은 놓기로 합의했다.
쓸데없는 존댓말은 경기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이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인이었던 이순신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거 면접도 아니고…’
이순신은 최대한 성심성의껏 질문에 대답했다.
축구는 소통이 중요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서로를 알고 있는 건 꽤 중요했다.
“와, 그러면 여기서 군대 문제 해결한 건 순신이뿐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부럽다…”
“나무아미타불…”
5반에서 군 문제가 해결된 사람은 이순신밖에 없었다.
이만수도 법이 바뀌어서 예전이라면 면제였지만, 지금은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다면 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구멍아. 너는 어쩌다가 스님이 된 거냐?”
“슬픈 사연이 있지요…”
구멍은 존댓말이 이제 더 편한지 유일하게 말을 놓지 않았다.
“소승의 팀은 해체 위기였소.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만 하는 상황인데 그만 상대편 공격수를 놓치는 바람에 팀이 해체됐지요.”
“아…”
담담한 구멍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그 공격수가 저기 오 시주님이시죠.”
“응?”
오진성은 전혀 기억을 못 했다.
“난 여기서 처음 보는데?”
“오 시주님은 우리 팀을 상대로 3득점 3어시스트를 하고 브라질로 날아가셨으니까요. 아미타불.”
“미안하다…”
오진성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일단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부처님의 가르침도 받게 되었으니 소승은 상관없습니다.”
굉장히 상관이 있는 말투였다.
“그런데 포지션이 좀 고르게 분포되어있는데 골키퍼만 없네? 그리고 방 배정 인원은 6명이라고 들었는데 왜 1명은 아직 안 오지?”
이순신이 질문을 던졌을 때,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선수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모여주십시오.”
5번 방 선수들은 운동장으로 나갔다.
“이거 받으세요.”
숫자 5라고 적힌 조끼를 받았다.
방별로 나눠줬다.
다들 나눠 준 조끼를 입자 안태리가 입을 열었다.
“약 3천 명의 지원자 중에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60명이다. 그중에서 6명은 아까 탈락했고, 이제 남은 인원은 54명이다. 이 중에서 우린 21명을 선발할 거다.”
탈락이라는 말에 선수들은 동요됐다.
“미리 말하지만, 패자부활전 같은 건 없다. 포지션별로 정해진 자리는 한정되어 있으니 자신의 포지션에서 1~2등을 하던가 혹은 자신이 멀티플레이어임을 증명해라. 질문 있는 사람?”
“포지션별로 몇 명을 뽑습니까?”
군복을 입었던 녀석이 질문했다.
“너 안내문 다 안 읽어봤냐? 마지막 장에 나와 있었어. 이 새끼야. 다음 질문?”
누구 하나 손을 들지 않았다.
시작부터 욕먹고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아. 앞으로 2주간 체력테스트와 연습경기를 통해서 최종 참가자명단을 선발할 테니 최선을 다하도록!”
드디어 세컨드 찬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최종 선수 선발 과정은 총 2주에 걸쳐서 진행됐다.
첫 주에는 체력 훈련, 둘째 주는 6:6 미니게임으로 선수를 최종 선발하는 일정이었다.
즉, 이들에게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2주였고, 오늘이 그 첫 번째 날이었다.
“하나, 둘, 셋, 넷!”
선수들은 줄을 맞춰서 가볍게 동적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선수들이 어느 정도 몸이 풀렸다 싶었는지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그 순간 안태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이고, 삭신이야.”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뚝. 뚝.
오랜만에 안 쓰던 관절을 썼는지 뼈 소리가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들렸다.
“이 자식들 평소에 운동하긴 한 건가? 몸 상태들이 다들 왜 이래?”
반면, 이순신의 표정에는 흥분과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 정도쯤이야 뭐.”
심폐 지구력은 평소에 얼마나 꾸준히 했느냐가 관건인데, 비교적 운동에 집중할 환경과 시간이 충분했기에 힘들지 않았다.
오진성도 만만치 않았다.
생계를 위해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력과 심폐 지구력을 단련한 덕분이었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웜업을 하니 다들 어느 정도 몸에 열이 올라왔다.
“그럼 오늘은 가볍게 좀 뛰어보자.”
가볍게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안태리는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2반씩 쿠퍼테스트 준비!”
쿠퍼 테스트.
이순신이 평소에서 하던 셔틀런보다 조금은 진화된 형태의 왕복달리기였다.
원래는 심판들의 체력측정을 위해서 쓰였던 것인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선수들의 체력 증진에도 쓰였다.
“이번 쿠퍼 테스트에서 3등 이내에 든 선수는 나이킹에서 후원해준 축구화가 지급되니 선수분들은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이주성의 말에 선수들은 웅성웅성했다.
최신 축구화란 말에 선수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대부분의 선수가 축구화를 교체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돈이 아까워서 그냥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세컨드 찬스 프로젝트는 단순히 입단 테스트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TV쇼였다.
그렇기에 많은 PPL이 준비된 상태였다.
“규칙은 간단하다. 1R 12분 동안 3200m 이상을 뛰면 1차 예선 통과다. 통과한 선수들은 내일 최후의 3명이 나올 때까지 계속 뛸 거야. 다 알았지?”
“네!”
선수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대략 400M를 1분 30초 이내에 뛰면 된다는 소리였다.
점점 빨라지는 셔틀런과는 달리, 쿠퍼테스트는 일정한 속도와 빠른 리턴이 중요했다.
“대충? 100M를 20초에 뛰면 되는 거 아냐? 쉬운데?”
쿠퍼 테스트를 안 해본 선수들의 일반적인 반응은 이랬다.
“준비,”
“시작!”
1조 선수들이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다.
잠시 후.
어느덧 12분이 지났다.
“1조 전원 탈락. 10분 후에 저기 옆에서 3200m마저 채워.”
연습을 지켜보던 선수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난 아닌데?”
“뒤 조 애들 몸 풀어두는 게 좋을걸? 몸이 식으면 나중에 폐 뒤집힌다.”
안태리가 친절하게 꿀팁을 알려줬다.
뒤 조에 배정된 선수들은 부랴부랴 몸을 풀기 시작했다.
2조의 체력테스트도 시작됐다.
3, 4반에서 단 한 명.
유독 외모가 출중했던 윤광섭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통과했다.
“여러분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돌 출신의 윤광섭 선수가 첫 번째로 3200M 쿠퍼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그는 축구선수 출신이었지만, 아이돌로 데뷔를 했고, 시즌 1에도 출연했던 경력을 가졌다.
하지만 시즌 1에서는 뽑히지 못했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피디가 축구선수 출신이었던 걸 기억하고 시즌2 제안을 했다.
“윤광섭 선수.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숨을… 못… 쉬겠어요…”
의무반이 투입되어 윤광섭이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 조가 좀 기대되네?”
“쟤 오진성 아냐?”
“이순신이다!”
“저 깜댕이는 뭐지?”
“대머리 뭐야. 하하.”
외모적으로나 이슈적으로나 5번 방에는 꽤 재밌는 선수들이 모였다.
“이순신. 결승에서 보자.”
“응.”
김혁규도 의지를 드러냈다.
이순신이 심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 메시지창이 떴다.
[1등으로 쿠퍼테스트 예선을 통과하십시오.]
[보상 : 장비 칸 해제]
‘장비 칸? 뭐지? 이러면 적당히 할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