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펠레의 저주
울컥.
명량해전에 참전한 장수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이순신의 외침에 연합팀 선수들의 가슴이 웅장해졌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기분.
남은 시간은 1분.
마지막이란 생각이 매우 강하게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휙. 휙.
상대 팀이 다리를 뻗었다.
이순신의 폭풍 드리블을 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무슨 수비수가 드리블이 저렇게 좋아?”
김남호는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사람의 1 on 1 상황.
이순신이 힐끔 쳐다보았다.
맷코치와 최국성이 달렸다.
“양 사이드 막아!”
국가대표 역대급 최강 수비형 미드필더라 불리던 김남호.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동네에서 이런 녀석한테 발리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무엇보다 이 자식은 국가대표를 모독하지 않았던가?
“와라!”
김남호의 기합이 단단히 들어갔다.
이순신이 몸을 살짝 틀며 볼을 지켰다.
‘좀 더 버티면서 수비가 정비할 시간을 벌어야 해.’
김남호는 필사적으로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왼쪽? 오른쪽?
이순신의 선택은 김남호의 가랑이였다.
뒤꿈치로 볼을 찬 후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삐이이익-
김남호가 어깨로 밀치면서 공격을 저지했다.
덕분에 이순신은 운동장에서 뒹굴었다.
“순신아! 괜찮아!?”
“남호!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누가 보면 국대 경기인 줄 알겠어!”
친구들끼리 축구게임을 할 때도 역습 기회에서, 그것도 마지막 공격 기회를 태클로 막지 않는 것이 예의이자 국룰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얘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더라고요.”
김남호도 너무 했다 싶었는지 빠르게 사과했다.
“괜찮냐?”
김남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순신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축구경기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하”
이순신이 웃었다.
히든 보상이 열려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지금은 아드레날린이 분출돼서 웃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맛이 좀 간 상태.
어쨌거나 연합팀의 마지막 공격 기회는 세트피스!
“올리는 척하면서 국성이가 받고, 뒤에 있는 순신이에게 패스. 수비수 나오면 그대로 슛이 나을까? 아니면 국성이에게 리턴 패스가 나을까?”
“음. 순신이가 킥 능력이 좋긴 한데, 방금 부딪혀서 충격이 좀 있을 테니 제가 받아서 어떻게든 넣어볼게요.”
“아니요. 제가 차겠습니다!”
맷코치와 최국성이 세트피스 작전을 짜고 있을 때 문득 이순신이 끼어들었다.
“순신아. 괜찮겠냐?”
“네. 거리도 적당하고 제가 직접 넣어보고 싶습니다.”
“음…….”
맷코치와 최국성은 갈등했다.
사실 직접 슈팅을 노리기에는 약간 먼 거리이기도 했고, 맷코치는 공격 포인트, 최국성은 추가 골을 넣고 싶었다.
“그래. 어차피 못 넣어도 무승부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고.”
최국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과감하게 기회를 양보했다.
“우리가 위치선정 기가 막히게 할 테니까 홈런만 치지 마라. 알겠지!?”
맷코치도 순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넵!”
이순신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적토마 FC가 수비진을 정비했다.
툭.
이순신은 공을 내려놨다.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성공률 60%, 남은 횟수 (2/3)]
‘기존에 필드에서 차는 것보단 확실히 성공률은 높지만 아쉬워…….’
그때 문득 이순신의 머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혹시 횟수를 몰아서 쓰면 성공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이에 시스템은 곧바로 응답했다.
[비격진천뢰의 남은 횟수를 모두 사용하고 성공률을 높이겠습니까?]
[성공률 90%]
[예/아니오]
‘됐다!’
이순신은 목 뒤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시스템이 융통성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삐이이이익-
주심이 공을 차라는 호루라기를 울렸다.
이운장도 들어와서 수비를 보는 상황.
코트 반쪽에 무려 22명의 선수가 모였다.
모두가 이순신의 발을 주목했다.
“후읍……!”
이순신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타다닥.
발을 구른 후.
팡!
발등으로 공을 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로 날아갔다.
선수들의 시선은 그저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왼쪽이다.’
김구름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어?’
퉁!
골대까지 날아오리라 생각한 공은 골대 앞에서 한 번 튕겼다.
튕긴 공의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이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다.
통통.
튕기던 공이 놀리듯이 방향을 틀었다.
‘젠장!’
갑작스러운 방향전환은 김구름도 예측하지 못했다.
‘공이 굴러가네?’
떼구르르르.
통통 튕긴 것도 아니고, 굴러서 골대로 향했다.
적토마 FC의 선수들도 홀렸는지 공만 쳐다보았다.
‘설마 넘겠어?’
적토마 FC의 수비수들은 직접 가서 걷어낼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넘어라!’
연합팀은 누구 하나 달려가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들어갈 골을 들어가라고 빌고 또 빌었다.
끙차끙차!
기어이 공은 골라인을 넘어서 멈췄다.
“우아아아!”
이순신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선수들은 그제야 정신 차렸다.
삐이이익-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골과 함께 경기가 끝났다!
“이! 이겼다!”
연합팀은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리며 승리를 만끽했다.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 이순신에게 달려갔다.
“순신아. 네 덕분에 이겼다!”
1골 1도움.
공격수가 낸 기록이 아닌 수비수가 낸 기록이었다.
그 외에 수많은 기록은 이순신이 경기를 지배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후후. 대단한 녀석인데?”
김구름은 골을 허용하고도 오히려 웃었다.
“잘하면 혁규랑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겠어.”
이운장 역시 표정이 좋았다.
“혁규처럼 재기에 성공한다면 한국 축구에 큰 힘이 될 녀석이야.”
벤치에서 팀의 패배를 지켜보던 김혁규도 이순신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체된 이후 그의 시선은 이순신을 따라 움직였다.
‘이 자식은 찐이다!’
자신의 재능은 이순신에 비하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서 이순신에게 줬다.
동네 축구에서는 흔한 광경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순신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은 경기였다.”
“고맙다.”
김혁규가 손을 내밀었는데 이순신이 머뭇거렸다.
[김혁규와 악수하면 펠레의 저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김혁규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저주를 가져오면 녀석이 가진 저주는 풀리는 건가?’
[충무공이 당신의 선택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저주를 가져오는 건 찜찜하지만, 이 녀석이 저주가 풀려서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재기에 성공한다면 그것 또한 나쁜 일은 아니지.’
이순신은 김혁규의 손을 잡았다.
[펠레의 저주가 이전되었습니다.]
이순신이 씨익 웃었다.
‘난 결코 저주 따위에 지지 않아!’
그 순간 이순신의 두 눈이 커졌다.
[동료를 중요시하는 충무공이 당신의 선택에 감복합니다.]
[칭호 백의종군의 효과로 펠레의 저주를 정화했습니다.]
이순신이 이렇게 유망주를 하나 살렸다.
‘역시 착한 일은 좋은 것이야.’
그때 메시지가 또 발동했다.
[히든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이순신은 히든 보상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눈에 초점이 없어졌다.
털썩!
“순신아!”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순신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이순신이 서서히 눈을 떴다.
‘여긴 어디지?’
눈부심을 이겨내고 서서히 상체를 일으켰다.
하얀 침대가 눈앞에 보였다.
딱히 기분 좋지 않은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원?”
정신을 차려보니 하얀 침대 위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앉아 있는 자신의 처지를 파악했다.
“뭔 일이야 이게?”
당황스러웠다.
“주변엔 왜 아무도 없지?”
보호자가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아무도 없었다.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핸드폰이 사물함에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100%.
쓸데없이 완벽하게 충전된 상태.
‘뭐야? 내 충전기는 아닌데?’
이순신은 잠금장치를 풀고 부재중에 온 연락을 확인했다.
카톡에는 연합팀의 회복기원 문자가 가득했고, 엄마와 황 관장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 역시 엄청났다.
‘누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지? 역시 엄마한테…’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하려다가 이순신은 황 관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전후 사정을 파악했다.
뚜르르르.
-순신아. 깨어났냐?
“네. 관장님. 어떻게 된 거죠?”
-과로란다. 의사 양반이 링거 맞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해서 대충 입원시키고 쉬게 했다.
“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늦었고, 내일 가보마.
“굳이 안 오셔도 돼요. 오늘 퇴원하겠습니다.”
-아냐. 너 실비 받으려면 내일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어머님 그러시더라. 그냥 병원에서 하룻밤 더 자 둬!
“아. 네…….”
황 관장과 통화를 마친 이순신은 그대로 베개를 베고 누웠다.
얼마 만에 쉬어보는 휴식인 줄 몰랐다.
“엄마가 들어놓은 실비가 여기서 빛을 보다니…….”
이순신의 엄마는 현재 보험 설계사 일을 했다.
뭐랄까…….
스페인 유학 생활의 실패 이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순신은 죄책감, 엄마는 잘나가던 대기업 팀장 자리도 박차고 나와서 올인했으나 남은 건 실패뿐.
더군다나 순신이 빨리 군대를 가버리고, 면회도 오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좀 더 어색했다.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야 할까?”
이순신에게는 공격수를 막는 것 보다,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였다.
결국, 고민 끝에 잠들었다.
이순신이 깨어난 건 오전이 다 돼서였다.
“이야. 깨어났구나. 이순신이.”
“그러게 죽은 줄 알았는데.”
“예~ 제가 그 전설의 김구름 맞습니다. 사인은 좀 있다가 해드릴게요.”
황 관장, 맷코치, 최국성, 이운장, 김구름, 김남호, 김혁규가 병문안을 왔다.
“순신아, 이거 먹어라. 운장이 형이 만들어 왔다.”
순신의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낙지 죽이 놓였다.
“많이 먹어라. 우리 가게에서 이번에 새로 만든 신메뉴. 낙지 니조또다!”
“아 참. 삼촌! 리소토라니까요.”
“발음이 어려워.”
“그럼 그냥 낙지 죽이라고 하던가.”
“그건 가격을 올려 받을 수 없잖아.”
김혁규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플 땐 치킨이지.”
최국성은 양념, 프라이드, 간장, 마늘 등 집에서 팔고 있는 메뉴는 한 마리씩 싸 왔다.
“자…… 잘 먹겠습니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기에 다 함께 나눠 먹었다.
어제에는 적이었지만, 오늘은 닭 다리를 나눠 먹는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제가 기절을 한 건가요?”
“너 기억 안 나?”
“응.”
김혁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 관장은 녹화 영상을 보여줬다.
“와. 내가 골을 넣었구나. 끝나기 10분 전부터는 기억이 전혀 없었어요.”
“경기를 뛰다 보면 그럴 때가 있지. 그만큼 네 열정이 대단하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말인데 너한테 기회를 제안하고자 하는데…….”
김구름이 팔짱을 낀 채 근엄하게 말했다.
[최국성과 함께 경기에 뛰기를 만족했습니다. 실력향상을 위한 환경이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이 퀘스트 보상이구나.’
“TV에 나가보지 않을래? 너한테 좋은 기회가 될 거야.”
“네?”
이순신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갑작스러운 TV 제안? 뭔 소리인지 모를 그 타이밍에 메시지가 또 발생했다.
[미확인한 히든 보상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