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비디오 판독 요청합니다.
심판이 페널티킥 선언을 하자 양쪽의 선수들이 모두 달려왔다.
“페널이라니! 이보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판정을 존중하세요.”
“워워! 형님 그걸로 찍으면 사람 죽어요!”
분위기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심판이 양쪽 다 분위기가 좀 가라앉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 친구가 발을 뻗어서 슛을 막은 다음에 공이 떴죠! 뜬 공이 어디로 갔어요?”
“제가 헤딩으로 걷어냈죠.”
“헤딩으로 걷어낼 때 손에 닿았습니다. 제가 봤습니다.”
“안 닿았다고요!”
너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오심도 축구 일부로 넘어간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VCR을 요청합니다!”
V.C.R 판독 요청!
두두두두두.
그 순간 순신의 앞에 경기를 찍고 있던 드론이 착륙했다.
“뭐야! 이게!”
갑작스럽게 내려온 드론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하. 혹시 몰라서 찍어두고 있었는데 마침 이럴 때 써먹겠네요!”
연합팀에서 인상 좋은 40대 중년의 남자가 리모컨을 들며 나타났다.
그는 드랍FC 소속으로 회원이었다.
그동안 일이 바빠서 못 나왔다가 오래간만에 나왔는데 벤치에서 본의 아니게 중요한 활약을 하게 된 것이다.
“자 그럼 판독 들어갑니다!”
“조그매서 뭐 보이겠어?”
“마침, 최신기종입니다. 하하핫!”
아귀가 고니의 패를 확인할 때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판독 결과!”
이순신도 침을 꿀꺽 삼켰다.
“자. 헤딩하기 직전에 손을 옆구리에 넣었네요. 헤딩은 깔끔했고요!”
“그럼 그렇지!”
“아!”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코……. 코너킥. 미안하게 됐수다.”
심판은 미안한지 사과했다.
이 사람이 적토마 FC에 돈을 받거나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의 실수였을 뿐이었다.
심판이 본 각도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축구경기에 심판이 3명씩이나 있는 게 아니었다.
“잘했다. 순신아! 나이스 수비였어!”
“감사합니다. 황 관장님. 그런데 저쪽 공격수 개인기가 좋으니까 먼저 발 뻗으면 안 될 거 같습니다.”
“응. 꼭 국성이 어릴 때를 보는 거 같아. 조심할게!”
“넵!”
이순신과 황 관장은 주먹을 부딪치며 코너킥을 대비했다.
“미안해요. 운장이 형. 그런데 쟤 엄청 빠르고 수비도 잘하네요. 스페인에서 수비만 배웠나?”
김혁규가 아까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잊어버려. 혁규야. 대신 좋은 놈으로 올려줄 테니까 하나 넣어 봐.”
“네!”
이운장이 김혁규의 어깨를 토닥거린 후 오른쪽에서 코너킥을 준비했다.
이순신은 김혁규를 마크하면서 상대 팀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했다.
‘골 결정력이 좀 달려서 그렇지,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공격수다. 국성이 형하고 미리 붙어봐서 그나마 좀 다행이야.’
두 사람이 등과 팔을 맞대고 신경전을 벌이던 그때!
이운장이 코너킥을 올렸다.
“어? 뒤로 넘어간다! 측면 막아!”
그가 올린 코너킥은 다소 높았다.
“안 돼! 위치 지켜!”
이순신은 이운장이 올린 코너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왼발과 오른발을 모두 잘 쓰는 천재라 불린 건 알았지만, 높이를 조절할 수 있을 줄이야.’
이순신은 아름답게 올라오는 코너킥을 보며 감탄했다.
“국성이 형! 김남호 쪽으로!”
이운장은 깜짝 놀랐다.
‘뭐야? 우리 경기를 어디선가 녹화라도 했던 거야?’
아까 드론 사건으로 이운장은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적토마 FC는 근 한 달간 경기조차 치르지 않은 상황.
그저 플랜 1번인 툭 떨어지는 코너킥을 김남호가 달려와서 잡고, 각이 나오면 슛. 그렇지 않으면 이운장에게 다시 패스하는 전술이었다.
다만 이순신이 리플레이를 수십 번 돌려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최국성이 길목을 차단해서 김남호보다 먼저 공을 빼앗았다.
김남호는 재빨리 자세를 낮추고 수비에 들어갔다.
“역시 남호 형은 빈틈이 없네요”
“닥쳐. 내 이름 부르지 마.”
김남호는 이운장과 마찬가지로 최국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국성 역시 욕을 먹으니 살짝 화가 치밀었다.
돌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이순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패스!”
이순신이 손을 흔들자 최국성은 자신도 모르게 전방으로 찔러줬다.
연합팀의 역습!
이순신을 필두로 연합팀이 중앙선을 넘었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 상태라 공수 전환이 다소 느렸다.
‘여기서 비격진천뢰를 한 번 더?’
[비격진천뢰의 성공률은 34%입니다.]
낮아도 터무니없이 낮았다.
적토마 FC가 한 골을 먹이고 난 뒤,
김구름은 수비라인을 재정비했고 마음가짐을 다시 잡았다.
‘무리하게 슛을 쏘기보단…….’
이순신은 살짝 앞에 있는 맷코치를 향해 패스를 뿌렸다.
그는 등을 지고 공을 받았다.
수비수가 재빨리 따라붙었지만, 경합 끝에 떨쳐냈다.
골키퍼인 김구름과 1:1인 상황.
자세를 잡고 꼼작하지 않는 김구름을 향해 맷코치는 슛을 날렸다!
착!
아쉽게도 김구름은 침착하게 맷코치의 슛을 잡아내는 슈퍼 세이브를 펼쳤다.
‘아쉽다.’
이순신은 맷코치가 어떻게든 넣어주길 바랐다.
연합팀이 아무리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모한 작전을 여러 번 시도할 만큼 축구에서 쓰는 근육은 달랐다.
체력이 좀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제외하면 20대는 골키퍼와 왼쪽 풀백을 포함해서 고작 3명뿐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뒤에서 지켜보던 김구름도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길게 찬 골킥은 하프라인 근처에 있던 김남호에게 날아갔다.
볼을 받은 김남호는 그대로 왼쪽에 있는 이운장에게 패스했다.
두 팀은 그렇게 치열하게 공수를 교대했다.
정확히 말하면 적토마 FC의 일방적인 폭행이 이어졌다.
공격 기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순신의 예측이 아니었다면 벌써 몇 골은 먹혔다.
‘그런데 국성이 형이 전혀 뚫지를 못하네.’
이운장 같은 미드필더가 없는 상황에서 전방에 공을 뿌려 줄 사람이 없었다.
이순신이 롱패스를 해줘도 최전방의 두 사람이 너무 아래로 내려와서 개인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간혹 최국성이 돌파를 시도하면 번번이 김남호에게 막혔다.
한때 프랑스 최정상의 공격형 미드필더도 막아냈었던 김남호는 여전히 터프하고 거칠었다.
김혁규와 최국성.
둘 다 상대방의 피지컬을 뚫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기회를 노렸다.
마침내 전반 29분에 기회가 왔다.
최국성이 드리블을 시도했지만, 김남호의 수비에 걸렸다.
흘러나온 볼을 이순신과 이운장이 달려갔다.
‘너무 달라붙는데.’
이운장은 몸싸움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슈팅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그저 따라가기 바빴다.
결국, 이순신이 공을 먼저 잡았고, 그대로 중거리 슛을 날렸다.
부우우웅-
툭!
김구름은 침착하게 펀칭으로 이순신의 공을 쳐 냈다.
“공격수 출신이라서 그런가? 슈팅력은 기가 막히네.”
김구름은 씨익 웃으며, 김혁규 쪽으로 골킥을 날렸다.
삐이이이익-
전후반 30분 게임에서 전반전이 끝났다.
다행히 작전대로 머슬&드랍FC가 1:0으로 앞섰다.
“와, 우리가 저 팀을 상대로 무실점이라니. 미쳤다!”
“그러게요. 이 기세로 후반전까지 버티면 우리가 이기는 거잖아요?”
“침대 주문할까요? 남은 30분 동안 꿀잠 자게.”
“하하하하!”
연합팀은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들뜬 상태였다.
이순신, 최국성, 황 관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세 사람에게 30분은 지옥 같은 30분이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후반엔 교체하시는 게 어떨는지?”
“아냐. 30분만 더 버티면 되는데 뭘. 풀백애들이랑 미들진 좀 바꿔주자고,”
“그러죠. 순신이는 괜찮냐? 뭔 땀을 이렇게 많이 흘려?”
“괜찮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보겠습니다.”
“어이쿠 목도 다 쉬었네. 체력 훈련 좀 더 해야겠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이미 정규 경기였다면 70분 동안에 쓸 체력을 전반전에 다 태웠다.
남은 시간 30분.
[최국성과 함께 경기 뛰기 / 보상 확정]
최국성과 함께 뛰는 거로 보상은 확정이었지만, 여기서 쉬고 싶진 않았다.
왠지 풀타임을 뛰고 나면 뭔가를 더 얻을 것만 같았다.
[히든 보상 (0/2)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경기를 뛰시겠습니까?]
‘힘들어 죽겠지만, 히든 보상으로 유혹하는 거 보면 분명 값진 능력일 거야. 설마 뛰다가 죽기야 하겠어…….’
어떻게 해야 발동하는지 조건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었다. 뛰고 또 뛰다 보면 시스템은 항상 보상을 줬으니까…….
이순신은 옆에 있는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삐이이익-
양쪽 진영이 바뀌고 경기가 시작됐다.
적토마 FC는 이름답게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이 패턴은?’
이운장의 발끝에서 시작된 공격.
전반에도 몇 번 막혔던 패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한다는 것은 연합팀의 체력이 떨어진 것을 눈치를 챈 것이다.
연합팀의 선수가 공을 커트해서 전방에 있는 최국성에게 넘겼지만, 다시 빼앗겼다.
그 공은 이운장에게 넘어갔다.
간만에 적토마 FC가 수적 우위를 앞세워 공격했다.
연합팀이 재빨리 복귀하려고 했지만 수비진이 너무 올라왔다.
이순신이 맨 앞에 붙어서 수비가 복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이번엔 우리 차례야.”
이운장은 씨익 웃더니 공을 살짝 띄웠다.
이순신이 재빨리 리턴을 하려고 했는데, 김남호의 스크린에 가로막혔다!
“으윽!”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올 정도로 김남호는 단단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는 공을 받자마자 김혁규에게 패스했다.
수비수들이 김혁규에게 몰려들자 이운장에게 패스…….
하는 척을 하면서 그대로 돌진했다.
“수비 붙어!”
이순신의 명령에 연합팀이 협력 수비를 펼쳤다.
“혁규야. 브라질에서 뭐 했냐!”
김남호의 외침에 김혁규는 눈빛이 달라졌다.
‘젠장!’
이순신은 이를 꽉 깨물었다.
4명의 수비수가 이중으로 김혁규를 포위했지만…….
빙그르르.
마르세유턴에 이은 헛다리 짚기.
화려한 개인기에 넋을 잃은 수비수들은 당황해서 발을 뻗었지만, 김혁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식간에 4명을 뚫고 페널티 에어리어로 달렸다.
이운장, 김남호가 그를 엄호하기 위해서,
이순신은 그를 막기 위해서 달렸다.
연합팀의 골키퍼는 당황스러웠다.
‘슛? 패스?’
김혁규의 화려한 개인기에 이은 드리블, 왼쪽에 이운장, 오른쪽에 김남호가 빠르게 달려왔다.
“나오지 마!”
이순신은 골키퍼에게 소리쳤다.
골키퍼가 나오지 않자 김혁규는 슛을 쐈다.
다만, 연합팀의 골키퍼는 김구름이 아니었다.
한발 늦은 반응속도로 몸을 날렸지만, 김혁규가 찬 공은 그대로 골대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삐이이이익!
스코어는 1:1이 되었다.
“이 새꺄. 해낼 줄 알았다! 이제 몸이 풀렸구나.”
김남호가 달려와서 안겼다.
“형 패스가 죽였어요!”
연합팀은 망연자실했다.
김구름은 김혁규를 보며 흐뭇했다.
[김혁규 선수가 한 골만 더 넣으면 펠레의 저주에서 해방됩니다.]
[추가 실점을 허용하면 저주가 옮겨붙을 수 있습니다.]
펠레의 저주?
이순신이 깜짝 놀랐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저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