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내 꿈은 국가대표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일단 히든 보상부터 확인하자.’
이순신은 기절해있는 동안 얻은 히든 스킬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히든 보상 : 세컨드 윈드 발동]
[팀의 승리를 위해 체력을 빠르게 소모해서 세컨드 윈드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이 발동되면 일시적으로 체력이 늘어나고, 평소보다 일시적으로 능력치가 2배로 상승합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하루에서~일주일)]
‘세컨드 윈드를 임의로 발동시킬 수 있다는 건가? 능력치가 수치화로 안 보이는데 2배? 이게 어느 정도 능력인지 감이 안 잡히네.’
‘세컨드 윈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운동 이론이었다.
인간은 격한 운동을 할 때 호흡이 가빠지고,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죽을 만큼 힘들어서 하기 싫을 때,
서서히 호흡이 편해지고 움직임이 더 부드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학자들은 그것을 ‘사점을 넘었다.’ 혹은 ‘데스 포인트’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서 준비운동이 되지 않은 상태.
갑자기 경기에 투입되면 곧바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음? 히든 보상치고는 별론데?’
아쉬움이 이순신의 얼굴에 피어나려고 할 때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괜찮은 능력이었다.
‘잠깐. 생각보다 괜찮은 능력이잖아? 일단 능력치가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실수를 할 확률이 적고, 감각도 발달한다는 뜻이니까.’
이순신은 다시 한번 히든 스킬을 꼼꼼히 살펴봤다.
‘다만 문제는 페널티…… 하루 이틀 정도 자는 건 괜찮은데, 일주일씩 자게 되면 경기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잖아? 아무래도 사용시간이 길면 문제가 되겠지?’
보통 축구경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열린다.
하지만 월드컵 토너먼트의 경우 짧게는 3일 만에 경기가 열리기도 한다.
만약 박싱데이라도 하는 날에는 2~3일에 열리기도 하니, 자칫하다간 민폐가 될 수 있다.
‘뭔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스킬이다. 정식으로 계약하기 전에 최대한 실험을 많이 해봐야겠어.’
“야. 왜 넋 놓고 있냐?”
이순신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김혁규가 실실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은 왜 친한 척이지?’
이순신은 유니폼까지 받았다는 걸 새까맣게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충무공이 다시금 일깨워줬다.
[펠레의 저주를 없애준 대가로 김혁규가 당신에게 호감을 드러냅니다. 믿음직한 동료를 얻었습니다.]
세상에나.
이런 식으로 친구를 사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옛날 같으면 뭔데 친한 척이냐고 성질부터 냈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충무공에게 배운 인의예지 정신에 따라서 이순신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알았다.
“아. 그냥…… 병문안 와줘서 고맙다. 뜻밖이라 감동인데?”
“새끼. 빨리도 인사한다.”
김혁규는 칭찬에 살짝 쑥스러워했다.
“역시 애들은 싸우면서 친해지는 법이야. 안 그러냐?”
김남호는 옆에 있는 이운장의 옆구리를 툭 찌르면서 물었다.
30년 지기인 두 사람은 멋쩍게 웃었다.
청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음, 음.”
모두 헛기침이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연중에 자신의 말이 씹힌 김구름이 낸 소리였다.
“아. 아까 TV에 나가보라고 하셨던 거 맞나요?”
“그래. 너한테 좋은 기회가 될 거다.”
“무슨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나갈만한 게 있을지……”
김구름이 씨익 웃었다.
“너도 들어봤을 거다. 세컨드 찬스 프로젝트!”
“세컨드 찬스?”
이순신의 두 눈이 커졌다.
“그래. 서류면접은 끝났지만, 내가 특별히 피디한테 말해서 제안해주도록 하지.”
“그게 뭔데요?”
“너 세컨드 찬스가 뭔지 몰라?”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나. TV 좀 보고 살아라!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그러지!”
“구름이. 자네가 참게. 요즘 애들 TV 잘 안 본다고 하더라고.”
황 관장이 웃으면서 김구름을 타일렀다.
‘세컨드 찬스…… 왜 이렇게 낯이 익을까…….’
곰곰이 생각한 이순신은 뭔가 떠올랐다.
“아. 혹시 그거 망한 남자 아이돌 재기 프로그램 아니에요?”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바로 채널 넘겼죠. 그런데 설마 저보고 지금 아이돌을 하라고요?”
이순신은 자신의 외모가 잘생긴 건 아니지만, 어디 가서 꿀리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춤과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은근 대박이 나서 시즌 2를 만들었어. 그런데 아이돌을 뽑는 게 아니라 이번엔 축구선수다!”
“축구선수요!?”
“그래. 여기 있는 혁규도 나갈 거다.”
“순신아. 같이 나가자! 우리 둘 다 최종 멤버에 들어보자고!”
김혁규의 눈이 빛났다.
“저는 곧 있을 K3 입단 테스트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그때 메시지가 떴다.
[최국성과 함께 경기하기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보상 : 세컨드 찬스]
“얀마. 여기서 잘만하면 단번에 K리그도 갈 수 있고, 해외리그도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김혁규가 답답한지 화를 냈다.
“하겠습니다. 그거. 세컨드 찬스!”
“이 새끼. 할 거면서 한 번 튕긴 거네?”
김혁규가 이순신의 등짝을 후려쳤다.
‘충무공이 말한 기회라면 확실한 거겠지?’
이순신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찼다.
***
병원에서 퇴원하고 며칠이 지났다.
카이저 코치로부터 수비스킬을 배우며, 체력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이 있어야 스킬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르르르.
알람이 울렸다.
‘으음. 졸려…….’
이순신이 졸린 눈을 비비며 씻었다.
이순신은 지하철을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세컨드 찬스의 제작진과 미팅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 괜히 떨리네. 충무공이나 카이저 코치는 뭔가 좀 알고 있으려나?’
[충무공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기회만 제공해준 건가? 음……’
이순신은 세컨드 찬스에 대해서 인터넷에 검색했다.
제작에 관련된 기사만 나왔을 뿐 참가 선수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감독으로는 김구름과 함께 2002년도에 활약했던 선수가 감독으로 내정되어있다는 것 외에는 극비였다.
“이번 역은 DMC. DMC 역입니다.”
이순신은 내려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걷는 게 최고였다.
‘잘할 수 있어. 아니 잘할 거야.’
방송국에 도착하자 이순신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여보세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이순신이라고 합니다. 지금 방송국 앞에 와 있는데요?”
-아. 금방 내려갈게요!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젊은 여성 작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반갑습니다. 이순신 선수.”
“네. 안녕하세요.”
순신은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인터뷰장으로 향했다.
“떨리시죠?”
“조금요.”
“무서운 분들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나름대로 이순신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순신이 인터뷰 장소로 들어갔다.
이순신이 자기 앞에 있는 사람들을 스윽 살펴봤다.
‘뭐가 이렇게 빵빵해?’
맨 오른쪽부터 김구름, 피디, 2002년에 활약한 전설의 스트라이커 안태리, 미드필더와 풀백이 가능한 이갑용, 전직 스포츠 아나운서였던 이주성이 앉았다.
“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이순신은 피디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어요?”
“2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귀화해서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뛰겠다고 하더니, 실패해서 들어 온 거죠?”
안태리가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딱 봐도 느껴졌다.
김구름을 제외한 나머지 이들은 이순신에게 호감이 없었다.
“네.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입대해서 몇 달 전에 제대했습니다.”
이순신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끌어 올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맹수들.
본능적으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또렷하게 차렸다.
“솔직한 친구네. 군대에 갔다 왔다면 일단 국적은 한국일 테고, 뭐 거기서 느끼고 깨달은 바가 많았겠구먼.”
“없었습니다. 그냥 18개월이란 시간을 허송세월하며 보냈습니다.”
침묵.
싸늘한 기운이 인터뷰장을 가득 메웠다.
“결과적으론 18개월 동안 축구를 포기한 건데, 왜 다시 축구선수를 하려고 하는 거예요?”
“……”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한국 축구가 곧 주변 국가한테 대패당하고 개망신을 당할 것을 알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축구를 다시 시작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이순신 씨?”
이갑용이 매서운 눈빛으로 물어봤다.
“고생하시는 엄마를 위해서 다시금 축구화를 신었습니다.”
“아이고……. 엄마 때문에 축구화를 다시 신은 친구들이 몇 명이야. 어디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이순신이 잠시 침을 꼴깍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어린 나이에 전 스페인 구단에 입단했지만, 곧 유망주법에 걸려서 훈련은커녕 방출될 위기였습니다. 그때 엄마는 국내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저를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날아와 주셨습니다.”
피디가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뻔한 신파였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로 엄마의 헌신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대표로는 월드컵 우승 못 한다고 생각한 건 본인 생각이었나요? 아니면 에이전시가 시킨 건가요?”
“100% 제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변함없나요?”
“네.”
순간 눈앞에 있는 면접관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확실히 불가능했다.
고자한테 고자라고 말하면, 그것이 사실일지언정 듣는 고자는 기분이 나쁜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제가 대표팀에 들어간다면 가능성이 생깁니다.”
안태리가 힐끗 쳐다보았다.
“대표팀? 귀화를 말했던 그 입에서 대표팀 소리가 나와? 무슨 수로 우리가 우승을 해?”
목소리가 살짝 높았다.
국가대표였던 그는 누구보다도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동료가 넣은 골을 목숨 걸고 수비하겠습니다!”
“뭐? 골을 못 넣으면 어쩔 건데? 승부차기 가서 운빨에 맡길 거냐?”
“그전에 제가 넣겠습니다.”
“너 포지션이 뭔데?”
“옛날엔 리베로라고 불렀지만, 요즘은 이렇게 부른다죠. 수.트.라.이.커!”
이순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망했네. 망했어…….’
김구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안태리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순신이 배꼽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하……. X된 거 같은데……’
이순신은 왜 자신이 마지막에 그런 말을 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조금 아까운 친구긴 한데… 시간 낭비했네요.”
피디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안태리의 표정을 보니 화난 게 분명했다.
“죄송합니다. 저런 친구가 아닌데… 태리 넌 질문이 너무 셌어. 네가 감독이긴 하지만 프로그램 취지에 딱 맞는 녀석 아니냐?”
김구름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태리는 피디에게 물었다.
“피디님. 이번에 지원 신청한 사람이 몇 명이었죠?”
“대략 3천 명쯤 됩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면접대상자로 뽑은 사람이 300명이었고요.”
“그렇죠…… 갑자기 그건 왜요?”
“K3, K2, k 리그, 혹은 유럽하위권 리그 팀이 목표라고 말한 선수들은 많았지만, 대표팀이 목표라고 말했던 녀석은 저 녀석 하나에요.”
“!”
“저 녀석 경기 영상 좀 다시 봅시다.”
안태리가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