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한때는 천재 공격수
최국성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한때 그의 별명은 리틀 마라도나.
아르헨티나에 메시가 있다면 한국에는 최국성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키는 작지만 깊은 생각과 큰 꿈이 있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승부 조작.
“여태까지 부끄럼 없이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그런 일에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 대중들과 구단은 최국성을 믿었다.
믿음의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세 때 보여줬던 포텐셜이 성인이 되어서는 터지지 않아서 국가대표 공격진에는 그를 대신할 선수가 차고 넘쳤다.
먹고 살기 위해 요식업과 축구 교실을 열었지만, 그때마다 조롱과 비판을 받아왔다.
어쨌든 그도 이제는 40살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대중들에게 잊혔다.
맷코치에게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동등한 회원일 뿐이고, 그저 축구를 좋아하는 아저씨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삐이이익-
마침내 4쿼터가 시작됐다.
4 : 2로 앞서고 있지만, 오히려 긴장한 쪽은 머슬FC였다.
“능동 마라도나. 달려!”
맷코치가 최국성에게 패스를 했다.
“자. 일단 만회 골 갑니다!”
최국성은 자신 있게 치고 달렸다.
그래도 한때 국가대표 출신이라 그런지 군계일학이었다.
어느새 이순신과 1 : 1 찬스가 왔다.
“꼬마야. 축구협회에서 쫓겨난 사람들끼리 재밌게 한 번 해보자.”
“전 안 쫓겨났는데요?”
순간, 최국성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자세를 낮추더니 오른쪽으로 치고 달렸다.
이순신도 따라갔다.
“이 아저씨를 상대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단신의 공격수가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적인 무기는 스피드였다.
‘와, 장난 아닌데?’
지금까지의 경기 속도가 1배속이었다면 최국성의 몸놀림은 1.2배속이었다.
경기 템포에 익숙해졌기에 어쩌면 더욱 빠르게 보일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고 못 잡을 정도는 아니다.’
이순신은 씨익 웃었다.
최국성이 오른쪽으로 치고 나갈 때 일부러 길을 터줬다.
거리를 유지하고 쫓아가면, 그가 할 수 있는 건 딱 두 개다.
패스 혹은 슛.
그의 선택은 슛이었다!
툭!
이순신의 오른발을 맞고 나간 슛은 코너킥이 되었다.
‘어린 노무시키가…….’
최국성은 자신의 슛을 너무나 쉽게 저지한 이순신의 플레이에 살짝 열이 올라왔다.
“순신아. 국성이 헤딩 조심해라!”
“헤딩이요?”
황 관장의 말에 이순신은 의문을 가졌다.
그 말뜻을 맷코치가 올린 코너킥을 통해서 알았다.
뻥!
꽤 잘 휘어져서 골대 쪽으로 날아가는 공.
이순신의 앞에 검은 물체가 빠르게 떠올랐다.
최국성의 엄청난 서전트 점프!
다행히 황 관장이 일러준 덕분에 이순신은 공을 걷어냈다.
‘이 자식 뭐야? 이 피지컬에 이렇게 순발력이 좋다고?’
최국성은 이순신의 재빠른 상황판단에 당황했다.
데구르르르.
공은 머슬FC 라이트백(RB) 앞으로 떨어졌다.
“어……. 어?”
그는 자신 앞에 공이 떨어질지 몰랐는지 당황했다.
“달려!”
이순신은 그에게 달리라고 했지만, 그는 중앙으로 횡패스를 넣었다.
“젠장!”
이건 순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스포츠.
동료의 실책까지 이순신이 모든 걸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속도도 느렸기에 코너킥을 차고 공격에 가담한 맷코치가 간단하게 가로채기.
‘에라모르겠다슛’을 날렸다!
철렁.
운 좋게도 그가 날린 슛은 골망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아! 골이다!”
드랍FC의 선수들은 얼싸안고 좋아했다.
반면, 머슬 FC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자신의 실책으로 골을 헌납한 머슬FC의 RB는 죽을상이었다.
“자자! 그래도 우리가 앞서 있으니까 걱정 마!”
황 관장이 팀원들을 다독였지만, 소용없었다.
축구는 흐름의 경기.
최국성으로 인해서 판도가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순신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는 아직 12분 남았습니다.”
머슬FC 선수들이 이순신을 주목했다.
“저뿐만이 아니라 형님들한테도 시간은 남았습니다.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지고, 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이깁니다!”
필승즉패 필패즉승!
[특별버프 ‘배수의 진’이 발동합니다.]
[15분간 팀원의 집중력이 상승하여 기본 능력치가 상승하고 실수가 줄어듭니다.]
이순신의 말에 머슬FC 선수들의 눈빛이 변했다.
우오오오!
4:3으로 이기고 있다는 생각하지 않고, 0:1로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황 관장. 붙어!”
최후방에서 이순신은 진두지휘했다.
드랍FC도 공격에 변화를 줬다.
최국성이 측면 공격수로 빠지면서 머슬FC의 좌우를 무너트리고자 했다.
하지만 공격하는 족족 머슬FC에게 막혔다.
“협력! 두 명 붙어!”
최국성의 드리블은 동네스리가에서 두 명정도 붙어서 막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어림없지!”
최국성이 돌파에 성공했지만, 크로스는 중앙 공격수인 맷코치에게 연결되지 않았다.
‘열심히 뚫으면 뭐해. 받아먹질 못하는데!’
최국성은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후훗. 계획대로다.’
이순신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최국성이 40대란 나이에 비해선 녹슬지 않은 빠른 드리블을 과시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드리블은 빠르고 화려하지만, 골보다 아름답지는 못하다.
측면 돌파 후 크로스가 막히자 스스로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순신이란 최종 보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팀원에 대한 미음 부족.
자신에 대한 과신.
상대를 무시하는 나쁜 버릇은 오만이라는 악마를 키워냈다.
“젠장!”
최국성의 드리블도 막힌 지금 드랍FC의 공격 루트는 완전히 막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1분.
이순신은 최국성의 드리블을 막으면서 차분하게 실전경험을 쌓았다.
‘추가 보상이 날아간 건 아쉽지만, 그래도 충분한 연습이 됐으니 만족한다.’
긍정적인 이순신은 머슬FC의 페널티 라인에서 자신 있게 커트를 했다.
최국성은 속도를 못 이기고 잔디밭에 데굴데굴 굴렀다.
“리턴! 리턴!”
맷코치가 재빨리 소리쳤다.
슈우우우웅!
철렁!
이순신이 페널티 라인에서 쏘아 올린 마지막 비격진천뢰가 상대 팀의 수비수보다 빠르게 꽂혔다.
“우와아아아아아!”
황 관장은 이순신을 가볍게 프론트 스쿼트로 번쩍 들었다.
“순신아! 대박이다! 얻어걸렸겠지만 그래도 골은 골이다!”
마지막 비격진천뢰의 성공확률 99%.
“맞습니다. 관장님!”
이순신은 씨익 웃으며 겸손을 떨었다.
최종 스코어 5:3!
머슬fc의 승리였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승리감이던가!’
감격에 겨운 순간 이순신 앞에 메시지가 발생했다.
[최국성 선수를 무실점으로 막아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을 포기했던 이순신은 뜻밖의 횡재에 두 눈이 커졌다.
[추가 보상]
[전설 매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설 매치? 이게 추가 보상?’
아리송한 메시지에 이순신은 어리둥절했다.
“순신아. 뭐하냐! 얼른 씻고 회식 가자!”
황 관장이 어느새 나타나서 이순신의 목덜미를 꽉 감쌌다!
***
횟집에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자자자자. 잔들 채우셨죠?”
“네!”
황 관장의 물음에 머슬fc와 드랍fc 선수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경기 결과를 떠나서 아주 그냥 꿀잼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렇게 재밌는 경기를 합시다! 그럼 모두 건배!”
짧고 굵은 황 관장의 건배사가 끝나자 다들 술잔을 부딪치며 한잔했다.
“순신아. 너도 한잔해라. 축구 잘하더라.”
맷코치가 맥주잔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이순신은 공손히 거절하며 잔에 물을 채웠다.
“어허. 이 녀석 몸 만드는 중인데 술을 권하면 쓰나? 나중에 공개테스트 통과하면 그때 먹이자구.”
“아하.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럼 저희끼리 짠하시죠!”
황 관장과 맷코치는 술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이순신도 간만에 양질의 단백질을 마음껏 섭취했다.
그렇게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좀 늦었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최국성이었다.
“어이, 국성이. 이쪽으로 와.”
맷코치가 자리를 만들어주자 최국성이 앉았다.
황 관장이 최국성에게 소주를 콸콸 따라줬다.
“헤헤. 고맙습니다.”
단숨에 비운 최국성은 눈앞에 있는 이순신에게 술을 권했다.
“꼬맹이. 축구 좀 하더라. 한 잔 받아라.”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웃는 얼굴로 거절했다.
“뭐야? 선배가 주는 건 마셔야지.”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재차 거절했다.
“아씨. 술맛 떨어지게.”
최국성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국성아. 이해해. 쟤 곧 테스트 볼 거란다.”
맷코치가 옆구리를 찌르며 말렸지만, 오히려 최국성은 급발진했다.
“뭐? 테스트? 꿈 깨라. 하하하.”
최국성이 비웃자 회를 집던 이순신의 젓가락이 멈췄다.
“야. 한국 축구는 원 아웃이야. 한 번만 잘못하면 끝나.”
최국성의 말에 일순간 회식 자리가 조용해졌다.
“하하. 국성이 형 취했네. 누가 좀 말려라…….”
회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애써 지키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순신이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다른 일 찾기에는 축구를 너무 좋아합니다. 좀 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야. 다 내가 해봐서 그래. 일찌감치 접으라니까?”
“전 아저씨가 아니잖아요? 정정당당히 필드에 설 겁니다.”
“뭐, 인마?! 이 싸가지없는 새끼가!”
최국성이 벌떡 일어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머슬fc와 드랍fc의 회원들이 일어나서 말렸다.
“아이참! 이거 왜 그러십니까! 순신아. 얼른 사과드려.”
이순신은 젓가락을 들어서 회를 한 점 먹고 일어났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순신은 주변에 연신 꾸벅하고는 가방을 들었다.
“동네에서 볼 좀 찬다고 프로가 우스워 보이냐? 프로는 틀려. 이 새끼야.”
“하아.”
이순신이 인내심을 끌어모아서 겨우 참고 또 참았다.
“너 지금 한숨 쉬었냐?”
“유럽에서 뛰어 본 적은 있으세요?”
“야. 놔봐!”
최국성이 폭발했다.
[충무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경기장 밖에서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권고합니다.]
‘축구보다 이런 게 더 어렵다. 어려워. 그래도 같은 팀이 아니라서 다행이지.’
축구와 소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프로의 세계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골치 아프다.
패배를 선택할지언정 패스를 안 해주거나, 감독은 아예 경기를 출전시키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땅땅땅!
황 관장의 젓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린 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뭣들 하는 짓인가? 다들 자리에 앉아!”
어색한 침묵이 가게 안을 감쌌다.
“맷코치와 이야기해 본 결과 다음 친선전은 적토마 FC하고 붙기로 했다.”
“네!?”
두 팀의 선수들은 놀랐다.
머슬FC는 15:0, 드랍FC는 16:0으로 깨진 기억이 떠올랐다.
“관장님 거기는 좀…….”
“이게 다 순신을 위한 결정이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순신이 쪽으로 쏠렸다.
“맷코치도 순신이의 재기를 돕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즉 다음 경기는 머슬FC와 드랍FC가 힘을 합칠 거란 말이다! 우리가 합치면 이길지도 몰라. 순신이랑 국성이가 그래도 걔들보단 젊잖아.”
예상치 못한 전개에 이순신도 최국성도 당황했다.
“쫄지 마. 그 녀석들이 아무리 레전드였다고 해도 우리에겐 이순신이 있다!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이순신!”
한껏 취했겠다. 국뽕 차오는 그 이름을 연호하자 아저씨들은 군가를 부르듯 이순신을 연호했다.
“관장님. 거기에 누가 있길래 레전드라고 하시는지…….”
“이운장, 김남호, 김구름,”
이름을 듣자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전설 매치가 2002년 선수들이었어?’