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 넣는 수비수-14화 (15/161)

14화. 새로운 동료들

안태리는 유심히 이순신의 경기 영상을 살펴보았다.

중학교 축구대회 결승전 영상.

“또래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피지컬로 상대 팀의 수비수를 압살하네.”

이주성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저 나이 때는 뭐…….”

이갑용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선수와 일반인의 온도 차가 약간 있을 무렵.

피디는 두 번째 영상을 틀었다.

두 번째 동영상은 20세 이하 월드컵.

16살이지만 득점왕에 오른 이순신의 모습을 보며 다들 흥미를 보였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피파에서 주관한 대회 중 남자축구에서는 전무후무한 득점왕이었다.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었네.”

“그러게 말이야. 괜히 귀화한다고 깝죽거리지만 않았어도……”

안태리는 깍지 낀 손을 풀지 않았다.

“피디님. 혹시 스페인 시절 영상 있어요?”

“으음. 아쉽게도 그건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구름 형이 준 최신 경기 영상 좀 다시 보죠.”

피디는 사전에 김구름한테 입수한 영상을 틀었다.

“와. 구름 형이 동네에서 두 골이나 먹혔어? 어쩐지 요즘 살이 많이 쪘더라니…”

김구름이 발끈했다.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이 턱수염 뚱땡아.”

안태리는 프랑스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아름다운 외모로 베르사유의 장미라 불렸다.

특히 팬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는 그의 캐릭터를 한층 더 강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턱수염을 기르고, 잭 블랙처럼 배가 나온 아저씨로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았다.

“와! 이거 짜고 한 거 아냐?”

안태리가 드디어 깍지 낀 손을 풀고 몸을 앞으로 디밀었다.

시작하자마자 이순신이 비격진천뢰를 날리는 걸 보고 감탄이 터졌다.

“미쳤네. 구름 형. 저 때 너무 앞으로 나온 거 아냐?”

“노안 때문에 경기가 잘 안 보여서 좀 앞으로 나왔지……”

“동네 축구라 운동장이 작아도 그렇지, 중앙선에서 슛을? 저거 설마 노린 거 아니겠지?”

안태리가 영상을 다시 뒤로 돌렸다.

“음. 노린 게 맞는 거 같아. 최국성만 골대로 뛰어가고 있잖아? 약속된 플레이가 아니라면 저렇게 달려갈 이유가 없지.”

“그런데 포지션이 공격수가 아니네?”

수비담당인 이갑용이 유심히 살펴봤다.

“스페인에서 수비수로 전향했나? 아직은 좀 투박하긴 해도 기본기도 탄탄하고, 지휘도 잘하네. 사실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몇 골 더 먹혔겠는걸?”

마지막 이순신의 프리킥 골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됐다.

“그런데 경기기록은 1골 1도움? 얘를 수비수로 봐야 하나, 공격수로 봐야 하나……. 아까 수트라이커라고 말한 거 이제야 이해가 되네.”

안태리가 던진 질문에 다들 곰곰이 생각했다.

“으음. 그건 좀 고민스럽네. 굳이 따지면 리베로인데 내가 원하는 유형의 수비수는 아니라서……”

이갑용은 좀 더 수비적인 역할에 충실한 선수를 원했다.

반면, 김구름은 팀을 지휘하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아직 평가하지 않은 안태리의 입에 시선이 집중됐다.

“내가 원하는 유형의 공격수도 아니야. 그동안은 팀이 개인에게 맞춰줬지만, 난 개인을 위한 팀을 구성할 생각이 없거든.”

안태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한때 청소년 대표에 뽑혀서 득점왕까지 했고, 지금은 동네 축구에서 수비수로 재기를 노린다. 실력도 있는 거 같고……”

피디는 캐릭터적인 면에서 이순신을 분석했다.

“그러니까 제가 추천했죠. 그런데 우리의 안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야….”

김구름은 아쉬웠다.

“선수 선발은 안태리 감독의 권한이기도 하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가네요.”

“정말요?”

뜻밖의 대답이 나오자 피디는 되물었다.

“아까 보셨잖아요. 눈 부릅뜨고 나한테 대드는 거. 난 이렇게 싸가지 없는 애들이 좋더라고요. 이런 애들이 나중에 꼭 사고를 치니까.”

“안 감독님. 굳이 우리가 폭탄을 안고 갈 필요가 있을까? 이거 시작도 전에 비호감으로 찍히면, 재기를 꿈꾸는 다른 선수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어.”

이주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안태리가 덤덤하게 말했다.

“기레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

평소에는 순한 김구름이지만, 이순신의 선발을 위해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가즈아!”

이갑용도 어느새 합류했다.

2002년에 전설을 썼던 세 남자의 외침에, 피디와 이주성은 프로그램의 존망이 걱정됐다…….

***

며칠 후.

황 관장 체육관에서 아르바이트와 훈련을 하던 이순신에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세컨드 찬스 프로젝트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차 통과 대상자는 해당 일시와 장소로 집합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됐다!”

“순신아. 뭐야! 된 거냐?”

“네!”

“해낼 줄 알았다!”

황 관장은 이순신을 번쩍 들었다.

“아, 참. 국성이는 어떻게 됐나?”

황 관장은 최국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국성은 세컨드 찬스 시즌2 광고가 떴을 때,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이미 지원한 상태였다.

“국성이. 세컨드 찬스 어떻게 됐어? 어? 됐다고! 지금 치킨 10마리 튀겨서 튀어와!”

이순신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는데 김혁규에게 먼저 메시지가 왔다.

[순신? 어케 됨? 당연히 합격? 난 합격ㅋ]

[ㅇㅇ]

이순신은 김혁규에게 최대한 친근함을 담아서 답장했다.

“순신아. 국성이도 붙었단다.”

“잘됐네요.”

“그래. 오늘은 이 황 관장이 쏜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순신은 황 관장에게 배꼽 인사했다.

“그래. 나중에 우리 체육관도 한 번 언급해주고!”

“당연하죠!”

이순신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카이저 코치가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충무공이 흐뭇한 미소로 웃습니다.]

이순신은 자신의 재기를 도와준 충무공과 카이저에게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훈련 환경은 분명히 재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었다.

축구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

“다녀오겠습니다.”

이순신이 빈집을 향해 인사를 했다.

엄마가 배웅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이순신이 축구를 다시 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자기를 따라서 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열심히 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자.’

이순신은 엄마에게 인정받는 아들이 되고 싶었다.

버스, 기차,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한적한 도시였다.

“이순신 선수 환영합니다.”

제작진은 이순신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기 비밀유지 계약서에 서명하시고요, 잠시 소지품 검사를 하겠습니다.”

비밀유지 계약서.

얼추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프로그램 방영 전까지 스포일러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지품 검사는 합숙 내내 흡연이나 음주같이 경기력을 저해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흉기류를 검사하여 사고를 사전에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네. 이순신 선수. 서명하고 확인 끝났고요. 저쪽에서 잠시 대기해주세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순신이 고개를 돌리니 선수들이 한쪽에 모였다.

애초에 선수 출신들이라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담소를 나눴다.

“순신아! 여기다!”

김혁규의 크게 손을 흔들며 이순신을 불렀다.

“어… 그래…….”

순식간에 자신에게 이목이 쏠림을 느꼈다.

오늘만큼 자신의 이름이 쪽팔린 적이 없었다.

“국성이 형도 일찍 오셨네요.”

“후훗. 무려 최고령 참가 선수이시다.”

이순신은 주변을 살폈다.

아는 얼굴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싶었다.

“순신아. 넌 아는 애들 있냐?”

이순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수원중 출신의 선수도, 20세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기 봐봐. 저거 최국성 아냐?”

“미친 꼰대. 설마 다시 k 리그에서 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방송용이겠지. 우리 욕받이. 크크크”

이순신은 시선을 회피하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어딜 가나 이런 녀석들은 늘 존재했다. 마지막까지 남는 경우는 못 봤지만.’

오히려 최국성보다 발끈한 건 김혁규였다.

“저 새끼들이!”

이순신이 김규혁을 말렸다.

“왜 말려? 저거 엄연히 인격 모독이야!”

“괜찮다. 혁규야. 공격수는 냉정해야 해. 설마 내가 진짜 선수로 복귀하려고 왔겠냐? 가게 홍보도 하고, 반성하는 이미도 좀 보여서 해설이나 축구 교실이라도 하려고 참가한 거야. 난 그저 너희 받쳐주는 역할이고.”

어느덧 불혹의 나이.

이순신은 그에게 달관을 느꼈다.

“열심히 해보죠. 어차피 다들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 거니까.”

김혁규가 의지를 다졌다.

“난 마지막 아닌데?”

김혁규와 최국성이 동시에 이순신을 돌아봤다.

“여기서 떨어져도 난 계속 도전할 거니까.”

“X발 새끼. 존나 멋있네?”

“너 국가대표가 되면 내가 치킨은 평생 공짜로 주마.”

김혁규와 최국성이 감탄했다.

-아아. 선수분들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숙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제작진의 인솔에 60명의 선수는 산꼭대기에 있는 학교로 향했다.

지금은 폐교된 이곳은 한때 특목고등학교였다.

일반고로 전환되는 바람에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학교는 결국 폐교를 했었지만,

잔디가 깔려 있을 정도로 시설만큼은 뛰어났다.

안태리를 비롯한 코치진과 진행을 맡을 이주성은 문에서 선수들이 뛰어오는 걸 지켜보았다.

저벅저벅.

소곤소곤.

그 모습을 보자 안태리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이 새끼들아. 놀러 왔어!?”

안태리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거 예능 아니라 리얼 다큐야. 뛰어!”

이순신을 비롯한 선수들이 당황했다.

그때 한 선수가 전력 질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진성? 쟤도 여기 참가했었네?”

김혁규는 그를 알아보았다.

브라질 유학을 같이했던 동기로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중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세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유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오진성이 뛰기 시작하자 몇몇 선수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그때 몇몇 선수가 눈에 띄었다.

유난히 피부가 까만 녀석, 덩치가 큰 놈, 잘생긴 녀석, 장발 남, 군복, 털보, 문신 정장, 빨간 머리, 승려복, 백인…

‘이 녀석들이 라이벌?’

[가볍게 몸을 풀 겸 달리세요. 상위 10명 안에 들면 보너스 보상이 발동합니다.]

‘이러면 달릴 수밖에 없지.’

이순신도 전력으로 질주했다.

“얀마. 같이 가!”

김혁규도, 최국성도 달렸다.

“뭘 저렇게 열을 내는 거야? 처음부터 힘 뺄 필요가 없는데~”

권병태는 심지어 음료수를 마시는 여유까지 보이며,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하아. 하아.”

이순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5번째로 도착했습니다. 보상으로 기분이 상승합니다.]

“이게 보상인가?”

뭔가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오케이, 여기까지. 셔터 내립시다.”

안태리가 제작진에게 말했다.

“뭐에요? 열어줘요.”

권병태가 음료수를 마시면서 말했다.

아직 못 들어 온 선수는 권병태를 비롯한 6명 정도였다.

“꺼져. 너희 같은 똥 멍청이들에게 줄 기회는 없어.”

안태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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